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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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에서 11월에 읽기로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미리 읽었습니다. 412편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1653쪽에 이르는 3책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오랫동안 읽지 못하던 책을 고전독서회 덕분에 읽게 된 셈입니다.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구성에 따라서 4부로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4책으로 나누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1부에서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중년의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의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두 명의 아내 사이에서 드미트리미챠, 이반, 알렉세이 등 세 아들을 얻었지만 아들이 장성하는 동안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표도르의 비사교적인 성품은 하인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와 그의 아내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 두 사람과 파벨 표도르비치 스메르자코프를 하인 겸 요리사로 함께 지내고 있지만 별채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메르자코프는 마을의 떠돌이 백치여인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의 아들로 표도르의 사생아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들들보다 오히려 사생아를 곁에 두고 신임하는 형국입니다. 두 아내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홀로 사는 표도르는 과거 삼소노프의 정부이자 사업가인 그루센카를 두고 큰 아들 드미트리미챠와 삼각관계를 이룰 만큼 비정한 호색한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품이 결국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드미트리미챠와 이반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베르호프체바라는 미모의 여성과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합니다. 부자들 사이에 두 여인까지 끼어서 복잡하게 엮이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않습니다. 사생아를 포함하여 네 아들 가운데 수도사의 길을 걷다가 환속하는 알렉세이만이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들 사이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역할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작가는 모두에서 이 이야기의 구성을 설명합니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두 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설을 13년 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데, 본편이라 할 두 번째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소설이라고까지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첫 번째 소설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잡하게 구성된 가족들, 특히 부자지간의 갈등이 결국 존속살인을 낳는 과정을 보면 19세기의 러시아 사회의 모습이 즉물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한 오늘날의 우리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 드미트리미챠를 부친살해의 범인으로 몰아가는 법집행 구조는 미숙하기만 합니다. 드미트리미챠를 기호한 검찰은 사망한 표도르의 사체에 남은 상처를 엄밀하게 검증하였더라면 드미트리미챠의 혐의를 의심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들의 의식적인 혹은 분명치 않은 상황진술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하려 하였고, 재판부 역시 이를 인용하여 드미트리미챠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인 스메르자코프가 자살한 만큼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과 사건 전후의 상황은 미주알고주알 설명되어 있지만 기승전결의 마지막 단계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느낌입니다. 본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불거진 지엽적인 사건에 등장하는 소년 일류샤의 장례식이 대단원의 마지막 장면으로 삼은 이유는 그저 불화를 빚던 아이들이 화해과정을 거쳐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미래를 지향한다는 설정으로 보입니다만 부당하게 살인의 누명을 쓴 당사자와 오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뒷이야기는 뒤편으로 밀려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렉세이를 중심으로 스승인 조시마 장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나 마지막부분에서 죽음을 맞는 일류샤와 아이들의 갈등을 시시콜콜하게 적은 것은 사족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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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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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지하철>을 읽었습니다. 요즈음 지하철과 전철로 통근을 하고 있어서거나 혹은 기차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망도 외국의 어느 도시의 그것과 비교하여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은 도쿄의 지하철역에 있는 사무실을 근거로 의류와 잡화를 다루는 직장에 다니는 남자가 겪는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신지 사키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낸 고누마 사키치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형은 중학교 2학년에 가출한 뒤에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신지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가출하여 독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인연으로 만난 오카무라 사장 밑에서 중년이 되도록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동창회에 갔다가 만취하게 된 신지는 지하철을 타게 되는데, 중간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빙 돌아서 집에 가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 내린 지하철에서 나와 보니 삼십 년 전의 시점으로 거슬러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아카무라 사장과 연인관계인 디자이너 미치코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신지의 시간여행을 이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미치코의 경우는 신지와 같은 꿈을 통하여 과거로의 여행을 함께하게 됩니다.


시간여행에서는 현재로부터 다른 시간으로 가는 출입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하철>에서는 바로 지하철의 특정한 구역이 그런 출입구가 되는 셈입니다. 신지가 과거로 돌아가 처음 시도한 일은 형의 죽음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 돌아왔을 때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신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던가 봅이다. 그 이유는 뒤에 설명이 됩니다.


신지와 미치코의 시간여행은 같은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를 둔 배다른 형제였던 것입니다. 흔히 시간여행의 금기사항으로 방문한 곳에서 역사를 바꾸어놓을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지가 형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미치코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는 지하철이나 전철의 승강장을 폐쇄하는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아마도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철로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마련된 대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 간 적이 있는 데 학회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전철역으로 향하다가 승강장에서 철로로 떨어진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신지의 형이 택한 자살 방식이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었던가 봅니다.


