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문학 사전 - 다음 세상의 교양을 위한
A. C.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다음 국어사전을 보면, “사전(辭典)이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사전(辭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이유는 영국인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철학자 그레일링이 쓴 책 <ideas that matter; ‘중요한 생각들’이라고 친절하게 번역을 해두신 bladestorm님께 감사드립니다>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우리말 제목을 참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최근에 예스24 덕분에 인문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들던 참이었기 때문에 출판사의 리뷰를 요약하여, “복잡한 세상을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 - 유럽의 대표 지성, 그레일링이 새로 그려낸 인문학 지도,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21세기 교양 안내서’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개념들을 1차로 선별, 그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전반의 개념 77가지를 엄선하여 수록했다. 용어 해설은 물론, 탄생 배경과 역사적 변천사, 철학적 해석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해석되는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여 지금껏 인류의 생각을 주도해온 핵심 개념어들의 흐름과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출판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77가지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이 인문학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제게는 인문학 분야의 이슈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 인문학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주제 가운데는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관심을 두었던 사회과학분야 등을 망라하고 있어 낯익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제가 다루고 있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화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열쇠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첫발을 떼기가 어렵지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라는 데팡 후작부인의 말이 제게도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제가 주목한 점이 바로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하고 복잡해지면서 대중은 갈수록 과학과 소원해졌고, 따라서 갈수록 과학의 의미와 이용, 전망, 가능성,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놓고 나누는 식견있는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5쪽)”는 저자의 탄식입니다. 이어 저자는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과학도들만큼 풍부하거나 이해가 빠르지 않아서 더 높은 식견과 통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철학 사상과 정치사상, 사회사상의 개념에 주의를 기울여 하는 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고대의 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이 가지를 치면서 떨어져 나온 뿌리가 어디였는지 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바로 이웃으로 향하고 있는 가지가 하는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나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자는 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이슈가운데 제가 관심을 가지고 뒤쫓고 있는 화두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아하게 죽을 권리를 허하라’는 제목으로 된 안락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가 겉보기에 달라 도덕적으로도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76쪽)”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하겠으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제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꼭 이치에 맞는다고 보아야 하는 의문으로 하더라도 생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인정해야 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흔히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붐비는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하고 소리치는 경우를 든다.(235쪽)”는 저자의 견해 역시 현재의 우리사회가 기억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슈는 간단하게, 또 어떤 이슈는 장황해보일 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니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미에 든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탐구’나 ‘탐구와 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써야 더 좋고 더 정확할 것이다.(507쪽)”

정리해보면 인문학에 막 발을 들여놓은 저로서는 좋은 네비게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