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좌파와 우파 살림지식총서 1
이주영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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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첫 번째로 나왔던 책이니 벌써 11년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사회의 동향을 볼 때 충분히 공감이 가는 무엇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과연 미국에 좌파와 우파가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미국의 역사에는 봉건주의 체제가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시민혁명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개인주의에 대한 신념을 기본 가치로 하여 세워진 나라라는 점입니다. 미국적 체제는 근본적으로 자유방임주의적인 것으로 정부는 각 개인이 자신을 실현할 방법을 찾는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점에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인데, 1930녀대 대공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뉴딜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개입 또는 국가통제 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자유방임주의적인 미국에서 1960년 싹트기 시작한 공동체주의 문화는 성혁명과 마약혁명 등 세속주의적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청교도적 윤리가 붕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움직임을 추진한 세력을 신좌파로 구분하고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문화를 전통문화를 대신하는 대항문화(counterculture)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뉴딜정책을 추진한 루스벨트는 종전의 개인주의적, 자유방임주의적 가치를 대신하는 공동체주의적, 사회주의적, 정부간섭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념적 전환을 토대로 루스벨트는 1933년 공산국가인 소련을 승인할 수 있었던 것이고, 공화당이 보수적 가치를 지키는 가운데 민주당은 진보적 가치를 도입하여 색깔을 달리하게 된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을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몰아붙이자, 진보주의자들은 공산주의와 분명하게 선을 그었으며, 1950년 한반도에서 소련을 등에 업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자 적극적으로 이를 격퇴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진보주의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간 신좌파의 뿌리는 1960년대에 이르는데, 당시 흑인의 민권운동, 혹은 흑인의 민족주의 운동으로 분출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백인청년들에게 전승되었다고 합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불투명해진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겹친 이들은 기존의 미국적 자유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대안은 참여민주주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혁명을 통해서 억압과 불평등의 상징인 기성체계를 타도할 때 달성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면 많이 익숙한 개념이 아닌가 싶습니다. 1970년 베트남전쟁이 끝나면서 신좌파 세력이 주도하던 혁명운동이 같이 가라앉게 되면서 이들은 정치혁명을 대신할 문화혁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좌파와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대학교수, 언론인, 문인, 예술가, 영화인이 된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주도하는 대항문화이론이 더욱 정교해지고 널리 확산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반동적인 움직임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진보-좌파가 나타나 세력을 확대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신우파가 태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보-좌파가 사회적 엘리트들에 의하여 주도된 것에 반하여, 신우파 운동의 주도권은 중하층대중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민중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신우파는 자유방임의 원리를 강조하던 구 우파와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우파 운동은 때로는 반정부적 성격을 띠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정부개입과 복지국가에 대한 신우파의 반대는 노동조합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는데, 이들은 거대 노동조합의 막강한 조직의 힘은 미국 상품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고, 이들 노동조합을 움직이는 간부들은 노동귀족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미국사회를 통하여 등장하게 된 신좌파와 신우파의 움직임을 들여다 보면, 최근 우리 사회의 이념적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차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신좌파는 공산주의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의 진보-좌파는 북한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 같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항하여 신우파 세력이 탄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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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세르의 신인류 예찬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송은주 / 갈라파고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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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은 언제나 걱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끔은 젊은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읽어내는 기성세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셀 세르 역시 보통이 아닌 기성세대가 틀림없습니다. 미셀 세르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자신이 열 개의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을 보고 놀라 ‘엄지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엄지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주역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세르의 이러한 예언을 담은 예언서입니다. 엄지세대는 “세상이 너무 급격하게 바뀐 탓에 무든 것을 다시금 창조해야 하는 젊은 세대”이며, “이들은 함께 사는 방법이며 제도, 존재 방식, 인지 방식 등, 모든 것을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도록 재창조해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방식도 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지식은 교단을 통하여 인쇄된 텍스트를 통하여 전수되어왔지만, 엄지세대는 인터넷상에 널려 있는 지식을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기성세대보다 더 빠르게 지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주장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지식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렇게 모은 지식들을 오류를 수정하고 꿰어 맞추는 능력이 없다면 그렇게 모아들인 지식을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비웃듯이 저자는 “이렇게 유통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인지 기능이 학생들에게 부족하다는 식의 괜한 불평은 아예 입밖에 내지 않는 편이 좋다. 