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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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조금 생뚱맞은 것 아니냐 하시겠습니다만, 추리소설을 소개하려 합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주옥같은 추리소설을 탐독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지금도 추리소설에 매혹되어 있는 매니아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추리소설에 홀려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특별하게 챙기는 작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두루 섭렵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이유없이 추리소설과 거리가 생겨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눈길을 끈 작가가 생겼습니다. 바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추리소설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2001년에 발표한 처녀작 <13계단>으로 심사위원 모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13계단>은 보호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사형이 확정된 사카키바라의 원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교정관 난고와 가출옥한 준이치의 활약으로 문제의 해결에 이르는 추리소설로 사형제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8761).

 

<제노사이드>는 저자가 6년여의 공백을 깨고 2011년에 발표한 신작으로 야마다 후타로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나오키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소설부문에서 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는 소개이고 보면, 분명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 작품이 통상적인 수준의 추리소설이었다면 개인적으로 독후감을 쓰고 말았을 터인데, 굳이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 소설을 통하여 같이 생각해볼 점이 분명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목 ‘제노사이드(genocide)의 뜻을 위키백과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나치 독일이 유태인 등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집단학살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그밖에도 수많은 집단학살의 사례들이 있다는 사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가 <3의 침팬지>에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확인된 집단학살의 사례들은 15세기 이래 아주 최근인 20세기 말까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집단학살의 원인이 되는 동기를 분류하는 일은 그 정의만큼이나 어렵지만 이데올로기적 혹은 심리적 동기가 작용하는 경우와 이데올로기 대립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토지와 권력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해대립이 있는 경우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더 세분해보면, 군사적으로 우세한 세력이 그보다 약한 세력의 토지를 점령하려다 저항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경우, 다민족 사회의 내부에서 장기간 권력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말살함으로써 최종적인 해결을 꾀하는 경우, 14세기에 확산된 페스트의 속죄양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희생된 경우처럼 무력한 소수가 살해자의 욕구불만에 의하여 희생이 되는 경우가 있겠고, 끝으로 나치 독일이나 십자군전쟁처럼 인종적, 종교적 박해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다른 인종과 종교와 민족 집단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회정의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대규모의 살인 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집단학살을 염려하고 있는 제3자의 반응에 의해 중지, 축소 또는 방지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한편,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대량학살의 가능성은 대규모 핵전쟁과 환경파괴에 의하여 지구 생물이 대량으로 멸종될 수도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카노 다즈아키가 우려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신인류의 등장에 의한 현생인류의 멸망 가능성입니다. 이야기는 미국의 백악관에서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정례브리핑에서 국가정보장 왓킨스가 대통령 번즈에게 “인류 멸망의 가능성,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 출현”이라는 제목의 보고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사태는 1977년 슈나이더 연구소가 제출한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이미 경고되었다.(11쪽)”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바짝 당겨놓습니다. 이어서 미국정부는 콩고에 출현한 신종생물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에서는 이 신종생물을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참여하고 있는 사람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게 됩니다. 이야기는 미국 본토에서 시작해서 신종생물제거작전에 투입될 요원들을 이끌 조너선 예거가 선발되어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과정을 따라서 이라크, 남아프리카를 경유하여 사건의 현장인 콩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미국 정보국의 감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예거의 아들이 앓고 있는 폐포 상피세포 경화증이라고 하는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을 개발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보통 신약은 효능이 있는 물질을 발굴하여 시험관에서 효능시험과 안전성을 조사하고 쥐나 개와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치료용량을 투여하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하는 전임상시험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게 되면 정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사람에서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다시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을 검정하는 임상시험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은 짧게는 6년에 마칠 수도 있지만 10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고 최장 21년이 걸린 약물도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복잡한 신약개발과정을 한 달 이내에 마칠 수 있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기에 특별한 트릭을 숨겨 기한 내에 완성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콩고의 현장에 도착한 예거는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신종생물이 바로 신인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작가가 미리 치밀하게 배치한 장치에 따라서 신종생물 제거의 미션을 받고 투입된 요원들 모두가 신인류를 구출해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왜 신인류에 의한 현생인류의 멸망을 화두로 가지고 왔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브라이언 M. 페이건교수의 작품 <크로마뇽>에서는 기후변화가 현생인류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이 멸망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현생인류가 구인류를 집단적으로 공격하여 사라진 것이라는 가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하이즈만 보고서를 인용하여 예언하고 있는 신인류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 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제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 제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247쪽)” 작품을 통하여 신인류의 특징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신인류가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 것이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생인류와 신인류의 생태적 지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현생인류가 있는 한 신인류의 생식장소가 확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인류가 보는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의 나날을 보내는데다가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과학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작가 역시 침팬지들 사이에서도 다른 침팬지를 살해하여 살을 먹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만, 집단학살은 동물에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서만 보는 특징이라고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3의 침팬지>에서는 역시 유인원에서도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인원단계에서 이미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형질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도 장치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바로 겐토를 도와 신약을 개발하는 한국젊은이 정훈이 소개하는 한국적인 감성 ()’입니다. 바로 이 ()’이 신인류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는 미지수로 남겨놓기는 했습니다.

