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계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매혹적인 심리 실험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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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동안(童顔)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흔히 동안은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안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도 적지 않은 나이를 속여 디자인회사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의 나이를 의심하는 동료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많이 늙었으면 속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나보다 싶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우리나라 경제가 위축되면서 명예퇴직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여 한창 일할 사람들이 일터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거울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지만, 일없이 집에 있게 되니 하루하루 늘어가는 주름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된다고들 합니다. 아무래도 현업에서 물러나게 되면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고 집안에서의 위치도 점점 뒷켠으로 물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 몇배나 빨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시계>는 바로 엘렌 랭어박사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심리실험의 결과를 토대로 생각의 활기는 물론 몸의 활력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실험을 통하여 증명해 보이는 책입니다. 실험은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노인들은 매사를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을 하도록 하였고, 또 다른 그룹은 관례대로 요양원 직원들의 돌봄으로 피동적으로 받도록 하였더니 1년 6개월이 지난 다음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이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민첩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해졌고 심지어는 사망률 역시 절반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실험은 1979년 9월 뉴햄프셔 주의 피터버러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을 다시 단장해서 1959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8명의 노인들이 인터뷰를 통해서 선정되었는데, 4명은 1959년의 시간에 맞추어 마치 당시에 사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으로 생활하였고, 다른 4명은 20년 전인 1959년을 회상하면서 1주일을 생활하여 생활태도를 비롯하여 신체활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교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노인들은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장면을 흑백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카스트로의 아바나 진격과 공산주의 등 1959년 당시의 시사적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옛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가족이나 간병인의 도움없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 그간 배려하는 이름으로 해보지 못했던 육체활동을 하면서 꼭 1주일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는 20년 전의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1주일을 보낸 노인들 대부분 스스로도 젋어졌다고 주장했으며 시력과 청력,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늘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었던 한 노인은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꼿꼿한 자세로 걸었으며, 연구원들과 미식축구 경기를 즐기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년 전을 회상하는 그룹보다도 20년 전의 시간에서 살아낸 그룹이 뚜렷한 차이를 보여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렌 랭어박사는 이 실험 이외에도 자신의 연구성과들은 물론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도 적절하게 인용하여 삶의 질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 우리가 현대의학의 성과에 지나치게 매여 살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실험에서는 실험자의 가설에 부합하지 않는 피험자는 데이터상 달갑지 않은 잡음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내계는 그러한 예외의 경우가 오히려 연구의 초점이 된다.(33쪽)”와 같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옹호한다면 현대의학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통계학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 큰 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개별사례는 통계적 처리 안에서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랭어박사의 주장처럼 의학의 큰 틀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사례에 주목할 필요도 있겠지만,아직까지는 개별사례에 주목하여 별도로 다루는 것을 일반화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 영역에서는 유전자수준에서 개별적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입니다만, 저자가 연구성과를 인용하는 경우 그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의 이름을 모두 거명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술논문에서도 대표저자만을 인용하는 것이 관행인 점을 고려한다면 읽기에 번잡하더라는 느낌을 전합니다.

<마음의 시계>를 읽게 되면 자신의 삶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언제나 똑같이 반응할 수도 있고, 같은 것에 달리 반응할 수도 있으며, 같은 것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다른 것에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하지 않는 점은 비슷하고 다름을 결정하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동안을 얻기 위하여 보톡스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과 생활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피하면서 효과 역시 빠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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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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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빠르게 나빠지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평소와 달라진 점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치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1990년 즈음에만 해도 국내에서 참고할만한 책도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치매에 관한 전문서적 뿐 아니라 일반대중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책도 많이 나와 있고 치매환자를 돌본 분들이 환자를 지켜보면 쓴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에서 신경학을 전공한 리사 제노바박사의 소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지금까지 나온 치매관련 서적과는 전혀 다른 치매환자의 시각에서 알츠하이머병이 시작해서 진행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2003년 9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매월 한달 동안 진행된 치매증상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2005년 여름 다음에는 2005년 9월까지 건너 뛰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화자는 하버드대학에서 인지심리학교수으로 재직하는 언어학의 권위자 엘리스박사입니다. 그녀의 남편 존은 역시 하버드대학에 근무하는 생물학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앨리스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방향감각 상실, 정신 혼란, 기억력 쇠퇴 등입니다. 쉰살에 불과한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가 갱년기증상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막상 정밀검사에서는 초기단계의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게 됩니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에서는 앨리스처럼 6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나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기억력이 멀쩡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213825).

