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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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읽다가 읽어볼 목록에 올려두었던지 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를 위시하여 모두 14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어느 단편을 인용했던 것인지도 잊었습니다. 어떻든 14편의 단편 가운데는 검은 고양이도둑맞은 편지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단편입니다14편의 단편을 모두 읽고서는 아마도 두 번째 단편인 리지아때문에 읽기로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아내 리지아가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에 한 말을 몇 차례 반복합니다.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더라면 천사에게도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 텐데.(39)” 사실 이 대목은 모든 생명체라면 숙명처럼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이 대목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내를 잃고서 아내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영국의 어느 황량하고 외딴 곳에 있는 사원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몇 달 뒤에 만난 로웨나 트리배니언과 재혼을 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화자가 리지아를 정말 사랑한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웨나 역시 결혼 후 한 달 만에 열병에 걸려 쇠약해진 끝에 역시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로웨나를 간병하는 가운데 화자는 리지아의 환영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화자가 뭔가 켕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화자는 두 아내의 죽음을 겪게 되는데 첫 번째 아내 리지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내 로웨나의 경우는 병상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나 죽은 뒤에 느끼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편 리지아뿐 아니라,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단편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 역시 책의 말미에 붙인 작품해설에서 인간 심리의 복합성은 사실 포의 단편소설, 혹은 산문시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이다.(315)”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인간 심리의 복합성에 대해 탁월하고 합리적인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들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옮긴이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대체적으로 현실과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작가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들의 무대는 아주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서, ‘리지아의 경우는 독일과 영국에서, ‘윌리엄 윌슨은 영국에서,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노르웨이의 해안에서, ‘구덩이와 추는 스페인에서, ‘도둑맞은 편지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었습니다.


많은 단편들이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인자의 심리상태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범행장소를 특정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 사실일까 싶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 가운데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다룬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범인이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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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테레즈 라캥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61
에밀 졸라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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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여곡절 끝에 휴대기전화기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쓰던 전화기가 단종이 됐다고 해서 최근에 나온 전화기를 쓰게 됐습니다. 그런데 새로 쓰게 된 휴대전화기를 개통한 통신사에 제공하는 기능가운데 밀리의 서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재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두루 살피다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을 첫 번 째로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책인가를 읽으면서 읽어보려고 표시를 해놓았던 책입니다. E북으로 책을 읽기는 처음이었는데 일단 글씨가 커서 금세 다음 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속독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 있는 테레즈 라켕은 살림출판사에서 내놓은 '생각하는 힘: 진형준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로 주연급(?) 등장인물로는 라켕 부인을 중심으로 아들 카미유, 조카딸 테레즈, 그리고 아들 친구 로랑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하나 같이 타인의 감정에 무디고, 자기중심적입니다. 테레즈는 어렸을 적부터 고모  라켕부인 집에 얹혀 살게 됩니다. 자연 사촌 오빠 카미유와 같이 지내게 되는데 라켕부인이 병약한 카미유에게 강요하는 것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대신  해주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장성하자 라켕부인은 두 사람을 결혼시키게 되는데 카미유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혼 후에 카미유는 파리로 가서 살자고 테레즈와 의논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라켕부인이 나서서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독립을 꿈꾸었던 테레즈로서는 천국을 꿈꾸다가 지옥으로 굴러떨어진 셈입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밋밋합니다. 자수가게를 차려 라켕부인과 테레즈가 운영하고 카미유는 철도국에 취직을 합니다. 라켕부인의 자수가게는 동네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는데 어느날 카미유가 고향친구이자 직장동료인 로랑을 데려옵니다.


접촉이 잦아지면서 로랑과 테레즈는 눈이 맞게 되고 남편과 쓰는 방에서 밀회를 하게됩니다. 로랑과의 불륜관계가 깊어지면서 난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연히 카미유를 살해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끝에 유원지에서 뱃놀이를 가자고 꼬여 까미유를 살햇하기에 이릅니다. 살인의 뒷처리도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여 친구를 구하려 한 영웅 대접을 받게 됩니다.


