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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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현대의학의 비과학성’이라는 구체적인 제목의 글을 달고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고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17144>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마치 의사들이 쉬쉬하고 있는 비밀을 캐내어 의사들의 뻔뻔함을 고발하는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내용은 의학전문잡지에 발표되고 있는 각종 논문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주로 인용하면서 그 반대되는 주장을 담은 논문은 아예 있는지 없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어 저자가 의학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의 주장에 따라 현대의학을 거부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워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자료를 모으고 있어 저의 관심영역이 아니면 진위여부의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현대의학이 빠른 속도로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다 보니 진료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전문가라는 사람도 범할 수 있는 실수라는 영역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의료라는 영역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는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료행위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이 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어제는 모 상급병원에서 새로 부임한 스태프들을 위한 업무교육에서 제가 하고 있는 업무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교육시간에는 보통 제가 발표할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는 제 몫의 강의가 끝나면 떠나는 것이 일반입니다만, 이날은 모든 교육프로그램에 저도 참여해서 같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저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가 바로 “Critical Pathway(CP로 줄입니다)”였습니다.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어 그대로 적습니다.

 

CP는 건설/공학분야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공정으로 편성된 작업현장에서 최단 경로로 제품을 완성하는 경로를 택해 산업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입니다. 의료분야에 적용된 것은 1985년 미국 보스턴의 New England Medical Center에서 효율적인 의료를 제공하고 의료의 질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진료에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하고 있는 의료에서의 적정성평가 역시 산업현장에서 나온 개념이 의료분야에 적용하여 이제는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P는 환자진료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발하여 환자의 진료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든 진료절차의 틀입니다. 흔히는 규격화된 진료행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으나, 진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CP의 틀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별도의 대응을 하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체크! 체크리스트>는 바로 의료현장에서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한 체크리스트에 따라서 확인하고 또 확인함으로서 환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실수가 일어나는 원인은 의료분야에서 축적되어온 지식의 양이 방대해지고 내용 자체도 복잡해지고 있어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용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방식이 바로 체크리스트에 기반한 교차체크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일반외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정리한 글을 통하여 의료계와 일반인의 관심을 얻은 바 있습니다. 이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http://blog.joins.com/yang412/8944844>,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72224>를 통하여 그의 솔직한 글솜씨에 반해온 탓인지는 몰라도 <체크! 체크리스트> 역시 공감되는 바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왜 전문가도 실수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1장을 요약하는 다음 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초전문가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일류 전문가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다. 복잡하고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며, ‘그래도 전문가인데 설마?’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자는 항공계, 건축업계에서 체크 리스트를 도입하여 성공한 체크리스트 운용사례 등을 인용하여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저항감마저 생기는 체크리스트라고 하는 사전예방체계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WHO의 요청에 따라서 수술 후 환자에서 발생하는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직접 개발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수준의 병원 8곳에서 시범운용한 결과를 2009년 1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바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핵심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수술 후 후유증을 줄였고, 수술에 참여하는 팀원들의 팀워크를 개선하였음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체크리스트는 환자의 안전확보에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예를 들면, “시기적절한 항생제 투여, 제대로 작동되는 맥박산소측정기 사용, 기도 내 튜브를 삽입할 때 필요한 공식적인 위험평가 완료, 환자의 신원과 수술절차의 구두확인,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환자를 위한 정맥주사 라인의 적절한 삽입, 마지막으로 수술이 끝났을 때 스펀지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들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196쪽)” 등입니다.

