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 - 결심을 조롱하는 감각의 비밀
살마 로벨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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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감(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통하여 이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각하는 것만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사물에 대한 감각정보가 학습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감각의 예민도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감각능력은 선천적인 예민도와 학습이라는 후천적 요소가 작용하여 결정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단일 감각만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도 있겠으나, 오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물을 인식할 수도 있겠습니다.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 그리고 문화에 따른 감각의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감각의 박물학; >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을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감각은 뚜렷한 혹은 미묘한 사실들을 그대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감각은 현실을 아주 잘게 쪼갠 다음 그것을 다시 모아 의미 있는 형태를 만든다. (…) 감각은 작은 조각그림 맞추기의 작은 조각 같은 정보의 단편을 뇌에 입력한다. 충분한 조각들이 모이면, 뇌는 지금 보고 있는 건 ‘소’라고 말한다.(10쪽)” 감각이라고 하는 과정에 여러 단계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오차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심리학부 살마 로벨 교수는 감각, 특히 시각과 촉각을 통하여 감지하는 외부자극이 뜻밖의 힘을 발휘하여 우리의 내면세계와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심리학실험 등을 인용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센세이션>이 바로 그 책입니다. 충격적인 화제를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 ‘sensation’은 ‘감각 혹은 느낌’ 정도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The New Science of Physical Intelligence’라는 부제를 직역해보면 ‘신체적 정보의 새로운 과학’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려고 한다. 아울러 세상이 발산하는 색체에 대한 감각적 체험, 인간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는 합리적 정신, 아울러 우리 자신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드러내려 한다.(7쪽)”라고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왜 빨간색이 사람들로 하여금 저조한 시험점수를 받도록 하는지 설명하겠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오감을 모두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시각과 촉각에 관한 분야에서 심리학 실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1부 ‘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라는 제목에서는 따듯함 또는 차가움이라는 온도에 관한 느낌, 딱딱함과 푹신함이라는 감촉, 가벼움 혹은 무거움이라는 무게감이 사람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였습니다. 2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에서는 사물의 색깔, 특히 빨간색이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이어서 밝음 또는 어두움이라고 하는 빛의 세기를 다루었습니다. 3부 ‘위치가 말하는 모든 것’은 위치에 대한 감각의 영향을 다루고 있는데, 위치에 대한 감각은 공간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주로 시각을 통한 감각이 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4부 ‘마음으로 느끼는 모든 것’은 복잡합니다. 시각적 요소도 있을 뿐 아니라 달콤함과 시큼함과 같이 미각적 요소를 다루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향기라는 주제는 후각에 따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주제의 분류를 보다 분명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양한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이론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주로 하고 있는 일 가운데는 회의를 통하여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종의 협상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만약 의자가 푹신하다면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 처음에 보여줬던 태도나 제안 내용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차갑고 딱딱한 의자에 앉는다면, 상대방과 당신은 서로에 대해 비우호적이고 유연성도 없다고 여길 확률이 높다.(60쪽)”라는 구절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계피나 페퍼민트향, 갖 구운 크루아상과 방금 내린 커피향과 같이 좋은 향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향상시킨다고 합니다.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회의 전 철저한 준비는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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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나이 드는 법 - 불멸의 고전 오디세이아에서 찾은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3
존 C.로빈슨 지음, 김정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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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에 관심이 많다보니, 눈을 끌게 된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도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먹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습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저자 존 로빈슨은 특히 중년 남성의 심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남성 심리 전문가라고 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남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쥐고 있다고 하니, 나이 들어가는 남성의 입장에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고난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그저 ‘흥미롭다’ 혹은 ‘신들은 너무해’ 정도로 밖에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 로빈슨은 <오디세이아>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오디세이아>에서는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해석해보면 우리 시대 평범한 중년 남자들의 인생 이야기에 대응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여 우리 시대의 중년 남자들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꼭 기억해야 할 점들로 요약하여 <남자답게 나이 드는 법>에 담았습니다. 놀랍고 창조적인 책읽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소장님이 추천의 글에 적은 한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영웅적이고 성공적인 젊은 날의 시간만큼이나 늙어 가는 시간도 길다는 이야기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겪는 수많은 사건들만큼이나 늙어 가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음을 그는 강조한다.(7쪽)”

 

