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 몽테뉴 수상록 선집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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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이자 프루스트 전문가인 앙투앙 콩파뉴의 <인생의 맛>을 읽고서 미셀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습니다. <인생의 맛><수상록>에서 고른 40개의 주제에 대한 역사성과 현대에서도 통하는 바를 재해석한 내용입니다. <수상록>의 곳곳에서 의사에 대한 불신을 읽을 수 있다는 콩파뉴의 귀띔으로 <수상록>을 읽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을 요량을 하였던 것이 완독하는데 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수상록>에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당시 유럽을 휩쓴 페스트와 전쟁으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임의로 연습해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평범한 백성들의 무심함이야말로 참된 지혜를 이루며 기꺼이 독배를 받아든 소크라테스의 무심함만큼이나 고귀하다고 깨달았던 것 같다라고 적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상록><인생의 맛>과 같은 수많은 2차 저작물을 낳았다고 합니다. 불어불문학을 전공하신 고봉만교수의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도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상록>에서 나이 듦죽음에 관한 글을 뽑아 엮은 책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2차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아하게 늙어가기품위 있는 죽음이 저의 관심사이니만큼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을 읽고서 뭔가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이 들어왔습니다. 고봉만교수님은 불문학을 전공하신 만큼 <수상록>의 원본에서 가려 뽑은 대목을 직접 번역하셨지만, 불어를 배우지 않은 저는 이미 번역된 <수상록>에서 가려 뽑을 글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몽테뉴의 사유의 깊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여지는 있지 싶습니다. 특히 몽테뉴가 소장한 자료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 혹은 로마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금언을 인용하고 있는 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는 1나이 드는 것은 죄도 벼슬도 아니다에서 나이 듦과 관련된 7가지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그리고 2죽음의 철학에서 삶의 철학으로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2가지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뽑았습니다. 3부에서는 <수상록>26장에 실려 있는 훈련에 대하여32장에 실려 있는 후회에 대하여를 담았습니다. 이어지는 해설-몽테뉴, 죽음에서 삶으로에서는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다룬 노화와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몽테뉴는 자연이 우리에게 죽음을 학습할 수단을 마련해주다고 말한다. 그것은 노화다. 청춘에서 노년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이러지는 과정이 단절 없이 계속 진행되는 노화를 통해 우리는 서서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287)”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으니, 어디서든 죽음을 기다리자. () 죽는 법을 알면 모든 예속과 속박에서 벗어난다(119)”라는 <수상록>의 대목을 인용합니다.


읽어가다 보면 이런 글이 나이 듦과 관련이 있을까 싶은 대목이 없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이 어찌 보면 나이 듦이라고 한다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수상록>에 적힌 모든 대목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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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의 여행
카차 뷜만 지음, 강혜경 옮김 / 현문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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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사태로 2년여 여행을 멈추고 있습니다. 일상을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여행도 자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여행에 관한 책읽기도 뜸해지고는 있습니다만, 가끔은 눈길을 붙드는 책이 있으면 읽기도 합니다. <내 생애 단 한 번의 여행>도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뒷표지에 적혀있는 삶과 사랑,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난 15인의 여행자, 그들이 발견한 여행의 기적’”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차 뷜만입니다. 자신의 여행이야기가 아니라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있었던 15명의 여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막막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50여일을 집에 처박혀 빈둥거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니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애 단 한 번의 여행>의 뒤표지에 적혀있는 다음 구절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수레바퀴를 벗어난 순간 진정 가슴 뛰는 삶을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삶에 필요한 용기를 얻었고, 더 너그러워졌으며 자기 본연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비로소 여행자가 여행의 기적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고 변화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심리변화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는 여유를 찾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단 한 번의 삶, 단 한 번의 여행이라는 모두 글에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 책에서 만날 여성들은 여행을 좋아하며 여행 중 사람들 말고도 특히 사물 그 자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발견했고 여행을 자신과 세계의 관계 정립을 위해 이용했다.(7)”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여행을 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 한 번의 여행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삶이 막막할 때 숨통을 트여주었던 특별한 여행에 관한 기억이라고 하는 편이 옳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디트라고 하는 방송인의 사례를 읽으면서는 위험한 여행은 피해야겠다는 교훈을 새겼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목숨을 내놓은 도전에 나서야 했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루트와 베르너 부부의 삶도 참고할만한 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세상을 두로 주유했던가 봅니다.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떠났는데,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간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삶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업무로 여행을 다니던 일을 접고 나서부터는 갔던 장소를 다시 간 적은 아직 없습니다. 시간은 없고 가야할 곳은 많아서입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해보니 이 책에 실린 15명의 여성들에게 있어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단 한 번의 여행은 대체로 반려자를 만난 여행을 꼽는 것 같았습니다. 반려자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도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만, 코리나와 에릭의 경우는 특별했습니다. 자가 대처 조치를 준비한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싸워 헤어지게 될 경우 정확하게 일주일 후에 다시 처음 장소로 되돌아오기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자기를 돌아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번역에 관한 일입니다만, 우리가 흔히는 영어로 알고 있는 지명을 독일어로 적어놓아서 헷갈리는 경우가 더러 보였습니다. 차라리 현지어로 적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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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홍신 세계문학 16
펄 벅 지음, 이강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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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 <대지>를 읽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를 무대로 해도 전혀 낯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사는 왕 룽이라는 청년은 성안의 황 부자집 종 오란과 결혼하는 날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옛날부터 사람을 잘 들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왕 룽과 오란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황부자네 논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주어 풍년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풍족한 삶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처럼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지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사태에 이르면서 왕 룽은 남쪽에 있는 도시로 떠나기로 합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무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만, 안후이(安徽) 성의 동쪽에 있는 장쑤(江蘇) 성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400리 길을 남쪽으로 갔다고 하니 안후이성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장쑤성에 있는 난징이나 쑤저우 혹은 상하이까지 내려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남쪽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비럭질도 하고 인력거도 끌어 자선가가 베푸는 급식소에서 끼니를 이어가던 중에 일어난 난리 통에 사람들에 휩쓸려 들어간 부잣집에서 은과 패물을 얻는 횡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왕 룽 일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몰락한 황부집의 논을 사들여 지주가 되었습니다. 왕 룽이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은 오란을 부인으로 맞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란은 세상의 온갖 쓴맛을 보면서 성장한 탓에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었지 싶습니다.