 

시범사업이 끝날 무렵 참여했던 직원들의 80%는 체크리스트가 사용하기 쉽고, 실시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으며, 치료의 안전성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팀 안에서 의사소통의 수준이 향상되어 팀워크가 좋아졌다고 했으며, 수술후 합병증이 36%, 수술후 환자사망률이 47% 감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만든 체크리스트 가운데 수술할 때 절개를 하기 1시간 이내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했는가를 목록에 넣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업무 가운데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 평가>라는 업무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선생님들은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항생제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이라는 개념은 피부를 절개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수술과정에서 상처를 감염시키는 병원균을 처리하기 위하여 수술부위를 절개하기 1시간 이내에(즉 항생제를 투여하고 1시간 이내에 절개를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여 수술시간동안 혈중 항생제농도가 최고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방적 항생제를 사용하면 수술이 끝난 다음 24시간 이내에 항생제 사용을 끊어도 수술부위에 감염이 일어나지 않더라는 연구결과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평가기법입니다. 하지만 감염위험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외과선생님들은 항생제에 의존하는 경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하는 환자에서 예방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고 수술 후에는 일찍 항생제 사용을 중단하는 외과선생님들이 빠르게 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의료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상가 도널드 버윅은 ‘의료행위란 자동차와 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자동차든 의료행위든 훌륭한 구성요소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의학계는 최고의 약, 최고의 장비, 최고의 전문가와 같은 최고의 구성 요소들을 갖추는데 집착하면서 이 요소들이 서로 잘 맞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249쪽)”고 따끔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일류 부품만 갖추었다고 해서 시스템이 훌륭해지는 것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릴 겁니다.”라고 한 버윅의 조언은 의료계에 꼭 맞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료팀을 도와주기 위하여 만들어져야 할 체크리스트가 오히려 의료팀을 방해하는 경직된 명령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효율적이면서도 간단한 절차가 되도록 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검토하여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는 제목을 둔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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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4-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5318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이 중요한 이유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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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의 피해자가 1,100만이나 된다는 끔찍한 사실을 다시 새기는 순간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확인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폰더씨’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 앤디 앤드루스를 잘 모른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How do you kill 11 million people?>이라고 된 영어 제목을 보면 ‘내가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게 됩니다. 권두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제가 알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게 없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모임에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왔는데 아마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였던 같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네편 내편이 아닌 우리 편이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사꾸라’라고 불릴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나서는 정치판의 그런 요구를 받아온 저자가 미국식 정치현실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깨우치기 위해서 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무려 1억 명의 미국인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5년간 미국 대선에서 1,000만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1억명을 향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가 1,100만명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힘을 쥔 자가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눈감았던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태인만이 홀로코스트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1,100만명의 피해자 가운데 500만명은 유태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제국은 처음부터 유태인을 학살하겠다고 공언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끌고 갔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련을 팔아 유태인을 보호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속여 수용소로 끌고 갔고, 시간이 흘러 수용소의 비밀이 어느 정도 알려진 다음에도 이런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인정아래 끔찍한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저지른 만행을 중심으로 상황을 외면한 자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만, 그밖에도 캄보디아, 소련, 북한, 멕시코, 파키스탄, 발트 공화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자국 정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엄청난 숫자를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1,100만명을 죽이는 방법은 바로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란 생각이란 걸 안해. 그러니까 뻥을 크게 치라고. 쉽고 간단하게 말해. 계속 말하는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단 말이지.(53쪽)” 그런 거짓말이 통해서 학살이 시작되고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고 생각한 일반 시민들이 눈을 감게 되는 순간 학살은 광란의 극을 향하여 치닫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 의회를 채우고 있는 545명의 상, 하원 의원들이 모든 법을 만들고 예산을 계획하며 모든 정책을 만들어 전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실상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정치가 되어 범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선출할 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의 ‘행위’를 면밀히 보는 것이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여 제대로 행사해야만 제대로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옛날 그리스에서처럼 모든 국민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던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실시가 불가능한 현실이고, 또한 일반 국민의 생각이 한 방향으로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민의 지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대표성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이 선거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 또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과 같이하는 대표에게 투표함으로써 시민 전체의 의견이 어떻다는 것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 말미에 붙인 옮긴이의 글이 시사하고 있는 편향성입니다. 