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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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달린 <로마인 이야기11>는 서기 161년부터 211년까지의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이 기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서기 161-180), 콤모두스(서기 180-192), 내란의 시대(서기 193-서기 197) 그리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서기 193-211) 등이 황제였습니다. 내란의 시대에는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페스켄니우스 니제르 등 로마군의 군단장들이 황제를 선언하고 나서며 내전을 벌이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로 최종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오현제의 하나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현제의 세기가 아니라 종말의 시작에서 다룬 점이 특이합니다. <명상록>을 남겨 철인황제로 후세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는데, “인간이 공정하고 선량할 수 있느냐는 논쟁만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공정하고 선량하게 행동하는 것만 요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황제 자신이 공정하고 선량하게 행동하였을 것이라 믿어지지만, 이후 2천여 년 동안 그의 말대로 공정하고 선량하게 행동한 국가지도자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철학자가 정치를 담당하는 것이 국가에는 이상적이라고 한 플라톤의 주장이 실현된 사례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는 오현제로 꼽힐 만큼 대단한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저자도 이 책의 절반이 넘는 분량을 할애하였던 것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차기 황제로 지명한 루키우스 아일리우스가 폐결핵으로 일찍 죽자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차기황제로 지명하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삼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서거 후에 원로원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황제 위를 제안하였을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루키우스 아일리우스의 아들 루키우스 베루스와 함께 제위를 물려받아 로마제국은 두 명의 황제가 즉위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전성기에는 황제들이 황제의 역량이 있는 인물을 양자로 삼아 제위를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역량이 있는 황제가 이끌던 시절 로마제국은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황제들 가운데 전통과는 달리 역량이 부족한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기도 했던 것이고, 그렇게 해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대체적으로 실정을 거듭하다가 피살되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실은 로마의 황제가 양자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은 단지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시 아들 콤모두스를 황제로 삼았고 콤모두스가 실정을 벌인 끝에 피살되면서 로마군의 군단장들이 황제가 되겠다고 서로 나서는 바람에 로마제국이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즉위 초에 발생한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재해를 극복하였고, 파르티아 제국이 기세를 회복하여 아르메니아 왕국의 후계구도에 개입하면서 로마제국과의 전쟁이 촉발되었지만 이를 제압하였고,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이 국경을 침범해와 이들과의 전쟁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파르티아와의 전쟁 끝에 묻어온 역병으로 로마 제국은 인구의 절반이 희생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홍역 혹은 천연두로 의심되는 역병의 대유행이 로마제국을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뒤를 이은 콤모두스 황제가 13년의 재위 끝에 피살되자 근위대장 레토가 주도하여 페르티낙스를 황제로 세웠지만 개인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자 페르티낙스를 살해하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다시 황제로 세웠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로마군이 새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일었고 가까운 판노니아 속주의 총독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군단병의 추천을 받아 황제를 자칭하고 나섰습니다. 그 밖의 지역에 주둔하던 군단에서도 황제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로마제국은 내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먼저 움직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사태를 마무리하고 최종 황제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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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남은 인생 10년
코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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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전립선암으로 진단받았을 때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 죽음을 맞게 될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외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죽을 날을 받아놓게 된다면 남아있는 날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남은 인생 10>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살 날이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고받은 주인공이 그 10년을 어떻게 살고 죽음을 맞았는지 담담한 필치로 설명해 놓았습니다이 책을 쓴 작가 고사카 루카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불치의 병으로 진단받고서도 이 책을 집필을 이어갔지만, 출간을 앞두고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남은 인생 10>이 여주인공 마쓰리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불치의 유전성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삶이 10년 정도 될 것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열정적인 친구 사나에의 응원에 힘입어 그림과 만화를 그리게 됩니다. 언니가 결혼하여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찾아간 고향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고, 당시 자신을 좋아했다는 가즈토와 해후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만능 재주꾼인 가즈토는 가업인 다도에서만큼은 재능을 보이지 못하여 부모를 실망시키고 있는 상황으로 마쓰리의 설득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마쓰리 역시 가즈토의 권유로 만화를 완성하게 됩니다. 뒤늦게 만나 사랑을 꽃피우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마쓰리의 고민이 커집니다. 가즈토가 청혼을 해옴에 따라 결국은 가즈토의 청혼을 받을 수 없음을 밝히고 관계를 정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습니다.


