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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이라는 문구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제가 요즘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추억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의 아일랜드 여행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저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1986년에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아일랜드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 얻은 ‘기억과 정체성 사이의 상호작용, 몸의 움직임과 세상의 풍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통상적인 의미의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을 계기로 구상되고 배열된 연작 에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두 17꼭지의 수필은 모두 아일랜드 여행에서 얻은 작가의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1장 ‘동굴’에서는 작가가 아일랜드 여행에 나서게 된 동기나 여정 등을 요약해놓았는데, 내용을 보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기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이 다루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정체성(기억, 내 한 몸, 내 가족이라는 동심원, 사회, 종족, 인종이라는 동심원, 거처, 국적, 언어, 문학이라는 동심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깔끔한 동심원을 깨뜨렸던, 그리고 지금도 깨뜨리고 있는 파도(외세 침입, 식민화, 해외 이민, 망명, 유람, 관광)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30쪽)’라는 대목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장 ‘침입의 서’는 저자의 아일랜드 여행의 시작을 계기로, 아일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글 속에서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역사서 <침입의 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제임스 맬턴의 <더블린 풍경>,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영문학으로 분류되어 온 아일랜드 문학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성 패트릭교회, 자연사 박물관 등을 비롯하여 더블린의 거리 등에서 아일랜드의 고대, 근대를 살펴 본 저자는 더블린을 출발하여 아일랜드의 남서쪽에 있는 코크로 향합니다. 코크를 출발점으로 하여 아일랜드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걷거나 차로 이동하는 본격적인 여행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녀의 여행길은 인연이 닿은 분들을 찾아가는 경우를 비롯하여, 여행길에 동행한 여행자 혹은 여행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의 도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도 서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전에 준비하거나 혹은 여행을 다녀온 뒤에 조사한 내용을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과 잘 버무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서해안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의 관광명소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들의 삶과 진실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의 시골은 지도처럼 잘 읽히는 풍경이 아니라 수천 년의 사건들이 몇 겹으로 적혀 있는 양피지인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사건의 흔적은 쓸데없이 많은 돌이 새로운 형태로 쌓인 흔적, 또는 다시 허물어진 흔적이었다.(130쪽)’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리하지 못했습니다만, 책을 읽기 전에 역자 후기를 먼저 읽으면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아일랜드를 처음 여행한 것은 26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것은 10년 뒤입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행 뒤에서 찾아 보완할 수 있습니다만, 여행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한폐렴 사태가 일어날 무렵이던 1년반 전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한폐렴으로 해외여행을 쉬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어갈 이야기라고는 `30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돌아본 미국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별로 없지만, 여행하면서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볼까 생각합니다.
<마음의 발걸음>을 읽고 나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걷기의 인문학>을 구했습니다. 어떤 느낌을 얻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