저자는 6.25동란기간 남한정부에 의하여 학살된 민간인을 다룬 더 타임스의 기사를 비롯하여 김구, 조봉암 등 정치인사 암살 및 숙청, 여순반란사건을 포함한 수많은 학살, 제주 4.3항쟁, 4.19민주화혁명 등등 남한정부가 저지른 학살을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비단 히틀러만이 아니라 히틀러 II, 히틀러 III들이 연달아 정권을 장악했고, 그들의 범죄는 종잇장처럼 얄팍한 처벌로 합리화됐고, 그들과 그 조력자들은 여전히 천지를 활보한다.(111쪽)”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의 오랜 민주화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투표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세계가 놀랄만한 민주화의 진정을 이뤄낸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는 준엄함을 보인 대단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끝난 총선과정에서 여야 모두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을 바로 잡는 노력을 보이는 쪽이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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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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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는 저자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 앤서니 앱스터가 전하는 삶의 족적 어디에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토니(어쩌면 주인공 앤서니는 제가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친근해서라기보다는 적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부르겠습니다.)가 적고 있는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저 자신도 저의 삶의 기록을 정리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책은 간단하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토니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대학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이제는 나이 들어 은퇴생활을 하게 될 때까지 삶의 흐름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젊었을 적에 같이 어울리던 4명의 친구들, 특히 에이드리언에 대한 토니의 설명은 마치 데미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성이 풍부한 싱클레어가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데미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듯이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있어 데미안 같은 존재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의 성장기를 그리는 장면에서는 저자의 심오한 인문학적 사색의 깊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이 말하는 인생의 총체, ‘탄생, 성교,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보라는 영어교사 필 딕슨선생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은 “사랑과 죽음, 즉 죽음의 원칙과 충돌하는 에로스의 원칙”이라고 답변합니다. 그런가하면 역사의 조 헌트선생이 던지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33쪽)”라고 답변하는데, 그는 자신에 주어진 세월을 살아낸 다음에는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101쪽)”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저자가 1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2부 마무리에서 드러나는 사실과 연관된 힌트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 그런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제가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은 독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저 처음 읽을 때는 저도 이들 나이에는 저랬는데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과거를 되돌아보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토니의 친구 세 사람은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으로 손목시계의 앞면을 손목 안쪽으로 돌려서 차고 다녔는데, 그것이 허세였던 것 같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모양으로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허세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부는 젊었을 적 사귀었던 여자친구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은 다음 토니에게 500파운드와 친구 에이드리언의 유품 일기장을 남겼다는 변호사의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젊어서 사귀던 여자친구와 성격차이로 헤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현금과 유물을 상속하도록 유언을 남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부에서 헤어진 베로니카가 친구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그리고 나서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은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베로니카 어머니가 남긴 유물은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는데, 이 일기장은 베로니카가 이미 가져간 상태입니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남긴 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일기장을 돌려받기 위하여 연락을 끊고 지내던 베로니카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베로니카, 에이드리언, 그리고 토니 사이에 얽히고설킨 과거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msn.com/yang412/2081937>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키다는 우리가 사고와 기억의 오류를 범하는 이유 혹은 유형을, “1. 통계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2.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3.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4.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하곤 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 생각한다. 6.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의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기억이라고 한다면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을 덤으로 주신 것은 기억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프리미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프리미엄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토니 역시 젊어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저지른 엄청나고 어리석은 실수를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의 일부를 얻고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마지막 힌트를 저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토니는 자신이 보낸 편지 한 장이 친구와 옛 여자친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바닥보다 더 깊이 파묻어버리고 잊혀지기를 원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이유로 저자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정한 것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그런 해석이 가능한 힌트를 “뇌는 이따금씩 파편적인 기억을 던질 테고, 심지어는 기억의 묵은 폐쇄회로를 터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요새 내게 일어나고 있으니 경악할 노릇이다.(194쪽)”에 묻어두지 않았을까요?

