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관하여 정암고전총서 1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오지은 옮김 / 아카넷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영혼이 실재하는가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의사 던컨 맥두걸은 1901년 결핵 등 소모성 질환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 6명이 누워있는 침상을 5.6그램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산업용 저울 위에 올려놓고 죽음을 전후한 체중변화를 측정하였습니다. 6명 가운데 한명이 죽음 직후에 21.3그램의 체중이 줄었습니다. 이 결과를 두고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1907년에 발표된 이 실험의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지만, 후속실험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실험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혼이 실재한다고 믿는 의사들도 실재로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 임사체험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은 사후에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죽어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체이탈 현상을 이야기하며, 어두운 통로를 지나서 휘황한 빛으로 들어가면서 평화로운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혼의 실재에 대한 사유가 고대 그리스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전제하고, 엄밀성의 측면과 더 훌륭하고 더 고귀한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영혼에 관한 연구를 높은 위치에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영혼은 생물의 원리이므로 자연에 관한 진리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장의 제목이 영혼에 관한 탐구의 학문적 위상, 이 탐구의 어려움이라고 할만큼 영혼에 관한 연구는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자는 학문의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논지를 펼쳐갑니다. 먼저 운동과 감각을 중심으로 영혼에 관한 이전 사람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연구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철학적 사유로 증명하려 들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려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운동이나 영양 능력으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과연 근거가 분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가져온 감각에 대한 설명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의 본질에 대한 설명과 일반적인 설명을 붙였는데, ‘감각은 감각되는 형상들을 그 질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감각되는 형상들이 매개체를 통하여 우리의 감각기관이 인식하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6의 감각은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육감의 실체를 논의하지 않더라도 평형감은 분명 제6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앞선 사람들의 영혼에 관한 이론을 검토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1. 영혼이 운동의 원인인 것은 맞지만, 영혼이 몸의 움동을 일으킨다고 해서 영혼 자체가 운동하는 것은 아니다. 2-1 영혼의 감각의 원인인 것은 맞지만, 원소들로 이루어진 사물들을 영혼이 감각한다고 해서 영혼 자체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2-2 전통적 유사-유사설은 일리는 있어도 영혼이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는 없다.(295)


영혼의 본질에 관한 그의 견해는 다음으로 정리됩니다. 1. 영혼은 가능태로 생()을 지니는 자연적 물체의 형상으로서의 실체이다. 2. 영혼은 가능태로 생을 지니는 자연적 물체의 첫 번째 현실태이다. 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 산다는 것을 1. 영양분을 섭취하고 생식한다, 2. 감각한다, 3. 이동한다, 4. 사고 또는 사유한다. 등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정암학당에서 정암고전총서의 일환으로 내놓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에는 원저의 번역문이 있고, 이어서 번역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품안내가 더해져 있습니다. 원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암스테르담의 상품거래소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상품인 커피가 처음 상장되던 이야기를 다룬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1659년입니다.


기원전 네덜란드에는 켈트인과 게르만인들이 살았는데 기원전 50년 카이사르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로는 800년에 샤를마뉴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프랑크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4세기에는 브르고뉴 공작령이 되었다가 15세기에는 합스부르크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합스브르크 가문의 펠리페1세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펠리페1세의 손자 펠리페2세가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네덜란드 사회의 반발이 커졌고, 1566년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588년 공화국으로 독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편 스페인은 1492년 아라곤의 페르난도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의 결혼으로 성립한 공동왕국의 주도로 800년에 걸친 이슬람 지배를 종식하고 이베리아반도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였습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은을 들여와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통일 이후 이슬람과 유대교 등 이교도를 탄압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스페인을 떠난 유대인들은 이교도에 대하여 관대했던 네덜란드로 주로 이주하였습니다.


유럽대륙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서로의 관계망을 이용하여 상거래를 주도하였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곧 상거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독립 후에 네덜란드의 상인은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미국, 오세아니아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국이 올리버 크롬웰의 항해조례(1651)를 내세워 중개무역과 물류업으로 중간수익을 얻던 네덜란드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던 시절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선물거래소를 중심으로 유대 상인들 간의 암투를 다룬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은 유대인들은 배타적이고 결속을 잘 한다는 생각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읽기였습니다.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같은 유대인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등을 돌릴 수 있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이 운영했던 강제수용소 안에서도 독일군에 부역하는 유대인들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실용화된 커피가 유럽인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6세기 중반으로 이집트와 중동지방을 여행한 학자들이었고, 16세기 말에는 당시 동방무역의 거점이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람들이 애호하던 커피에 대하여 기독교 사람들은 이교도의 것으로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1600년 클레멘스8세 교황은 커피를 맛본 뒤에 이 사탄의 음료는 이교도 놈들만 마시도록 놔두기에는 너무 맛있다!”면서 축복했다고 합니다.