신지의 시간여행은 지하철을 타는 것 말고도 꿈을 통하여 과거로 거슬러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통하여 갈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고, 나중에는 고누마 사키치가 출전한 만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누마 사키치가 징집되어 입대하는 장면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지하철역까지 나가 환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을 뽑아 전선에 내보낼 때도 같은 행사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풍습은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래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자식이나 친구가 입대할 때는 역에까지 나가 환송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훈련소에까지 따라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시간여행에서 만나는 젊은이가 바로 독선과 고집 그리고 폭력으로 일관하는 냉혈한으로 각인된 아버지의 젊었을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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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 - 연금술사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는 어떻게 불멸에 도전하는가 한빛비즈 교양툰 19
브누아 시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홍성욱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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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건의료 누리망신문 라포르시안에서 <양기화의 BOOK소리>라는 인문학 분야의 독후감을 연재할 무렵 <찬란하고 쓸쓸하도깨비>라는 연속극을 방영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재방송을 하면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고려 말 장군으로 환관의 음모에 걸려 죽음을 당하고 935년 동안 도깨비라는 불멸의 존재로 살다가 무()로 돌아갑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멸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생을 꿈꾸었던 대표적인 인간으로 진시황을 떠올리는 것은 그가 영생의 묘약을 찾기 위하여 동방으로 사람을 보냈고, 그 동방이 바로 조선이었다고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진시황 말고도 영생을 꿈꾼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그런 의문을 가진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만화입니다.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수필가인 브누아 시마가 글을 쓰고 역시 프랑스의 창작 만화가 필리프 베르코비치가 그림을 그린 <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입니다. 한빛비즈의 과학분야 교양툰으로는 여덟 번째로 나온 작품입니다. 만화에서 불멸의 역사를 설명하는 화자는 영국의 수학자이며 컴퓨터과학의 선구자인 엘런 튜링입니다. 화자는 과학기술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지적 운동을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를 꿈꾸는 것이 대표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의 예입니다.


화자는 불멸을 꿈꾼 사람들의 뿌리를 찾아 기원후 2세기 무렵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바로 초기 기독교의 첫 번째 이단인 그노시스파입니다. 물질세계는 허구이며 정신세계야말로 신이 창조한 올바른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불완전한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사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단으로 몰렸지만 그노시스파의 이원론은 후대의 사상과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독교에서 영생을 노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시작된 불멸을 이루기 위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연금술이 탄생하였습니다. 연금술을 3세기 무렵 역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금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적인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15세기 무렵에는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로봇과 같은 것이겠지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인공생식을 통하여 인간을 발생시킨댜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산과 정보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탄생했고, 기계공학의 발전으로 로봇이 정교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도 등장했습니다. 세상이 이렇듯 변화하면서 인간이 불멸을 이루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영혼의 영생을 얻어 부활할 것이라는 개념이, 살아오면서 얻은 모든 기억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옮기면 불멸을 이루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를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다. 필멸의 존재는 죽음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체는 죽음을 맞기 때문에 그의 일생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불멸으 존재가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생활을 반복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불멸의 역사를 짚어보고, 앞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는 불멸의 세계를 예견하면서 과연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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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1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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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등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중 세 번째 작품을 읽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모두 다 예쁜 말들>의 주인공 존 그래디와 <국경을 넘어>의 주인공 빌리 파햄이 함께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앨파소 부근에 있는 맥의 작은 목장에서 일합니다. 목장에서 일하는 목부들의 일상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 그려집니다.


야생마를 길들이고 소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만, 목장은 점차 황폐해집니다. 군대가 목장을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이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목장 일을 사랑한다는 느껴집니다. 어쩌면 작가는 미국 남부의 목장에서의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해놓으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에서는 소를 잡아먹는 늑대를 생포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만, <평원의 도시들>에서는 송아지를 공격하는 들개 떼를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따라 기차가 달리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려집니다. “앨패소를 빠져나온 기차는 동쪽으로 달려갔다. 밤을 뚫고 푸른 평원을 가로질러 랭트리와 델리오로 향했다. 선로 옆 어둠 속에 석탄처럼 떠 있는 소들의 눈과 사막의 덤불을 전조등의 하얀 빛기둥이 비추었다. 어깨에 설피를 두르고 언덕에 선 목동들이 달려가는 기차를 바라보고, 자그만 사막 여우가 어스름이 깃든 철로 아래로 들어와 기차 꽁무니를 향해 코를 킁킁거리고, 따스한 강철 레일이 밤새 윙윙거렸다.(172)”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도로에서 달리는 차와 부딪쳐서 죽는 야생동물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만, 개발이 되지 않은 초원에 사는 산토끼와 올빼미와 같은 야생동물들이 자동차를 만났을 때 대응방법을 몰라 끔찍하게 희생되는 장면들도 그려집니다.


