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항아리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고성미 옮김 / 창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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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항아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실낙원>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의 단편집으로 2001년에 일본에서 발표되었습니다. <눈물 항아리>에는 표제작 눈물 항아리를 비롯하여 6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후유증을 제외하고는 남녀상열지사가 주제입니다.


작가가 정형외과를 전공하고 교수로 근무하다가 작가로 등단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탓인지 후유증에서는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은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루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꽉 잡은 손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형외과의사가 여성의 손을 이식한 남성의 사례를 다루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작가의 본업에서 가져온 주제를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만든 것을 보면 역시 의사와 작가를 겸직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눈물 항아리는 고인의 유골을 담은 항아리를 만든다는 독특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서 남편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죽으면 화장을 해서 유골로 항아리를 만들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소뼈를 가루 내어 만드는 본차이나에서 영감을 얻었나 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소망한 것처럼 도기를 굽는 이 한테 특별한 부탁을 해서 항아리를 만들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40cn높이의 항아리는 형태도 매끈하고 날렵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크림색에 가까운 투명한 흰색우로 우아한 자태가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집안에 만든 제단에 두고 생전의 아내를 보듯 항아리를 애지중지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혼자된 남편이 짝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사귀게 된 여성이 집에 오는 날에는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곤 해서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도자기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귀신이 되어 찾아와 못살게 굴겠다던 아내의 혼령이 무언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괴기스런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특히 괴담을 잘 지어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아내의 친정에서도 권하게 되어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새로 맞은 아내 역시 항아리가 불편하다는 불만을 제기하면서 항아리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새로 맞은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남편은 다른 여자 찾기를 포기하고 항아리와 함께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단편소설을 길지 않은 내용에 기승전결을 함축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에 읽을 때도 집중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분명 <믿거나 말거나>, 혹은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방송에 한 꼭지로 등장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작품 후유증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일본 의료계의 경향이 언급되어 있어 주목했습니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되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동물을 이용한 전임상시험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수행하여 안전하고도 유효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새로 개발된 기술이 일정한 수위로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의료기술을 수용하는데 서로 다른 입장이 대립하게 됩니다. 작은 희생이 있더라도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기존의 기술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대처하는 의사들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의사들은 대체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일본의 의사들은 후자가 많은데 그것은 일본 사회에 만연된 무사안일주의와 독창성보다는 모방을 주로 하는 민족의 오랜 습성과도 관련이 있다.(182)”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어떤 쪽이 많은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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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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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와의 무역역조를 해소하기 위하여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공급하면서 야기된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청나라 정부는 아편 수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아편전쟁(1840, 1856)이 일어났고, 이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등 치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은 공공연하게 중국에 아편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아편전쟁 이후의 상하이에서 살던 영국인 일가의 이야기를 뒤쫓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상하이에 있는 영국 기업에서 일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살이 되던 해 부모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면서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 영국의 부유한 친척에게 맡겨졌습니다.


이야기는 크리스토퍼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한 탐정이 되어 사교계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 되면서 시작됩니다. 크리스토퍼는 실종된 부모를 찾아 어렸을 적에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전후 사정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마주쳤다고 생각한 세라 헤밍스는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그를 연결고리로 하여 신분상승을 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꿈은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데 기여한 세실 경과의 결혼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면서 세실 경은 전쟁을 막기 위한 막후작업을 위하여 상하이로 향합니다. 세라 헤밍스가 상하이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크리스토퍼 역시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을 실행하기 위하여 상하이로 향합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상하이에서 지낼 때의 기억과 세라와의 인연, 그리고 크리스토퍼가 고아소녀 제니퍼를 후원하다가 입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후반은 상하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가 실종된 부모님의 행적을 찾아가는 작업이 전개됩니다. 크리스토퍼가 상하이를 다시 찾은 19379월은 7월 중일전쟁이 개전하고 두어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전쟁을 막기 위하여 노력했던 세실 경도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면서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상하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는 공식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의 이중첩자인 노란 뱀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한 영국대사관은 송환행사를 벌이겠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세라는 크리스토퍼에서 마카오로 가서 함께 살자는 제의를 받은 듯합니다. 세라와 함께 마카오로 출발하기 직전에 부모님이 억류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크리스토퍼는 부모를 구하기 위하여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상하이의 외국인 구역을 벗어난 장소로 중국군과 일본군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였습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전선을 넘나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중국군 장교의 안내로 목적지로 향하던 크리스토퍼는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넘어가면서는 혼자 찾아가야 했고, 그 와중에 어렸을 적 이웃집에 살던 일본인 친구 아키라를 만나기도 합니다. 결국은 부모님이 잡혀있다는 집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부모님은 없었습니다. 일본군에 붙잡힌 크리스토퍼는 영국대사관에 인도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대사관 직원인 그레이슨 씨는 크리스토퍼에게 노란 뱀을 만나게 해줍니다. 노란 뱀은 놀랍게도 어릴 적 크리스토퍼의 집에서 함께 살던 필립 씨였습니다.


