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수학 -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
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지음, 박형주 감수 / 민음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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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수학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수학이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졸업을 했습니다만, 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수학적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수학을 전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라는 부제가 달린 <문명과 수학>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에서 기획한 방송프로그램 <문명과 수학>을 제작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방송제작팀이 만든 책답게 중요한 사실 중심으로 잘 요약되어 서술적으로 적고 있어 마치 방송을 시청하는 것처럼 쉽게 읽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방송화면을 통하여 소개된 다양한 그림들을 같이 볼 수 있어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야기는 1858년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헨리 린드가 이집트의 룩소르 시장에서 사들인 한 장의 파피루스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쓴다.” 이 문건은 견습서기들을 위한 기하와 산술문제집이었다고 하는데,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꼴, 원 등 도형의 넓이와 원기둥, 피라미드의 부피를 구하는 법 그리고 단위 분수의 계산과 일차 방정식 풀이 등을 포함해서 모두 84개의 문제를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다닐 때 배웠던 수학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 시대의 수학은 지금처럼 정교하지는 않지만 거의 4천년 전에 지금의 수학으로 얻는 결과에 아주 근접하는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실용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용적인 방법으로 간략하게 접근하던 수학이 사고를 통하여 논리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스 시대의 피타고라스(B.C. 580?~500?)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가 ‘증명’을 통하여 수학적 법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피타고라스학파가 ‘학문이 가미된 고대의 신비종교집단’ 같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불멸과 윤회를 믿었고, 채식 위주의 금욕적인 생활로 육체를 정화시키고자 노력했다.(61쪽)”라고 하니 논리적이었다는 학자들이 엉뚱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피타고라스학파를 중심으로 꽃을 피운 수학은 유클리드(BC 330~BC 275)에 의하여 정리되는데, 그가 쓴 <원론> 안에는 모두 23가지의 정의를 담고 있고, 유클리드는 이 정의를 이용해서 증명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저자는 유클리드의 원론에 입각하여 정삼각형을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삼각형을 그리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저자가 삽입해놓은 그림을 보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클리드는 증명을 마친다음에 언제나 Q.E.D.라고 적어 넣었다고 하는데, 이는 Quod Erat Demonstrandum라는 라틴어 낱말을 줄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 문장은 ‘이로써 증명되었다.’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직역하면 ‘이것이 보여져야 할 것이었다.(70~71쪽)’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을 로마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인도의 수학과 결합하여 새롭게 진화하는 과정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현대수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인 숫자 0의 개념이 있습니다. 숫자 0에 대하여 이 책을 감수하신 포항공대의 박형주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존재와 부재를 넘나드는 기묘한 숫자 0이 유럽 수학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용된 건 이제 겨우 500년 남짓 밖에 안된다.(21쪽)” 박교수님은 <문명과 수학>이 바빌로니아 문명이 빠져있고 특히 중국문명이 다루어지지 않은 점 등, 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모든 문명을 뒤져낸 것이 아니라는 제한점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책으로 만들게 된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학은 대입 수능 시험의 중요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피타고라스가 세계의 근원을 묻고 진리를 탐구하던 영역으로서의 수학은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 수학의 현실은 현대의 모든 학문이 처한 위기이기도 하다. 세상의 신비를 캐고, 진리를 알아 나가는 즐거움, 학문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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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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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지나면서 갑오년이 제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갑오년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60갑자가 일주하여 태어난 해의 간지를 다시 맞게 된 것입니다. 제가 갑오년을 다시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언젠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써오던 일기를 읽어보고는 너무 치졸하다싶었던지 모두 내다버린 적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적고 있는 글들도 나중에 읽어보면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쓴 것이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철저하게 변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같은 모습으로 남는 듯하다.”는 줄리언 바지니의 말에 공감하게 될 것 같습니다.(줄리언 바지니 지음, 에고 트릭, 10쪽, 미래인, 2012; http://blog.joins.com/yang412/12873764) 자아를 가지고 있는 생물, 즉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바지니의 말에는 자아의 두 가지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나로 만드는 변함없는 핵심이 존재한다는 ‘진주 관점’이라고 하는 일반적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는 항상 변화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묶음에 가깝다는 ‘묶음이론’이라 불리는 관점입니다.