마쓰리가 앓았다는 불치의 질환이 무슨 병인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으나 유전질환이라고 했고, 젊은 나이에 발병하여 10년 정도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언니 기쿄는 이 병에 대한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마쓰리의 할머니가 이 병을 앓다가 젊었을 적에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를 거너 뛰면서 여성에서 발병하는데 100%발병하는 것은 아닌 유전질환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의학적 관심사일 뿐입니다. 이 책에서 불치병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더 궁금한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삶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마쓰리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국 죽음에 이를 테니까. 나는 죽는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안심하길이런 생각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회의가 들게 만든 결과로 보입니다.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은 과거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듯, 미래도 바꾸지 못한다는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런 이유로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마쓰리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레이코는 죽음을 앞두고 마쓰리는 인생에 후회 없어?”라고 묻고서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난 이 말을 못해서 후회돼.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사실 살면서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본심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서는 그런 사람들이 더욱 생각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쓰리 역시 가즈토에서 자신의 병에 대하여 늦게까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래 품어온 첫사랑을 감정을 들어내는 가즈토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인 것도 있겠고, 자신도 가즈토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마쓰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깊어진 뒤에는 이별의 고통이 더 아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쓰리나 가즈토 모두에게 힘든 일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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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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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음의 불편함><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로 만났던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를 읽었습니다. 오래 동안 찾던 것을 직장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 대차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사유를 짧게는 한 줄, 길게는 두어 쪽 길이로 서술하였습니다. 그런데 짧을수록 문장에 담긴 깊은 뜻을 깨우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심오한 사상의 주변을 아주 조심스럽게 배회한다. 그리고 현기증만 탈취하여 달아난다. 나는 심연의 도둑이다.’라는 문장은 심연의 도둑이라는 제목을 뽑아낸 글로 보입니다. 수많은 단상들은 언어의 위축 등 11개의 제목 아래 나뉘어있습니다.


하지만 제목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과 빈혈이라는 제목에 들어있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불안뿐이다.(57)”의 경우입니다. 하긴 혈액을 잃어가는 백혈병은 신()이 만발하는 정원이다.”의 경우도 백혈병이 빈혈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이를 신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해설서가 나와야 하지 않을ᄁᆞ 싶습니다.


언어의 위축이라는 제목에 들어있는 다음의 글을 새겨봅니다. “니체, 마르셀 푸르스트, 보들레르 혹은 랭보가 유행의 변화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들의 무관심한 잔인성, 신들린 듯한 해부기술, 풍부한 독설에 기인한 것이다. 어떤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폭력성이다. 근거 없는 단어일까? 복음서, 그 그지없이 공격적이고 독살스러운 책이 누리고 있는 권위를 생각해보라.(19)”


