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문학 사전 - 다음 세상의 교양을 위한
A. C.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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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음 국어사전을 보면, “사전(辭典)이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사전(辭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이유는 영국인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철학자 그레일링이 쓴 책 <ideas that matter; ‘중요한 생각들’이라고 친절하게 번역을 해두신 bladestorm님께 감사드립니다>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우리말 제목을 참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최근에 예스24 덕분에 인문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들던 참이었기 때문에 출판사의 리뷰를 요약하여, “복잡한 세상을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 - 유럽의 대표 지성, 그레일링이 새로 그려낸 인문학 지도,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21세기 교양 안내서’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개념들을 1차로 선별, 그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전반의 개념 77가지를 엄선하여 수록했다. 용어 해설은 물론, 탄생 배경과 역사적 변천사, 철학적 해석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해석되는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여 지금껏 인류의 생각을 주도해온 핵심 개념어들의 흐름과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출판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77가지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이 인문학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제게는 인문학 분야의 이슈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 인문학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주제 가운데는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관심을 두었던 사회과학분야 등을 망라하고 있어 낯익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제가 다루고 있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화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열쇠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첫발을 떼기가 어렵지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라는 데팡 후작부인의 말이 제게도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제가 주목한 점이 바로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하고 복잡해지면서 대중은 갈수록 과학과 소원해졌고, 따라서 갈수록 과학의 의미와 이용, 전망, 가능성,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놓고 나누는 식견있는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5쪽)”는 저자의 탄식입니다. 이어 저자는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과학도들만큼 풍부하거나 이해가 빠르지 않아서 더 높은 식견과 통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철학 사상과 정치사상, 사회사상의 개념에 주의를 기울여 하는 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고대의 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이 가지를 치면서 떨어져 나온 뿌리가 어디였는지 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바로 이웃으로 향하고 있는 가지가 하는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나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자는 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이슈가운데 제가 관심을 가지고 뒤쫓고 있는 화두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아하게 죽을 권리를 허하라’는 제목으로 된 안락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가 겉보기에 달라 도덕적으로도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76쪽)”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하겠으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제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꼭 이치에 맞는다고 보아야 하는 의문으로 하더라도 생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인정해야 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흔히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붐비는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하고 소리치는 경우를 든다.(235쪽)”는 저자의 견해 역시 현재의 우리사회가 기억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슈는 간단하게, 또 어떤 이슈는 장황해보일 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니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미에 든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탐구’나 ‘탐구와 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써야 더 좋고 더 정확할 것이다.(507쪽)”