 

이렇듯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개인의 관심 수준에서 머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수준으로, 그리고 우주의 수준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는 우주의 시원과 종말에 관한 과학적 연구성과를 정리한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43832>와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59055>가 다루는 스케일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우주생물학자이며 아리조나대학교 천문학의 크리스 임피교수는 이 책들을 통하여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우주의 시작은 말할 것도 없고, 역시 누구도 볼 수 없을 우주의 종말을 예측하고 있어 읽는 이의 호기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원과 종말은 천체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제 예측이 가능한 범주에 들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오히려 인간의 시작을 더듬어보는 일이라던가 인간의 종말을 예측하는 일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대상을 조금 넓혀서 지구생물들의 발자취를 짚어보고,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볼프 슈나이더는 ‘인류는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유엔 환경계획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지구를 파헤치고 덧붙이고 유린하고 있다. 더 심각한 일도 저지른다. 인류는 마지막으로 남은 자원과 마지막으로 남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최후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인류가 해온 일들을 정리하고, 이러한 진단이 틀렸기를 희망하면서 우울한 미래를 내다보기도 합니다.(볼프 슈나이더 지음, 인간 이력서, 12쪽, 을유문화사,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296412) 그래서 저는 이런 작업들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 혹은 생존을 위한 자기점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시간에 비하면 인류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오랜 과거의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아있는 흔적이 그리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쌓인 방대한 자료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을 세운 에드워드 윌슨교수의 <지구 정복자>는 ‘사회성’이라는 화두로 인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목에 넣은 ‘정복’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볼프 슈나이더 역시 <인간이력서>에서 “지구는 우리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 더위, 추위, 사막, 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복했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칫 오만해 보이는 ‘정복’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윌슨교수가 <지구정복자>에서 “인간은 생명의 역사에 출현한 다른 어떤 종과도 달리 생물권을 정복하면서 황폐화시켜왔다. 인간이 해 온 짓을 볼 때, 인간은 정말로 독특하다.(23쪽)”라고 적고 있는데서 인간을 우월적 존재가 아니라 지구 파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섞인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라기보다는 “지구에서 우리 인간은 우세종에 해당된다.”(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 지음,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571쪽, 사이언스북스, 2008년; http://blog.joins.com/yang412/12597810)라는 생각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윌슨 교수의 <지구정복자>로 돌아오면, 이 책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담은 다윈의 진화이론으로는 어렵던 생물들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해온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적합도 이론’을 버리고 ‘집단선택’이론으로 회귀하는 논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윌슨교수는 장대익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곤충의 복잡다단한 생태를 더 깊이 연구하면서 혈연선택보다 생태적 요인이 진사회성의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중앙일보, 2013년 11월 30일자 기사, [책과 지식] 다윈이 몰랐던 것 … 진화의 원동력은 협력(http://blog.joins.com/yang412/13282842)”라고 변화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윌슨교수의 입장변화는 진화학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고 하는데, 심지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살짝 던져 놓을 게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져야 할 책이다. 정말 유감이다.”라는 서평을 남겼다고 합니다. 진화학계를 뜨거운 논쟁으로 몰아넣은 윌슨교수의 주장을 음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저자는 독특하게도 불운한 화가 폴 고갱의 삶을 요약하면서 그가 남긴 명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 그대로도 이 책의 의미를 잘 살리고 있다고 보입니다만, 윌슨교수는 ‘고도의 사회생활은 왜 존재하고, 그토록 드물게 출현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진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열망을 늘 품고 있던 고갱은 파리를 떠나 타히티에 정착해서 원시주의(primitivism)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고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의 깨달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데,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 작품은 제가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유럽미술전시관을 수리하면서 닫고 있어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아쉽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879810).

 