인지 기능 자체가 매체와 더불어, 매체로 인하여 변하기 때문이다.(52쪽)”라고 적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모은 지식을 읽다보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사리를 판단하는 것도 오랜 훈련을 통하여 가능해지며 그러한 훈련은 독자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일찍 깨우친 선각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는 개인을 인터넷 세상과 연결해주는 기기, 즉 또 다른 뇌를 손에 안고 사는 신세대를 프랑스의 드니 성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금하던 시절 파리지역의 기독교도들은 드니를 초대 주교로 모시고 있었는데, 로마군은 드니 주교를 체포하여 고문을 한 끝에 몽마르트 언덕에서 참수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게으름뱅이였던 형집행관은 언덕 중간쯤에서 드니 주교의 머리를 잘랐고, 주교의 머리는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이 잘린 드니주교가 몸을 일으키더니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기적으로 드니 주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인류가 손에 넣게 된 새로운 뇌를 통하여 얻게 되는 지식은 누군가에 의하여 생산되는 것인데, 저자는 누구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온갖 지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지식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소비하는 시간은 지식을 모으는 시간보다 더 많이 소요되면서도 신뢰할만한 결론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집단이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들이 웅얼거리는 무엇이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사분란한 분류의 틀 안에서 움직이던 지식 세계가 자유분방한 혼돈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올바른 지식을 가다듬어 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방식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지식체계는 알고리즘방식으로 성립되어왔던 것인데,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방법론은 미래세대, 즉 엄지세대의 몫이 될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이들에게 달렸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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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이렇게 준비하고 끝내라! - 비즈니스 협상을 잘하는 방법 영업완전정복 시리즈 4
노진경.여범종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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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하고 있는 일이 조금씩 삐걱거린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갑자기 평가사업이 늘고 있기 때문에 평가를 준비하는 쪽에서도 업무부하가 빠르게 늘면서 한계에 이르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국에는 평가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는데, 사태발생이 급작스러웠던 탓에 문제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평가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관련 전문가그룹과의 소통채널이 잘 가동되어 신뢰가 쌓여있는 경우에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꼬인 매듭을 풀어내기 위하여 옛날 공부했던 협상과정에서 중요한 사항들을 다시 확인해보기 위하여 고른 책이 <협상! 이렇게 준비하고 끝내라!>였습니다. 아쉽게도 ‘비즈니스 협상을 잘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확인했더라면 다음 순위로 미루어두었을 것 같습니다. 영업완전정복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비즈니스협상의 실무적 내용을 다루고 있어 정책협상에 가까운 저의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영업일선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중요한 팁을 깨알같이 정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소통’과 ‘협상’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보면 기본 원칙이나 협상테이블에서 실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소소한 점들을 챙겨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협상을 다루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협상은 ‘비즈니스 거래에 있어 거래 당사자 간에 상호 이익이 되는 비즈니스 결과(목표달성)를 얻기 위해 상오 간의 이견(거래 조건)을 조정, 합의하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20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영업사원이 협상과정에서 저지르기 쉬운 일반적인 실수 15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준비없이 협상에 임하는 것이 최우선 고려할 사항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협상의 성공을 위한 3요소, ‘나의 이해, 상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상황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영업을 위한 협상 사례들을 다수 인용하고 있어 영업하시는 분들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협상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는 방법,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 협상전략을 세우고 협상을 주도할 필요가 있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책략도 불사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격협상을 잘하는 14가지 방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협상과정을 주도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분위기조성법은 참고할 만 합니다. 주변 환경을 점검하라, 방해물을 사전에 제거하라,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하라, 자리배치에 신경을 써라, 협상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휴게실을 따로 준비하라 등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센세이션; http://blog.joins.com/yang412/13441829>에서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협상장 준비에 관한 내용이 있어 역시 협상의 이론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협상의 기울기를 유 리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설득력, 전문지식, 끈질김 등 14가지 기술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교착상태에 빠진 건이 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은 “협상 파트너의 견해차이, 커뮤니케이션의 오류, 입장의 변화, 서로의 협상태도와 전략, 제안에 대한 오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 등이 원인이 된다고 했는데, 꼭 들어맞는 상황 같습니다. 