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세트 - 전12권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우지더 외 지음, 자오시웨이 외 그림, 한국학술정보 출판번역팀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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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보니 어떤 방향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는가에 따라서 모양새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럽 혹은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이 주로 소개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국인의 시각으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연환화(連環畵)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 중국의 대표적 문화 가운데 하나인 연환화는 이야기의 전체 과정을 여러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회화를 말합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보았던 그림 연극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그림 연극에서는 극장의 무대처럼 만든 틀 안에 그림을 그린 화면이 연속으로 넘어가면서 변사가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환화에서는 그림 아래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요약된 설명을 이어서 읽으면서 그림을 통하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그림책입니다. 중국의 상하이에서 20세기에 등장하여 발전하고 있으며 연환화를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도 있는 듯합니다.


중국연환화출판사에서 내놓은 <제2차 세계대전 연환화고>를 우리말로 옮긴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은 “독자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전쟁 도발자들의 추악한 면모와 야욕을 알고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깨닫기 바란다.”라는 기획의도를 적었습니다. 모두 열두권으로 된 연작물에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전쟁의 기류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다루고 있는데,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상하이전투가 치러지는 과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유럽에서 주축국이 전쟁을 벌이기 전에 이미 동북아시아에서는 뒤에 주축국의 일원이 되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독일의 폴란드침공에 이어 전장이 서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그렸고, 연합국이 전기를 잡아 역습에 성공하여 전쟁을 마무리하기까지의 과정이 차례로 그려집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아시아로 되돌아와서 일본이 아시아 전역으로 전장을 확대하고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서태평양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미군이 일본을 본토로 몰아넣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일본이 주축국에 가담하게 된 것은 아시아의 패권을 잡으려는 야욕에서 시작된 것인데, ‘아시아는 아시아 사람들의 손으로’라고 하였지만, 속내로는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이 식민지배하던 아시아권역을 차지하려는 야욕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이 유럽에서 사로 싸우느라고 식민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전략적 오판을 했던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변수가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려 1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만, 그림이 많고 설명이 잘 축약되어 있어 전체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그림을 읽다가(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면 화풍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방대한 분량의 그림을 이야기 전개에 맞춰 그리다보니 한 사람이 끝까지 그려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달라진 화풍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의 설명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가 하면 치열한 전투장면을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해서 글 자체가 건조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의 시각에서 본 역사이지만 전쟁 초기에 일방적으로 몰리거나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있었던 묘한 갈등 같은 것 등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개중에는 감추고 싶은 역사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작전지도 같은 것을 통하여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투장면은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기도 해서 오히려 신선함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긴박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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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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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벌레’라고 부르면 무엇에 빠져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을 이릅니다. <책벌레>도 어쩌면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책을 좋아해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책밖에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쓴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진짜 책을 갉아먹는 서두(書蠹)라는 일종의 진드기를 의미하는 한자어를 가져와서 책을 많이 읽기만 하고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뮌헨대학에서 체계이론을 가르치는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책벌레 이야기를 독특한 구조로 구성한 소설입니다. <책벌레>은 두 개의 이야기와 책읽기에 관한 짧은 아홉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는 200여년의 시차가 있어 각각 다른 주인공이 이끌어갑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앞의 이야기가 뒷 이야기의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소설은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살인과 강도짓으로 얻은 돈으로 책을 사들인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받은 작센주 포르제나의 목사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사건을 축으로 작가가 창조한 팔크 라인홀트가 2세기 뒤에 6만권을 수집한 티니우스가 출판한 다섯 권의 책을 뒤쫓으면서 티니우스를 닮아가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팔크 라인홀트는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의 전기를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 자신이 티니우스의 텍스트가 되었다.(151쪽)” 무슨 일이든 집착이 생기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는 누구의 글이라고 콕 짚어주지는 않았지만, 아주 익숙한 글귀들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처음 대하는 구절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팔크는 마들렌을 먹을 때처럼 단어들을 오래 전에 식어 씁쓸해진 차에 적셔 입에 넣고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천천히 혀로 굴렸다.(109쪽)”라는 대목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집 쪽으로; >의 한 장면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홉 개의 양탄자들은 글과 작가, 독자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짧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양탄자에서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인용하여 글의 의미를 논하였습니다. 두 번째 양탄자에서는 ‘최초의 작가는 누구일까?’하는 질문을 내놓은 저자는 ‘자연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신이 최초의 작가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세 번째 양탄자에서는 배움의 방법을 논하는데, 기억력보다는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네 번째 양탄자에서 말하는 책에도 얼굴이 있다는 설명은 아마도 글 쓰는 이마다의 색깔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독서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다섯 번째 양탄자는 크게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독서의 체험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한 자루의 도끼와 같다(117쪽)’라는 놀라운 비유를 인용한 것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책의 세속적 측면을 다룬 여섯 번째 양탄자도 독특한 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책은 우리 자신과 동일화시킬 대상을 제공하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한 일곱 번째 양탄자는 아무래도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자는 공작새다’라는 제목의 여덟 번째 양탄자도 생각거리가 많은 항목입니다. “맹목적이고 게으른 심성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앓고 있는 전염병(179쪽)‘이라고 비유한 것을 보면 저자는 독자의 분발을 에둘러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양탄자 ‘독서의 기술’이야말로 이 책의 화룡첨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내가 기대하는 독자란 적어도 세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독자는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독자는 독자 자신과 자신의 ‘교양’을 개입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는 책의 말미에 일종의 결론으로서 ‘도표’들이 나오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197쪽)”라는 구절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읽은 이에게 당부하는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홉 개의 양탄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독서의 문화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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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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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마라구의 <리스본 쟁탈전>은 1147년 7월 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알폰소왕의 포르투갈군이 제2차 십자군의 도움을 받아 무어인이 점령하고 있던 리스본을 함락시킨 사건을 꼬투리로 한 소설입니다. 리스본공방과 관련한 색다른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기대한 책읽기였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습니다.