정영숙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으면서 “이 그림은 우리에게 인생의 근원과 행로에 대해 생각게 한다. 그러나 많은 미스터리가 담긴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정영숙 지음, 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읽기, 155쪽, 이담출판사,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21741)이라고 했습니다. 화가는 이 그림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가며 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림은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상단에 배치한 복잡한 듯 얽힌 넓고 깊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군상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 조금 뒤로 물러나 원죄와 사후세계를 담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중앙에서 오른쪽 뒤편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볼 수 있고, 이들의 원죄로 태어나는 아이가 맨 오른편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하고 잠자는 아기에게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편함은 그가 짊어지고 태어난 원죄의 고난으로 해석한다고 합니다. 중앙에 양손을 위로 올려 사과를 따고 있는 인물은 개인의 자아인식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은 지혜를 얻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어서 사과를 먹고 있는 아이와 생기가 느껴지는 젊은 여인, 그리고 늙은 여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늙은 여인은 어둡게 표현하고 있지만, 눈동자에서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중앙에서 왼쪽 뒤편에는 푸른색으로 채색된 우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후세계의 여신 히나를 표현한 것으로 그림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윌슨교수는 인간진화의 원동력을 ‘혈연 이기성’ 보다 ‘사회성’에 두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그의 전공분야이기도 한 곤충학의 연구성과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장류도 마뜩치 않을텐데 곤충을 비교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만, 지구의 다른 사회적 정복자들, 즉 고도로 사회학적인 개미, 꿀벌, 말벌, 흰개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얻은 결과가 인류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간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을 가진 진사회성 동물(eusociality animal)에 속하는데,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것이 인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사회성 진화 전체를 살펴보면, 인과관계로 연결된 두 현상으로 이루어진 한 가지 패턴이 뚜렷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현상은 육상 환경에 서식하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 체제를 갖춘 종들이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현상은 진화적으로 볼 때, 그런 종들이 아주 드물게 출현했다는 것이다.(137쪽)” 진사회성 동물로는 인간과 약2만종의 곤충이 알려져 있는데, 개미, 벌, 말벌, 흰개미가 대부분으로, 약 100만종에 달하는 곤충 중에서 겨우 2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제 집단 간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개별집단의 특성이 서로 섞이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인데, 곤충류들의 집단은 어느 정도 간격이 좁혀지고 있는지, 집단 간의 교류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사회성이라는 유사성만으로 직접 비교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명패턴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곤충사회의 문명패턴의 발전양상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1부에서 ‘사회성’이라는 수수께끼를 설명하고, 이어서 2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서는 인간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지난 반 세기동안, 침팬지와 갈라져 나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의 진화의 원동력으로 포괄적합도라는 집단 수준의 특성을 만드는 원인으로 상정된 혈연선택(kin selection)을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윌슨교수는 포괄적합도라는 일반이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개별 구성원의 형질을 표적으로 삼는 선택압과 집단 전체의 형질을 표적으로 삼는 다른 선택압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구성되는 다수준선택(multilevel selection)을 제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개체선택이 집단 선택을 압도하는 일은 포유동물을 비롯한 척추동물에서는 드물 뿐 아니라, 결코 완성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75쪽)’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주장은 개체수준에서 우월한 형질이 출현하여 누적된 결과가 집단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자연선택설에 배치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곤충류의 진사회성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포유동물의 생활사와 집단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포유동물의 사회성 진화에서는 곤충과 흡사한 사회체제가 결코 나올 수 없다.’라고 제한점을 밝히기도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흔적을 보면 현생인류와는 달리 수십만 년을 살아왔지만, 원시적인 석기제작 기술에 머물러 유의미한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3만 년 전에 사라진 점을 본다면 진사회성 만으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3부와 4부에서 사회성 곤충들이 무척추동물계에서 우위종의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이어서 5부에서는 인간이 지구생물 가운데 우위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근본적 이유를 언어, 문화,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읽는 이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빈약해 보이는 점도 조금 아쉽습니다.

 