이럴 때는? 장소를 변경한다거나, 협상상대를 바꾸거나, 외부의 협상전문가를 중재자로 초빙하거나, 이제까지 합의된 사항을 검토해보기, 유머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결정적인 것을 협상을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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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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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앤커가 쓴 <중국신화전설>에는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나옵니다. 들오리처럼 생겼고 깃털의 빛깔은 푸른데 붉은 기가 섞여 있었으며 날개와 눈이 모두 하나씩이라서 반드시 두 마리가 합쳐져야만 날개를 나란히 하여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가 있고, 혼자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비익조처럼 운명적으로 한 몸이 되었어야 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애달프면서도 놀라운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지 앞을 볼 수 없게 된 소년이 태어나면서 걸을 수 없는 소녀를 만나 마치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게 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다시 만나 죽음을 같이 한다는 슬픈 사랑이야기입니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독일의 신예작가 얀 필립 센드커의 첫 번째 소설로 2002년에 발표되었지만 영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것입니다. 요즘 결말단계에 이른 드라마 <이방인>에서 운명의 상대임을 알아보기 위하여 포옹을 하고 서로의 심장박동이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즉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마치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펼쳐집니다. 4년전 방콕에서 사라진 아버지의 행적을 뒤쫓는 줄라이 윈은 결국 아버지가 남겼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통의 편지에 적혀 있는 주소를 찾아갑니다. 미얀마, 깔로에 살고 있다는 미밍을 찾아서... 40년 전인 1955년 4월 24일자로 된 편지는 ‘사랑하는 미밍’이라고 시작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너의 심장소리를 들은 지도 5864일이 지났지만,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일 것이며, 그때가 되면 나는 너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깔로의 작은 찻집에서 우 바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남자가 줄리아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옵니다. 정확히 4년 동안을 오후만 되면 먼지 날리는 대로를 오가면서 줄리아를 기다렸다고 하는 우바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이 들어 죽을 날이 멀지 않는 그가 이곳을 찾아올 줄리아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줄리아에게는 아버지의 실종이 커다란 충격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우리가 아는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런 재앙 같은 전환점이 분명 있다. 이번 심박동과 다름 심박동 사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연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떠나버리는 순간.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 친한 친구를 땅에 묻는 날도 그렇고, 의사로부터 악성 뇌종양이 생겼다고 통보받는 순간도 그럴 것이다.(33쪽)”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나게 되면 우리의 심장은 쌓여가는 충격 때문에 서서히 생명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날 만난 우 바는 엉뚱하게도 깔로에 살던 미야미야라는 여인과 그녀의 남편 킨 마웅 사이에서 태어난 틴 윈이라는 이름의 소년과 소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기까지의 삶을 줄리아에게 전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마을의 점성술사가 별의 운행에 따른 예언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틴 윈은 별자리가 좋지 않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명이 짧거나 불행한 사건들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점성술사의 예언대로 상서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아버지와 대고모가 죽게 되지 틴 윈의 어머니는 아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게 됩니다. 이웃에 사는 수치라는 아주머니가 돌보아서 명을 이어가게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미얀마의 깔로에서 태어난 틴 윈과 뉴욕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줄리아의 아버지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작가는 독자를 미얀마의 깔로라는 작은 시골마을로 이끌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에 사는 선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틴 윈과 미밍의 만남이 사랑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헤어져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담담하게 소개합니다. 놀라운 것은 떠난 소년이나 남아 있는 소녀 모두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려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우 바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결국은 틴 윈의 가족사를 연결해가는 조각그림 맞추기입니다. 따라서 결말에 이르러서야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줄거리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떠났지만 결코 떠난 적이 없었던 틴 윈과 미밍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우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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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
대니 돌링 지음, 안세민 옮김 / 알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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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대니 돌링교수의 <100억명>을 받아들고 보니 갑자기 심란해졌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행복을 끝없이 바라는 것은 인구가 생산증가를 언제나 앞지르는 것을 감안할 때 헛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인구는 억제하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므로, 언제나 인구는 생존의 한계까지 늘어난 다음 기근·전쟁·질병으로 팽창을 멈추게 된다. '악덕'(맬서스에 따르면 피임도 포함)·'빈곤'·'극기'를 통해서만 이 같은 지나친 인구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라고 요약되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가 1798년 발표한 인구론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인구에 관한 맬서스의 주장은 관념적이고 분석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맬서스가 경제적 비관주의자의 원조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습니다.

