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윈앤커가 쓴 <중국신화전설>에는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나옵니다. 들오리처럼 생겼고 깃털의 빛깔은 푸른데 붉은 기가 섞여 있었으며 날개와 눈이 모두 하나씩이라서 반드시 두 마리가 합쳐져야만 날개를 나란히 하여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가 있고, 혼자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비익조처럼 운명적으로 한 몸이 되었어야 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애달프면서도 놀라운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지 앞을 볼 수 없게 된 소년이 태어나면서 걸을 수 없는 소녀를 만나 마치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게 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다시 만나 죽음을 같이 한다는 슬픈 사랑이야기입니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독일의 신예작가 얀 필립 센드커의 첫 번째 소설로 2002년에 발표되었지만 영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것입니다. 요즘 결말단계에 이른 드라마 <이방인>에서 운명의 상대임을 알아보기 위하여 포옹을 하고 서로의 심장박동이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즉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마치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펼쳐집니다. 4년전 방콕에서 사라진 아버지의 행적을 뒤쫓는 줄라이 윈은 결국 아버지가 남겼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통의 편지에 적혀 있는 주소를 찾아갑니다. 미얀마, 깔로에 살고 있다는 미밍을 찾아서... 40년 전인 1955년 4월 24일자로 된 편지는 ‘사랑하는 미밍’이라고 시작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너의 심장소리를 들은 지도 5864일이 지났지만,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일 것이며, 그때가 되면 나는 너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깔로의 작은 찻집에서 우 바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남자가 줄리아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옵니다. 정확히 4년 동안을 오후만 되면 먼지 날리는 대로를 오가면서 줄리아를 기다렸다고 하는 우바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이 들어 죽을 날이 멀지 않는 그가 이곳을 찾아올 줄리아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줄리아에게는 아버지의 실종이 커다란 충격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우리가 아는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런 재앙 같은 전환점이 분명 있다. 이번 심박동과 다름 심박동 사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연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떠나버리는 순간.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 친한 친구를 땅에 묻는 날도 그렇고, 의사로부터 악성 뇌종양이 생겼다고 통보받는 순간도 그럴 것이다.(33쪽)”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나게 되면 우리의 심장은 쌓여가는 충격 때문에 서서히 생명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날 만난 우 바는 엉뚱하게도 깔로에 살던 미야미야라는 여인과 그녀의 남편 킨 마웅 사이에서 태어난 틴 윈이라는 이름의 소년과 소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기까지의 삶을 줄리아에게 전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마을의 점성술사가 별의 운행에 따른 예언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틴 윈은 별자리가 좋지 않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명이 짧거나 불행한 사건들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점성술사의 예언대로 상서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아버지와 대고모가 죽게 되지 틴 윈의 어머니는 아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게 됩니다. 이웃에 사는 수치라는 아주머니가 돌보아서 명을 이어가게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미얀마의 깔로에서 태어난 틴 윈과 뉴욕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줄리아의 아버지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작가는 독자를 미얀마의 깔로라는 작은 시골마을로 이끌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에 사는 선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틴 윈과 미밍의 만남이 사랑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헤어져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담담하게 소개합니다. 놀라운 것은 떠난 소년이나 남아 있는 소녀 모두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려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우 바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결국은 틴 윈의 가족사를 연결해가는 조각그림 맞추기입니다. 따라서 결말에 이르러서야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줄거리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떠났지만 결코 떠난 적이 없었던 틴 윈과 미밍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우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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