저자는 과학기술의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10년 이후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고,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보다는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고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복해온 행성은 저 너머 어떤 다른 차원에 있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들른 정류장 같은 게 아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이자, 앞으로도 인류의 유일한 고향일 곳을 파괴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도덕 교훈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359쪽)”라는 점을 인식하는 새로운 계몽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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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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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을 바탕으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토리의 극적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하여 스토리를 보완하기도 하고, 스토리가 지나치게 길어 줄일 수도 있어 원작을 읽어야 쉽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트르담의 꼽추>도 그랬고, <안나 카레니나> 때도 원작을 미리 읽은 덕분에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래 전 세계 27개국 145개 도시 공연, 1억 3천만 명이 관람하였다고 하는데, 브로드웨이 공연은 1988년 시작해서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을 기록하고 있는 뮤지컬계의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한국어 공연이 무대에 오른 이후 2005년 오리지널 공연팀이 내한 공연을 펼치기는 등 여러 차례 관객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관극하지 못했습니다만, 뮤지컬로 만나기 전에 원작으로 먼저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꿈속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것인데 이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서 아서 코넌 도일이나 에드거 앨런 포와 비견되는 추리소설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수나 배우들이 귀신을 만나게 되면 대박을 낸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만, 화려하고 웅장한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사건을 조사해온 조사관이 밝혀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엮어놓은 것입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총감독들의 퇴임 축하 공연과 만찬이 벌어질 중요한 날, 무용단원들은 복도에서 유령과 마주쳤다고 소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날 축하공연에서는 그동안 오페라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여가수 크리스틴 다에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를 선보이면서 오페라하우스의 새로운 히로인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프랑스로 옮겨 음악활동을 해온 크리스틴은 라울 샤니 자작과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사이인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활동이 위축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변화는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음악천사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틴은 우연히 접근한 에릭이 바로 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악천사라고 믿고 도움을 받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에릭은 추한 몰골로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다가 페르시아 왕궁에서 미로를 건축하는 일을 하고서 죽임을 당할 상황에서 천우신조로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온 사람으로 오페라하우스 건설에 참여하면서 지하에 미로를 건설하고 숨어살고 있는 인물로 크리스틴의 음악에 빠져들면서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에릭은 흉측한 외모를 가져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지만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크리스틴은 라울을 좋아하지만 귀족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차에 접근한 에릭에게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게 됩니다. 라울은 크리스틴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공연 중인 그녀를 지하 호숫가에 있는 집으로 납치하기도 하는데, 라울은 때맞추어 등장한 페르시아인의 도움을 받아 유령과 크리스틴을 추적하기에 이르는데.... 크리스틴이 에릭에게 결혼을 약속한 것은 라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만 일까요? 아니면 “제발 나를 사랑해주시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준다면, 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난 어린 양처럼 순해질 수 있을거요.(441쪽)”라는 에릭의 절절한 고백도 그의 추한 외모 때문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일까요?

 

오페라 하우스에 설치된 미로를 꿰뚫어 보고 있는 에릭이 객석과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사건사고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공연 중인 배우 카를로타의 노래까지 망가트린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인의 등장도 뜬금없어 보입니다. 라울이 페르시아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라울은 뜨거운 손으로 페르시아인의 손을 힘차게 움켜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싸늘했다.(373쪽)”고 적어서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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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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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케니스 슬라웬스키의 <샐린저 평전>을 읽기 위하여 미리 읽어보았습니다. 1952년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 장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6살 된 소년 홀든 콜필드입니다. 대기업의 고문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피비와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D.B라는 형이 있습니다. 백혈병으로 일찍 죽은, 감수성이 예민한 남동생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착한 형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가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형 D.B.에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세 번이나 퇴학을 당하고 펜실베니타, 에거스 타운에 있는 명문 펜시 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겉돌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퇴학을 당하게 되는 시점으로부터 2박 3일 동안 겪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콜필드를 둘러싼 사람들은 피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도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펜시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 사유는 성적불량입니다. 다섯 과목 가운데 영어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를 한 것입니다.

 

콜필드가 평소 학생들을 아끼는 역사교사 스펜서선생님을 찾아가 퇴학사실을 알리는 장면에서 보면 수업을 밥먹듯이 빠지는 문제학생은 아닌 듯한데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배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시험지를 채우지 못한 것이 가장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퇴학을 통보받던 날도 펜싱시합에 나갔다가 지하철에 장비를 모두 두고 내리는 바람에 시합도 못해본 것인데, 그 책임이 모두 콜필드에게 쏟아지게 된 모양입니다. 그의 룸메이트 스트라드레이터나 이웃방을 쓰는 에클리와도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데면데면한 모양입니다.

 

콜필드는 학교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지만 집에 일찍 돌아가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며칠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기 위하여 호텔에 방을 잡고서 클럽에 찾아가지만 예전에 형하고 사귀었던 릴리안과 만나는 바람에 클럽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이 꼬이려다 보니 포주에게 엮여서 충동적으로 매춘부를 부르게 되지만 관계를 기피하게 되는데, 결국은 돈을 더 빼앗기고 얻어맞는 사고를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집에 숨어들어가 피비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는 순간 파티에 갔던 부모가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숨죽여 집을 나선 콜필드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엔톨리니 선생님 집을 찾아가서 하루 신세를 지려하지만 그의 동성애적인 접근에 놀라 뛰쳐나와 역에서 노숙을 하고 맙니다. 어디에 마음을 붙일 만한 곳을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서부로 떠나려 작정을 하고 마지막으로 피비를 만나려 학교를 찾아가지만 피비가 따라나서는 바람에 결국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데서 이야기가 끝나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신과치료를 받게 되었던 모양입니다만, 이야기의 전체를 통해서 그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의 시각에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정신과진료의 이력이 콜필드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229~230쪽)”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젊은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헷갈립니다.