 

최근에 나온 우리나라의 인구전망을 보면, 2012년 6월 23일 5천만 명을 돌파한 우리나라의 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다음 하락해서 2045년에는 다시 5천만 명 아래로, 그리고 2069년에는 4천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아지고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평균출산 연령이 2010년 기준으로 31.3세로 늘어나고 출산율이 1.23명으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인구추이와는 달리 세계 인구는 꾸준하게 늘고 있다고 해서 조금은 혼란스러우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구의 규모를 유추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구조사제도가 확립된 국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인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재도 세계의 인구의 약 5분의 2는 추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기록 등을 토대로 서력 기원 전후의 세계인구는 약 2억 내지 3억이었다고 추산된다. 중세 봉건시대에는 인구의 증가가 주춤했다. 유럽에서는 인구의 지주 구실을 하는 생산력의 확대가 한계에 달했을 뿐더러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의 유행과 잦은 전쟁으로 많은 인구가 줄어들었다. 세계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의학과 농업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20세기 초이다. 1804년 세계 인구는 10억을 돌파했고 1927년 20억을 돌파했다. 1960년에는 30억을 돌파했고 1974년에는 40억을 돌파했다. 1987년 7월 11일에는 50억을 돌파했고 1999년 10월 12일에는 60억 명을 돌파하였다. 2011년 10월 31일에는 UN이 70억 명을 돌파했다고 공식발표했다.”라고 위키백과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다 보면 맬서스의 인구론이 지나치게 비관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 ‘10억 명의 인구가 증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인구폭발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우려 말입니다. 만일 그런 결과가 아니라면 ‘세계인구의 증가세가 꺾이는 결정적 요인이 등장할 것인가?’하는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던 희망을 기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니 돌링 교수의 <100억명>은 최근 세계인구의 동향을 분석하고 다양한 요인을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의 추이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지나친 비관주의나 낙관주의를 경계하여 ‘이성적 낙관주의자 vs 화가 난 비관주의자’에 비유하여 스스로를 ‘현실적 개혁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생물의 멸종, 기후 재앙, 전염병, 문화의 충돌 그리고 경제의 위기 등,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들 가운데 적어도 인구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별난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희망의 징후들이 보다 명백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집단적 선택을 하게 되리라는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인구 폭발은 2050년 전후에 끝날 것이고, 세계 인구는 90억~100억 명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16쪽)”라는 예언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참혹한 전쟁이나 전염병이 지구 전체를 강타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희망의 징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다는 점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의 구조는 아주 흥미롭게 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계인구가 100억 명 수준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을 제1장 ‘지나친 걱정은 금물’에 담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세계인구가 10억 명 단위로 증가한 혹은 도달할 시점을 기준으로 장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장은 세계인구가 50억 명에 도달하기까지의 아주 오랜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인구가 많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제3장은 세계인구가 60억 명에 도달했던 2000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혼란과 소비 정점 문제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4장은 세계인구가 70억 명에 도달한 2011년까지의 이야기로 다양한 쟁점들 가운데 미래의 에너지 공급문제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지나간 시점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 책의 후반부가 되는 제5장부터 제8장까지는 미래에 닥칠 일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 관련될 것인가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제5장은 세계인구가 80억 명에 도달하게 되는 2025년까지를 다루는데, 주로 식량 문제, 물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인류가 자신의 문제를 더 잘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집단적으로 똑똑해질 수 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제6장은 세계인구가 90억 명에 도달하게 되는 2045년까지를 다루며, 국경 통제와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설명합니다. 제7장에서는 멀리 이번 세기말까지 내다보면서 인구가 100억 명이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어떻게 잘 살 수 있을 것인지를 논합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8장에서는 100억 명이 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류의 집단지성이 이룩할 미래에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2003년 12월 9일, UN 인구과는 세계인구에 관한 장기 전망을 담은 <2300년 세계인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예측 범위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2100년까지 세계인구가 91억 명으로 증가했다가 이후 서서히 감소하여 2300년에는 90억 명 수준에서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균적인 가정의 출산율이 조금 높을 경우 2300년 세계인구는 364억 명이 될 것이며, 출산율을 낮게 가정하면 2300년 세계인구는 23억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합니다. 2011년에 UN은 더 이상 2300년까지의 장기예측을 내지 않기로 하고, 대신 2100년까지의 세계인구를 예상하는데 그치기로 하였습니다. 