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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평점 :
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찾아 읽게 된 피넬로피 피츠제럴드의 <북샵>입니다.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선정된 피츠제럴드는 61살이 되던 해에 등단한 늦깎이 작가입니다.
이야기는 1959년 북해 연안에 있는 하드버러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런던에 있는 뮐러서점에서 일하던 플로렌스는 서점에서 만난 찰리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전사하는 바람에 혼자되었습니다. 10년 전에 하드버러 마을에 들어왔는데, 뮐러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하드버러에 서점을 내기로 합니다. 하드버러에는 서점이 없습니다.
지은 지 500년이나 되었고 오랫동안 방치해놓았던 올드하우스를 은행융자를 받아 구입하여 서점을 열려고 하는데 마을 유력자인 가맛장군의 부인이 훼방에 나섰습니다. 건물을 예술센터로 쓸 계획이라면서 올드하우스를 비우라고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진즉 올드하우스를 사서 사업을 벌일 것이지 굳이 플로렌스가 서점을 열겠다고 하니 뒷북을 친 것은 객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서점의 운영이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인 조카를 동원하여 법안을 만들어 플로렌스로 하여금 올드하우스를 강매하도록 강요합니다. 가맛부인이 뒤에서 움직인 탓인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맛부인 쪽으로 넘어가 플로렌스를 외면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서점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말을 암시하듯 왜가리가 장어를 물고 날아가는데 장어는 필사적으로 왜가리의 입에서 떨어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플로렌스가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자락을 깔아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인간 세상은 절멸시키는 자(exterminator)와 절멸당하는 자(exterminatee)로 나뉘어 있고, 언제나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하다.(63쪽)”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플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물론 플로렌스 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브런디시 씨입니다. 그런 브런디시 씨도 가맛부인의 횡포가 심해지자 직접 찾아가 플로렌스를 내버려두라고 말합니다. 가맛부인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좀 더 유의미한 용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 이에 브런디시 씨는 “오래된 것과 역사적 가치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같다면 저나 댁이나 지금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228쪽)”라고 반박합니다. 이런 브런디시 씨의 도움도 가맛장군의 집을 나서는 순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맛부인은 브런디시 씨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플로렌스를 속입니다. 작가가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독자를 끝까지 외면한 셈입니다.
서점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가 구체적 활동계획도 없는 예술센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한 하드버러 사람들에게 서점은 사치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에서 서점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 사정도 하드버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플로렌스의 서점이 문을 열었을 때 책을 사러 온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책을 빌려주는 일을 중단하였을 때는 대여업무을 다시 시작해달라고 요청한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맛부인의 횡포에 맞서 플로렌스를 편들어 줄 사람도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역시 타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토착민들의 결속력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플레렌스가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잘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