정리해보면 인문학에 막 발을 들여놓은 저로서는 좋은 네비게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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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과학/기술(번역) 598
조르주 깡귀엠 지음, 여인석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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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인문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분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의학지식의 양에 눌리는 탓인지 인문학에 대한 작은 관심의 촛불조차도 켜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국 의학의 이러한 모습을 콕 짚어 요약한 내용을 조루주 깡귀엠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을 소개하는 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은 묘한 역설에 빠져 있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자기규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분명히 특정한 철학적 입장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철학과는 무관한 학문처럼 생각하는 역설이며, 또한 현대 의학의 발전은 오늘 진리로 여겨지던 사실이 내일은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지극히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늘의 진리를 불변의 진리로 절대화하는 오류에 쉽게 빠져드는 역설이다.”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이라면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고뇌가 기술발전에 선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발전이 눈부신 속도로 선도하고 있는 까닭에 미처 생명에 대하여 고뇌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허덕이는 우리의 자화상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근세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의학 수준이라는 것이 그만그만하였던 것이고, 오히려 동양의학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의학이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통합적 접근을 하고 있어 우수한 측면이 크다고 보는 한의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만(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0282) 과연 동양의학의 발전을 위한 철학적 고뇌의 산물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전해오면서 관련이 있는 과학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의학에 녹여넣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흔히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루주 깡귀엠은 철학을 전공한 다음에 의학을 전공하고 철학분야에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과 철학, 의학과 철학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임상의학을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의 의학철학은 의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의학의 생성과 변천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합하여 깊이 있는 반성을 하였고, 생기론을 중요한 요소로 하여 실증주의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은 깡귀엠이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제1부에서는 19세기 과학과 의학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19, 20세기 생물학적 합리성을 성취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에 다소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리태니커사전에 따르면 “이데올로기(Ideologie)란 이론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회·정치 철학의 한 형태로,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체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철학자 A. L. C. 데스튀트 드 트라시가 주장한 '관념의 과학'의 약칭으로 처음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관념의 과학은 인간정신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이성을 복권함으로써 인간에 봉사하고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루주 깡귀엠이 중요하게 생각한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제1부의 글을 여는 첫문장으로 던진 질문에 대하여 깡귀엠은 데스튀트 드 트라시를 인용하여 “이데올로기란 관념의 생성에 대한 과학으로 그 목표는 관념들을 자연현상과 같이 다루는 것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감각을 가진 인간이 자연환경과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42쪽)”이라 정리하였다. 이데올로기란 원래 인간이 현실에 대한 관념을 획득하는 자연과학을 의미했으나, 마르크스에 의하여 현실에 대한 진정한 관계를 알지 못하게 된 어떤 상황에서 유래된 모든 관념의 체계를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은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계급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같이 허위의식은 아니며 허위과학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깡귀엠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존 브라운의 <의학원론>에 담긴 한계를 설명하면서 의학적 이데올로기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주목을 받던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그리고 미생물학 분야의 성과들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로드 베르나르가 생리학을 과학적 의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과학으로 옹호하고 입증하려는 노력을 의학적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마장디가 소개한 실험의학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는데, 생리학 분야를 비롯하여 약리학분야에서의 실험의학이 결과적으로는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제2부의 주제가 되고 있는 ‘합리성’은 이데올로기의 상대개념으로 깡귀엠이 제시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깡귀엠에 따르면, 생명과학에서의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생명체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외적 규범이고, 그 합리성은 생명체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이 제2부를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쌓여진 생물학적 조절개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합리성’이라는 화두를 논의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계의 노력은 통상적으로 ‘써보니까 듣더라’하는 임상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의학이 아직도 전승되어오는 의학서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법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고, 일부에서 새로운 처방을 개발하여 임상시험을 거쳐 실용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반면 현대의학에서는 질병이 일어나는 기전을 추구하고 밝혀진 기전을 바탕으로 하여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천연물질에서 추출한 약제가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곧 이를 바탕으로 합성하기도 하며, 이제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어 넣는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확인하는 유효성시험이나, 개발된 치료제가 치료효과는 물론 독성을 가지고 있어 부작용을 나타낼 가능성까지 검증하는 안전성시험 등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을 통하여 철저하게 검증하게 됩니다. 깡귀엠은 의학의 영역에서의 과학적 접근 방식을 ‘의학적 합리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이야말로 서양의학을 오늘날의 현대의학으로 변모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깡귀엠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은 근대 서양의학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달한 해부학적 지신을 임상적 지식과 결합한 파리임상의학파, 병리학을 생리학에서 연역하려 한 클로드 베르나르의 기획, 그리고 병원성 세균의 발견과 이를 죽이는 항생제의 개발로 완결되는 병인설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확립된 의학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194쪽)”

깡귀엠이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을 내세운 배경에 대하여,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은 어찌 보면 과학의 담론을 손쉽게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려는 ‘부유한 사회의 약화되거나 빈곤한 마르크스주의’인 사회구성주의로수터 과학적 담론을 지키기 위한 시도(192)”로 설명하신 여인석교수님의 후기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제2부의 말미에서 언급된 생명체가 환경과 맺는 관계에 대하여 보다 발전된 논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생명은 물질의 행동이다 (…) 그것은 기존 질서의 유지를 토대로 한다.(157쪽)”는 슈뢰딩거를 인용한 부분과, “생명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 전체를 붙잡아두는 단순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생명에 대한 거짓된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생명은 요소들을 움직이고 운반하는 동력이다.(158쪽)”라는 퀴비에의 말을 보다 상세하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학이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된 프랑스 의학계에서 의학철학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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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1-2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637
 
이블플랜 - 당신의 가치를 높이는 40가지 발칙한 계획
휴 매클라우드 지음, 김미희 옮김 / 호미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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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앙일보 인터넷 커뮤니티에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만 7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먼저 시작하신 분들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나름대로는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블 플랜>의 저자 휴 매클라우드가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1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는 분명 새로운 사조를 일찍 읽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 즉 선각자임에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10대 블로그로 선정될 정도로 독창적이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를 요약해서 정리한 책이 <이블 플랜>입니다.

당연히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했던 영감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블로그를 통해서 정리해온 생각들을 처음 책으로 엮었던 <Ignore everybody>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이블 플랜> 역시 SNS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답답하다 느껴져 무언가 해야 할 절실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40개의 팁을 <이블 플랜>에 담고 있습니다. anff론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한 것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훌륭할 것들입니다.