이 책의 독자들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심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치매는 초기부터 모든 증상이 나타나서 꾸준하게 나빠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파도를 타는 식으로 나빠졌다가 좋아지는 식으로 조금씩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초기 치매환자가 자신의 치명적인 병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뉴스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또한 치매 환자는 초기에 자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증상을 감추고 진단을 위하여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도 돌아가실 무렵에 초기 단계의 치매증상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2~3년 전에 산책가셨다가 길을 잃은 사고가 있으셨다는데 부모님 모두 이를 감추셨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치료약을 드셨더라면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었을 것인데 많이 아쉽습니다.

책에서 잘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로는 사망 전에 알츠하이머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방법은 개발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만 MRI 등과 같은 영상검사를 비롯하여 혈액검사, 심리검사 등을 증상과 같이 종합판단하여 진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앨리스박사의 진단이 결정되는 과정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증상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지만 젊은 나이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생존하는 기간은 길다고 합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약 10% 정도 차지하고 65세 이전에 발병하는데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앨리스박사 역시 큰 딸이 유전적 성향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가족들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앨리스박사의 경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극을 공부하는 작은 딸과 갈등을 빚어왔지만 투병과정에서 작은 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작은 딸과의 만남을 통해서 투병에 도움을 받게 됩니다. 치매환자는 아무래도 간병하는 사람이 거의 24시간 지켜봐야 안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부담이 매우 큰 병입니다. 따라서 간병의 부담을 나누고 배회증상이나 변실금과 같이 가정에서 간호하는데 한계가 있는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에는 요양전문기관에 맡기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요양기관의 평가사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기진단을 권장합니다. 의사들이 40대와 50대 환자들의 기억력 및 인지장애를 단순히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폐경기 증세로 진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확한 진단을 빨리 받을수록 빨리 약물치료를 시작하여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진행되지 않는 정체기를 길게 유지시켜 더 나은 치료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완치가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325쪽)”

두 가지 안타까웠던 부분은 자신의 병을 알고나서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려던 앨리스박사의 결정(349쪽)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과 앨리스가 주도하여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들만의 모임을 만드는 부분입니다. 통상은 알츠하이머병은 간병하는 분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여 도움을 받기 위하여 결성하는 자조모임입니다만, 환자들이 만나 서로의 어려움을 나눈다는 발상은 상황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의 저자인 리사 제노바 박사의 경우 할머니가 치매를 앓았고, 번역을 맡은 민승남님 역시 어머니가 치매를 앓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 역시 선친께서 치매증상이 있으셨고, 치매의 진단영역을 공부한 바가 있으니 공감이 많이 가는 책입니다.