카미유를 죽인 뒤에 테레즈와 카미유는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혼으로 그 고통을 이겨보려 합니다. 로랑은 치밀한 구석이 있는 편입니다이번에도 라켕부인의 사랑방에 오는 이웃들을 엮어 결혼을 쉽게 성사시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이 상황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사태를 악화시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은 카미유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불륜관계에 있을 때는 열정으로 불타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적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은 라켕부인 앞에서 말싸움을 하는 중에 카미유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발설하기에 이릅니다. 뇌졸중이 와서 꼼짝을 못하는 라켕 부인은 두 사람이 공모하여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치만 두 사람의 끝을 볼 때까지 살아남기로 결심하고 성공합니다. 갈등을 빚던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서로의 생각을 읽게 된 두 사람은 로랑이 준비한 독약을 나누어 마시고 죽음을 맞습니다.


요즘에는 이보다도 더 막장 같은 사건도 많습니다만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고, 박찬욱감독는 박쥐가 테레즈 라켕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랑이 카미유를 살해하는 방식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1951년작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켕>의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동물적 기질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세밀하게 그려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실험소설을 선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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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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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3부작https://blog.naver.com/neuro412/222292675088><아침 그리고 저녁;  https://blog.naver.com/neuro412/222313007819>을 읽은 인연으로 고른 책입니다. 두 작품을 읽은 뒤에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욘 포세의 3부작>을 읽고 나서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아침 그리고 저녁>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샤이닝>을 읽고나서도 비슷한 느낌이 남습니다. 특히 <아침 그리고 저녁>이 한 생명이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됐는데, <샤이닝>은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화자가 차를 운전해서 길을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거리를 만나면 왼쪽 길 혹은 오른쪽 길을 선택하는 순간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바큇자국이 점점 깊이 파이는 숲길에 접어들어서 차가 완전히 멈춰버리는 상황은 살아가다가 곤경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숲길에서는 차를 돌릴만한 장소가 없었다는 것은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처박힌 차를 꺼내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세상이 눈에 덮입니다. 결국은 차를 되돌리기 위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온길을 되짚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숲으로 깊이 들어서게 됩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숲길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하얀 형체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 사라지고, 이번에는 두 사람의 형체가 등장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화자를 찾아서 숲길로 들어온 두 사람 역시 숲길에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순백색의 빛나는 존재도 같이 나타나는데 그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을 감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읽어가다 보니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일단 유체이탈을 경험하는데 자신을 죽음을 3인칭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이 없어지면서 편안한 상태가 되는데 어두운 굴을 지나 아득히 멀리로부터 비치는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계를 느끼게 되면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밝은 곳에 계속 머물게 된다는 의미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고 되돌아 온다는 것은 회생 혹은 환생이 되는 셈입니다.


화자의 이야기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화자는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를 따라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 부모님과 함께 따라가서 무의 공간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한 숨 또 한 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반짝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라고 마무리합니다. 한 생명의 존재가 스러지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길지 않은 소설에 이어 2023년 노벨상 수상 연설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역시 쉽지 않은 대목은 자신의 작품세계가 침묵의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침묵을 내세우는 것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옮긴이는 이 작품은 명상이자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묵상은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정점에 이른다. 포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죽음의 이상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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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이나영 옮김 / 그러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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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책읽기를 편식하듯 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심분야가 아닌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와 있거나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읽을 책을 고를 때 전문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카르스텐 헨의 <책 산책가>는 독자에게 맞춤한 책을 추천해두기도 할 뿐 아니라 그렇게 주문한 책을 집에까지 배달하는 서점직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서점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은퇴를 하면서 딸에게 서점 경영을 물려주면서 책을 배달해주는 업무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경영 측면에서 별 이익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서점을 물려받은 딸은 딸보다도 책배달을 맡고 있는 직원에게 서점을 물려줄 생각을 했을 정도로 각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가슴에 맺혀있었기 때문에 책배달 업무를 종료하고 담당 직원을 해고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자리에 비하여 일할 수 있는 전문가가 태부족인 상황 덕분에 저는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때에 일을 그만 둘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년전에 십여 년을 다닌 직장을 물러난 것은 늦었지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 산책가>의 주인공 콜호프 씨는 자신의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그런 인품이 샤샤라고 하는 소녀와 인연을 맺게 하고, 서점을 그만 둔 뒤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샤샤를 비롯한 콜호프 씨의 단골들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아닙니다. 강아지처럼 짖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한때는 콜호프 씨가 챙겨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다가온 것으로 오해했지만 콜호프 씨의 엽엽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멍멍이였습니다.


