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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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선술집이라는 데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러 막걸리 한 대접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장소로 기억합니다. 가수 이연실이 1981년에 목로주점을 발표했을 때는 그런 술집도 있나 싶었습니다. 목로주점이란 술집의 대명사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하여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이라는 목로를 가져다 붙인 것이니 선술집에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흙바람 벽에 30촉 백열등이 흔들리는 허름한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커다란 술잔을 부딪히면서 산에 오르고 사막에 갈 꿈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노래하는 낭만이 담겼습니다.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낭만적인 목로주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말미에 붙은 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입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의 벨빌에 있던 선술집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 통했다고 합니다. <목로주점>에 나오는 콜롱보(비둘기라는 의미) 영감의 선술집이 바로 아쏘무아르의 전형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목로주점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비극성과 모순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역설적인 대비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1870년부터 1893년 사이에 펴낸 스무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입니다. 스물두 살에 남편을 따라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제르베르의 20여년에 걸친 삶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700프랑을 쥐고 파리로 온 남편 랑티에는 정착해서 살아갈 궁리보다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다가 나중에는 가져온 것들을 저당 잡히면서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놀아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함석공 쿠포에 결혼한 제르베르는 세탁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세탁소를 차리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사이에 대장장이 구제와의 순수한 사랑도 위안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예정된 과정을 밟아가는 모양입니다.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서 살아남으면서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고, 랑티에 마저 돌아와 쿠포와 한 통속이 되면서 제르베르의 리즈시설이 끝나게 됩니다. 리즈 역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가진 것을 까먹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예정된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쿠포와 제르베르는 목로주점의 싸구려 독주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쿠포는 먼저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제르베르와 형제들이 장례를 치렀지만, 제르베르의 경우는 곤궁한 은신처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르베르가 랑티에에게 반하여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모른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쿠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 뒤에 열심히 돈을 모아 세탁소를 열고, 세탁소가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올곧은 그녀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정점에서 절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더구나 랑티에를 받아들여 한 집에서 살게 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전남편을 집에 들일 수 있을까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말로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제르베르의 경우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의 증세를 보였습니다만 쿠포의 경우는 더욱 심한 지경으로 난폭함, 기억력 감퇴, 환각 등 치매의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술도 절제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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