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4부의 부제는 ‘왕을 찾아 헤매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왕의 부재는 거꾸로 너도나도 칭왕을 하는 혼돈의 세상이기도 합니다. 심장탑의 수호자들의 음모가 밝혀짐에 따라 2부의 마지막에 사모 페이가 인간의 왕에 올랐으니 4부의 부제 역시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기승전결의 원칙을 보자면 3부에서 스토리의 대반전이 이루어지고 4부에서는 정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2부에서 보여준 첫 번째 반전-즉, 나가족 심장탑수호자들이 하인샤 대사원의 고승들을 속여 나가들의 ‘발자국이 없는 여신’을 그녀의 화신 카린돌의 몸에 가두고 여신의 힘을 이용하여 한계선 북쪽을 침략하려는 음모-을 계기로 나가족과 북쪽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북쪽 연합군이 발자국이 없는 여신을 감금한 하텐그라쥬를 공격하는 전략이 극적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3부까지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체 스토리가 정리되는 4부에서 저자는 결정적인 대반전을 보여 독자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 내막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4부에서 드러나는 극적인 대반전은 접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나가족 세계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인간, 레콘, 도깨비들을 멸망시키는 전쟁의 필요성이 회의를 가지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 모계중심 사회로 움직이는 나가족 세계의 권력중심을 남성 중심으로 옮기려는 심장탑수호자들의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세력간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상황은 하텐그라쥬의 마지막 방어선 시모그라쥬가 칸비야 의장의 주도로 중립을 선언하고 나가족과 북부연합군의 군대가 이를 수용하여 전쟁의 참혹한 피해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게 되는 과정이 의외라는 점과, 일련의 이런 과정은 저자가 치밀하게 깔아두고 있는 이야기전개에서 반전의 요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1부에서 궁금했던 신을 죽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두억시니족의 비극의 진실이 4부에서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그 단초는 시우쇠가 칸비야 의장을 통해서 레콘족의 화신 아가에게 전달하는 “빛이 탄로났다”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44쪽) 두억시니족이 죽였다고 알려진 신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 즉 빛이었던 것입니다. 인간, 레콘, 도깨비 그리고 나가, 이외에 제5의 종족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5종족은 자신들의 신보다도 더 위대해진 것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은 자신이 가호하는 종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 즉 4신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소멸됨으로써 자신이 보살피던 첫 번째 종족이 완전에 이르게 했던 것입니다(278쪽). 첫 번째 종족이 완전한 빛에 이르고 그들이 지상에 흘린 눈물이 바로 두억시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억시니들의 유해의 폭포는 자기의 다른 부분이 신보다 이미 위대해졌고, 두억시니가 신을 죽인 것이 아닌 것을 알고 기쁘게 죽음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두억시니는 신을 잃거나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종족이 완전한 존재가 된 뒤로 인간, 레콘, 도깨비 그리고 나가족은 첫 번째 종족처럼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네 종족의 신 가운데 한 명이라도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없게 되면 완전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종족 중 한종족이 완전성을 획득하면 다른 종족은 변화가 없는 정체에 빠져버리게 되는데, 어느 신이 자신이 가호하는 종족이 정체에 빠지게 내버려 두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4부에는 케이건 드라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 <눈물의 마시는 새>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근본은 바로 케이건 드라카였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4부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가호하는 “어디에도 없는 신‘은 수탐자들도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접시가 깨어지지 않았던 것도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케이건이 나가들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의 근원은 나가족과 전쟁을 치루던 누이에 반발하고 나가족에 애정이 담긴 손을 내밀었던 케이건에게 나가족은 케이건이 사랑했던 아내를 죽여 보답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케이건이 나가족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백년이 넘게 장수해온 케이건이라는 존재 때문에 작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의 스토리텔링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시우쇠가 케이건 드라카에게 아라짓어로 질책하는 말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듸 저즈런 므흔 지잘 알외노라!(202쪽)”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네가 저지른 많은 죄를 알려주마!”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4종족의 신들은 그들의 선민종족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신은 도깨비들에게 불을 주었다. 도깨비들은 그들의 신만큼이나 불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은 레콘에게 무기를 준다. 성년이 된 레콘은 최후의 대장간에서 자신의 무기를 받는다. 발자국 없는 여신은 수호자들의 신면, 즉 이름을 주었다.(304쪽)” 그렇다면 인간을 가호하는 ‘어디에도 없는 신’은 인간에게 무엇을 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사모 페이의 해답은 “어디에도 없는 신이 그의 인간에게 준 것은 왕이었다. … 인간들의 눈물을 마시게끔 왕을 선물했다.” 케이건 드라카는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으로 수백년을 살아오면서 신을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결과 4종족은 변화없이 정체된 채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 세리스마의 음모로 나가족이 전쟁을 일으키는 변화가 일어났지만, 사실은 나가, 레콘 그리고 도깨비의 수호신들이 세리스마의 음모를 이용해서 어디에도 없는 신의 화신을 포함한 4신의 화신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 했던 것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3부의 리뷰에 인용했던 유해의 폭포가 사모 페이에게 전했던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는 자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부의 마지막에 작가는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자들이 말하는 완전성은 고정이고 정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완전성은 어쩌면 무수한, 끝없는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 변화는 항상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왕이 있습니다.(398쪽)”라는 철학을 라수가 사모 페이에게 전하는 말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짧게 정리해봅니다.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는 판타지 형식의 모험소설입니다만,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인간이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만... 판타지물은 고민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 아닐까요?
다만 4권의 말미에 정리해놓은 지명과 용어해설을 1권의 말미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이야기의 무대를 지도로 만들어주었더라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