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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ㅣ 홍신 세계문학 16
펄 벅 지음, 이강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4년 7월
평점 :
펄 벅의 <대지>를 읽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를 무대로 해도 전혀 낯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사는 왕 룽이라는 청년은 성안의 황 부자집 종 오란과 결혼하는 날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옛날부터 사람을 잘 들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왕 룽과 오란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황부자네 논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주어 풍년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풍족한 삶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처럼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지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사태에 이르면서 왕 룽은 남쪽에 있는 도시로 떠나기로 합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무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만, 안후이(安徽) 성의 동쪽에 있는 장쑤(江蘇) 성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400리 길을 남쪽으로 갔다고 하니 안후이성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장쑤성에 있는 난징이나 쑤저우 혹은 상하이까지 내려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남쪽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비럭질도 하고 인력거도 끌어 자선가가 베푸는 급식소에서 끼니를 이어가던 중에 일어난 난리 통에 사람들에 휩쓸려 들어간 부잣집에서 은과 패물을 얻는 횡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왕 룽 일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몰락한 황부집의 논을 사들여 지주가 되었습니다. 왕 룽이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은 오란을 부인으로 맞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란은 세상의 온갖 쓴맛을 보면서 성장한 탓에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었지 싶습니다.
졸부가 되면 흥청망청하다가 다시 몰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왕 룽 역시 찻집의 기녀 렌화를 들여 첩을 삼기도 합니다. 농한기가 문제인 것이지요. 하지만 왕 룽은 여느 졸부와는 달리 언제까지 첩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땅에 대한 왕 룽의 생각은 어쩌면 우리네 농부와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두 아들이 아버지의 땅을 팔아 나누자는 의논을 하는 대목에서, “땅을 팔기 시작하면 집안은 마지막이야.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도 있지요. 누구나 제가 할 몫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거리입니다. 큰 아들은 문약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잇속을 챙기는데 선수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아버지가 일군 땅을 이어받아 농사짓기를 거부하고 군인이 됩니다. 어쩌면 둘째 하나만 왕 룽이 생각한대로 커갔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자녀들이 반목하는 대목, 특히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노골적인 반목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오란이 없어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왕 룽은 농사짓는 일 이외에는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듯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도 혼자 생각에 따라 결정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메뚜기 떼가 날아들면 땅 위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만, 메뚜기 떼의 침입에 맞서는 마을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대목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후이 성은 양쯔(揚子)강의 하류에 있어 홍수 피해를 입는 대목이 이해되지만 가뭄에도 속수무책이라는 대목은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다. 왕 룽이 사는 곳에도 마적이 출몰한다는 대목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북쪽 지방에서나 세를 떨쳤다고 생각한 마적이 중국 땅 어디에서도 활개를 쳤던 모양입니다.
오란이 중병에 들었을 때 부른 노의사가 맥을 짚고 진단을 내리는 대목입니다. “비장이 부었고, 간장도 나쁘오, 복부에 사람 머리만한 돌이 있소. 위장도 헐었소. 심장은 겨우 움직이는데 어쩌면 회충이 있는지도 모르겠소.” 요즈음 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자가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완쾌를 보증하는데 은전 천 닢을 요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완쾌를 보증한 환자가 죽으면 의사가 처벌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가 봅니다.
땅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그 옛날의 풍경을 되새겨보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