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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평점 :
‘치매’하면 어떤 상황이 떠오르십니까? 난폭하거나 배회하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대변을 누어 여기저기 바르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최악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망령들었다고만 알던 치매에 대한 오랜 편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일부에서 보이거나 말기에 이르러 나타납니다.
치매환자가 초기에 보이는 증상들은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치매환자인줄 모르고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치매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정이 복잡해집니다. 딱히 위로하거나 도움이 될 말씀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치매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책을 쓴 린 캐스틸 하퍼는 뉴저지에 있는 ‘가든스’라는 은퇴자주거복합단지(CCRC,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에서 7년동안 사목활동을 한 목사입니다. 가든스 등에서 치매환자들을 돌본 경험과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치매에 대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과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질병에 대한 비판을 인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손택은 ‘암에 대한 평판이 암환자들의 고통을 더 키운다’라고 하였는데, 저자는 ‘암에 대한 이런 은유적인 개념은 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겼으며, 많은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아예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았다.(21쪽)’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에이즈에 대하여는 ‘단순한 질병 수준을 넘어서서 몹시 심각한 중병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단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질병으로 여겼다’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손택을 인용한 것은 이 시대에는 알츠하이머병이 그런 의지를 가지고 맞서 싸울 질병이 아니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만약 손택이 살아있었더라면 분명 ‘알츠하이머병과 그 은유’를 써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영미권에서 나온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잭 케보키언박사가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자살기계를 건네주어 안락사를 유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인데, 과연 환자의 심신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서 자살기계를 건네주었는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케보키언의 첫 번째 의뢰인은 54세된 재닛 애드킨스였습니다. 영어교사였던 애드킨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는데 병증이 심해지기 전에 죽음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초기단계였음에도 말입니다. 치매치료제가 나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치매환자를 돌보는 방법 등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당시까지 알던 치매환자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공포가 죽음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치매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돌보는 방식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의 입장에서 돌봄 방식을 결정하자는 인식이 대두되었습니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톰 킷우드는 <치매를 재고하다: 사람이 먼저다>를 통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박사의 첫 번째 환자 아우구스테 데테르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읽는 자료였습니다. 그밖에도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발견한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가운데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