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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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선술집이라는 데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러 막걸리 한 대접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장소로 기억합니다. 가수 이연실이 1981년에 목로주점을 발표했을 때는 그런 술집도 있나 싶었습니다. 목로주점이란 술집의 대명사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하여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이라는 목로를 가져다 붙인 것이니 선술집에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흙바람 벽에 30촉 백열등이 흔들리는 허름한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커다란 술잔을 부딪히면서 산에 오르고 사막에 갈 꿈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노래하는 낭만이 담겼습니다.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낭만적인 목로주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말미에 붙은 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입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의 벨빌에 있던 선술집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 통했다고 합니다. <목로주점>에 나오는 콜롱보(비둘기라는 의미) 영감의 선술집이 바로 아쏘무아르의 전형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목로주점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비극성과 모순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역설적인 대비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1870년부터 1893년 사이에 펴낸 스무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입니다. 스물두 살에 남편을 따라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제르베르의 20여년에 걸친 삶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700프랑을 쥐고 파리로 온 남편 랑티에는 정착해서 살아갈 궁리보다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다가 나중에는 가져온 것들을 저당 잡히면서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놀아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함석공 쿠포에 결혼한 제르베르는 세탁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세탁소를 차리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사이에 대장장이 구제와의 순수한 사랑도 위안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예정된 과정을 밟아가는 모양입니다.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서 살아남으면서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고, 랑티에 마저 돌아와 쿠포와 한 통속이 되면서 제르베르의 리즈시설이 끝나게 됩니다. 리즈 역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가진 것을 까먹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예정된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쿠포와 제르베르는 목로주점의 싸구려 독주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쿠포는 먼저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제르베르와 형제들이 장례를 치렀지만, 제르베르의 경우는 곤궁한 은신처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르베르가 랑티에에게 반하여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모른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쿠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 뒤에 열심히 돈을 모아 세탁소를 열고, 세탁소가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올곧은 그녀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정점에서 절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더구나 랑티에를 받아들여 한 집에서 살게 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전남편을 집에 들일 수 있을까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말로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제르베르의 경우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의 증세를 보였습니다만 쿠포의 경우는 더욱 심한 지경으로 난폭함, 기억력 감퇴, 환각 등 치매의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술도 절제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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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논고 / 철학탐구 / 반철학적 단장 동서문화사 월드북 92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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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느 책을 읽다가 찜해두었던 것 같은데, 오래된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읽어본 적지 않은 책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읽기였습니다. 심지어는 말미에 붙은 해설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은 아마도, 여기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스스로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31)”라는 구절로 머리말을 열었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이 쓴 이 책에 대한 해설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11)”라고 적혀있습니다. 설마 했던 것이지만, 저는 이 책에 담긴 주제를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모두에 적은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사항들의 총체이다.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세계는 사실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실 전부라는 점을 통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사실의 총체는 무엇이 성립되어 있는지를 규정하고, 또 무엇이 성립되지 않았는지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논리공간 안에 있는 사실이 곧 세계이다. 세계는 사실로 분해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성립되거나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다.(33)”라는 구절이 저자가 논리철학논고에서 입증하려는 바였나 봅니다.


책읽기를 시작하자 이내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진 이유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전개되다가 기호와 함수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 함수가 아닌 정의가 분명치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논리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명제가 논리학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그 상징의 논리학적 특성을 계산함으로써 알 수 있다.(103)”면서 말입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논리철학논고을 마무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114)”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을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읽어가다 보면 전후 맥락의 연결이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철학이나 논리학에 대한 저의 앎이 태부족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철학탐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탐구에서는 제가 오래전에 수필에서 적었던 견월망지에 관하여 생각할 때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35항의 물론 모양을 가리키기 위한 특정적인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145)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누리방에서 찾은 능엄경과 능가경에 나오는 견월망지에 대한 자료를 비롯하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달을 볼 수 있다.”는 잠언도 기억할만합니다.