저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신화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거나 삶의 경구로 이해하기도 합니다만, 심리학자들은 신화가 인간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즉 신화에 담신 상징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오디세이아>에 담긴 상징을 풀기 위해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무렵 오디세우스의 나이는 45세에서 50세 사이 정도로 추정하였습니다. 젊음이 분출하는 시기를 지나 삶의 영광스러운 시기를 막 지나 이제는 나이 듦의 의미를 새겨보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트로이전쟁이 시작되고 마무리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일리아스>를 21세기로 옮겨보면,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상의 삶에서 누구나 매일매일 겪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싸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남자들은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과도한 경쟁을 하면서 끝도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왕성하게 분비되는 남성호르몬의 영향인데, 중년에 접어들면서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면 경쟁이 피곤해지면서 안전하고 쾌적한 안식처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의 뒷이야기를 아십니까? 영웅 아킬레우스는 전쟁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전쟁의 단초가 되었던 아내 헬레네를 되찾아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귀국하자마자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고, 디오메데스 역시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사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부정한 아내를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10년에 걸친 오랜 고난 끝에 수많은 구혼자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일편단심 기다려준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귀향길에서 오디세우스 역시 키르케와 칼립소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유혹을 받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접지 못하는 것은 그의 예정된 운명을 강조하기 보다는 보편타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호메로스의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오디세우스가 마법사 키르케를 만나는 과정을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일깨우는 과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남성적 반응을 조절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인데 사실 젊음의 정점을 지나면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여성 호르몬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아져 숨겨져 있던 영향이 드러나게 되는 생리적 변화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남자답게 나이 드는 법은 결국은 여성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정리되는 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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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정리가 힘이다 - 불편한 관계를 비우고 행복한 관계를 채우는 하루 15분 관계 정리법
윤선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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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친구를 널리 사귀기보다는 깊이 사귀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한 친구와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인지 친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인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딱히 관계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도모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생소한 정리컨설팅 전문가 윤선현대표의 <관계 정리가 힘이다>를 받아들고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가운데 읽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정리하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복잡하고 어지럽게 엮인 것들을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버릴 것은 버리며, 눈에 띄지 않던 쓸모있는 것들을 제자리에 둔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정리’란, “비우고, 나누고 채우는 것을 통해 행복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단순한 기술(10쪽)”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몇 차례 긴밀한 관계를 정리한 경험이 있어,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이유가 뚜렷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관계들이 꼭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면 세상이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1.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2. 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3. 당신에게 잘 어울리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인간관계 방법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우선 1부 ‘관계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에서는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관계’에 대하여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을 깨우쳐주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오래된 친구는 반드시 좋은 친구다. 고교시절 친구만이 진짜 친구다. 자주 연락을 할수록 친하다. 인맥은 많을수록 좋다. 친구를 정리하다니 말도 안돼.’라는 통설이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2부 ‘관계의 현재를 점검하는 시간’에서는 나도 상대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규칙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3부 ‘낡은 관계를 비우고 설레는 관계를 채운다’에서는 제목이 의미하는 ‘관계를 버리는 것’이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역시 관계를 정리하는 일에 속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당연히 힘들게 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디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며, 설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선은 공통점을 찾아보고, ‘준비된 만남’이라는 욕심을 버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도 좋은 인연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찾아보는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4부 ‘관계를 위한 하루 15분’은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관계목록이라고 할 수 있는 주소록을 살펴서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 예를 들면 약속을 미루지 않는다거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같습니다. 소소한 선물을 준다거나 감동을 주는 이벤트는 관계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록에 있는 관계 매뉴얼과 관계 선언문, 그리고 관계 정리 100일 프로젝트는 실전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엷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인데, 잘하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하여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관계를 정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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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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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하여 공부하는 과정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의 일러두기를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 가운데 그의 예술론이 잘 나타나 있는 것들을 옮긴이가 골라 번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두 여덟 편의 산문 가운데 두 편은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 서문으로 적은 것이고, 나머지 여섯 편은 샤르댕, 렘브란트, 와토, 귀스타브 모로, 모네, 로세티 등 당대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프루스트의 관점을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러스킨이나 화가들 모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어 이들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게 되면 책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사실은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깊이 있는 시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러스킨에 관한 산문에 중점을 두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러스킨에 대한 두 편의 산문은 역자의 서문치고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든 <참깨와 백합>의 서문으로 쓴 ‘독서에 관하여’에서 프루스트의 책읽기의 유래로부터 책읽기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3년에 천권의 책을 읽다보면 손에 잡히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보면 일찍부터 다양한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루스트가 어렸을 적에 얼마나 책읽기에 빠져있었는가를 알려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방에서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공원에 가야만 했다. (…) 아직 다시는 손대면 안된다고 명령받은 내 책과 함께 풀밭 위에 놓였다.(20쪽)” 프루스트는 병약했다고 했습니다. 병약한 아이가 책에 빠져 지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한 어른들이 일부러 책읽기를 금하였던 모양입니다. 책읽기도 어렸을 적부터 이 정도는 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겠지요?

