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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 ㅣ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였는지, 아니면, 에르빈 슈뢰딩거 교수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에서 물의 빙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이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개정판이 나온 것도 뒤늦게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커트 보니것은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키보키언은 병리의사로 알츠하이머병 등과 같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가 발명한 자살장치를 제공하여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에서는 임사체험을 통하여 사후세계로 들어간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아돌프 히틀러, 아이작 뉴턴과 같이 작고한 분들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더라는 독특한 기획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을 때 드레스덴에 있는 도살장을 개조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5도살장>은 인간은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을 시사하는 환상소설입니다.
<고양이 요람>은 제2차 세계대전 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도시가 사라졌을 때,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원자폭탄 개발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필릭스 호니커 박사의 아들로부터 원자폭탄 투하 당일 호니커 박사는 고양이 요람이라는 실뜨기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실뜨기(string figure)는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행해져온 놀이로 매듭을 지은 실을 손가락으로 엮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혼자서 혹은 둘이서 경기를 하기도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실뜨기를 고양이 요람(cat’s crade)이라고도 하는데, 태어난 예수를 구유에 뉘었다는 데서 cratch-cradl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화자는 호니커 박사는 원자폭탄의 개발 이외에도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진흙탕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아이스 나인을 개발하여 세 자녀에게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스 나인은 녹는점에 45.8도인데, 아이스 나인이 물과 접촉하면 순식간에 얼어붙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호니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것들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하여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를 휩쓸어버린 뒤에 어떤 과학자가 ‘이제 과학이 죄악을 알게 되었군요’라고 탄식하는 것을 듣고는, ‘죄악이 뭐요?’라고 되물었다는 것입니다.
호니커 박사의 흔적을 뒤쫓던 화자는 카리브 해에 있는 가상의 섬 세인트 로렌조에 이르게 됩니다. 가난한 나라인 이곳에는 보코논이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배가 난파하여 표류해온 보코논이라는 사람이 가난한 섬사람들 도와주기위하여 창시한 종교로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보코논교도입니다. 하지만 종교의 창사지 보코논은 보코논교도라는 사실이 밝혀진 사람을 참수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호니커 박사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남겨준 아이스 나인을 팔아서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게 되는데, 세상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어 파멸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통제되지 않고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코논이라는 종교를 통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현실과 부합하는 듯하면서도 생뚱맞아 보이는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