뇌신경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목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Still Alice>라는 원제는 치매증상으로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앨리스박사는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고 정한 번역서의 제목은 치매환자의 주된 증상인 기억력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점을 잘 반영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블랙베리>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을 전자사전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 거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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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간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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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살아온 날이 남아 있는 날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고 보니 가끔씩은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굴곡이 적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인지 가끔은 그때 내가 선택한 길이 최선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삶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던 갈림길을 만나게 된 것도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분노와 짜증을 잠재우는 감정조절의 원리’라는 비교적 긴 부제와는 달리 <3초간>이라는 제목은 짧습니다. 하지만 짧다면 짧은 3초가 때로는 엄청나게 느리게 흘러가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서문에서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책에서 담아내고 싶은 주제를 풀어내는 경우를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플레이처럼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그야말로 원대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감정조절이 안되는 타인 때문에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거나, 스스로 감정조절이 안 되어 타인에게 괴로움을 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던 것들이다. … 책을 읽은 여러분이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소통방식을 변화시키길 희망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훨씬 생산적으로 인정이 넘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원한다.”고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인생의 나침반으로서의 ‘3초 법칙’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었습니다. 책갈피에는 저자의 결정적인 경험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 난폭하게 운전을 한 상대 운전자가 도리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가 탄 택시의 기사는 놀랍게도 그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며 상대 운전자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기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그리 침착할 수 있느냐고 묻지 기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쓰레기차와 같다. 마음속에 온갖 좌절, 분노, 실망을 꽉꽉 채운 채 돌아다닌다. 만약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그들은 가지고 다니던 쓰레기 감정을 온통 우리에게 쏟아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는 그는 이후 타인의 부정적인 r마정에 상처받지 않는 법, 나아가 남에게 성처부지 않는 법에 관해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기적의 3초법칙”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에 대하여 마음에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는데 과정을 3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지금 내뱉고 싶은 말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1단계, 내게 화를 내는 상대 혹은 화가 나려는 자신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미소를 짓는 2단계, 그리고 하고 있던 일, 혹은 하려고 했던 일에 바로 돌입하는 3단계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제1단계라는 것입니다. 즉 끓어오르려는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당연히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단계를 마무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3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누군가와 갈등을 빚었던 순간은 대부분 스스로의 감정을 되돌아볼 여유없이 즉각반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참을 인(忍)을 세 번 쓰면 살인도 피해갈 수 있다는 우리 옛말이 생각납니다. 역시 우리 선조님들은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마음속으로도 참을 인(忍)을 세 번 쓰려면 적어도 5~6초는 흘러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자, 참자, 참자라고 되뇌는 사이에 들끓던 감정이 상당히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독자는 “당신은 타인의 분노, 화, 짜증에 얼마나 휘둘리는가?”, “당신은 타인에게 분노, 화, 짜증을 얼마나 쏟아내는가?”에 관한 두 개의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방식에는 공연히 심사가 뒤틀리는 타입이라서 일일이 답을 달지는 않았습니다만, 4분위로 나눈 평가에서 중간보다 다소 높은 점수가 나올 것 같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 편이기도 하면서 남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편이기도 하다는 결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테스트를 마음근육테스트라 이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감정의 요동을 제압할 수 있는 근육이 얼마나 단단하지 검사해보는 것이죠?

저자가 “1장 화내고 짜증부리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웃으며 무시하는 법, 2장 무거운 마음을 가뿐히 들어올리려면, 3장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기, 4장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로 나누어 든 20개의 이슈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만나는 감정돋구는 사례들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함으로서 스스로의 감정도 지키고 타인과의 갈등도 피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저자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례별로 감정지키기 연습과, 3초법칙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정리하는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례들이 내가 이미 겪어본 것들인 까닭에 마음에 금새 와 닿고 저자의 조언을 나의 삶에 적용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지난주에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갈등을 만들고 그것들을 풀기 위해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던 기억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감정지키기 실천계명을 인용합니다. 1.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감정폭군들을 무조건 무시하라. 2.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지워버려라. 3. 남에게 감정폭군이 되지 말자. 4. 감정조절이 안 되는 타인이 있으면 가능한 도와라. 5. 감사의 순환 속에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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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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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보릿고개를 넘어보기 위하여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출에 목을 매던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는 조금만 참으면 굶주림을 면할 것 같다는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금새 이룰 것 같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 한 귀퉁이에 걸린 불편함은 지그시 눌러둘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견뎌왔던 우리 국민이 소위 IMF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경제위기에 봉착했고, 또 그 위기를 극복한 위대한 민족이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던 것도 기억의 한 귀퉁이에 처박혀있습니다.

