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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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 역시 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것을 보고 읽은 책입니다. 특히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여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대목을 인용하였는데, 저는 책을 모두 읽고서도 이 대목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건성 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창가의 토토>는 일본의 유명 방송인이자 사회봉사가로 활동하는 구로야나기 테츠코씨가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황금같은 시절이라 할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자연과 친구와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당시의 스승과, 아이들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한 수업내용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문부성의 허가를 받은 정규 학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대안학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전의 시기였던 것을 보면 상당히 선구자적인 그런 교육체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토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테츠코는 호기심이 많고 천방지축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만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던 것이지요. 그랬던 토토가 정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서 도모에 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들이 이끄는 수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화조 뚜껑을 덮어놓은 신문지에 뛰어든다거나 모래더미처럼 보이는 진흙탕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충동적이고 상황을 살피는 것보다 행동이 먼저인 점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일도 수월치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토토의 어머니의 입을 빌어서 일본인이나 조선인을 구별하여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정도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작가 자신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조선인 엄마가 아들을 찾는 소리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치 애달피 우는 듯했다.’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말미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 찾아가 위문을 하고, 이웃에 사는 남자들이 전장터로 떠나가고 일용품을 배급받는 어려운 상황을 짧게 적고 있을 뿐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은 한 줄도 적지 않았다거나 전후 일본의 사정까지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B-29의 폭격으로 도모에 학원이 불탔다는 이야기, “큰 집의 맏아들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며 풀썩 고꾸라져 전사하는 군인의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슬픈 광경이었다라고 적은 것은 전쟁에 대한 일본 국민, 특히 당시의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는지도 궁금합니다전쟁만 없었더라면 더욱 많은 학생들이 (고바야시) 선생님의 손을 거쳐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고 서글픈 마음뿐이라고 소회를 밝히는 것도 적절치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무렵에 창가족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소외된 있는 층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그래서 자신도 학교에서 왠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제목을 정했다고 합니다. ‘窓際族(まどぎわぞく)’이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우리말 그대로 번역하면 창가족정도의 의미로, 일본 기업이나 단체 직장에서 한직으로 몰린 사원이나 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따가 된 토토가 되나요? 도모에 학원에서는 왕따가 아니라 동무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었으므노 창가족이라 할 수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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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지음 / 부크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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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는 일도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제목이 아주 공격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읽게 된 글입니다. 10만 독자를 가진 작가라고 소개되었습니다만, 이 책을 쓴 일홍 작가는 처음 만나는 분 같습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당신의 행복을 찾아 주고 싶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런 하루가, 이런 인생이 좋다고 말할 정도로라는 기획으로 쓴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야. 누리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누리며 사는 것. 고생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자주 행복하자. 힘들어도 재밌게 살자. 그래야만 꿋꿋이 살아갈 수 있어.”라고 설명합니다만, 말장난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기는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속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에는 모두 16개 꼭지의 글을 내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은 행복을 구하거나 행복을 즐기는 방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꼭지의 글을 1쪽에 불과하거나 4쪽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글들을 모두 행복해지는 비법을 담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어느 쪽을 펼쳐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나도 따라 행복해진다는 생각이겠지요.“나는 네 곁에서 널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야라고 약속합니다.


지난해에는 제가 아팠던 것인데, 금년에는 아내도 아프게 되니 나 아픈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픈게 더 서럽다.’라는 대목이 실감이 납니다. 치료에 전념하고 완치된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아팠을 때 성심껏 간병해준 것처럼 소소한 부분까지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라는 제목의 글, “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떠나간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누구도 대신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실은 애초에 구멍 난 사람을 바람 새어 들어올 일 없도록 당신이 막아주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나를 많이 이해해 줬던 사람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한다.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보다 나를 믿어 준 사람이라서.”라는 대목을 미리 실감합니다.


