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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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서 <남아있는 나날>을 빌리는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2015년에 소개된 <파묻힌 거인>으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여했다는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늘상 대출 중이었습니다.


<남아있는 나날>을 읽고서 영국인의 진면목을 참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떠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를 지향하기 위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야 했던 주인공 스티븐슨의 생각을 요즈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제임스 스티븐슨은 영국의 귀족이자 유럽 외교계의 핵심인물이던 달링턴 경의 저택의 집사장입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19567월 달링턴 경의 저택이 미국의 부호인 페러데이에게 팔린 직후부터입니다. 집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인들이 떠나고 새로운 하인들이 들어오지만, 한때 28명을 하인을 거느렸던 스티븐슨의 입장에서는 4명으로 저택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달링턴 경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1930년대에 함께 일했던 총무 샐리 캔턴의 편지를 받게 된 스티븐슨은 그녀를 만나러 콘월까지 여행을 하게 됩니다.


패러데이씨가 미국에 일을 보러간 사이 내준 자동차를 운전하여 콘월까지 여행하는 5일 동안 달링턴 경을 모시던 때 저택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달링턴 경의 주선으로 유럽과 미국의 주요 인사가 저택에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가 자주 열렸던 것인데, 중도적이며 선의적 성향의 달링턴 경이 나치의 히틀러에게 속임수에 넘어가 독일의 속셈을 간과하여 전쟁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전쟁이 끝난 뒤에 달링턴 경은 사회적 지탄 속에 폐인이 되어 죽음을 맞고, 200년 전통의 저택마저도 미국인에게 팔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집사장 스티븐슨은 역시 집사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저택의 집사로 출발하여 달링턴 경 저택의 집사장에 이르게 됩니다. 주인의 명예를 지키고, 주인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언행을 단도리하는 스티븐슨 부자의 행적을 보면서 영국 명망가의 집사장이라는 직업도 극한직업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많은 하인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입장을 고려하기 보다는 직업적 임무를 우선한다거나, 총무 일을 맡고 있는 캔턴 양이 내비치는 호의를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흐른 뒤에 그녀를 만나러 콘월까지 여행해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패러데이씨는 스티븐슨의 콘월 여행이 캔턴 양과의 재회를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을까요? 미국식의 거침없는 농담이 영국식 사고로 굳어진 스티븐슨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진정한 의미의 집사가 존재하는 곳은 영국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실제로 사용되는 칭호가 무엇이든, 오직 하인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58)”라는 대목을 보면 스티븐슨의 직업관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콘월로 가는 여행의 여섯째 날에 스티븐슨은 세월이 흘러 벤 부인이 된 캔튼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를 통하여 옛날의 감정을 되살리지나 않을까 하는 통속적인 기대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스티븐슨이 캔턴양의 편지에 적은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290)”라는 대목을 끄집어내 그녀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느낌을 전하지만, 그녀는 이를 부정하고, 스티븐슨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캔턴양이 스티븐슨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한 적도 많았다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스티븐슨이 5일 동안 차를 몰고 콘월까지 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e remains of the day>입니다. 이를 <남아 있는 나날>로 옮긴 것에 대하여 이야기가 있는 듯합니다. 사반세기 전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고하고, 콘월로 여행하는 것까지도 사반세기 전에 떠나갔던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그 날의 흔적>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는 듯합니다만, 그날의 흔적을 남긴 캔턴양이 언급한 남은 내 인생’, 즉 두 사람의 남은 나날들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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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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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서점에 관한 책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수필작가 스가 아쓰코의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을 읽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밀라노에 있는 코르시아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고, 서점의 운영 주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주세페 리카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의 본래 이름은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입니다. 서점이 있는 세르비 수도원 앞의 대로라는 옛 거리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9세기 문호 알레산르로 만초니의 역사소설 <약혼자들>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 거리는 저도 두 번이나 가본 적이 있는 밀라노 대성당 뒤쪽에서 약간 꺾여 동북쪽으로 뻗어나가는 길인데, 지금은 비토리오 이마누엘레 2세 거리(Corso Vittorio Emanuele II)로 바뀌었습니다. 세르비 수도원 역시 지금은 산 카를로 알 코르소 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점은 산 카를로 성당의 귀퉁이를 빌어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점을 시작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가톨릭 좌파라고 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가톨릭 좌파의 뿌리는 13세기, 계급적인 중세 교회제도를 쇄신하려 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에 닿는다고 합니다. 가톨릭 좌파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모든 사회제도에 등을 돌리고 완고한 정신주의에 머물려고 한 가톨릭 교회를 현대사회에 편입시키려는 운동이 확산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50년대 중반, 공업이 특히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의 몇몇 도시와 로마/바티칸에 대항의식이 강한 피렌체 등에서 소규모 출판물과 강연회를 중심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점이 출범하는데 중심역할을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는 시인으로도 이름이 꽤 알려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였습니다. 2차대전 말기 독일군에 점령된 밀라노에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지하조직 운동을 펼쳤고, 종전 후에는 친구 카밀로 데 피아츠 등 동료와 함께 서점을 열었습니다. 서점은 새로운 신학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책들로 채워졌습니다. ‘오후 여섯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을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가톨릭 세제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이가 있었다.(41)’