<리스본 쟁탈전>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두고 생각해볼 거리를 담았습니다. 역사자료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기록한 사람의 희망사항이 담긴 왜곡된 기록인가 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저자와 교정자의 역할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교정기호인 델레아투르(deleatur)를 두고 저자와 교정자가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도입부의 책읽기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대화체를 표시하는 따옴표가 없어서 누가 한 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교정자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요?


주인공은 교정자 라이문두 벤빈두 실바입니다. 50대의 독신인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 것이며, 내가 누굴 사랑하겠어?’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교정을 보고 있는 책을, “사람들이 풀어놓은 픽션들은 창조된 것이고, 책과 픽션에는 의심이라는 요소가 항상 존재하며, 과묵한 긍정도 존재한다(77쪽)”고 믿습니다. 실바는 자신이 검토한 <리스본 쟁탈전>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리스본 쟁탈전과정에서 십자군이 돕지 ‘않았다.’라고 손을 본 것입니다. 십자군이 ‘도왔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꾼 것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정오표를 붙여 독자의 오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 뜻밖의 제안을 해옵니다. 리스본공방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역사소설을 써보라는 제안을 해온 것입니다. 작가는 포루투갈왕국의 아폰소국왕의 연설 속에서 십자군이 리스본공방전에 참여하지 않을 꼬투리를 잡아낼 정도로 포르투갈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것이 <리스본 쟁탈전>이 탄생하게 된 힘이었다고 합니다.


쟁점을 읽으면서 헷갈렸던 것은 리스본 공방전에 십자군이 개입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작가적 상상력 혹은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어인의 지배로부터 국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외세의 힘을 빌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같은 것을 포르투갈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외세의 도움에 기대야 했던 우리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그런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집책임을 맡게 된 마리아 사라박사와의 만남에서 사랑을 느낀 실바는 리스본공방전의 새로운 해석을 써나가는 과정에 사라와의 관계를 풀어 넣게 됩니다. 작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통하여 포르투갈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겨진 자존심의 실체를 비벼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물을 대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역사적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기억해야 하며 작가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역사가 역사적 사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책 말미에 붙인 영어판 후기에서 지오반니 폰티에로 역시 이 점을 짚고 있습니다. “역사집필과 소설집필 사이의 차이점과 과거를 재구성하는 기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508쪽)”


그런가 하면 작가 역시 믿을만한 역사기록과 의심스러운 역사기록을 구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역사는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써질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가 무한하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내 글의 핵심이다. 불가능한 일, 꿈, 환상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내 소설의 주제이다.(50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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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12-2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 사라마구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리스본 쟁탈전은 눈길이 가지 않았어요. 역시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이었군요.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처음처럼 2016-12-23 00:13   좋아요 0 | URL
시작부분을 인내할 필요가 있더라구요...
 