두 사람은 해 뜰 때부터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서 금쪽같은 1달러를 버는 삶을 좋아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끔 강을 건너 멕시코 마을에 있는 매음굴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존 그래디가 국경 너머 멕시코의 후아레스에 있는 매음굴에 있는 막달레나라는 창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흘러갑니다. 존은 빌리에게 매음굴의 포주를 만나 두 사람의 결혼을 성사시켜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매음굴의 포주 에두아르도는 찾아온 빌리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존은 막달레나와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등 결혼 준비를 마치고 막달레나가 미국으로 이주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밟습니다. 하지만 막상 막달레나는 미국으로 떠나는 날 누군가에 납치되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에두아르도의 주변 인물들은 에두아르도 역시 막달레나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면 사랑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국 존은 막달레나의 복수를 위하여 국경을 넘어 에두아르도와 한판 승부를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칼솜씨가 좋은 에두아르도가 일방적으로 존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존은 에두아르도의 공격을 받으면서 접근하여 목숨을 끊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에두아르도의 마지막 일격을 맞은 존 역시 빌리에게 구명을 요청하지만 빌리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존이 죽은 뒤에 빌리는 목장을 떠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기 후기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10대에는 부모를 비롯하여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20대에는 아끼는 존 역시 죽음을 맞으면서 정을 붙일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유랑길에서 만난 사람과 크래커를 나누어 먹으면서 삶과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은 기억해둘만합니다. “모든 사람의 죽음은 다른 모든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는 것이죠. 죽음은 예외 없이 찾아오기에 우리 대신 죽은 이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죽음의 공포를 싸워 이길 방법이 없죠.(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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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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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였는지, 아니면, 에르빈 슈뢰딩거 교수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에서 물의 빙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이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개정판이 나온 것도 뒤늦게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커트 보니것은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키보키언은 병리의사로  알츠하이머병 등과 같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가 발명한 자살장치를 제공하여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에서는 임사체험을 통하여 사후세계로 들어간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아돌프 히틀러, 아이작 뉴턴과 같이 작고한 분들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더라는 독특한 기획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을 때 드레스덴에 있는 도살장을 개조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5도살장>은 인간은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을 시사하는 환상소설입니다.


<고양이 요람>은 제2차 세계대전 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도시가 사라졌을 때,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원자폭탄 개발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필릭스 호니커 박사의 아들로부터 원자폭탄 투하 당일 호니커 박사는 고양이 요람이라는 실뜨기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실뜨기(string figure)는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행해져온 놀이로 매듭을 지은 실을 손가락으로 엮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혼자서 혹은 둘이서 경기를 하기도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실뜨기를 고양이 요람(cat’s crade)이라고도 하는데, 태어난 예수를 구유에 뉘었다는 데서 cratch-cradl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화자는 호니커 박사는 원자폭탄의 개발 이외에도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진흙탕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아이스 나인을 개발하여 세 자녀에게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스 나인은 녹는점에 45.8도인데, 아이스 나인이 물과 접촉하면 순식간에 얼어붙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호니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것들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하여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를 휩쓸어버린 뒤에 어떤 과학자가 이제 과학이 죄악을 알게 되었군요라고 탄식하는 것을 듣고는, ‘죄악이 뭐요?’라고 되물었다는 것입니다.


호니커 박사의 흔적을 뒤쫓던 화자는 카리브 해에 있는 가상의 섬 세인트 로렌조에 이르게 됩니다. 가난한 나라인 이곳에는 보코논이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배가 난파하여 표류해온 보코논이라는 사람이 가난한 섬사람들 도와주기위하여 창시한 종교로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보코논교도입니다. 하지만 종교의 창사지 보코논은 보코논교도라는 사실이 밝혀진 사람을 참수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호니커 박사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남겨준 아이스 나인을 팔아서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게 되는데, 세상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어 파멸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통제되지 않고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코논이라는 종교를 통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현실과 부합하는 듯하면서도 생뚱맞아 보이는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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