서점에 모여든 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정치논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나날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교회 당국의 시각에서는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고, 다비드가 밀라노를 떠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결국은 서점을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이들과의 만남을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서는 작가의 진보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기보다는 서점을 중심으로 하여 작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뿐 아니라 동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밀라노에 와서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덤으로 얻은 지식으로는 두루 살펴보지 못해 느끼는 못했던 밀라노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거리 풍경입니다. 대성당을 등지고 왼쪽 거리는 일상적이고 시민적이라면 오른쪽 거리는 귀족적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갈라테아와 스카라 극장 등 오른쪽 거리만 구경했던 것 같습니다. 왼쪽 거리에는 일상용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비롯하여 생선가게, 채소가게 등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찬찬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정작 작가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서인지 남편을 비롯하여 다비드 신부 등 세상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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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보팅 - AI는 어떻게 기업을 살리는가
김경준.손진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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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이세돌 기사가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결을 펼친 끝에 14패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방식을 향상시키는 대체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AI 피보팅>AI를 도입하여 기업경영을 혁신시키는 방법을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인공지능이란 학습능력, 추론능력, 지각능력 등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전산체계를 말합니다. 피봇은 회전축을 의미합니다. 어제 종영된 농구예능 뭉치면 쏜다에서도 피벗플레이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한발을 고정한 채로 다른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상대를 현혹하다가 득점을 노리거나 공을 넘기는 공격방식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창업(start-up) 부문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창업 부문에서는 피봇이라는 개념을 기왕의 회사에서 사업형태나 경영전략의 방향을 틀어서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창조해내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오랜 경험에 의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하던 것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성공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AI 피보팅>에서 디지털 피보팅, 즉 아날로그 방식으로 경영하던 기업이 디지털방식을 도입하여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전략적 지향점을 수립하며, 나아가 ‘AI 디지털로의 전환을 달성한다는 3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부에서는 디지털 환경의 격변으로 펼쳐지게 될 새로운 사업의 지평을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요인을 살펴보고, 디지털로의 전환 과정에서 혁신 엔진으로서의 AI의 전략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3부에서는 국내기업들이 AI를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4부에서는 AI와 디지털기술을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국내외 기업의 성공사례를 들었습니다. 5부에서는 AI로 매개로 한 디지털 전환기에 시회를 잡기 위한 7가지 전략적 접근방식을 설명합니다.


필자처럼 옛날 사람들은 일단 개념부터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날로그 방식이란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체적인 통계보다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예측, 원료구입, 홍보, 매출 등 모든 것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되는 셈입니다. 아날로그방식은 계절의 변화라던가 날씨 등에서 돌발변수가 등장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됩니다.