1616년 커피의 본산지인 모카 항구에 왔던 네덜란드 상인 피터 판 덴 부르크가 커피나무를 본국에 가져간 뒤로 네덜란드에서 커피가 유행하였고,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모카에 상관을 세웠다고 합니다. 1640년 무렵부터 유럽은 커피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에서 이야기되는 커피 수입과 둘러싼 암투는 시대적으로 조금 일치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선물거래소에서 물건을 사고팔던 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네덜란드 상인들의 장사 속은 참 대단하였구나 싶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에 나오는 장사술의 핵심인 콜옵션이나 풋옵션은 상거래를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이익을 내고, 어떤 사황이 되면 손해를 보는지 분명치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끝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의 일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치광이 여행자 - 그는 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녔는가?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녔는가?’라는 부제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며 서낭당이 있을 법한 커다란 나무아래를 무심히 지나는 여행자의 모습을 담은 표지그림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옮긴이는 저도 잘 아는 선배님이라서 더욱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캐나다의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이 쓴 <미치광이 여행자>시대적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한 때’ ‘한 지역을 풍미했던 한 정신질환이 과연 질병으로서 실체가 있었는지, 더 나아가 현재 논란이 되는 여러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독자에게 넌지시 물음을 덜지는 책이다(7-8)”라고 소개합니다.


정신과 영역은 의과대학시절 수업시간도 많지 않았던 탓에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둔주(遁走)라는 병명이 생소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해리성 둔주(解離性遁走, dissociative fugue)는 자신의 과거나 정체감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여 가정과 직장을 떠나 방황하거나 예정 없는 여행을 하는 장애이다. 세상 지식에 대한 기억은 보존된다.”라고 합니다. 상병의 조작적 정의를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 상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 병으로 진단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알고 있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비롯하여 해리성 기억상실, 그리고 해리성 둔주를 포괄하는 해리성 장애로 진단되는 사람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2,804명이었다고 합니다. 노숙자로 살아가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해리성 둔주로 진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기고 합니다.


정신질환으로서 둔주(遁走)1887년 프랑스 정신과의사 티씨에가 <미치광이 여행자>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 1909년 낭트 총회에서 주요한 질환이라는 언급이 마지막으로 언급될 때까지 약 22년간 정신의학계의 화두였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치광이 여행자>에서 둔주라는 평범하지 않은 행동이 정신질환으로 주목을 받았다가 스러지는 과정을 뒤쫓았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요약해둔 이 책의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이 첫째 부분은 다시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2,3장은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서술한 것이고, 4장은 그 사건에 대한 의문들과 시대적 정신질환의 실재성을 숙고해본 것이다. () 서플먼트1,2,3은 이 책의 주제와 연관된 내용이다. 끝으로 우리의 스타 환자와 스타 의사에 관련된 몇 가지 기록을 번역하여 수록하였다.(18-19)”


우리는 몇 년째 우한폐렴이라는 감염질환이 대유행하는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둔주를 유행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유럽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22년이라는 일정 기간 동안 발생, 확산, 감소, 소멸의 단계를 거쳤기에 유행병의 조건을 갖추었다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유럽에서 둔주가 유행병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전쟁 등 전란이 이어졌던 19세기 말의 어수선한 유럽대륙의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둔주 환자 대부분이 남성이고, 군대와 연관이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탈영병이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둔주라는 정신질환으로 면피하려는 의도에 정신과의사들이 동조해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생태학적 틈새라는 은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둔주라는 정신질환은 정신과 의사 필리프 티씨에가 보르도에 있는 생탕드레병원의 알베르 피트르 병동에서 가스회사의 임시직원이던 26살의 알베르를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알베르는 가족도, 일도, 일상조차도 내동댕이치고 여행길에 올라 프랑스 국내는 물론 알제리, 콘스탄티노플, 모스코바 등 유럽대륙을 주하다가 부랑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프랑스로 송환되곤 했다는 것입니다. 알베르의 삶을 읽다보면 정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둔주가 질병으로 성립하는 과정을 읽을 때는 책을 읽는 흐름이 느려지곤 합니다.


유행을 돌고 돈다고 하니 둔주 질환이 다시 유행처럼 번질 수도, 아니 이미 번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저명한 추리소설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 연작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는 경기 중에 일어난 충돌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회복하면서 기억과잉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축구를 그만두고 선택한 직업이 형사입니다만, 아내와 딸이 누군가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은 뒤에 폐인이 되었다가 회복할 무렵 정체를 드러낸 범인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연방수사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데커는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연방수사국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번째 사건입니다. 출근길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에 얽힌 비밀을 뒤쫓아 갑니다.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이렇습니다. 외부 인사들의 출입구를 향하던 60대 남자 월터 대브니가 앞에서 오던 50대 여자 앤 버크셔와 엇갈리는 순간 그녀의 뒤통수에 베레타 권총을 대고 쏘았습니다. 총알을 얼굴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총격사건을 목격한 데커는 대브니를 향하여 총을 버리라고 외쳤지만, 다음 순간 대브니는 총구를 자기 턱 아래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강력사건은 통상 경찰이 수사를 하기 마련이지만, 연방수사국 앞에서, 그것도 수사요원인 데커 눈 앞에서 벌이진 사건인 만큼 데커와 동료들이 사건을 수사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기자출신의 알렉스 재미슨과 연방수사국의 로스 보거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대브니와 버크셔는 전혀 접점이 없는 관계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대브니는 왜 버크셔를 살해했을까요? 사건은 출발부터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대브니와 버크셔 주변을 탐색하는 데커에게 국방정보국 요원 하퍼 브라운이 등장해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결국은 연방수사국과 국방정보국이 합동으로 사건해결에 나서는 것을 보면, 오리무중의 총격사건에 엄청난 배경이 뒤얽혀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장면입니다.