높은 시나리오에 따른 예상치는 158억 명, 중간 시나리오에 따른 예상치는 101억 명, 낮은 시나리오에 따른 예상치는 61억 명으로, 2003년의 예상치보다 다소 높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과거의 출산율을 반영한 극단적인 시나리오에 따른 예상치는 268억 명이 되는데, 매우 낮아지는 시나리오는 예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최근 독일, 이탈리아, 일본,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구 추이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노령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인류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UN이 2011년에 내놓은 대륙별 총출산율 동향자료를 보면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륙에서 여성 1명당 자녀수 급속하게 감소하여 2명에 수렴하고 있고 유럽의 경우는 2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유럽에서는 인구감소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제3세계로부터 이민을 받았는데, 최근 이들을 위한 복지부담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유럽으로의 이민이 늘게 되면 세계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감소하게 될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민자들은 새로운 지역의 출산경향에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인용된 세계인구 100억 명은 2100년에 도달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50억 명에 이르기 까지는 인류의 기원이라고 할 기원전 6만 2,000년부터 기원후 1988년까지 무려 6만 4천여 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반면 나머지 50억 명이 늘어 100억 명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12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원후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0.1%에 미치지 못하였고 1851년을 기점으로 하여 세계적인 인구증가세가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시작한 인구증가세는 세계대전이나 스페인독감, 대공항, 중국의 대기근과 같이 심각한 인구감소요인이 있는 기간이 지나면 반등을 거듭하면서 1971년까지 이어져 정점을 찍은 다음 역시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세계인구가 50억 명에서 60억 명이 되는데 불과 1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석유, 원재료, 미네랄, 비료, 시멘트, 물, 음식 등 모든 것들에 대한 소비가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수요를 촉구하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탐욕을 절제하기 시작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70억 명이 되는 과정에서 세계는 에너지로 인한 환경오염과 함께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용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고 에너지 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너지위기에 대하여 저자는 다행히 화석연료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추가로 발견된 화석연료 자원은 대체에너지를 에너지원으로 교체하는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성적 낙관주의자; http://blog.joins.com/yang412/11893963>를 쓴 매트 리들리에 대하여 ‘기득권자이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권력자들이 그의 생각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들리는 인류가 급속하게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물물교환과 노동의 분업을 발견하여 적은 노력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현대에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정보를 네크워크화 하는데 성공한 것이 인류가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매틀리의 이런 주장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기술만으로도 점점 늘어나는 세계인구의 식량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영국기계공업협회의 주장(267쪽)”과도 일맥상통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현실적 개혁주의자라고 하는 저자 역시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세계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는 65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구 3,200만 명으로 이루어지는 메가시티가 대략 280개 정도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메가시티는 도시와 시골이 느슨하게 결합된 모습으로 확장된 경계 안에 논이 펼쳐지기도 하고, 공터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메가시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불평등이 심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탐욕스러운 소수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열망 때문에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으로 진단하고, 앞으로 인류의 다중지성이 이런 열망을 억누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환경친화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세계인구가 100억 명이 되더라도 지금 70억 명이 지내는 것보다 더욱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나아가 이 책의 제목과는 달리 지구상에서 100억 명이 복닥거리며 살 것이라는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에 세계인구가 수렴될 것이며, 또한 부의 수렴현상도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2004년 <바이오사이언스>에 발표된 메타분석는 이렇습니다. “모든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선의 추정치는 77억 명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술을 고려할 때 상한과 하한은 각각 980억 명과 6억 5,000만 명이다.(436쪽)” 지구는 여전히 살만한 곳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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