콜호프 씨는 다가서는 샤샤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샤샤의 적극적인 접근을 막아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새 샤샤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역시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사귀는데 있어 사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콜호프 씨의 단골들은 독특한 면모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아시 씨는 구입한 책을 읽고나면 동네 도서관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책이 누레질 때까지 다른 사람들도 즐겨 볼 수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는 읽은 책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책나눔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옮겨다닌 3곳의 직장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은퇴한 서점주인 구스타프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겨우 책읽기를 시작하였을 때 아버지로부터 토마스 만의 <부르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선물받기 시작하여 열 살 때는 어머니로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보면 엄청 많은 책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한번쯤은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책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로 독일작가들의 책이 많은 듯합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저도 읽어본 책입니다만, 에리히 캐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에 관한 이야기도 적어놓아야 하겠습니다. 샤샤가 콜호프 씨에게 혹시 속으로 우셨어요? 눈에서 눈물 나게 말고 마음에서 눈물 나게 우는 거 말이에요.”라고 물으면서 콜호프 씨의 눈이 달라보이는 것은 “(눈이) 부끄러워하는 거죠. 사실 우는 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라고 설명합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감정적인 눈물은 다르게 보인다. 강한 바람이 불 때나 양파 껍질을 깔 때 나는 눈물, 혹은 눈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해 주거나 자극적인 물질이 들어갔을 때 반사적으로 흘리는 눈물과도 다르다. 눈물은 동물한테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것이다.(198)”라는 대목은 오래전에 미국에서 공동연구를 하던 신경과 의사가 쓴 <눈물들>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보여 반가웠습니다. 제가 그 책을 번역했는데 출간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콜호프 씨가 책을 읽는 사람들을 토끼, 물고기, 거북이 댕기물때새로 비유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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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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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찾아 읽게 된 피넬로피 피츠제럴드의 <북샵>입니다.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에 선정된 피츠제럴드는 61살이 되던 해에 등단한 늦깎이 작가입니다.


이야기는 1959년 북해 연안에 있는 하드버러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런던에 있는 뮐러서점에서 일하던 플로렌스는 서점에서 만난 찰리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전사하는 바람에 혼자되었습니다. 10년 전에 하드버러 마을에 들어왔는데, 뮐러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하드버러에 서점을 내기로 합니다. 하드버러에는 서점이 없습니다.


지은 지 500년이나 되었고 오랫동안 방치해놓았던 올드하우스를 은행융자를 받아 구입하여 서점을 열려고 하는데 마을 유력자인 가맛장군의 부인이 훼방에 나섰습니다. 건물을 예술센터로 쓸 계획이라면서 올드하우스를 비우라고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진즉 올드하우스를 사서 사업을 벌일 것이지 굳이 플로렌스가 서점을 열겠다고 하니 뒷북을 친 것은 객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서점의 운영이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인 조카를 동원하여 법안을 만들어 플로렌스로 하여금 올드하우스를 강매하도록 강요합니다. 가맛부인이 뒤에서 움직인 탓인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맛부인 쪽으로 넘어가 플로렌스를 외면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서점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말을 암시하듯 왜가리가 장어를 물고 날아가는데 장어는 필사적으로 왜가리의 입에서 떨어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플로렌스가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자락을 깔아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인간 세상은 절멸시키는 자(exterminator)와 절멸당하는 자(exterminatee)로 나뉘어 있고, 언제나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하다.(63)”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플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물론 플로렌스 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브런디시 씨입니다. 그런 브런디시 씨도 가맛부인의 횡포가 심해지자 직접 찾아가 플로렌스를 내버려두라고 말합니다. 가맛부인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좀 더 유의미한 용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 이에 브런디시 씨는 오래된 것과 역사적 가치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같다면 저나 댁이나 지금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228)”라고 반박합니다. 이런 브런디시 씨의 도움도 가맛장군의 집을 나서는 순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맛부인은 브런디시 씨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플로렌스를 속입니다. 작가가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독자를 끝까지 외면한 셈입니다.


서점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가 구체적 활동계획도 없는 예술센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한 하드버러 사람들에게 서점은 사치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에서 서점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 사정도 하드버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플로렌스의 서점이 문을 열었을 때 책을 사러 온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책을 빌려주는 일을 중단하였을 때는 대여업무을 다시 시작해달라고 요청한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맛부인의 횡포에 맞서 플로렌스를 편들어 줄 사람도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역시 타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토착민들의 결속력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플레렌스가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잘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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