세 번째 반철학적 단장(反哲學的 斷章)은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유고 가운데 철학적 문장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야 좋은가를 잘 모르는 것은 아직 명석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철학 관계의 문장에서, 쓰고 말한 문장에서, 이른바 갖가지 서책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여기에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어려움을 만난다. 그리되면 이러한 어려움에서 비로서 시작해야 할는지 모른다.(466)”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 책의 말미에 붙인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은 누구의 글인지 밝히지 않아서 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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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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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하면 어떤 상황이 떠오르십니까? 난폭하거나 배회하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대변을 누어 여기저기 바르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최악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망령들었다고만 알던 치매에 대한 오랜 편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일부에서 보이거나 말기에 이르러 나타납니다.


치매환자가 초기에 보이는 증상들은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치매환자인줄 모르고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치매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정이 복잡해집니다. 딱히 위로하거나 도움이 될 말씀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치매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책을 쓴 린 캐스틸 하퍼는 뉴저지에 있는 가든스라는 은퇴자주거복합단지(CCRC,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에서 7년동안 사목활동을 한 목사입니다. 가든스 등에서 치매환자들을 돌본 경험과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치매에 대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질병에 대한 비판을 인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손택은 암에 대한 평판이 암환자들의 고통을 더 키운다라고 하였는데, 저자는 암에 대한 이런 은유적인 개념은 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겼으며, 많은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아예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았다.(21)’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에이즈에 대하여는 단순한 질병 수준을 넘어서서 몹시 심각한 중병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단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질병으로 여겼다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손택을 인용한 것은 이 시대에는 알츠하이머병이 그런 의지를 가지고 맞서 싸울 질병이 아니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만약 손택이 살아있었더라면 분명 알츠하이머병과 그 은유를 써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영미권에서 나온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잭 케보키언박사가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자살기계를 건네주어 안락사를 유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인데, 과연 환자의 심신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서 자살기계를 건네주었는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케보키언의 첫 번째 의뢰인은 54세된 재닛 애드킨스였습니다. 영어교사였던 애드킨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는데 병증이 심해지기 전에 죽음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초기단계였음에도 말입니다. 치매치료제가 나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치매환자를 돌보는 방법 등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당시까지 알던 치매환자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공포가 죽음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치매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돌보는 방식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의 입장에서 돌봄 방식을 결정하자는 인식이 대두되었습니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톰 킷우드는 <치매를 재고하다: 사람이 먼저다>를 통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박사의 첫 번째 환자 아우구스테 데테르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읽는 자료였습니다. 그밖에도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발견한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가운데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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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단노 도모후미.오쿠노 슈지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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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가 쓴 투병기를 열심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말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큰 불편 없이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 의심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거나, 치매진단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병을 공개하기를 꺼리는 것은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입니다. 치매에 걸리면 폭력적이 되거나, 변을 뭉개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모습이 사라지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문화평론가 수전손택은 <은유로서의 질>에서 어원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이나 치매와 같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동안 치료법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암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입니다. 하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매를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해답은 환자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를 진단받은 환자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잘 설계할 수 있으려면 환자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를 읽으면서 이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미야기현에 있는 넷츠도요타 센다이 지점의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활동하던 단노 도모후미씨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은 것은 불과 39살 때였습니다. 진단을 받기 5년전부터 시작된 기억력의 감퇴가 문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망록을 활용하여 건망증에 대응하여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비망록에 적어두었다는 사실을 잊거나 고객의 이름은 물론 얼굴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심한 건망증으로 병원을 찾아간 단노씨는 2주일간 입원하여 매일 3-4가지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노씨는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뇌의 위축이 심하여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되지만 39살이라는 젊은 나이 때문에 결국 대학병원에 다시 2주일간 입원하여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치매를 확진하기 위하여 1달이나 걸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단노씨가 치매진단을 받은 뒤에 아내와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들이 보인 반응도 놀라웠습니다. 물론 단노씨나 아내도 처음에는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이를 극복하고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단노씨 가족들은 모두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회사의 대표였습니다. 단노씨와 아내가 본사에 가서 대표와 임원 그리고 인사부장에게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표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테니까 돌아오세요. 아직 몸은 움직일 수 있죠? 본사의 총무인사 그룹으로 돌아와요. 책상을 옮기는 것부터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60)” 일본의 기업들은 평생직장이라는 전통을 내세워 회사에 충성하도록 했다지만, 최근에는 평생직장의 전통도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단노씨처럼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진행이 빠른 편입니다. 하지만 단노씨의 경우는 진단받은 뒤로도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판매사원이 아니라 판매사원을 지원하는 역할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매로 진단되었음에도 일상적인 삶은 물론 대중강연 등도 하면서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는 불치의 병이고 인간의 존엄마저도 무너지는 끔찍한 병이라는 인식이 굳어져있습니다. 치매 초기의 환자가 일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체계가 어서 갖추어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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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치매 진단을 받고 잘살아가고 있는 저자이군요. 주변에 치매 부모 님과 함께 힘든 여정을 가는 분들을 봐서 안타까운 마음에 이 책 같은 내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처음처럼 2021-12-10 06:38   좋아요 0 | URL
치매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지났죠.
초기 치매는 보통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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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라는 부제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사실은 저도 평생 마셔온 술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표지에 적힌 비교적 긴 소개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콕 찔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술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과 에피소드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 같던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거나 변경했던가. 숙취로 하루를 시작한 날은 얼마나 잦았던가. 부모님, 형제자매 혹은 친구의 생일을 잊은 날은 얼마나 많았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욕하고, 은행에서 자주 돈을 빌렸으며, 도움을 받아야 했던가. 아침에 생판 낯선 이와 함께 깨어나는 일은 몇 번이었던가!”


