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케니스 슬라웬스키의 <샐린저 평전>을 읽기 위하여 미리 읽어보았습니다. 1952년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 장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6살 된 소년 홀든 콜필드입니다. 대기업의 고문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피비와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D.B라는 형이 있습니다. 백혈병으로 일찍 죽은, 감수성이 예민한 남동생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착한 형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가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형 D.B.에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세 번이나 퇴학을 당하고 펜실베니타, 에거스 타운에 있는 명문 펜시 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겉돌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퇴학을 당하게 되는 시점으로부터 2박 3일 동안 겪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콜필드를 둘러싼 사람들은 피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도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펜시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 사유는 성적불량입니다. 다섯 과목 가운데 영어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를 한 것입니다.
콜필드가 평소 학생들을 아끼는 역사교사 스펜서선생님을 찾아가 퇴학사실을 알리는 장면에서 보면 수업을 밥먹듯이 빠지는 문제학생은 아닌 듯한데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배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시험지를 채우지 못한 것이 가장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퇴학을 통보받던 날도 펜싱시합에 나갔다가 지하철에 장비를 모두 두고 내리는 바람에 시합도 못해본 것인데, 그 책임이 모두 콜필드에게 쏟아지게 된 모양입니다. 그의 룸메이트 스트라드레이터나 이웃방을 쓰는 에클리와도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데면데면한 모양입니다.
콜필드는 학교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지만 집에 일찍 돌아가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며칠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기 위하여 호텔에 방을 잡고서 클럽에 찾아가지만 예전에 형하고 사귀었던 릴리안과 만나는 바람에 클럽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이 꼬이려다 보니 포주에게 엮여서 충동적으로 매춘부를 부르게 되지만 관계를 기피하게 되는데, 결국은 돈을 더 빼앗기고 얻어맞는 사고를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집에 숨어들어가 피비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는 순간 파티에 갔던 부모가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숨죽여 집을 나선 콜필드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엔톨리니 선생님 집을 찾아가서 하루 신세를 지려하지만 그의 동성애적인 접근에 놀라 뛰쳐나와 역에서 노숙을 하고 맙니다. 어디에 마음을 붙일 만한 곳을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서부로 떠나려 작정을 하고 마지막으로 피비를 만나려 학교를 찾아가지만 피비가 따라나서는 바람에 결국은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데서 이야기가 끝나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신과치료를 받게 되었던 모양입니다만, 이야기의 전체를 통해서 그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의 시각에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정신과진료의 이력이 콜필드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229~230쪽)”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젊은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헷갈립니다.
2박 3일 동안의 기록을 두고 성장소설이라고 하기는 그렇구요. 감수성이 예민한 콜필드가 어른의 사회를 위선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라고 단정짓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