불행을 버텨 냈으니 이제 행복할 수밖에 없겠다라는 말보다는 힘들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과정 조차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인정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물론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을 견뎌내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행복은 고생 끝에 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 하면서도 지금 불행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해보자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아프겠지만 잠시뿐일 거라고. 오늘처럼 힘겨운 날들을 지나 보내야만 더욱 단단한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거쳐야만 하는 시련이라고. 그렇게 기뻐질 내일을 믿어야 한다.(32)”라는 대목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이 말하는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는 앞날의 행복을 기대하는 희망을 담은 이야기일 뿐일까 싶습니다. 소소하겠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묘약일 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조금만 참고 견디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게 하는 마법을 펼쳐보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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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사랑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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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홀로되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당사자가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하여 자녀들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은 프랑스에서의 일입니다만 나이 들어 시작하는 사랑이 어떻게 발전해가는 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기회가 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만난 사랑><체리토마토파이https://blog.naver.com/neuro412/223217409901>의 작가 베로니크 드 뷔르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체리토마토파이>는 리옹과 리모주의 중간프랑스 중부지역에 있는 완전한 시골에 사는 과부 잔이 90살이 되는 해 춘분에서 시작하여 꼭 1년간 써내려간 일기입니다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딸과 아들이 수시로 찾아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잔입니다


<다시 만난 사랑>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작가인지 아니면 화자인 딸인지는 분명치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화자의 어머니가 70살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생긴 호흡부전이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된 어머니였지만 충격을 딛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엄마와 속이야기도 거릴 것 없이 나누던 화자가 엄마더러 재혼할 거라고 물어보면 , 지금 세상 편하고 좋다. 남자를 데려다 뭐에 쓰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모를 일이지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지날 무렵 첫사랑이었던 그자비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자비에 역시 엄마와 석연치 않게 헤어진 뒤에 결혼한 미셸과 사별한 상태였고, 엄마가 혼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회한 두 사람은 400나 떨어져 살고 있는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새로운 사랑을 키워가고, 화자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아빠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자비에의 집을 처음 찾아가는 엄마를 배웅하면서 가세요, 엄마.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거의 아무 데도 안 갔잖아요.”라고 하면서 등을 떠밀었던 것과는 달리 배신감 같은 감정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화자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의 생각까지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첫사랑과의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국은 사제를 모시고 서약을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나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가진 것입니다.


서로의 비밀스러운 일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엄마와 딸 사이에 알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엄마가 감정이 폭발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거야! 내 인생이니까. 나는 평생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았어. 내 의무를 다한 지금, 드디어 나를 위해 살 수 있게 됐어! 너희가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딸의 생각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엄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가 여전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니 스스로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엄마와 그자비에가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말씀에 담겨있는 다음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애정은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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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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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었습니다. 미국의 인디애나에 살고 있는 헤이즐 그레이스 랭카스터는 16살에 갑상선암이 폐로 전이되어 4기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17살이 된 그녀는 외부활동에 나서라는 부모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암환우회 모임에 참석하고는 있지만 그리 적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망막아세포종으로 한 눈을 잃은 아이작의 소개로 참석한 동갑 나이의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상황입니다. 매주 수요일 만나는 암환우회는 성공회 교회의 석조 지하실의 십자가 모양이 만나는 장소, 즉 예수의 심장이고 말하는 위치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투병과정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달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모임을 주관하는 패트릭은 모임을 마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자라는 다짐을 외웁니다.