저자는 그것을 ‘발칙한 계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발칙한 계획들이 계획단계에서 그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발칙하다’고 한 것처럼 남들과는 분명 차별되는 그 무엇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트윗이나 페이스북의 열풍에 밀려 블로그가 심각하게 위축되어가고 있다고들 합니다. 제 경우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만 3년에 백만명 방문을 기록하고서 이후 4년 동안 5백만명이 방문하는 파워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로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커뮤니티를 주관하는 주체가 운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 역시 활동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 상승작용을 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는 대체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방문객들에게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블로그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블로그의 영향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분명 트윗이나 페이스북이 담아낼 수 없는 장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생각이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자가 <이블 플랜>에 담은 40개의 팁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제 경험상 크게 공감한 점들을 집중적으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시장은 무한하다.”라는 휴 선언(26쪽)은 저 역시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감했던 부분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파워블로그로 영향력이 클 블로거들이 대가를 받고 특정제품에 우호적인 홍보성 포스팅을 올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해서 블로그 커뮤니티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는 것도 블로그 퇴조현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러 이 세상에 왔다.”고 적은 부분은 제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때 학교수업에 흥미를 잃고 있을 때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세상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고, 공부도 중요한 준비물이다.”라고 해주었던 말하고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신만의 ‘글로벌 마이크로브랜드’라는 말은 방문객의 시선을 붙잡아 맬 특화된 컨텐츠를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파워블로그로 관심을 끄는 블로그 역시 평범하지 않는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당신의 재능을 기부하라”는 38번째 이슈에 크게 공감하면서 최근에 소홀하고 있음을 자책하게 됩니다. 블로그를 만들었던 초기에는 이벤트를 통해서 조그만 선물도 자주 하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분들과 오프라인에서도 관계를 맺고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교류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 전공을 살려 건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응급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조언도 해드렸던 역할이 이제는 아주 미약해진 이유는 아마도 블로그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하는 노력이 줄어든 탓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려 카툰과 함께 사랑과 일, 미래와 성공에 관한 촌철살인의 글을 올려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카툰이나 광고카피 같은 짧은 문구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그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블 플랜>에 담고 있는 저자의 카툰이나 경구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지 궁금합니다만, 본문에 담긴 블로그를 매체로 한 인생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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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0도 -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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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이라는 부제가 없었더라면 <위도 10°>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위도 10도 특히 적도에서 북위 10도에 이르는 1,126킬로미터에 걸치는 지역은 유독 종교갈등이 심각한 나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마다 역사적 배경이나 종교갈등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도 엘리자 그리즈월드의 <위도 10°>를 읽고서 알 수 있었습니다.