화목하게 지냈다는 크리스토퍼의 기억은 정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중국에 아편을 공급하는 회사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중국에 아편을 공급하는 영국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측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관계는 간단하지만은 않았고, 아버지가 먼저 집을 떠난 뒤에 사태를 수습하려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크리스토퍼가 영국으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어머니는 크리스토퍼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세상사는 진실을 모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본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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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대런 심킨.대니얼 심킨 지음, 공경희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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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다보니 누군가 내 시간을 훔쳐가는 것은 아닌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 방법은 없을까 하는 허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시간을 훔쳐가는 도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대런과 대니얼 심킨의 <여행자>를 고른 것은 여행에 관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형제라고 합니다. “Life is a journey”라는 부제에 관심을 두었더라면 기대가 더 커졌을 것 같습니다.


흔히 삶은 긴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가방을 꾸리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삶이라고 하는 긴 여행을 떠날 때는 가방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요? 제 경우는 여행가방을 챙길 때 책을 빠트리지 않습니다만, 살아가면서도 책을 가까이 하는 편입니다.


대런 심킨은 보스턴에서 식사를 하던 대런 심킨은 “우리가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여기까지예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관했다가 좀 더 소중한 데 쓸 수 있을까? 그래서 여행 가방에 시간을 담아 보관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워싱턴에 살고 있던 형을 불러 그림을 그려 넣어 <여행자>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찰리라는 소년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친구도 많고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찰리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했고, 친구들은 짓궂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을 가방에 담아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쏟을 만한 완벽한 것을 찾을 때까지 말입니다. 아름다운 숲과 바람 부는 사막, 반짝이는 바다 등을 지나쳤습니다.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직업과 많은 책, 영화와 악기, 운동을 지나쳤고 다양한 외국어와 세상 진기한 일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거야!’싶은 완벽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돌아다니다보니 늙고 지치게 되었고, 외로워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화할 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집에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을 돌아가셨고, 예쁜 여자 친구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찰리는 이제 가방에 담았던 시간들을 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들을 집에서 친구들과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여자 친구와 함께..... 하지만 찰리가 가방을 열었을 때는 그저 부스러기 시간만 떨어질 뿐이었습니다.


다만 찰리가 여행할 때 무거웠던 가방이 점점 가벼워지더라는 이야기가 빠진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찰리의 시간이 든 가방은 늘 무거웠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시간은 결코 가방에 담아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의 삶에 충실한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완벽한 삶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비교적 짧은 동화인 탓에 우리말 번역을 앞에 그리고 영어 원문은 뒤에 두었습니다. 원문과 우리말을 좌우에 나누어 놓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삽입되어 있는 그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가 봅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을 옮겨봅니다. “찰리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Once there was a boy named Charlie. His mom and dad loved him very much)” 원문에서는 부모를 의미하는 parents가 아니라 mom and dad로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적당한 우리말을 찾기 어려웠던 가 봅니다. “그런데 찰리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삶이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But Charlie wasn’t quite happy, because his life didn’t seem perfect.)”라는 대목이나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대화할 이가 필요했지요(More than anything in the world, he needed someone to talk to.)”라는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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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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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인간 생명의 값은 얼마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요? 대체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에 붙이는 가격은 실생활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가격표>는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는 생명가격표의 불편한 진실을 설명합니다.