아직은 글로벌경제블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이 갖추어지지 못한 까닭이었는지 한방에 나가떨어졌던 우리가 카운트아웃 직전에 일어서 다시 글로벌경제블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버티려는 순간 이번에는 글로벌경제가 독감에 걸려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곁다리로 녹다운될 위기에 몰렸지만, 그래도 한번 맞아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그중 제일 먼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합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태형님은 <불안증폭사회>를 통해서 “오늘의 한국인은 단군 이래 최악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G20 정상회담 주최, GDP 증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도달, OECD 가입 등 갖가지 성공적인 지표 이면에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려주는 통계가 도사리고 있다.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대한민국. 이 보고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위협당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병이 스며드는 일차적 원인은 사회에 있고, 그 비중은 70퍼센트 된다고 한다면 개인적 요인은 30퍼센트라고 합니다.

저자는 1장 “불안과 공포에 점령당한 사회”에서 우리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민초들이 당면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근본적으로 1990년대 들어 서서히 밀려오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로 새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민의불안을 증폭시키는 9개의 심리코드로 들고 있는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안전한 평생직장 따위는 없다.(13쪽)”는 저자의 진단이 과연 옳으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전한 평생직장의 개념은 적당히만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테니 치열한 경쟁 따위는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사회는 경쟁보다는 평등을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누군가 땀 흘려 수확해 곳간에 쌓아둔 재물을 모두 꼭 같이 나누어 가지겠다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기간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쌓은 능력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잡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외부로부터 인재영입을 배타적으로 저지하는 풍토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IMF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사회안전망을 빠르게 확충하고 무한경쟁 대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경제발전 노선을 잡었더라면…(21쪽)”이라고 적은 부분도 방만하게 운영하던 회사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임금을 줄이는 대신 인적퇴출을 통한 구조조정을 선택한 것이 누구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만들어진 한국식 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악의의 전쟁’이다.‘”라는 저자의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없는 사회는 종국에는 침체국면을 통해서 퇴보하기 마련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다투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견제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까?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하고서 한반도 안으로 몸을 숨기고 나서는 끝이었습니다.