보들레르나 랭보의 작품은 많이 읽어보기 못했지만, 니체나 마르셀 푸르스트는 적지 않게 읽어보았습니다만,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잔인하다거나 폭력적이라거나 독설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은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독설의 팡세>에서는 많은 작가들에 대한 저자의 독설에 가까운 평가라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작품들은 모방의 재치, 학습된 공감대와 어딘가에서 훔쳐온 엑스터시로 만들어진다.(27)”라는 생각에는 자신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84세에 죽음을 맞은 저자이지만 젊어서부터 죽음에 대하여 깊이 사유를 했던 것 같습니다. <독설의 팡세>에서도 죽음에 관한 대목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모든 다른 문제들을 압도한다. 철학과 황당함에서 서열이 있다고 믿는 그 소박한 믿음에, 죽음 이상으로 황당한 일이 있겠는가?(38)”모든 물은 익사의 색깔을 띠고 있다.(66)”, “우리는 죽음에 대한 강박증을 즐긴다. 우리가 즐기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강박증이다.(67-68)” 등입니다. 역시 이 글들에 함축된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생명력이란 낭만주의와 성기로부터 살아남아 있는 감정을 비방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129)”이라고 했는데, “성욕에 자신을 소모하는 것은 1초 동안, 또 나머지 인생 동안 이성을 잃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130)”라고 한 대목 역시 그 뜻을 알려면 많은 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은 발표한 사람이 무슨 뜻을 담았다고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타인의 그 뜻을 유추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짧은 글이 대종을 이루고 있어 단순히 읽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글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저 읽었다고는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실린 수많은 글 가운데 관심이 가는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뽑아서 심도 있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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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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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밀리의 서재에서 읽게 된 <쓰게 될 것>입니다. 최진영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 만나는 책입니다. 전자책이라서인지 아니면 작가의 작품들의 전반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으나 빠르게 읽었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이 작품집에서는 표제작 쓰게 될 것을 비롯하여 모두 8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이들 작품들은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들이 발표된 매체는 물론 작품을 쓰는데 영감을 얻은 원천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쓰게 될 것의 경우는 우크라이나 여성 스베틀라나씨가 2022224일부터 426일까지 쓴 일기를 전재한 시사IN유모차 밀던 자리에 폭탄이 떨어져도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암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는 과정을 적은 홈 스위트 홈은 개인적으로도 읽으면서 큰 관심이 생겼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비롯하여 역시 시사IN의 기획 죽음의 미래엔드게임: 생이 끝나갈 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이며 등장인물이 누구이던 간에 8작품 모두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자전적인 글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쓰게 될 것에 나오는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39)”는 대목은 여러 갈래로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전제가 필요하지 않는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하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속담에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책을 읽어가면서 표시를 해둔 작품도 홈 스위트 홈입니다. 첫 번째 표시해놓은 대목은 아픈 사람일수록 생활이 편리하고 큰 병원이 가까이 있는 도시에 살아야 한다.(807)”입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직장도 병원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필요한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표시해둔 대목은 수술과 항암치료가 종료된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재발, 그리고 2차 재발이 되면서 등장인물과 가족은 상황이 어렵게 될 수 있다고 하는 3차 재발에 대하여 언급을 피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검은 구멍이 한 발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 발 뒤에도, 한발 옆에도. 죽음은 두려웠다. 그통에 짓눌릴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고통인지 죽음인지 알 수 없었다. ()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내가 좀더 낮은 확률에 속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믿음이 필요했다. 회복, 차도, 건강에 대한 염원, 기적을 바라는 기도,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숫자 바깥에 있고 싶었다.(773)”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숫자 바깥에 있고 싶었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18개월 전에 암수술을 받고 추적관찰을 하고 있는 중인데 재발을 감사하는 검사를 매월 받아가면서 검사값에 일희일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사값이 떨어지면 기뻤다가 다시 올라가면 두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아직은 위험 수위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경계할만한 수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입니다.


평론가 소유정은 작품해설에서 최진영의 <쓰게 될 것>에 실려있는 여덟편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작가에게 미래란 알 수 없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지금과는 달리 바꾸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반드시 만나게 될 미래를 위해 불안을 딛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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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출간 10주년 기념, 그 후 이야기 수록, 개정판)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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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암으로 진단을 받은 뒤로 악성종양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을 받았다는 인도 여성의 치유경험을 적은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도 같은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북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인도의 전통에 대한 앞부분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줄곧 홍콩에서 살아온 인도여성이 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을 받은 뒤에 인도와 중국의 전통의학에 의지하여 치료를 해오다가 말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손을 든 상태에서 지내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인데, 이때 그녀는 임사체험이라고 주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로 갑자기 증상이 호전되면서 완치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책의 앞부분은 성장과정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인도에서는 여성이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의 역할이 요구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가정에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진취적인 성향이었던 모양입니다.


문제의 호지킨 림프종은 몇 살이 되었을 때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결혼하고서 7년 뒤에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기는 2A단계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를 추천하였지만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악성종양으로 진단받은 친구와 남편의 처남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지킨 림프종 2A단계의 환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에 5년 생존확률이 90~100%에 이를 정도로 치료법이 정립되어 있는 암입니다. 항암치료 역시 암종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치료가능성이나 부작용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환자는 자신의 암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이 선택한 치료는 인도로 돌아가서 인도전통의 요가와 아유르베다에 근거한 치료를 받고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콩으로 돌아와서는 이번에는 중국의 전통의학에 따른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는 다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최초 진단을 받고서 4년만에 암은 말기에 이르게 되었고 병원에서도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말기에 이른 경우에도 적극적인 치료로 5년 생존율이 85%라고 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결국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큰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합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심장은 자발적으로 뛰고 있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이때 저자는 임사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수천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의 행동, 심지어는 우주의 변화까지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에 들었던 것을 종합하여 책에 정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혼수상태에서 돌아온 환자가 순식간에 암종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의학논문에 따르면 호지킨 림프종은 특별한 치료 없이도 자연치유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분 역시 그런 사례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이 깨달음, 영양의 섭취가 극도로 불량한 탓에 신체상태가 극도로 저하된 상황에서 벌어진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영양섭취가 불량한 까닭에 암세포도 영양을 얻지 못해 사멸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현상은 특별한 누군가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다른 환자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 처음부터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받았더라면 완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병식이 없는 관계로 죽음 목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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