 

저자가 신인류가 등장한 장소로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은 집단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라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나 현생인류가 처음 등장한 곳이 아프리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즈만 보고서에 담은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247쪽)”얼마나 정교한 이론입니까?

 

그런데 신인류를 구출하고 살아갈 곳으로 일본인과 일본을 선정한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으로 집단학살의 피해를 입은 유일한 곳이라는 점도 있지만, 사실은 역사를 통하여 집단학살의 주도한 국가라는 상징을 떼어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자는 이 작품을 기획하고 가다듬는데 25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작품을 전개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문분야로 우선 떠오르는 것만 해도 무기체계와 인터넷관련 분야, 정보분야, 지구물리학, 북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 해양생태학, 무역, 제약 및 의학분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전혀 무리가 없어 녹아들어 걸림이 없으니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났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신인류의 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도 된다 생각되어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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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7-1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6602
 
닥터스 블로그 - 병원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건강 의료의 오해와 진실
코리아헬스로그 지음 / 청년의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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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을 드디어 받았습니다. 코리아헬스로그가 기획한 <닥터스 블로그>입니다. 생소하게 들리겠습니다만, 의학관련 정보를 구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꽤나 알려진 메타블로그입니다. 즉 의료분야에서 일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 팀블로그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헬스로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인터넷을 통하여 확산되고 있는 의학정보의 태반이 분명하지 않은 근거를 바탕으로 한 상업성 정보이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두고 있습니다. 특히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의료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사례를 반영하고 있어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내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헬스로그의 이러한 노력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2008 블로거 기자상'( http://blog.joinsmsn.com/yang412/10366286), 한국PR기업협회(KPRCA)가 선정하는 10개 분야의 전문블로그 가운데 건강분야에 3위로 입상한 바 있고(http://blog.joinsmsn.com/yang412/10369117), 헬스로그에 참여하는 멤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대거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미래세대를 위해 보존할 만한 민간웹사이트로 선정한 ‘2010 디지털유산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4926.html).

 

블로그에 올린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 것을 블룩(Blook)이라고 부룩이라고 한답니다. 블로그를 통하여 독자들의 인기가 검증된 바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출판계가 주목하고 있는데(http://blog.joinsmsn.com/yang412/6899123), 헬스로그의 경우는 다소 늦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리아 헬스로그를 통하여 그동한 소개되었던 4,000편이 넘는 글 가운데 네티즌들의 좋은 반응을 보였던 글을 모아 <닥터스 블로그>라는 제목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획기간이 길어서 시의성이 다소 떨어지는 화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일반인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의학상식 뿐 아니라 병원을 이용하면서 궁금했던 병원 내부의 이야기 등 호기심을 채워줄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공간에서 네티즌의 관심을 끌수 있었던 요인으로 짐작됩니다만,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평이하게 쓰여져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 하겠습니다.

 

내용을 보면 ‘뱀에 물리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와 같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강상식을 바로 잡는 제 1부의 ‘건강상식을 뒤집어라’, 특히 관심이 많을 제2부 ‘다이어트도 과학이다’, ‘물만 마셔서 감기 낫기’처럼 알아두면 많은 도움이 될 제3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멜라민 분유를 먹는 아이들’과 같이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제4부 ‘세상을 시끄럽게 한 뉴스들’, ‘검사 전에 금식하는 이유’와 같이 병원을 이용하면서 제대로 몰랐던 것들을 담은 제5부 ‘똑똑하게 병원 이용하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맹장염 진단’처럼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기는 답답한 생각들을 담은 제6부 ‘의사들의 속마음’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글이 독립적이라서 아무데나 펼쳐서 읽으셔도 좋기 때문에 읽기에 편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도 두 꼭지나 되기 때문에 리뷰를 올릴 자격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저를 제외한 다른 필진의 글을 평가하고 소개할 필요가 있다 싶어서 리뷰를 적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상 실수라고 보이는 171쪽 아래부터 10째줄에 ‘남자’를 ‘나자’리고 적은 오타와, 필자의 실수라고 보아야 할 55쪽에 나오는 공식들, 예를 들면 ‘60킬로그램x1그램=60그램’의 식은 ‘60킬로그램x0.001=60그램으로 표기하셔야 할 것 같다는 점을 적습니다.