처음 만나는 날 두 사람은 최애도서를 각각 서로에게 추천합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 어거스터스는 <새벽의 대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피터 반 호텐의 <장엄한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 안나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 암치료를 위한 자선단체가 아니라 암에 걸렸지만 콜레라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설립합니다. 그녀의 활동은 암에 걸린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선량함을 일깨우고, 암치료라는 유산을 남겼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안나의 엄마가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안나가 개밀과 소량의 비소를 투약하는 말도 안되는(?) 새로운 치료를 막 받으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그런이라면서 문장 중간에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피터 반 호텐은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한 이유에 대하여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미국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잠행에 들어갔습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출판사를 통하여 작가에게 질문을 보내지만 답변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거스터스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오고 두 사람을 네덜란드로 초청하게 됩니다. 호텐는 어거스터스에게 보내온 답장에서 두 사람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위로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이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120)’라고 고쳐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의 제목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후원단체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이미 사용한 헤이즐을 위하여 어거스터스는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헤이즐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헤이즐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어거스터스는 네덜란드로 가서 <장엄한 고뇌>의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헤이즐은 자신이 궁금해했던 <장엄한 고뇌>의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를 작가에게 캐묻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이고, 그들에겐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답합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소설이 끝나는 순간 존재하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크니스토프 보르트베르크와 만프레트 타이젠이 <책들의 유령>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모든 책들의 등장인물들은 책들의 세계에서 실존하는 존재이며 현실의 세계로 이동해올 수도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트스는 실망한 헤이즐에게 자신이 <장엄한 고뇌>의 뒷이야기를 써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호텐의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안네의 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안내 프랑크가 남긴 유물들을 살펴보고는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정합니다. 세상을 향해 돌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켜주는 2인조 장애자 자경단원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온 뒤에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암이 재발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뒤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죽음을 맞기 전에 병세가 약간 회복되는 순간에 어거스터스는 아이작과 헤이즐에게 자신의 장례식에서 낭독해주기를 부탁하고 장례식의 예행연습도 합니다. 어거스터스의 장례식에 반 호텐도 참석합니다. 그 역시 딸이 어린 나이에 암으로 죽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반 호텐은 헤이즐이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한 답이라면서 옴니스 셀룰라 에 셀룰라(Omis cellula e cellula),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윤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이 죽은 이에 대한 추억을 달래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암으로 투병하는 남녀 가운데 한쪽이 죽음을 맞았을 때 남아 있는 사람이 받게 될 충격은 정상인 사람이 겪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잘못이 우리별에 있다는 화두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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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생의 의미 -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찾은 가슴 벅찬 7가지 깨달음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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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횡재를 한 느낌이 든 책읽기였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사회인류학과의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교수가 쓴 책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40여년을 사회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촉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히 2016년 암이 발생한 것으로 진단받아 투병하면서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문에 들어있는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다름이다.”라고 한 점입니다. 남들이 하는 것이 좋아 보여 따라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는 삶의 선하고 유용한 의미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7가지의 공통점을 관계, 결핍, , 느린 시간, 순간, 균형, 실 끊기 등의 주제어로 풀어 설명합니다. 이런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하고 중립적이며 자유롭다. 삶의 의미는 관계로 이루어진다.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후, 우리 자신을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하는 실에 대한 긴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가는 실들이 모여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그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거대한 합창단을 이루며, 그 안에서 우리는각자 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실타래가 바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첫 번째 주제 관계를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계는 동물세계는 물론 식물세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Carla Bley)<혼자 하는 식사 Dining Alone>을 인용하는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이란 음식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했습니다.


단조롭게 느껴지는 반주 속에서 식사를 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노랫말은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지만 사실을 혼밥의 쓸쓸함을 애써 감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만, 저에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인용들이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외부와의 관계를 최소화하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꼭 틀렸을까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저자의 동료는 술에 취해 인생의 의미는 신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반드시 자신의 생물학적 자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경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 겸손, 자기 확신은 더 없이 소중한 삶의 덕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주제에서도 느낀 바가 많았지만, 마지막 주제 실 끊기는 저자가 말기암 병동에 입원해서 가진 사유의 시간을 통하여 얻는 바를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 끊기는 모두에서 이야기한 관계를 통하여 형성한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삶을 달관했을 노인이 젊은이들만큼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했고, 오히려 노인보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힌두교와 불교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좋은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모든 것의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죽음의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라는 대목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좋은 죽음이란 잘못을 보상하고,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라는 대목에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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