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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평점 :
미국의 저명한 추리소설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 연작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는 경기 중에 일어난 충돌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회복하면서 기억과잉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축구를 그만두고 선택한 직업이 형사입니다만, 아내와 딸이 누군가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은 뒤에 폐인이 되었다가 회복할 무렵 정체를 드러낸 범인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연방수사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데커는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연방수사국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번째 사건입니다. 출근길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에 얽힌 비밀을 뒤쫓아 갑니다.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이렇습니다. 외부 인사들의 출입구를 향하던 60대 남자 월터 대브니가 앞에서 오던 50대 여자 앤 버크셔와 엇갈리는 순간 그녀의 뒤통수에 베레타 권총을 대고 쏘았습니다. 총알을 얼굴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총격사건을 목격한 데커는 대브니를 향하여 총을 버리라고 외쳤지만, 다음 순간 대브니는 총구를 자기 턱 아래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강력사건은 통상 경찰이 수사를 하기 마련이지만, 연방수사국 앞에서, 그것도 수사요원인 데커 눈 앞에서 벌이진 사건인 만큼 데커와 동료들이 사건을 수사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기자출신의 알렉스 재미슨과 연방수사국의 로스 보거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대브니와 버크셔는 전혀 접점이 없는 관계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대브니는 왜 버크셔를 살해했을까요? 사건은 출발부터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대브니와 버크셔 주변을 탐색하는 데커에게 국방정보국 요원 하퍼 브라운이 등장해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결국은 연방수사국과 국방정보국이 합동으로 사건해결에 나서는 것을 보면, 오리무중의 총격사건에 엄청난 배경이 뒤얽혀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장면입니다.
사실 추리소설은 사건해결에 단초가 되는 밑밥을 미리 깔아놓으면 읽는 이도 어찌된 사건인지 생각해가면서 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 편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사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불사의 존재라는 일종의 규칙은 잘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과잉기억증후군이 생긴 데커에 관한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옛날 기억이 흐려지는 저로서는 부러운 일입니다만,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시절 있었던 엄청난 “충격으로 뇌손상을 겪은 후 생긴 공감각 덕분에 그는 과잉기억증후군, 그러니까 완벽한 기억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그의 인격도 바꾸어놓았다. 사교적이고 유머를 사랑하던 그가 냉담하고,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인지하는 사회적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자폐증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16쪽)”
무언가 능력이 생기면 다른 능력이 희생되는 기전인 듯합니다. 또한 완벽한 기억은 잊고 싶은 것들을 잊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해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낯선 사람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잉기억중후군인 사람은 보통 단편적 사실들은 잘 기억하지만 그 기억들을 꿰어 추론하는 능력은 그리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아들인 엄청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흐름을 꿰맞추어 낸 것을 보면, 데커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기억과잉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