저자가 한국사회에 만연되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은 지난 정권에서 불거져 결국은 국민들의 마음이 떠나가게 했던 무수한 사건들은 역사 속에 남겨두고 현 정부 들어 부각된 사건사고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사회병리현상이 불과 2~3년 만에 생겼다고 정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인식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3장 ‘멸종으로 가는 한국인, 어떻게 멈춰 세울 것인가?’에서는 인간관계를 재검토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어떻게 보면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막연한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라는 부제와는 달리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은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에 불안심리를 조성해서 경쟁을 피하고 소극적인 삶에 안주하도록 이끌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경쟁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動力)이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축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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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4 (양장) - 왕을 찾아헤매는 인간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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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4부의 부제는 ‘왕을 찾아 헤매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왕의 부재는 거꾸로 너도나도 칭왕을 하는 혼돈의 세상이기도 합니다. 심장탑의 수호자들의 음모가 밝혀짐에 따라 2부의 마지막에 사모 페이가 인간의 왕에 올랐으니 4부의 부제 역시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기승전결의 원칙을 보자면 3부에서 스토리의 대반전이 이루어지고 4부에서는 정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2부에서 보여준 첫 번째 반전-즉, 나가족 심장탑수호자들이 하인샤 대사원의 고승들을 속여 나가들의 ‘발자국이 없는 여신’을 그녀의 화신 카린돌의 몸에 가두고 여신의 힘을 이용하여 한계선 북쪽을 침략하려는 음모-을 계기로 나가족과 북쪽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북쪽 연합군이 발자국이 없는 여신을 감금한 하텐그라쥬를 공격하는 전략이 극적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3부까지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체 스토리가 정리되는 4부에서 저자는 결정적인 대반전을 보여 독자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 내막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4부에서 드러나는 극적인 대반전은 접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나가족 세계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인간, 레콘, 도깨비들을 멸망시키는 전쟁의 필요성이 회의를 가지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 모계중심 사회로 움직이는 나가족 세계의 권력중심을 남성 중심으로 옮기려는 심장탑수호자들의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세력간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상황은 하텐그라쥬의 마지막 방어선 시모그라쥬가 칸비야 의장의 주도로 중립을 선언하고 나가족과 북부연합군의 군대가 이를 수용하여 전쟁의 참혹한 피해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게 되는 과정이 의외라는 점과, 일련의 이런 과정은 저자가 치밀하게 깔아두고 있는 이야기전개에서 반전의 요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1부에서 궁금했던 신을 죽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두억시니족의 비극의 진실이 4부에서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그 단초는 시우쇠가 칸비야 의장을 통해서 레콘족의 화신 아가에게 전달하는 “빛이 탄로났다”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44쪽) 두억시니족이 죽였다고 알려진 신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 즉 빛이었던 것입니다. 인간, 레콘, 도깨비 그리고 나가, 이외에 제5의 종족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5종족은 자신들의 신보다도 더 위대해진 것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은 자신이 가호하는 종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 즉 4신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소멸됨으로써 자신이 보살피던 첫 번째 종족이 완전에 이르게 했던 것입니다(278쪽). 첫 번째 종족이 완전한 빛에 이르고 그들이 지상에 흘린 눈물이 바로 두억시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억시니들의 유해의 폭포는 자기의 다른 부분이 신보다 이미 위대해졌고, 두억시니가 신을 죽인 것이 아닌 것을 알고 기쁘게 죽음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두억시니는 신을 잃거나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종족이 완전한 존재가 된 뒤로 인간, 레콘, 도깨비 그리고 나가족은 첫 번째 종족처럼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네 종족의 신 가운데 한 명이라도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없게 되면 완전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종족 중 한종족이 완전성을 획득하면 다른 종족은 변화가 없는 정체에 빠져버리게 되는데, 어느 신이 자신이 가호하는 종족이 정체에 빠지게 내버려 두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4부에는 케이건 드라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 <눈물의 마시는 새>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근본은 바로 케이건 드라카였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4부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가호하는 “어디에도 없는 신‘은 수탐자들도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접시가 깨어지지 않았던 것도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케이건이 나가들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의 근원은 나가족과 전쟁을 치루던 누이에 반발하고 나가족에 애정이 담긴 손을 내밀었던 케이건에게 나가족은 케이건이 사랑했던 아내를 죽여 보답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케이건이 나가족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백년이 넘게 장수해온 케이건이라는 존재 때문에 작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의 스토리텔링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시우쇠가 케이건 드라카에게 아라짓어로 질책하는 말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듸 저즈런 므흔 지잘 알외노라!(202쪽)”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네가 저지른 많은 죄를 알려주마!”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4종족의 신들은 그들의 선민종족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신은 도깨비들에게 불을 주었다. 도깨비들은 그들의 신만큼이나 불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레콘에게 무기를 준다. 성년이 된 레콘은 최후의 대장간에서 자신의 무기를 받는다. 발자국 없는 여신은 수호자들의 신면, 즉 이름을 주었다.(304쪽)” 그렇다면 인간을 가호하는 ‘어디에도 없는 신’은 인간에게 무엇을 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사모 페이의 해답은 “어디에도 없는 신이 그의 인간에게 준 것은 왕이었다. … 인간들의 눈물을 마시게끔 왕을 선물했다.” 케이건 드라카는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으로 수백년을 살아오면서 신을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결과 4종족은 변화없이 정체된 채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 세리스마의 음모로 나가족이 전쟁을 일으키는 변화가 일어났지만, 사실은 나가, 레콘 그리고 도깨비의 수호신들이 세리스마의 음모를 이용해서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을 포함한 4신의 화신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 했던 것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3부의 리뷰에 인용했던 유해의 폭포가 사모 페이에게 전했던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는 자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부의 마지막에 작가는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자들이 말하는 완전성은 고정이고 정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완전성은 어쩌면 무수한, 끝없는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 변화는 항상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왕이 있습니다.(398쪽)”라는 철학을 라수가 사모 페이에게 전하는 말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짧게 정리해봅니다.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는 판타지 형식의 모험소설입니다만,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인간이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만... 판타지물은 고민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 아닐까요?

다만 4권의 말미에 정리해놓은 지명과 용어해설을 1권의 말미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이야기의 무대를 지도로 만들어주었더라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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