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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들
토니 휠러 지음, 김문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해부터 여행은 저의 책읽기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토니 휠러의 <나쁜 나라들>은 최근에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토니 휠러는 여행자들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여행 전문서적들을 내고 있는 출판사 론리 플래닛의 창설자입니다. 저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몇몇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을 계기로 이상하고 나쁜 나라의 속살을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가 나쁜 나라로 분류하는데 적용한 악의 계수는 과학적인 측량법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세 가지 기준을 적용했다고 했습니다. 자국민을 어떻게 다루는가, 테러리즘에 관련되어 있는가,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는가 등인데, 각 분야마다 0(문제 없음)에서 3(악의 전형)까지 점수를 매겨서 합산한 값으로 정했는데, 개별 지표에 대하여 각국의 사정을 들어 가감하기도 합니다. <나쁜 나라들>에는 리비아, 미얀마(미얀마),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이라크, 이란, 쿠바 등 9개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는 국가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된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각국을 여행하게 된 동기는 물론 입국에서 출국까지의 과정, 각국에서 무엇을 보고 겪었는지, 음식이라든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것까지 시시콜콜 적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이 처한 국내외 상황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요약하고 있어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양비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과연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 중립적인가하는 문제는 논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북한은 남한이, 남한은 북한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양측에는 팽팽한 전운이 감돌았고, 양측에 자금과 무기, 전술을 지원한 미국과 러시아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한국전쟁에서 누가 먼저 총격을 시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 되었건 결국에는 일어나고 말았을 전쟁이었다.(109쪽)”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석좌교수)가 1981년 출간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전은 해방 이후 만들어진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나오게 된 ‘남침 유도설’ 또는 ‘남침 묵인설’에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한측이나 미군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개전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낙동강변으로 밀려내려갔겠는가 하는 정도만 생각해도 모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북한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나라로 규정하고, 저자가 정한 악의 계수 7점으로 가장 높은 국가로서 구제불능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2007년에 출간된 점을 고려한다면 쿠바에 대한 저자의 기술은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과 쿠바는 2015년 7월 1일, 54년 6개월만에 국교를 정상화한다고 전격 발표한 이래 쿠바의 국내 사정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를 국시로 하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경제운용 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용되는 개인사업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개인들 역시 자본주의에 눈을 떠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방치되었던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퇴락한 건물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아바나의 거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올드카가 넘쳐나고 있는 것인데,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소비재의 수입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지금은 보기 힘든 올드카가 거리마다 넘치고 있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쿠바사람들이 이미 단종된 올드카의 부품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 앞으로는 보기 힘들 수도 있어서 일찍 쿠바를 방문할 것을 권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머지 7개국을 방문하면서 저자는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우선적으로 챙겨보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몇 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한나절에 돌아보는 등 주마간산 식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