졸부가 되면 흥청망청하다가 다시 몰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왕 룽 역시 찻집의 기녀 렌화를 들여 첩을 삼기도 합니다. 농한기가 문제인 것이지요. 하지만 왕 룽은 여느 졸부와는 달리 언제까지 첩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땅에 대한 왕 룽의 생각은 어쩌면 우리네 농부와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두 아들이 아버지의 땅을 팔아 나누자는 의논을 하는 대목에서, “땅을 팔기 시작하면 집안은 마지막이야.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도 있지요. 누구나 제가 할 몫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거리입니다. 큰 아들은 문약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잇속을 챙기는데 선수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아버지가 일군 땅을 이어받아 농사짓기를 거부하고 군인이 됩니다. 어쩌면 둘째 하나만 왕 룽이 생각한대로 커갔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자녀들이 반목하는 대목, 특히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노골적인 반목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오란이 없어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왕 룽은 농사짓는 일 이외에는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듯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도 혼자 생각에 따라 결정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메뚜기 떼가 날아들면 땅 위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만, 메뚜기 떼의 침입에 맞서는 마을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대목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후이 성은 양쯔(揚子)강의 하류에 있어 홍수 피해를 입는 대목이 이해되지만 가뭄에도 속수무책이라는 대목은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다. 왕 룽이 사는 곳에도 마적이 출몰한다는 대목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북쪽 지방에서나 세를 떨쳤다고 생각한 마적이 중국 땅 어디에서도 활개를 쳤던 모양입니다.


오란이 중병에 들었을 때 부른 노의사가 맥을 짚고 진단을 내리는 대목입니다. “비장이 부었고, 간장도 나쁘오, 복부에 사람 머리만한 돌이 있소. 위장도 헐었소. 심장은 겨우 움직이는데 어쩌면 회충이 있는지도 모르겠소.” 요즈음 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자가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완쾌를 보증하는데 은전 천 닢을 요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완쾌를 보증한 환자가 죽으면 의사가 처벌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가 봅니다.


땅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그 옛날의 풍경을 되새겨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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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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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 거리로 삼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려면 아무래도 줄거리 혹은 작가가 깔아둔 장치에 대하여 언급할 수밖에 없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는 다른 분의 독후감을 피하는 편입니다.


