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평점 :
어느 책을 읽다가 읽어볼 목록에 올려두었던지 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를 위시하여 모두 14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어느 단편을 인용했던 것인지도 잊었습니다. 어떻든 14편의 단편 가운데는 ‘검은 고양이’와 ‘도둑맞은 편지’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단편입니다. 14편의 단편을 모두 읽고서는 아마도 두 번째 단편인 ‘리지아’ 때문에 읽기로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아내 리지아가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에 한 말을 몇 차례 반복합니다.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더라면 천사에게도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 텐데.(39쪽)” 사실 이 대목은 모든 생명체라면 숙명처럼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이 대목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내를 잃고서 아내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영국의 어느 황량하고 외딴 곳에 있는 사원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몇 달 뒤에 만난 로웨나 트리배니언과 재혼을 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화자가 리지아를 정말 사랑한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웨나 역시 결혼 후 한 달 만에 열병에 걸려 쇠약해진 끝에 역시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로웨나를 간병하는 가운데 화자는 리지아의 환영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화자가 뭔가 켕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화자는 두 아내의 죽음을 겪게 되는데 첫 번째 아내 리지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내 로웨나의 경우는 병상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나 죽은 뒤에 느끼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편 ‘리지아’ 뿐 아니라,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단편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 역시 책의 말미에 붙인 작품해설에서 “인간 심리의 복합성은 사실 포의 단편소설, 혹은 산문시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이다.(315쪽)”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인간 심리의 복합성에 대해 탁월하고 합리적인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들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옮긴이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대체적으로 현실과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작가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들의 무대는 아주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서, ‘리지아’의 경우는 독일과 영국에서, ‘윌리엄 윌슨’은 영국에서,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노르웨이의 해안에서, ‘구덩이와 추’는 스페인에서, ‘도둑맞은 편지’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었습니다.
많은 단편들이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인자의 심리상태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범행장소를 특정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 사실일까 싶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 가운데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다룬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범인이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