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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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조금 생뚱맞은 것 아니냐 하시겠습니다만, 추리소설을 소개하려 합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주옥같은 추리소설을 탐독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지금도 추리소설에 매혹되어 있는 매니아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추리소설에 홀려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특별하게 챙기는 작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두루 섭렵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이유없이 추리소설과 거리가 생겨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눈길을 끈 작가가 생겼습니다. 바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추리소설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2001년에 발표한 처녀작 <13계단>으로 심사위원 모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13계단>은 보호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사형이 확정된 사카키바라의 원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교정관 난고와 가출옥한 준이치의 활약으로 문제의 해결에 이르는 추리소설로 사형제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8761).

 

<제노사이드>는 저자가 6년여의 공백을 깨고 2011년에 발표한 신작으로 야마다 후타로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나오키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소설부문에서 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는 소개이고 보면, 분명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 작품이 통상적인 수준의 추리소설이었다면 개인적으로 독후감을 쓰고 말았을 터인데, 굳이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 소설을 통하여 같이 생각해볼 점이 분명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목 ‘제노사이드(genocide)의 뜻을 위키백과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나치 독일이 유태인 등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집단학살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그밖에도 수많은 집단학살의 사례들이 있다는 사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가 <3의 침팬지>에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확인된 집단학살의 사례들은 15세기 이래 아주 최근인 20세기 말까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집단학살의 원인이 되는 동기를 분류하는 일은 그 정의만큼이나 어렵지만 이데올로기적 혹은 심리적 동기가 작용하는 경우와 이데올로기 대립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토지와 권력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해대립이 있는 경우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더 세분해보면, 군사적으로 우세한 세력이 그보다 약한 세력의 토지를 점령하려다 저항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경우, 다민족 사회의 내부에서 장기간 권력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말살함으로써 최종적인 해결을 꾀하는 경우, 14세기에 확산된 페스트의 속죄양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희생된 경우처럼 무력한 소수가 살해자의 욕구불만에 의하여 희생이 되는 경우가 있겠고, 끝으로 나치 독일이나 십자군전쟁처럼 인종적, 종교적 박해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다른 인종과 종교와 민족 집단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회정의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대규모의 살인 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집단학살을 염려하고 있는 제3자의 반응에 의해 중지, 축소 또는 방지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한편,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대량학살의 가능성은 대규모 핵전쟁과 환경파괴에 의하여 지구 생물이 대량으로 멸종될 수도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카노 다즈아키가 우려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신인류의 등장에 의한 현생인류의 멸망 가능성입니다. 이야기는 미국의 백악관에서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정례브리핑에서 국가정보장 왓킨스가 대통령 번즈에게 “인류 멸망의 가능성,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 출현”이라는 제목의 보고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사태는 1977년 슈나이더 연구소가 제출한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이미 경고되었다.(11쪽)”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바짝 당겨놓습니다. 이어서 미국정부는 콩고에 출현한 신종생물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에서는 이 신종생물을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참여하고 있는 사람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게 됩니다. 이야기는 미국 본토에서 시작해서 신종생물제거작전에 투입될 요원들을 이끌 조너선 예거가 선발되어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과정을 따라서 이라크, 남아프리카를 경유하여 사건의 현장인 콩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미국 정보국의 감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예거의 아들이 앓고 있는 폐포 상피세포 경화증이라고 하는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을 개발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보통 신약은 효능이 있는 물질을 발굴하여 시험관에서 효능시험과 안전성을 조사하고 쥐나 개와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치료용량을 투여하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하는 전임상시험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게 되면 정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사람에서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다시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을 검정하는 임상시험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은 짧게는 6년에 마칠 수도 있지만 10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고 최장 21년이 걸린 약물도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복잡한 신약개발과정을 한 달 이내에 마칠 수 있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기에 특별한 트릭을 숨겨 기한 내에 완성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콩고의 현장에 도착한 예거는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신종생물이 바로 신인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작가가 미리 치밀하게 배치한 장치에 따라서 신종생물 제거의 미션을 받고 투입된 요원들 모두가 신인류를 구출해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왜 신인류에 의한 현생인류의 멸망을 화두로 가지고 왔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브라이언 M. 페이건교수의 작품 <크로마뇽>에서는 기후변화가 현생인류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이 멸망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현생인류가 구인류를 집단적으로 공격하여 사라진 것이라는 가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하이즈만 보고서를 인용하여 예언하고 있는 신인류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 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제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 제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247쪽)” 작품을 통하여 신인류의 특징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신인류가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 것이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생인류와 신인류의 생태적 지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현생인류가 있는 한 신인류의 생식장소가 확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인류가 보는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의 나날을 보내는데다가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과학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작가 역시 침팬지들 사이에서도 다른 침팬지를 살해하여 살을 먹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만, 집단학살은 동물에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서만 보는 특징이라고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3의 침팬지>에서는 역시 유인원에서도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인원단계에서 이미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형질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도 장치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바로 겐토를 도와 신약을 개발하는 한국젊은이 정훈이 소개하는 한국적인 감성 ()’입니다. 바로 이 ()’이 신인류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는 미지수로 남겨놓기는 했습니다.

 

저자가 신인류가 등장한 장소로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은 집단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라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나 현생인류가 처음 등장한 곳이 아프리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즈만 보고서에 담은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247쪽)”얼마나 정교한 이론입니까?

 

그런데 신인류를 구출하고 살아갈 곳으로 일본인과 일본을 선정한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으로 집단학살의 피해를 입은 유일한 곳이라는 점도 있지만, 사실은 역사를 통하여 집단학살의 주도한 국가라는 상징을 떼어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자는 이 작품을 기획하고 가다듬는데 25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작품을 전개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문분야로 우선 떠오르는 것만 해도 무기체계와 인터넷관련 분야, 정보분야, 지구물리학, 북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 해양생태학, 무역, 제약 및 의학분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전혀 무리가 없어 녹아들어 걸림이 없으니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났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신인류의 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도 된다 생각되어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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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7-1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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