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면서 ‘인간 생명의 값은 얼마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요? 대체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에 붙이는 가격은 실생활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가격표>는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는 생명가격표의 불편한 진실을 설명합니다.


생명가격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경제, 윤리, 종교, 인권, 그리고 법에 따라 정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방법은 가격 책정의 목적, 가격이 상징하는 것, 가격 책정에 채택되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목적과 관점에 따라 다른 계산법이 적용되며 당연하게 산출된 가격표도 달라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생명가격표가 적용되는 사례를 살펴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들고 있을 생명보험, 살인이나 교통사고와 같은 사망사고의 처벌,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부상의 보상, 정부가 시행하는 규제정책의 기준결정 등으로 다양합니다. 생명가격표는 모든 사람의 삶에 아주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명가격표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들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왔습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도 인간의 생명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나아가 우리의 삶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생명가격표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에 일어난 미국 뉴욕의 쌍둥이건물이 무너지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사고로 3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정부는 ‘항공운송 안전 및 체계 안정화법’을 신속하게 제정하여 피해보상에 나섰습니다. 도산직전인 항공업계를 지원하고, 9.11 피해자들의 피부양자를 포함한 청구인들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책정했다고 합니다. 보상금을 받은 가족들은 항공사, 공항, 보안회사, 세계무역센터 등 테러 공격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9.11사건 이전에도 테러로 인하여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상을 해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9.11 희생자들에게만 정부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사건은 일회성의 특별한 사건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9.11사건의 보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읽다보니 세월호의 희생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세월호 사건은 9.11사건과는 비교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11사건의 희생자들은 고엽제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한 케네스 파인버그의 주도로 만들어진 생명가격표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파인버그는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를 합산하여 생명가격표를 만들었지만,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들에 따라 보상금 규모의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초고소득자에게 엄청난 규모의 보상금이 가지 않도록 연간 소득의 상한을 23만1천 달러로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컸습니다. 연간 소득이 2만 달러도 되지 않는 최저소득 계층의 희생자의 유족은 평균 100만 달러를 넘지 않았고, 년간 소득이 22만 달러가 넘는 최고 소득계층의 희생자의 유족은 평균 400만 달러 규모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세계인권선언문에도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에 대한 보장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어야 한하는 원칙에 따라 모든 희생자들의 생명가치를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9.11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적용된 생명가격표를 통하여 생명가격표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한 저자는 인권 차원을 떠나서 생명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이어서 설명해갑니다. 생명가격표가 우리네 실생활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 중요한 사안인지 알아두기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