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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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끔찍, 발랄하다. 누가, 왜, 어떻게 책을 죽인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읽기로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책 죽이기>는 책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소멸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책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출판사 사장, 문예대행인, 편집자, 인쇄소, 서적상, 독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책이 가는 곳 역시 출판사로부터 서점, 도서관, 개인, 헌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책을 의인화해서 인간을 남성, 책을 여성으로 비유한 착상도 깜찍하고,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임신과 출산에 비유한 것도 놀랍습니다. <책 죽이기>는 유고슬라비아의 사변소설 평론가이자 작가인 조란 지브코비치의 작품입니다. 아마도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 :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아우르는 소설) 평론을 하다 보니 이런 착상도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책이 ‘이 세상을 찬란하게 빛내 온, 단 두 종의 지적생물체(인간과 책이겠지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적생물체 가운데 하나가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잔인무도한 인간들의 폭행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인간이 책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CD롬에게 밀려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버글스(The Buggles)라는 영국그룹이 1979년에 발표한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챠트 1위에 오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환상적인 연주에 곁들인 노래가사는 비디오 클립이라는 동영상기술 때문에 라디오 스타, 그러니까 노래는 잘하는데 얼굴이 따라주지 않는 가수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가수 가운데 얼굴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 하던 버릇(지금은 많이 고쳤습니다만)을 생각하면 정곡을 찔린 듯한 지적질도 있습니다. 침묻여 책장넘기기, 기억할 부분의 책장 접기와 한술 더 뜬 책장 절반 접기, 책에 줄치거나 뭔가 적기, 요즘에는 형광펜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표시하기, 심지어는 도서관에서 빌어 온 책에서 책장을 뜯어내는 만행 저지르기까지, 인간이 책에게 저지르는 만행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도서관을 책의 사창굴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버릇은 학교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방치하는 가운데 어린 학생들이 저지르는 짓들이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몇 종류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운이 좋은 편이있습니다. 첫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는 우리 사회에서 치매가 화제에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시운을 탄 것도 있습니다. 석 달 열흘 정도 몰입해서 원고를 쓰고 몇 달을 묵혀두었다가 세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그 가운데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받아준 것입니다. 계약을 하고 원고를 수정하는 작업은 거의 새로 쓰는 수준이었는데, 그런 작업을 석달 열흘 정도 한 뒤에 책이 세상이 나온 것입니다. 두 번째 책 <눈초의 광우병 이야기>도 원고를 먼저 완성하고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블로그 친구인 ‘도서출판 Be’에서 해보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세 번째 책 <PD수첩 광우병편은 무죄다?>는 지상에 연재하던 칼럼을 책으로 묶었는데, 몇 군데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끝에 겨우 빛을 본 책입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몇 개의 원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출판사를 만나는 일이 수월치가 않아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론가에 대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는 파워리뷰어의 역할과 겹치는 부분 같습니다. 출간기념행사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저는 세권의 책을 내놓으면서 출간기념행사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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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프랑스 책방
마르크 레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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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브로맨스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결합해서 만든 말인데, 남자들이 나누는 진한 우정을 말합니다. 때로는 로맨틱한 경지에까지 이르지만 동성애까지로 발전하기는 않는 관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남-남 케미라는 용어와 유사한 개념인데, 케미는 화학(chemistry)에서 유래된 말로 화학반응처럼 강한 감정교류가 있는 사람의 관계를 지칭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를 몇쯤은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브로맨스를 설명하는 까닭은 <행복한 프랑스 책방>이 바로 그런 남-남 케미를 다룬 소설이라서입니다. 아니 남-남 케미를 중심으로 런던의 프랑스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 모습을 기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시골마을처럼 말입니다. 남-남 케미의 주인공들은 이혼 후 각각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홀아비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같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석에서 보는 것처럼 같으면 서로 튕기기 때문에 케미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런던의 프랑스마을에 사는 건축가 앙투안은 파리의 서점에서 일하는 절친 마티아스를 런던으로 부릅니다. 은퇴하는 서점 주인에게 마티아스를 추천한 것입니다. 마침 런던에서 딸과 함께 살던 전아내가 파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딸은 런던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도 이유가 된 것입니다. 앙투안의 전처 카린은 아들을 런던에 남겨둔 채 아프리카 다르푸르에서 인류애를 발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밀한 앙투안과는 달리 충동적이고 대충대충인 마티아스를 보면 두 사람 관계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숱하게 연출되는데, 결국은 수습이 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천생연분인 듯합니다. 앙투안이 꽁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전처와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티아스이면서도 새로 등장한 여성과 열애에 빠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앙투안은 둔감한지 꽃집 여주인 소피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일하고 있는, 혹은 살고 있는 뷰트 스트리트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이본, 꽃집을 하는 소피도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작가는 주변인물의 삶과 생각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그리고 있어 전체 이야기의 전개가 지나치게 두 사람으로 편중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책방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마티아스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그루버씨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을 당신에게 맡기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포피노씨. 처음에는 조금 적응하기 힘들 겁니다. 장소가 좁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 서점의 영혼은 무척 거대합니다.(27쪽)” ‘서점의 영혼’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이 서점은 그루버씨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자신이 은퇴해도 문을 닫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업종이 바뀌는 요즈음의 가게들과는 다른 철학을 가진 서점 주인인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하던 ‘프랑스 서점’이라는 간판을 런던의 서점에 단 것을 보면 마티아스는 터키계인 것 같습니다. 가업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뷰트스트리트에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열린 마음도 재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점을 마티아스에게 물려주는 그루버씨나, 갈 곳 없는 이주소녀 예나에게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본이나, 막막한 삶에 지쳐 차도로 뛰어들려는 그녀를 구하고 작은 도움을 주는 그루버씨, 그런가 하면 이본의 가게를 새롭게 꾸며주려는 앙투안과 건축사무소 주인 매캔지씨 등등... <행복한 프랑스 책방>에 등장하는 연인관계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한눈에 반해서 끓어오르는 마티아스와 오드리의 관계가 있는가하면 이본을 해바라기 하는 매킨지소장, 앙투안을 향하는 소피의 은근한 사랑, 이본과 그루버씨의 오랜 사랑 등등... 다양한 사랑의 유형도 <행복한 프랑스 책방>에서 즐길 수 있는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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