그렇습니다. 이 책은 술을 너무 사랑했던 분이 술로 인하여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또 사랑하는 술과 작별해야만 하는 이유를 적시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솔직하게 적고 있어서, 제가 술에 관한 책을 쓴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감추는 것 하나 없이 홀랑 드러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만큼 술을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 역시 알코올 중독까지는 몰라도 알코올 의존증의 단계에 이를 정도로 술을 탐닉했던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각한 사건이나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처럼 단호하게 술을 끊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그럭저럭 술을 마시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술은 너무나 지독해서 순간 금주를 결정했다고 바로 금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겹도록 긴 내면의 반감들이 모이고 쌓여 금주를 하게 만들면 모를까(18)”라고 했습니다.


앞서 제가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고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적이 있다고 적었습니다만, 저자는 이마저도 콕 짚어서 눈치를 주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알코올의존증이 갖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의존증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중독증을 구별하려 애쓴다.(56)”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술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술에 얽힌 환상적인 일화를 낭만적으로 포장해 내 개인적인 알코올 문제를 웃기는 영웅담으로 미화시켜 왔다.’라고 했습니다.


술에 만취하여 큰 사고를 친 뒤에는 술을 줄여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통제가 되는 듯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다시 사고를 친 적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 대하여도 술을 줄이는 식으로 알코올 문제를 해결하려던 사람 중에 10년이 지나서까지 성공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실패한 걸로 밝혀졌다.(84)”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셔본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였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객지에서 살고 있을 때였으니 비교적 자유로웠던 탓에 술을 조심스럽게 마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마셔본 가락으로 술이 센 편이라는 착각 속에서 술을 거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술을 청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숙취 때문에 고통스러워야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면 술자리를 빌면 수월하다는 또 다른 착각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어울리다보니 점차 술도 늘고 사건 사고도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숙취 속에서 깨어났을 때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는 순간들이 이어졌지만, 해가 설핏 저물면 또 누군가 함께 마실 사람을 찾곤 했던 것입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만, 이는 술에 속아서 삶을 낭비한 술꾼의 고백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저자처럼 홀랑 까뒤집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술에 관한 저의 실패를 고백하는 글을 써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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