 

‘환자도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신 익명의 블로거가 결론부분에서 “좋은 뜻으로 ‘의사와 증상을 가지고 소통하는 방법’을 썼던 그 의사 블로그는 예상치 못한 ‘악플’로 블로그를 떠났다.(198쪽)”라고 적으신 부분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 역시 2008년 광우병파동 당시 올렸던 포스팅으로 인하여 엄청난 악플세례를 받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생각으로 견뎌냈던 아픈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닥터스 블로그>라는 제목에서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학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은 블로그 글 모음이라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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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 - 게으름과 딴짓을 다스리는 의지력의 모든 것
켈리 맥고니걸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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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이라는 고사성어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금년에는 반드시 무언가를 해낼 것이라고 단단하게 결심을 하지만 불과 3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자조적인 변명을 할 때 흔히 끌어오는 말입니다. 작심삼일이 인용되는 대표적인 결심은 아마도 금연일 것 같습니다. 담배끊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게으름과 딴짓을 다스리는 의지력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단 켈리 맥고니걸 교수의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의 내용을 ‘3일째만 되면 의지력이 바닥나는 이들을 위한 스탠퍼드 대학교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심리학 강의’라는 한줄 요약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릅니다.

 

맥고니걸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지력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이유, 삶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과연 의지력이 약하기 때문인가 등에 관하여 다양한 신경학적, 심리학적 실험결과들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어 집중력이 흩어지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이는 책을 읽고 있는 제 집중력, 혹은 의지력이 약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의지력을 논하면서 런던 세인트 조지 대학교 심리학과의 제임수 어스킨교수가 인용하는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온갖 자기파괴적인 행동사례인 다이어트 결심을 어기는 일부터 흡연, 음주, 도박, 섹스에다가 쇼핑중독 등을 더하여 이토록 치명적인 습관이 생기는 원인, 그리고 치료하기 위한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는 여섯 가지 사례 가운데 세 가지에는 빠져들지 않아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도 각각 다스리는데 성공하였으니 역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담배는 호기심이 왕성하던 초등학생 때 처음 맛(?)을 알게 되었지만, 대입시험에 실패하고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해서 의과대학생활이 고되다는 이유로 늘어나던 흡연양은 졸업 무렵에 시험을 볼 때는 하루 두 갑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약혼을 앞두고 다녀온 하계진료봉사에서 피로가 누적되었던지 심실세동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하여 금연을 시작했던 것이 30년 가까이에 이르고 있습니다.

 