 

과거에 깊은 생각 없이 던진 말 혹은 글이 부메랑이 되어 발목 잡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신하게 하라는 선조님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었을 때의 시선으로 보면 한평생이 정말 긴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짧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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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12
강영안 지음 / 한길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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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책읽기에 재미를 들이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국어사전적 의미를 굳이 따져본다면 나름대로는 역사와 문학 분야에는 관심을 두고 나름대로의 책읽기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철학’하면 일단 어려운 학문이다라는 지레짐작에 엄두를 내지 못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철학이 인문학의 3대 주류 가운데 하나인데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가운데 만난 강영안교수님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철학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책이었습니다.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철학은 없다’는 답이 나올 것 같은 제목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배울 수 있는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8쪽)”라고 단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우리사회의 구조적 갈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사회과학과 철학 등 인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지만, 그 이후로 바뀐 학제의 영향을 비롯하여 사회환경의 변화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삶은 철학의 이유’라는 제목으로 한 서문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추어 철학과 인문학은 변신을 꾀하지만 음식으로 배부르고 몸이 편안한 상황에서 대중들이 귀 기울여줄 것이라 기대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인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자와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마치 아테네 시민들을에게  쇠파리처럼 굴었듯이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8쪽)”고 인문학자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철학공부를 시작하나 싶기도 하고, 철학은 감히 엄두를 내기조차 겁나는 분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는 일단 향도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1부 ‘철학의 얼굴’에서는 철학에 대한 생각의 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주셨고, 2부 ‘타인의 발견’에서는 삶에서 철학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의학교과서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틀이기도 합니다. 즉, 총론을 통하여 해당 분야의 전체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이어서 각론에 들어가서는 분야별로 상세한 설명을 하는 식인데, 여기서는 각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일상에서 철학하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각론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앞서 저자가 “배울 수 있는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한 이유는 철학은 하나의 학설, 하나의 가르침,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삶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지는 각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사유를 통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삶이 철학 자체이고 철학적 물음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저자는 “우리의 사유하는 능력(논증과 반론), 사유 능력을 적용하고 훈련할 수 있는 텍스트, 그리고 삶”, 이 세 가지를 철학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유럽철학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근대 유럽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1900년 후설로부터 시작한 현상학에서부터 1920년 빈을 중심으로 한 논리실증주의, 프랑크푸르트의 비판이론, 러시아의 형식주의에 뿌리를 둔 구조주의 등이 과학적 철학하기와 현실파악이 핵심을 이루었다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철학에 뿌리를 두었던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 뿌리인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강영안교수님께서 인용하고 계신 철학 텍스트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놀랐습니다.

 

과학에 조금 관심을 가진 탓에 눈에 띈 구절입니다만, “사실로부터 규범을 얻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마치 ‘바위에서 물을 얻어내자는 것’(ex pumice aqua)과 마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109쪽)”는 인용이 적확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위가 치밀해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위를 구성하는 원소에 물성분이 결합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부 ‘타인의 발견’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한계로부터 유추되는 타인과의 관계가 논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윤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윤리는 결국은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타인과 스스로의 고통을 다룰 것인가 하는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1부는 철학의 원리를 설명하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은 읽는 호흡이 더디다 싶습니다만, 2부의 글은 아무래도 우리네 삶에서 보는 경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고 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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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이종훈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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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의료계에 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영기 교수님 등이 쓴 <생명윤리와 윤리교육;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0297>을 통하여 생명윤리를 포함한 윤리교육의 필요성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윤리의 기본이 될 도덕성을 갖추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도덕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도덕철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를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쾌락과 고통의 선택, 즉 선과 악의 선택에 있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은 지식의 결여에서 나온다.(프로타고라스)”, “분명히 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욕구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악인데도 사람들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욕구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을 모르거나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선을 욕구하는 것이다.(메논)”라고 주장하고 있어 도덕적 선(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앎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 자연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당시의 그리스 철학자들과는 달리 인간의 질서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즉 우리의 삶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을 깨닫기 위하여 부단하게 생각하고, ‘덕은 곧 지식이다.’라는 지행합일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도덕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도덕지(道德知)는 곧 인생의 참목적을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기 때문에 덕을 가르칠 수 없고, 다만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쇠파리’ 역할을 할 따름이라고 겸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길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기왕의 세력을 쌓고 있던 소피스트들의 반발을 얻어 시민재판에 회부되고 사형을 언도받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아테네에서 도덕철학을 내세운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는 이종훈교수님의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주에 끝난 총선과정에 화제가 되었던 젊은이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이슈와 같이 생각해볼 무엇이 있을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텍스트는 눈술과 토론을 위하여 기초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하여 쉽게 정리되어 있어 저같이 인문학이나 철학적 배경이 두텁지 못한 사람도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요체는 델포이신전의 대리석벽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그노티 세아우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했는데,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첫째,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단계에서는 반어법(Socratic irony), 즉 논박술(elenchos)로서 자신이나 상대방의 무지를 확인함으로써 진리를 스스로 깨닫기 위한 준비단계이고, 둘째, 영혼(靈魂)을 활용하는 단계에서는 산파술(maieutike)로서 이성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망각된 진리를 스스로 기억해내는, 즉 직관하는 작업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명예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접 민주제도에서 남들보다 눈에 띄기 위해서는 웅변과 수사학적 재능이 필요하였습니다. 당시 각광받는 소피스트들은 청년들에게 돈을 받고 출세하는 기술을 가르쳤는데, 논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정당한 근거가 부족하면 남이 보기에 그럴 듯한 논리를 개발하고 상대방의 의견보다 낫게 보이게 하는 궤변을 동원하는 법까지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의(正義)란 [논쟁에서 뛰어난] 강자의 이익”이라는 주장도 나왔다는 것입니다.(4쪽)

