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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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끔찍, 발랄하다. 누가, 왜, 어떻게 책을 죽인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읽기로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책 죽이기>는 책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소멸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책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출판사 사장, 문예대행인, 편집자, 인쇄소, 서적상, 독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책이 가는 곳 역시 출판사로부터 서점, 도서관, 개인, 헌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책을 의인화해서 인간을 남성, 책을 여성으로 비유한 착상도 깜찍하고,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임신과 출산에 비유한 것도 놀랍습니다. <책 죽이기>는 유고슬라비아의 사변소설 평론가이자 작가인 조란 지브코비치의 작품입니다. 아마도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 :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아우르는 소설) 평론을 하다 보니 이런 착상도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책이 ‘이 세상을 찬란하게 빛내 온, 단 두 종의 지적생물체(인간과 책이겠지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적생물체 가운데 하나가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잔인무도한 인간들의 폭행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인간이 책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CD롬에게 밀려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버글스(The Buggles)라는 영국그룹이 1979년에 발표한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챠트 1위에 오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환상적인 연주에 곁들인 노래가사는 비디오 클립이라는 동영상기술 때문에 라디오 스타, 그러니까 노래는 잘하는데 얼굴이 따라주지 않는 가수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가수 가운데 얼굴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 하던 버릇(지금은 많이 고쳤습니다만)을 생각하면 정곡을 찔린 듯한 지적질도 있습니다. 침묻여 책장넘기기, 기억할 부분의 책장 접기와 한술 더 뜬 책장 절반 접기, 책에 줄치거나 뭔가 적기, 요즘에는 형광펜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표시하기, 심지어는 도서관에서 빌어 온 책에서 책장을 뜯어내는 만행 저지르기까지, 인간이 책에게 저지르는 만행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도서관을 책의 사창굴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버릇은 학교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방치하는 가운데 어린 학생들이 저지르는 짓들이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몇 종류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운이 좋은 편이있습니다. 첫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는 우리 사회에서 치매가 화제에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시운을 탄 것도 있습니다. 석 달 열흘 정도 몰입해서 원고를 쓰고 몇 달을 묵혀두었다가 세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그 가운데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받아준 것입니다. 계약을 하고 원고를 수정하는 작업은 거의 새로 쓰는 수준이었는데, 그런 작업을 석달 열흘 정도 한 뒤에 책이 세상이 나온 것입니다. 두 번째 책 <눈초의 광우병 이야기>도 원고를 먼저 완성하고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블로그 친구인 ‘도서출판 Be’에서 해보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세 번째 책 <PD수첩 광우병편은 무죄다?>는 지상에 연재하던 칼럼을 책으로 묶었는데, 몇 군데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끝에 겨우 빛을 본 책입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몇 개의 원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출판사를 만나는 일이 수월치가 않아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론가에 대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는 파워리뷰어의 역할과 겹치는 부분 같습니다. 출간기념행사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저는 세권의 책을 내놓으면서 출간기념행사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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