맥고니걸 교수는 거울신경세포이론을 인용하여 주변에서 누군가 하는 행동을 따라가려는 충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금연을 시작할 때는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적을 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저자는 10분간 흡연욕구를 참는 훈련으로 시작하여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휴가를 받아서 내내 잠을 자는 것으로 담배피울 시간을 없앴던 것이 도움이 되었고, 3일, 3주일, 3개월 그리고 3년을 참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시최면을 걸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 역시 두 차례에 걸쳐서 20kg 가까이 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입대하여 훈련을 받는 10주 동안에 고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20kg을 줄이는데 성공했습니다만, 자대배치를 받고서 야금야금 체중이 늘어 10kg 정도가 회복되었지만 군생활 기간동안 운동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감량을 시작하던 때의 체중이상으로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5년 전쯤인가 회사업무로 생활이 흐트러지면서 체중이 빠르게 늘기 시작하면서 심장에 부담이 느껴질 무렵 다시 다이어트에 도전하였습니다. 이때도 역시 식사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걷는 운동만으로 체중감량에 도전하였고 1년 만에 15kg이상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100km이상을 걷기도 했지만, 평균적으로는 70km는 걸으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체중을 줄이고 나서는 식사는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지만, 체중을 유지하기 위하여 운동은 지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주는 쉽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금연이나 체중을 줄이는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입니다만, 술을 마시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쉽게 끊을 수 없어서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말 사고가 있고서는 아내의 마지막 통보를 받고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술마시는 자리를 피하거나 아니면 한 두 잔으로 끝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1년 이상 술마시기를 줄였던 때처럼 몸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를 주로 소개하고 말았습니다만,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를 읽으면 의지력이 작용해야 한다고들 하는 삶에 도움이 될 결심을 지키는데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런 결심이 가지고 올 미래의 나를 연상하게 되면 보다 쉽게 결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는 “1. 미래의 추억을 창조하라. 2. 미래의 자아에게 메시지를 보내라. 3. 미래의 자아를 상상하라.”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제목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만, 의지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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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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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책을 완독했습니다. 책의 두께와 가격 때문에 서대에서 들었다 놓기를 몇 해 동안 반복했던 것인데 아내의 부탁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UCLA대학의 재레드 다이아몬드교수가 각 대륙에서의 진행되어온 다양한 인종의 흥망사를 ‘총, 균, 쇠’로 요약한 식량과 가축의 확보, 집단거주화 과정에서 발전한 병원균, 그리고 언어를 비롯한 과학적 발전 등을 종합한 우열의 차이가 존망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75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가운데 그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과학으로서의 인류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된 에필로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에필로그에 담은 그의 결론부분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는 그의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만, 핵심논지는 충분히 논리적이어서 수긍할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유인원류로부터 진화되어 나온 이래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의 발전해온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환경적 요소의 차이가 집단의 흥망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적 요소들도 무수히 많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차이를 4가지 정도로 요약한다면, 각 대륙에 서식하고 있던 야생동식물 가운데 가축화하거나 작물화가 가능하였는가 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즉, 채집경제보다는 식량을 생산하여 잉여식량의 축적이 가능한 사회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잉여식량을 확보한 집단보다는 식량이 부족한 집단이 잉여식량을 가진 집단을 공격하여 식량을 탈취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역사적 증거는 멀리가지 않더라도 한반도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잉여식량을 확보한 집단에서는 잉여식량을 제공받으며 집단의 사회적 발전을 위한 일에 종사하는 자들, 예를 들면 정치가, 발명가, 학자, 예술가 등등이 많아지게 되고, 이들의 노력은 집단의 문화적 파워가 될 뿐 아니라 토기, 석기에서 철기문명으로 이행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무기체제의 발전으로 이어져 비교 열세에 있는 집단을 복속시키거나 심지어는 멸망에 이르도록 하였다 하겠습니다.

 