 

소크라테스의 시대 아테네에 있는 델포이 신전에서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이 나왔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지혜롭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면 이를 깨닫게 해주려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화제가 되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으며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을 믿는다는 죄목으로 시민재판에 회부한 것이고,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스스로를 변론하게 됩니다.

 

변론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로부터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그들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들이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일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법이 자신을 개별적으로 불러 가르쳐주거나 충고해주는 경우, 만약 내가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내가 본의 아니게 하는 짓이라면 당연히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49쪽) 또한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은 재판과정에서 국가가 믿는 신들을 모독한다고 바뀌었는데 그 과정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하여 배심원은 280:220으로 유죄평결을 내렸는데, 고소인들은 소크라테스를 사형시켜줄 것을 요구한 반면 배심원들은 납득할 수준의 벌금형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2차 변론을 통하여 누구에게도 고의적으로 해를 끼친 바 없다는 점을 확신하나 배심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벌금형을 받는 경우에는 벌금을 낼 재산이 없다는 점, 국외추방형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현재 방식의 교육을 멈출 수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2차 변론은 배심원들이 360:140으로 사형을 평결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는데, 소크라테스가 배심원의 선처를 호소하지 않고 젊은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부귀와 명예를 쫓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영혼을 돌보라고 질타하였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에서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소개하고 사형판결이 있은 다음,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소크라테스를 면회 온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는 장면과 소크라테스가 이를 거절하는 이유, 그리고 아테네 법률의 논고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누구와 합의한 것들이 올바른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크리톤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파멸을 바라는 자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것’이므로 탈옥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자신의 탈옥으로 인하여 누군가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 나라와 조국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해야만 한다는 사실, 올바름의 본성에 입각해 나라와 조국을 설득해야만 한다는 사실, (…) 나라와 조국에 대해 폭력을 쓰는 것[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훨씬 더 불경한 짓이라는 사실도 모르는가?(135쪽)”라고 크리톤을 설득하는 장면을 보면,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그 악법이 만들어진 절차가 올바른 것이었다고 하면 지키되 그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치룬 총선과정에서 저는 총선의 승리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경향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강영안교수님은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인문학과 철학을 외면하고 있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할 목표나 관심보다는 즉물적인 현상에 매달리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 진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외부의 충동질에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을 이용하려는 지도자는 많은데, 젊은이들이 참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려는 지도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년말에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도덕경은 “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라고 네 종류의 지도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량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도 그렇고 대통령 역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분이면 좋겠는데, 그런 분이 없다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분이라도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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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4-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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