반면 디지털방식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얻은 자료들을 분석하여 경향을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방식인데, 그만큼 위험요소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경향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료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디지털 피봇, AI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자리에 과거에 거론되었던 새로운 방식을 집어넣어도 맥락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생산체계 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 디지털, AI 등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어를 고루 담고 있지만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주장하는 디지털 피봇의 개념 대부분은 AI기술 단계에 미치지 않는, 대규모자료(big data) 분석체계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이란 대규모자료를 분석하여 의사결정까지 내리는 단계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기업 분야에서 대규모자료 분석을 통하여 성공한 사례나 기초단계의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인공지능체계의 도입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의료계의 현황을 소개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덧붙여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이 골치 덩이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어제 나왔습니다. 특히 의료분야에서는 대량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진단이나 치료방향까지 결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로 기대가 컸던 것인데, 실제로는 의료분야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인공지능이 의료분야에서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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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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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이라는 문구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제가 요즘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추억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의 아일랜드 여행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저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1986년에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아일랜드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 얻은 기억과 정체성 사이의 상호작용, 몸의 움직임과 세상의 풍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통상적인 의미의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을 계기로 구상되고 배열된 연작 에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두 17꼭지의 수필은 모두 아일랜드 여행에서 얻은 작가의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1동굴에서는 작가가 아일랜드 여행에 나서게 된 동기나 여정 등을 요약해놓았는데, 내용을 보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기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이 다루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정체성(기억, 내 한 몸, 내 가족이라는 동심원, 사회, 종족, 인종이라는 동심원, 거처, 국적, 언어, 문학이라는 동심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깔끔한 동심원을 깨뜨렸던, 그리고 지금도 깨뜨리고 있는 파도(외세 침입, 식민화, 해외 이민, 망명, 유람, 관광)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30)’라는 대목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침입의 서는 저자의 아일랜드 여행의 시작을 계기로, 아일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글 속에서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역사서 <침입의 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제임스 맬턴의 <더블린 풍경>,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영문학으로 분류되어 온 아일랜드 문학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성 패트릭교회, 자연사 박물관 등을 비롯하여 더블린의 거리 등에서 아일랜드의 고대, 근대를 살펴 본 저자는 더블린을 출발하여 아일랜드의 남서쪽에 있는 코크로 향합니다. 코크를 출발점으로 하여 아일랜드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걷거나 차로 이동하는 본격적인 여행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녀의 여행길은 인연이 닿은 분들을 찾아가는 경우를 비롯하여, 여행길에 동행한 여행자 혹은 여행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의 도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도 서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전에 준비하거나 혹은 여행을 다녀온 뒤에 조사한 내용을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과 잘 버무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서해안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의 관광명소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들의 삶과 진실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의 시골은 지도처럼 잘 읽히는 풍경이 아니라 수천 년의 사건들이 몇 겹으로 적혀 있는 양피지인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사건의 흔적은 쓸데없이 많은 돌이 새로운 형태로 쌓인 흔적, 또는 다시 허물어진 흔적이었다.(130)’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리하지 못했습니다만, 책을 읽기 전에 역자 후기를 먼저 읽으면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아일랜드를 처음 여행한 것은 26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것은 10년 뒤입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행 뒤에서 찾아 보완할 수 있습니다만, 여행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한폐렴 사태가 일어날 무렵이던 1년반 전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한폐렴으로 해외여행을 쉬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어갈 이야기라고는 `30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돌아본 미국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별로 없지만, 여행하면서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볼까 생각합니다.


<마음의 발걸음>을 읽고 나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걷기의 인문학>을 구했습니다. 어떤 느낌을 얻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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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 지혜로운 부모는 게임에서 아이의 미래를 본다
이장주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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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전산기에 놀이가 깔려있던 옛날에는 여유시간에 전산기에 깔려있는 놀이를 즐기곤 했습니다. 가끔은 놀이에 빠져 업무처리가 늦어지는(?)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기분전환한다고 시작한 놀이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전력(?)이 있는 까닭에 아이들이 전산기나 똑똑 전화로 놀이를 하는 것을 지나치게 규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화사회심리학을 전공하신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으면서 전산기 놀이의 초기세대였던 저를 돌아보고, 제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전산기 놀이를 즐기던 시절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여가시간에 동무들하고 자치기나 구슬치기를 즐겼습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보면 공부는 물론 밥 먹을 때를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전산놀이 역시 여가시간을 즐기는 혹은 긴장을 푸는 놀이로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다보면 전산기 놀이가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먹고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전산 놀이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산놀이가 그저 놀이에 머물지 않고 다른 분야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산놀이에 깊숙하게 빠져들지 못한 부모세대이지만, 아이들만큼은 새로운 경향을 잘 파악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서문에 크게 4부로 된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설명해놓았습니다. 1부는 전산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설명해놓았습니다. 물론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과의 전쟁(?, 대부분의 부모들은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는 패배를 자인할 수도 있겠습니다.


2부는 전산놀이가 이제는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전산놀이를 잘 할 뿐만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상의 대우가 보장이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먹고사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부는 아이들의 전산놀이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전산놀이에 대한 부모세대의 우려가 편견의 소산임을 알게 해주니다. 4부는 전산놀이를 즐기는 아이를 둔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웠던 옛날 방식은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아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세태입니다.


저자는 사회심리학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연구 성과들을 전산놀이와 관련한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금지를 통한 동기화에 주목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산놀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오른 것은 국토가 좁아 누리망을 촘촘하게 깔아놓은 구조적 요인에 더하여 대부분의 부모들이 전산놀이를 통제했던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Try to remember’라는 주제가로 유명한 <판타스틱>이라는 가무극(musical)이 바로 금지를 통한 동기화를 잘 설명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웃하여 살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장성하자 부모들은 두 아이를 맺어주기 위하여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작전을 짜게 됩니다. 작전은 성공하여 두 아이들이 사랑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들의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헤어져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다시 진정한 사랑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산놀이 세대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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