인류사적으로 가축화와 작물화가 가능한 동식물의 부존이 대륙간에 차이가 있었던 이면에는 가축화 혹은 작물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해당 대륙에 거주하는 집단이 포획대상의 멸종을 고려하지 않고 남획한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인근으로부터 자원을 들여올 수도 있었을 것인데, 각 대륙의 특성을 보면, 유라시아대륙은 동서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쉬운 구조인 반면,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의 경우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명의 확산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물의 경우 같은 위도 상에서는 물의 공급 이외의 일조량이나 기온 등의 요소들이 유사하기 때문에 큰 노력없이 농사법이 확산될 수 있겠으나, 남북축으로는 일조량을 비롯한 기후요인으로 작물자체의 적응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한계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각 대륙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라는 제한요소가 작물이나 가축의 확산을 저지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기술을 확보한 집단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대륙의 면적과 전체 인구의 규모와 이들의 통합 여부가 결정적 요인이라 하겠습니다. 나머지 대륙과는 달리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지역은 지역의 통합이 일찍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집단 사이의 갈등과 경쟁이 사라지면서 집단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 중세 이후의 대륙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는 요인이 되었다는 논리는 지금까지의 대륙간의 문명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근세에 유럽사회가 다른 대륙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병원균을 확산시키는 효과에 편승하여 해당지역의 거주하는 집단이 크게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았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의 흐름에 병원균이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향후 인류사적 흐름에 병원균이 기여할 수 있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와 문자의 보유 유무가 집단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집단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지식산물들이 기록으로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집단의 문명적 힘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외래의 언어 혹은 문자를 습득하기 위하여 힘을 쏟아야 하는 만큼의 투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지적산물이 전승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든, 고고학, 인류학, 분자생물학, 언어학 등 다양한 영역의 방대한 연구성과를 아울러 분석하고 큰 흐름을 도출해낸 저자의 통찰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내다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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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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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민음사와 조선일보가 같이 진행한 북콘서트 덕분이었습니다(http://blog.aladin.co.kr/761535117/5707234). 오래 전 읽으면서 ‘어렵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지, 이야기 내용이 가물거리기에 다시 읽고서 북콘서트에 참석했어야 하는데, 미국 출장 때문에 겨우 시간만 맞출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진행을 한 영화평론가 이동진님과 문학평론가 강유정님께서 300명이 넘는 청중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2시간여 동안 유연하고 매끄럽게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하게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에 북콘서트를 통하여 두 분으로부터 들은 설명이 녹아들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좋은데, 오롯이 나만의 생각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 혼재된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프라하, 그리고 4인4색의 러브스토리’라는 부제가 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화되었던 체코슬로바키아가 1968년 1월 당 제1서기에 오른 두브체크가 주도한 자유화운동으로 유명한 ‘프라하의 봄’이 8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5개 연합군의 침공으로 무너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날 북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가볍게 읽으면 풍부한 텍스트를 정신없는 사각관계로만 납작하게 만들어내는 흔하디흔한 사랑놀음이 되지만, 제대로 읽으면 특수한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 사랑 전체의 진면목을 제대로 잡아내는 소설”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저자는 4사람의 주요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과 그들의 사념을 세밀화 그리듯 따라가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토마시와 테레자 두 사람의 관계가 메인이 되며, 사비나와 프란츠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복잡하게 이끌어가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랑을 다루는 통속드라마의 유행인 4각관계의 전형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외과의사 토마시는 자신의 생활이 한 여인에 매이는 것은 불가하다고 믿기 때문에 다양한 여성과 인연을 맺는 바람둥이인데, 어느날 과장을 대신하여 지방병원에 파견나갔을 적에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레사와의 만남이 숙명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동진님은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여섯 번의 우연이 겹쳐서 다져진 관계일 뿐이라고 정리하면서 굳이 숙명이나 필연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말았는데, 제 경우는 사실 우연이란 한 번의 만남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두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의 우연이 겹친다는 것(사실은 신분상승을 노린 테레사가 주도한 우연이 몇 차례 있다고 본다면 숙명적인 관계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을 필연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화가인 사비나는 짧은 만남으로 끝나는 토마시의 일반적인 여성편력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토마시와 테레사의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배치한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끔 정사를 나누기는 하지만 이는 어쩌면 일상적인 일일 뿐 두 사람 사이에 애절한 사랑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비나의 애정관 역시 토마시와 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프란츠는 사랑을 논함에 있어 지나치게 평범하여 특징이 없는 인물로 정리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네 주인공의 운명이 비극적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느낌은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신분상승을 꾀하면서도 토마시의 바람기를 견디지 못하는 테레사의 독점욕이 결과적으로는 토마시까지도 나락으로 끌어내려 죽음으로 이끌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카페의 여급으로 지내면서도 기회를 만들고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들고 다니는 테레사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시절의 상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잠들 때도 하다못해 발목이라도 꼭 붙들어야 하는 강박관념으로 발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토마시,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다 이해해. 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도 알고 당신의 바람기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라고 하면서도 스스로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이지요.

 

토마스는 테레사와의 만남이 6번의 우연이 겹친 필연으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정한 테두리 안으로 테레사를 끌어들이게 되는데, 결국 소련군이 진주한 프라하를 탈출하여 스위스에 정착한 다음 그곳에서 만난 사비나와 토마시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못견딘 테레사가 프라하로 훌쩍 떠나자 결국 토마시도 뒤따르게 되는데, 베토벤의 4중주의 마지막 악장의 모티프 “Muss es sein?(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Es muss sein!.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대바구니에 담겨 물에 띄워져 이집트 공주의 슬하에 들어감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는 모세의 경우처럼 테레사가 마치 대바구니에 담겨 자신에게 온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쿤데라는 지금 인용한 베토벤의 4중주를 비롯하여 희랍비극 <외이푸스왕> 등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견고하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입양한 잡종개 카레닌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품입니다. 테레사가 들고 다닌 <안나 카레리나>에서 차용하여 암컷이면서도 ‘카레닌’이란 남성이름으로 붙인 개는 두 사람의 비극적 사고를 앞두고 개에서는 노환이라 할 암에 걸려 안락사를 맞고 있는데, 키우던 개와의 이별이 마치 사람 사이의 이별만큼이나 애틋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테드 케라소티가 <떠돌이 개와 함께한 행복한 나의 인생;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80779>에서 오마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간혹 등장하는 ‘나’라는 존재입니다. 아마도 네 사람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드려다 보는 입장에 있는 저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3자적 입장에서 등장인물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쿤데라는 ‘나’를 빌어 자신의 작품관의 핵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355쪽)”고 정리하면서 “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일반 작가들의 행태를 풍자하면서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그 경계선을 넘어가면 나의 자아가 끝난다.)에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선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물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355쪽)” 그래서 쿤데라의 작품이 어렵다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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