사실 추리소설은 사건해결에 단초가 되는 밑밥을 미리 깔아놓으면 읽는 이도 어찌된 사건인지 생각해가면서 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 편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사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불사의 존재라는 일종의 규칙은 잘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과잉기억증후군이 생긴 데커에 관한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옛날 기억이 흐려지는 저로서는 부러운 일입니다만,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시절 있었던 엄청난 충격으로 뇌손상을 겪은 후 생긴 공감각 덕분에 그는 과잉기억증후군, 그러니까 완벽한 기억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그의 인격도 바꾸어놓았다. 사교적이고 유머를 사랑하던 그가 냉담하고,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인지하는 사회적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자폐증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16)”


무언가 능력이 생기면 다른 능력이 희생되는 기전인 듯합니다. 또한 완벽한 기억은 잊고 싶은 것들을 잊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해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낯선 사람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잉기억중후군인 사람은 보통 단편적 사실들은 잘 기억하지만 그 기억들을 꿰어 추론하는 능력은 그리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아들인 엄청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흐름을 꿰맞추어 낸 것을 보면, 데커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기억과잉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에 타계한 미국의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수필집 <고맙습니다>를 늦게서야 읽어보았습니다. 올리버 색스가 뉴욕의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만났던 파킨슨병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깨어남>으로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역시 고인이 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우리나라에는 <사랑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의 감동이 원작을 읽을 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오악사카 저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나이> 등으로 이어졌습니다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에 쓴 네 편의 수필을 묶은 책입니다. 물론 2년 동안에 네 편의 수필만을 쓴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수필 수은20137월 여든 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쓴 글입니다. 그리고 18개월 뒤에는 8년 전에 진단받고 치료했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되어 재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나의 생애를 썼다고 합니다. 임종을 두어 달 앞둔 시점에는 건강상태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이 무렵 쓴 수필 가운데 하나가 나의 주기율표입니다. 그리고 임종을 2주일 앞두고 쓴 수필이 안식일입니다.


수은이나 주기율표에서는 색스의 독특한 인생관을 볼 수 있습니다. 매해 생일에 나이에 맞는 원소를 챙기는 것인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꼬마 때부터 상실에-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에-대처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익혔다.(36)” 80세 생일을 맞아 쓴 수은은 안구흑색종을 치료받은 뒤였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든의 생일을 맞을 수 있는 놀라움을 적었습니다. “내가 여든 살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가끔은 인생이 이제야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내 사실을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뒤따른다.(16)”


삶을 달관한 사람의 경지가 느껴집니다. 그가 진료한 환자들 가운데는 아흔 살, 백 살을 넘긴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18)”라고 고별을 전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자들을 만나다보면 인생을 관조할 여유가 생기게 되나 봅니다.


여든 살이 되면 쇠퇴의 징후가 너무나 뚜렷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예순을 넘기고서부터 그런 징후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관절 여기저기가 아프고, 근육도 밭아지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쉬이 느껴지던 피로감이 걷기운동을 강화하고부터는 많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쇠퇴의 징후가 느껴지면서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는 색스의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운동은 건강을 유지하는 보완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몸이 전하는 이상신호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날 때 다양한 신호를 내보냅니다. 그 신호를 잘 잡아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내버려두면 심각한 상황으로 될 질병도 초기에 발견하면 정상 상태로 쉽게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간이나 췌장과 같이 변화에 무뎌서 심각한 지경이 되어서야 이상신호를 내보내는 장기의 경우는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연히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섭취나 운동을 꾸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가로서의 색스의 명성이 대단했다는 점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안구흑색종이 재발된 뒤에 쓴 나의 생애를 뉴욕타임스에 보냈더니 바로 이튿날 신문에 실렸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아니더라도 유수의 일간신문들은 유명인사의 글이라고 해도 순번이 정해져 있을 법한데, 원고를 받자마자 바로 신문에 실렸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색스의 위상이 그랬다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글들을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어낸 것을 보면서 선친께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셨던 글 제목을 사세(辭世)’라고 하셨던 뜻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삶을 같이 한 사람들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글에 담으셨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