사실 이 책은 기억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책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제목은 <판도라의 상자(LA BOITE DE PANDORE)>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더 이야기와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르네 톨레다노선생은 과학을 가르키는 동료여교사 엘로디와 함께 유람선 판도라의 상자에서 열린 최면서 오팔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오팔의 최면술의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됩니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13)” (출판사에서는 최면술사의 상투적인 꼬임말에서 이 책의 제목을 가져온 것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전생을 만나는 최면이기 때문에 잊힌 기억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도 재방송이 나오면 열심히 보는 연속극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사자를 저승에 보낼 때 차를 내놓습니다. 이승의 기억을 모두 지워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팔은 르네에게 최면을 걸어 기억의 심연에 잠겨있다는 전생들을 만나도록 해줍니다. 르네는 112번째 생을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만난 전생의 비참한 최후에 놀라 공연장을 뛰쳐나온 르네는 살인을 저지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오팔을 다시 찾아가 자신의 전생을 뒤져보기로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르네는 첫 번째 전생, 12천 년 전에 아틀란티스에서 살았던 게브를 만나게 됩니다. 대서양에 있는 아틀란티스 섬에 살고 있는 게브는 인간보다 열일곱 배나 큰 거인이었습니다. 전해지기는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에 있던 대륙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섬으로 이야기됩니다. 물론 화산의 폭발로 섬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것은 전해지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사라진 전설의 아틀란티스 문명이 실재했다고 생각한 르네는 전멸 위기에 있는 아틀란티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그들이 실재했다는 증거를 남기도록 하고, 그것을 발견해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르네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됐고, 르네의 망상을 걱정한 엘로디는 르네를 정신병원이 입원시켜 살인사건의 용의점을 해명하려는 기획을 했지만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전기충격치료를 받게 됩니다. 치료결과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르네는 전생의 도움을 얻어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오팔을 만나 함께 이집트로 도망칩니다. 아틀란티스의 게브를 이집트로 이주시켜 그곳에서 만나려는 의도입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르네는 게브가 남긴 아틀란티스의 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증거물을 세상에 알려 고고학계의 공인을 받는 과정은 수월치 않았습니다. 결국 엘로디의 도움을 청하게 되고, 엘로디는 대학시절 친구인 고티에와 함께 르네가 발견한 아틀란티스의 유물을 생방송으로 세상에 알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생방송 중계진이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어지럽게 찍한 발자국 말고는 파피루스 기록도 아틀란티스 거인의 유해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집트 경찰이 몰려와 일행은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은 현장이 누군가에 의하여 파손되었다면 게브와 다시 연결하여 유물을 남기는 장소를 변경하는 등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도 설명되지 않았구요.


작가는 세상에 알려진 전설과 신화를 꿰어 맞췄지만 조금은 거친 느낌이 남았습니다. 최면을 통하여 전생을 만나고, 그들의 능력을 빌어서 현생에서 써먹는 것도 너무 소설적이라서 쫌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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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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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해온 일본의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씨의 다양한 글 가운데 여행에 얽힌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다양한 생각을 기록한 글들이기에 사색 기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국 북경에 가서 뭔가를 도모한 아버지 덕분에 한 살 때부터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떠났다니 작가도 대단한 역마살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어느 정도 큰 나라의 대부분은 가보았다고 하는데, 여행한 거리가 지구를  바퀴 돌 정도라고 하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배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었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취재여행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서론에서는 자신의 여행에 얽힌 사연들을 개괄하였습니다. 특히 40년생인 작가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일본 역시 허가를 받아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반핵운동을 기획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반핵운동가들과 연대를 꾀하는 진취적인 면모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대양주를 제외한 5개 대륙을 여행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1부 무인도의 사색, 2부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여행, 3부 기독교 예술 여행, 4부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 5부 팔레스타인 보고, 6부 뉴욕연구 등으로 구분된 모두 14꼭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히 2부에서는 포도주와 치즈의 본고장 유럽을 여행하면서 포도주와 치즈에 관한 고급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글입니다.

 

3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글인데 그리스의 아토스반도와 남아메리카의 이구아수폭포를 찾았을 때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짧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4부는 대학에 다닐 적에 유럽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핵의 위험을 알린 것은 일본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맞아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피폭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 해서 유럽사람들에게 반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작가 개인의 삶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되는 여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는 생각보다 뉴욕이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987년의 뉴육에서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별도의 장으로 구성했는데,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잘 기록하였습니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확인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이고,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가 개발되기 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충분히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고서 크게 느낀 점은 첫째 편견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여행했으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취재하여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한 주제에 관한 자료를 심도 깊게 조사하여 글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글로 남기기 않은 여행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여행이나 마음잡고 쓰려고 들면 글로 쏟아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애초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다녀온 여행은 모두 글로 정리한다는 저의 기본 원칙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62쪽)”라는 대목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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