 

또한 프루스트의 독서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러스킨은 독서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주장한다.(29쪽)” 하지만 프루스트는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작가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욕구를 불어넣는 것이다.(33쪽)”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산문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를 번역하면서 쓴 역자 서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러스킨을 기리는 여행의 순례자처럼 아미앵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고자 한다.(61쪽)’라고 시작한 프루스트는 “그는 역에 당신을 마중나올 것이다. (…) 그는 당신에게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뿐 아니라, 당신의 시간적 여유에 따라 이 길이 더 좋은지, 저 길이 더 좋은지도 말해준다.(65쪽)”라고 사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의 독특한 서사구조가 떠오릅니다. 즉 보통이 찾아 나선 여행지를 과거에 그곳과 연관이 있는 안내자가 나서서 함께 여행을 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미앵의 성서>가 그런가 봅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하여 설명하듯이 아미앵에 있는 성당에 이르는 길부터 밖에서 본 모습 그리고 성당의 내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안내자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역을 하신 유예진교수님은 여기에 더하여 산문에 나오는 건축물이나 그림의 도판을 말미에 더하여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무려 85쪽에 달하는 역자해설을 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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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체성 : 10가지 코드로 미국을 말한다 살림지식총서 2
김형인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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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한 미국의 속살을 뒤집어 보는 공부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조금 더 새겨보면 지기(知己)한 연후에 지피(知彼)함이 옳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의 정체성을 따지기 전에 나의 정체성은 제대로 파악하고는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든 우리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국과 미국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국어대학교 사학과의 김형인교수님은 <미국의 정체성>에서 열 가지의 코드를 가지고 ‘미국의 정체성’ 따지기에 나섰습니다.

 

저자는 미국 문화의 핵심에 내재한 열 개의 코드를 추렸습니다. 개인주의, 자유의 예찬, 평등주의, 법치주의, 다문화주의, 퓨리턴 정신, 개척정신, 실용주의, 과학기술의 신뢰, 미래지향주의 등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개인주의’를 열 가지 코드 가운데 가장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을까요? 미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식 개인주의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주의’하면 나만 생각하고 단체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얌체족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미국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개인주의는 나의 주장도 물론 내세우지만 타인의 의견과 권리 역시 존중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미국의 개인주의를 논하면서 그 제목을 ‘다수의 횡포에 대한 견제’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개인주의 정신은 미국이 독립할 당시 13개주는 ‘연합헌장’이라고 하는 기본규약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었는데, 중앙정부는 지휘력과 결속력이 없었고 각 주에 많은 권력을 위임하고 있다가 연방헌법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연방파과 반연방파의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초대 워싱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하던 해밀턴이 주도한 연방파는 경제, 군사, 외교 등의 분야에서 막강한 권력을 연방정부에 집중시키는 강력한 정부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그 배경에는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이 이익에 반하는 상황에서는 연방에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많은 고초를 겪었던 경험을 반영한 탓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방파의 움직임에 대하여 당시 가장 세력이 막강하던 버지니아주를 대표하는 제퍼슨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는 정부는 그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대치하여, 종국에는 종교의 자유를 비롯하여 행복추구권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기본권을 명시한 10개조의 수정조항을 반영하는 조건으로 연방헌법의 비준에 동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저자가 논하는 미국의 정체성 코드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성립되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멜팅포트를 넘어 샐러드 보울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다문화주의’가 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뿌리 깊은 지역갈등이 영호남을 넘어 세분화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이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외국인들 역시 어느 시점이 되면 목소리를 분명하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분단국가가 통일을 이룬 다음에 드러나고 있다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미리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민국가라는 대명사처럼 미국은 다양한 국가들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인종적 갈등을 일찍 경험하게 되었고, 당연히 해결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세기 말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대안으로 환경주의적 논의가 제안되었다고 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유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를 처음으로 대법관에 임명하고 여성각료를 임명하면서 다문화주의적 정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사회와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6O년대에 이르러서는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펼치면서 오히려 다수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책읽기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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