생명가격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경제, 윤리, 종교, 인권, 그리고 법에 따라 정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방법은 가격 책정의 목적, 가격이 상징하는 것, 가격 책정에 채택되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목적과 관점에 따라 다른 계산법이 적용되며 당연하게 산출된 가격표도 달라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생명가격표가 적용되는 사례를 살펴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들고 있을 생명보험, 살인이나 교통사고와 같은 사망사고의 처벌,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부상의 보상, 정부가 시행하는 규제정책의 기준결정 등으로 다양합니다. 생명가격표는 모든 사람의 삶에 아주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명가격표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들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왔습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도 인간의 생명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나아가 우리의 삶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생명가격표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에 일어난 미국 뉴욕의 쌍둥이건물이 무너지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사고로 3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정부는 ‘항공운송 안전 및 체계 안정화법’을 신속하게 제정하여 피해보상에 나섰습니다. 도산직전인 항공업계를 지원하고, 9.11 피해자들의 피부양자를 포함한 청구인들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책정했다고 합니다. 보상금을 받은 가족들은 항공사, 공항, 보안회사, 세계무역센터 등 테러 공격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9.11사건 이전에도 테러로 인하여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상을 해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9.11 희생자들에게만 정부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사건은 일회성의 특별한 사건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9.11사건의 보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읽다보니 세월호의 희생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세월호 사건은 9.11사건과는 비교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11사건의 희생자들은 고엽제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한 케네스 파인버그의 주도로 만들어진 생명가격표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파인버그는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를 합산하여 생명가격표를 만들었지만,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들에 따라 보상금 규모의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초고소득자에게 엄청난 규모의 보상금이 가지 않도록 연간 소득의 상한을 23만1천 달러로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컸습니다. 연간 소득이 2만 달러도 되지 않는 최저소득 계층의 희생자의 유족은 평균 100만 달러를 넘지 않았고, 년간 소득이 22만 달러가 넘는 최고 소득계층의 희생자의 유족은 평균 400만 달러 규모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세계인권선언문에도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에 대한 보장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어야 한하는 원칙에 따라 모든 희생자들의 생명가치를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9.11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적용된 생명가격표를 통하여 생명가격표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한 저자는 인권 차원을 떠나서 생명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이어서 설명해갑니다. 생명가격표가 우리네 실생활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 중요한 사안인지 알아두기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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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심강현 지음 / 궁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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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보건의료 누리망 신문에 인문분야의 책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같이 공부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쉬운 분야는 없었습니다만, 역시 철학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기회가 되는대로 철학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는 있습니다만,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읽은 것도 철학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습니다. 책을 쓴 심강현 선생님은 정신과를 전공하는 의사선생님입니다. 뒤늦게 인문공부를 시작한 저와는 달리 의과대학 시절부터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내공을 바탕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를 써내는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자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 철학자는 스피노자와 니체였다고 합니다. 두 철학자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하여 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따라 공부왔던가 봅니다. 저자는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통하여 서양철학사의 사표라 할 만한 분들의 철학을 살펴보았습니다. 플라톤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데카르트, 스피노자, 합리론과 경험론,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를 거쳐 니체에 이릅니다.

이 책은 플라톤의 저술처럼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철학자들을 만나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도우치라는 고슴도치입니다. 고슴도치 도우치는 꼬리를 자르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가 시간이 멈춰버린 철학자들의 숲에 들어서게 됩니다. 숲에 서 있는 나무에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그 숫자는 서기로 표기된 년도입니다. , ‘시간이 멈춰버린 철학자들의 숲은 철학자 혹은 학파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로 안내하는 시간이동장치인 셈입니다.


도우치가 시간이 멈춰버린 철학자들의 숲에서 처음 만난 이는 영원의 빛 아래 비춰본 안경점의 주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철학자 스피노자였습니다. 도우치는 과거 시간대에 묶어 살고 있는 철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화두로 삼았던 철학적 사유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저자가 공부한 철학적 지식을 요즘의 화법으로 설명을 하는 셈입니다. 옛 철학자들이나 고슴도치가 현대의 한글로 대화를 나누는 셈입니다. 대화하는 가운데 최근에 개봉된 영화를 비롯하여 유행어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인물이 그런 것들을 과연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서양철학사의 핵심인물들의 철학적 사유를 한권의 책으로 요약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습니다만, 저자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옛 철학자들과 만나 그들의 철학의 바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마지막에는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붙여두었습니다. 살펴보니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도 있습니다. 따로 적어두었다가 시간이 되는대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중간 중간에 도우치의 꼬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도우치가 집을 나서게 된 이유, 즉 꼬리를 자르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실하게 붙들지 못했습니다아마도 니체가 도우치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에 답이 있지 싶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이데아의 발밑에 드리운 초라한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림자는 우리의 착각이었으며, 우리 자신이야말로 그 그림자를 만들어낸 원본이다. 너는 단지 모방품으로 만들어진존재가 아니라, 너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원본이란다. 왜냐면 너는 너 자신의 이데아니까. 네 삶은 하나의 작품이니까(357)”


결국 인간 하나 하나가 세계라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평가절하하지 말고 스스로를 경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있게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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