뉴 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n Foundation)의 선임 연구원인 엘리자 그리즈월드는 미국 복음주의 교단의 수장인 프랭클린 그래이엄 목사를 동행하여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 등 이슬람과 개신교의 갈등이 심각한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하여 갈등의 원인과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취재결에 따르면, 이 지역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갈등은 영토문제, 물과 석유와 같은 자원을 둘러싼 이해의 충돌 그리고 상대종교의 공격적인 포교에 자극을 받아 대응차원의 포교가 진행되면서 충돌하는 경우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종교적 갈등의 뿌리는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도에서 북위 10도에 이르는 지역에는 전 세계 13억 무슬림의 절반이 살고 있고, 20억 기독교의 60%가 살고 있는 만큼 역학구도 상 충돌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타 종교에 대하여 공격적인 경향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슬람교의 경전에는 다른 종교와 평화롭게 지내라는 구절이 있고, 기독교와 유대교는 같은 성서를 가진 종교로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으면, 중세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가 사이좋게 지낸 바 있었으며, 로마제국 역시 자신의 종교를 인정하는 타 종교에 관대하게 수용하였으며, 불교를 믿었던 제국의 아소카 황제 역시 타 종교를 관용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던 것은 로마의 종교를 이교로 규정하여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유대교와 갈등을 빚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유대교가 관련되었다는 성서적 해석으로 인하여 유대교를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최근들어서 강화되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 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되면서 지역내 종교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의 저자 김영미PD님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기후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에 적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특히 종교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삶이 척박한 탓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저자가 복음주의자인 프랭클린 그레이엄과 동행하여 취재를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과 기독교 어느 편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인터뷰 당사자들의 주장을 담아내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하여 “나는 무엇보다도 종교적 신념으로 살아가는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31쪽)”고 하였습니다. 저자가 분쟁지역을 돌아보면서 취재한 결과를 읽으면서 이 지역 거주하는 주민들이 자신의 종교를 쉽게 바꾸려 들지 않는 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나 기독교 모두 선교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되던 선교활동에 우리나라에서 파송되는 선교사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고, 그런 까닭에 선교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태가 빈번해지는 경향이 있어 외교당국이 개입하여 선교활동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분쟁지역의 종교갈등을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인종적 요인, 환경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섭렵하여 인용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편에서는 이 지역의 종교 지도자들이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특히 “사람아, 우리가 한 남녀에서 너희 모두를 창조했고, 서로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인종과 부족을 나누었노라”는 내용의 쿠란의 사실서(49:13)를 인용하거나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사도행전(17:26)을 인용하고 있어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 유럽국가가 주도한 십자군전쟁에 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지난 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경영의 후유증이 이 지역에서 종교갈등의 원인으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복음주의파들의 선교활동 강화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위도 10°>를 통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고조되고 있는 종교갈등의 원인과 현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선교에 우리나라에서 파송되는 선교사들의 비중이 늘러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특히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을 세워보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저의 동서도 이 지역 가운데 한 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소천하게 되어 가족들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거나 준비하고 계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으시면 현지의 분위기를 이해하시는데 크게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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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같은 사원 만들기 - 전 직원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디즈니의 사원교육법
후쿠시마 분지로 지음, (주)KR2 경영연구소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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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테마파크는 미 플로리다주에 디즈니랜드를 설치하면서 시작해서 LA에 디즈니월드 그리고 파리, 동경 홍콩 등에도 개설하여 플로리다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디즈니랜드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기회는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만, 2002년 가을 추수감사절 연휴를 이용해서 LA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찾아 그 분위기를 가족들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도쿄디즈니랜드에서 근무한 후쿠시마 분지로씨가 일본 디즈니랜드의 독특한 조작문화를 통한 조직관리기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Build the ultimate staff even with 90% part-timers'라는 원제목에 담은 저자의 집필의도를 잘 살린 <사장같은 사원만들기>입니다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 있는 디즈니 테마파크의 운영실태가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마난,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도쿄디즈니랜드는 분면 미국의 디즈니랜드와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미국식 테마파크 운영방식이 일본문화와 접목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디즈니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경험적으로 느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동경디즈니랜드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은 기본적으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찾는 방문객, 즉 게스트가 최우선이 되는 시스템에 녹아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디즈니월드를 방문했을 때 느낀 소감으로는 디즈니월드의 직원들은 그렇지 못하더라는 점을 절감하는 상황을 만났더라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당시 제 아이들이 8살 4살 이었는데, 디즈니 캐릭터를 만나게 되자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그 캐릭터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게스트와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캐릭터역할을 하는 직원, 아르바이트인지 정직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에게 우리 아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 부탁을 했지만 백인아이들과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아이들을 교묘하게 외면하는 디즈니월드의 직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디즈니월드의 캐스트가 보였던 행동은 저자가 주장하는 동경디즈니랜드의 캐스트가 보인 감동적인 고객졸도 서비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졸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 와서야 밝히게 됩니다.

후쿠시마 분지로씨가 설명하고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스태프들이, 심지어는 90%가 아르바이트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서비스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분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선배 스태프들이 취하는 자세 역시 본받을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직장들이 다면평가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면평가를 시행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중견 사원들이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까마득한 선배들보다 바로 1년 먼저 입사한 선배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흔히 하는 것 같습니다. 사수-부사수의 관계라고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직속선배가 무서운 것은 조직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콘택트렌즈를 착용해보았습니다만, 콘택트렌즈를 떨어트리게 되면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 디즈니랜드의 캐스트들은 오후와 밤근무조가 자발적으로 모두 참여하여 게스트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결국은 찾아내고 마는 근성을 보여준 사건을 읽으면서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 전 쓰나미로 원전이 파괴되는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 순간 그 영향을 받은 동경디즈니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은 스태프들의 일사분란한 대응으로 혼란을 겪지 않고도 대형지진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사장같은 사원만들기>는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실감할 수 있는 무엇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의 두께도 얇아 눈길을 끌기가 쉽지 않은 책입니다만, 책두께에 비하면 분명 얻어 챙길 것이 많은 그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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