 

2박 3일 동안의 기록을 두고 성장소설이라고 하기는 그렇구요. 감수성이 예민한 콜필드가 어른의 사회를 위선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라고 단정짓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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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서 보물찾기 - 유럽 문화 수도 페치에서의 일 년 두 번째 티켓 2
김병선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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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덕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부다페스트의 분위기는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1869004). 그런 까닭에 김병선교수님의 <헝가리에서 보물찾기>와의 만남에서 기쁨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부다페스트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적은 것처럼 헝가리 남쪽의 국경도시 페치에서 생활한 1년여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페치는 2010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곳에 있는 국립 페치대학교에서, 아직 한국학 전공은 없으나 한국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두 아들이 페치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큰 아들이 치과대학을 작은 아들이 의과대학을 다닌다고 합니다.

 

저자의 아들들이 처음 헝가리에 도착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라고 적었습니다. 다운타운이 뉴욕의 할렘가 같다거나, 사람들로부터도 환대는 고사하고 호의적인 표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도착하면서 서울에서 부친 짐이 저와 같이 도착하지 않아 다음날 따로 왔다거나 하는 등의 이벤트가 있었기도 합니다만, 제가 처음 헝가리에 도착해서 받은 느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1854038).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헝가리 사람들의 의외로 속 깉고 정도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헝가리에 대한 인상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헝가리에 도착한 첫날 밤에 ‘유럽을 만끽해보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감각도 확장해보자’라는 각오를 다진 것처럼 헝가리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특히 헝가리사람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상세하게 적고 있어, 혹여 헝가리에서 장기간 체류해야 할 분들에게 소중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집얻기, 인터넷 개통, ID만들기, 버스 정기권 끊기, 차사기, 등등 이런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일 것 같습니다. 특히 헝가리 특유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대로 된 헝가리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전공이나 하고 있는 일 때문인지, 헝가리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길지 않은 기록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헝가리의 의료 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라고는 한다. 다만, 첨단 의료기기는 많이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병원 진료는 무료이고, 약국 비용은 절반만 내니, 병원의 시설 확충은 자연히 국가의 몫이 된다. 다만 의사들의 진료 수준이 괜찮아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치료비를 필요로 하는 서구 사람들이 헝가리 병원을 많이 찾고 있는 상태다. 오스트리아 접경의 소프론이라는 도시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치과병원이라 할 정도로 의료관광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그 수입에 신경을 적잖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의과대학도 그러한 평판에 힘입어 외국 학생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247쪽)”

 

헝가리에는 모두 4개의 국립의과대학이 있고, 모두 영어 과정이 있어, 외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헝가리 학생들은 대부분 국비로 공부를 하지만 일부 헝가리학생들이나 외국학생들은 모두 자비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유학대행업체가 예비과정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송출하기도 하는데, 영어가 웬만큼 되고 학업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입학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본과 공부는 만만치 않아서 중도에서 탈락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입학하고 2~3년이 지나면 90%가 자의 혹은 타의로 학교를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졸업을 한 다음일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헝가리 의사자격증을 받게 되는데, 환자를 대한다는 것은 그 환자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타국의 의사면허를 인정하는데 일정한 제한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외국에서 면허를 딴 한국인들에게도 의사면허시험을 볼 자격을 주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의사국가시험에는 필기시험 이외에도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다루는 실기시험를 치러 각각 합격해야만 합니다.

 

저자는 “가장 인도적인 행위인 의료행위를 제한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언어만 잘 통한다면 의사야말로 국경에 제한 없이 진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309쪽)”라고 적고 있습니다만,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환자진료에 필수적인 의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데, 나라마다 의학교육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수준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목에도 담았습니다만, 저자가 페치에서 1년을 보내면서 발견한 가장 큰 보물은 헝가리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정(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언젠가는 헝가리에서 다시 살아보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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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선 2015-03-0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이 책의 저자입니다.

처음처럼 2015-03-04 2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제분들이 좋은 의사로 성장해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