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세르의 신인류 예찬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송은주 / 갈라파고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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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은 언제나 걱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끔은 젊은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읽어내는 기성세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셀 세르 역시 보통이 아닌 기성세대가 틀림없습니다. 미셀 세르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자신이 열 개의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을 보고 놀라 ‘엄지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엄지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주역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세르의 이러한 예언을 담은 예언서입니다. 엄지세대는 “세상이 너무 급격하게 바뀐 탓에 무든 것을 다시금 창조해야 하는 젊은 세대”이며, “이들은 함께 사는 방법이며 제도, 존재 방식, 인지 방식 등, 모든 것을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도록 재창조해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방식도 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지식은 교단을 통하여 인쇄된 텍스트를 통하여 전수되어왔지만, 엄지세대는 인터넷상에 널려 있는 지식을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기성세대보다 더 빠르게 지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주장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지식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렇게 모은 지식들을 오류를 수정하고 꿰어 맞추는 능력이 없다면 그렇게 모아들인 지식을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비웃듯이 저자는 “이렇게 유통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인지 기능이 학생들에게 부족하다는 식의 괜한 불평은 아예 입밖에 내지 않는 편이 좋다. 인지 기능 자체가 매체와 더불어, 매체로 인하여 변하기 때문이다.(52쪽)”라고 적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모은 지식을 읽다보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사리를 판단하는 것도 오랜 훈련을 통하여 가능해지며 그러한 훈련은 독자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일찍 깨우친 선각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는 개인을 인터넷 세상과 연결해주는 기기, 즉 또 다른 뇌를 손에 안고 사는 신세대를 프랑스의 드니 성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금하던 시절 파리지역의 기독교도들은 드니를 초대 주교로 모시고 있었는데, 로마군은 드니 주교를 체포하여 고문을 한 끝에 몽마르트 언덕에서 참수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게으름뱅이였던 형집행관은 언덕 중간쯤에서 드니 주교의 머리를 잘랐고, 주교의 머리는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이 잘린 드니주교가 몸을 일으키더니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기적으로 드니 주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인류가 손에 넣게 된 새로운 뇌를 통하여 얻게 되는 지식은 누군가에 의하여 생산되는 것인데, 저자는 누구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온갖 지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지식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소비하는 시간은 지식을 모으는 시간보다 더 많이 소요되면서도 신뢰할만한 결론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집단이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들이 웅얼거리는 무엇이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사분란한 분류의 틀 안에서 움직이던 지식 세계가 자유분방한 혼돈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올바른 지식을 가다듬어 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방식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지식체계는 알고리즘방식으로 성립되어왔던 것인데,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방법론은 미래세대, 즉 엄지세대의 몫이 될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이들에게 달렸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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