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지막 수업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10
알퐁스 도데 지음 / 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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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출발해서 북쪽으로 대서양 해안의 르아브르, 몽생미셸을 두루 보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르망, 투트, 리모주, 아비뇽, 아를, 엑상 프로방스 등을 거쳐 니스와 칸 등 프랑스 남해안으로까지 돌아왔습니다.

프로방스지방에 들어설 무렵 가이드가 언급한 작가가 바로 알퐁스 도테입니다. 님에서 태어난 알퐁스 도테의 작품에는 남프랑스 지방이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그의 단편 ‘별’에 등장하는 양치는 목동이 꿈꾸던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밤을 보내는 이야기의 무대 역시 프로방스의 뤼브롱(Luberon) 산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대가 들에서 밤을 지낸 일이 있다면,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각에 또 하나의 신비스런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 샘물을 더욱 맑은 소리를 내고, 연못은 작은 불꽃을 활활 태운다.  산들의 모든 정령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대기 속에서는 물체가 맞닿거나 나뭇가지가 자라거나 풀이 자라거나 하는 소리인 듯한, 거의 귀에 담을 수 없는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라고 묘사한 부분은 들에서 밤을 지새면서도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열려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를은 도테가 태어난 님에서도 그리 멀지 않는 마을이라서 내막을 속속들이 알았던 모양입니다. 단편, ‘아를의 여인’이나 ‘두 여인숙’에 등장하는 아를의 여인은 예쁘기는 하지만 정숙함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입니다. 남자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비법도 가지고 있어서 한번 빠진 남자는 헤어나지를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에서 본 것은 포도밭은 물론 과수원 등을 키가 큰 싸이프러스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데, 특히 미스트랄이라고 하는 이 지역의 독특한 강풍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스트랄은 겨울과 봄에 주로 부는 북서풍을 말합니다. 시속 30km 이상의 바람이 65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시속 66km를 넘는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고 순간 풍속이 185km에 달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지중해에서 불어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프랑스의 내륙에서 지중해 북쪽으로 분다고 합니다. 과수원에는 피해가 크지만 풍차를 돌리는 방앗간에는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도테는 애국심이 강해서 보불전쟁 때 군역을 면제받았음에도 자원하여 입대하기도 했답니다. 그의 이런 경험이 반영된 단편이 그 유명한 ‘마지막 수업’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마지막 수업’은 프러시아에 넘어간 알자스 지방에서 프랑스어로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프러시아 당국의 조치를 당하고서야 프랑스어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동네사람들 그리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절절하게 그렸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빼먹기를 밥먹듯한 프란츠에게 ‘아아! 자녀의 교육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야말로 우리 알자스의 가장 큰 불행이었지’라고 달래는 아멜선생님의 말씀이야말로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알자스와 로렌지방은 10세기 무렵에는 지금의 독일을 지배하던 동프랑크왕국의 영토였던 것을 17세기 독일이 종교전쟁으로 혼란에 빠졌던 상황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정리되면서 프랑스에 병합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1871년 보불전쟁이후의 프랑크푸르트조약에 따라서 독일제국의 영토로 바뀐 상황이 ‘마지막 수업’의 시대상황입니다. 뿌리를 따라가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진 것이지만,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빼앗긴 땅이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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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허한전 지음, 리추이칭 엮음, 김성일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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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과과정을 마치고 본과과정에 들어가면서 제일 걱정했던 점이 바로 해부학실습을 위한 골표본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동아리 선배께서 두개골을 물려주셔서 골학공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는 골표본 역시 합성재료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인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부학 실습의 경우는 돌아가신 분의 신체를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하여 수업에 임하는 전통이 있는데, 아직 대체할 수 있는 표본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의과대학마다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을 처음 하는 날 학생 중에 꼭 졸도하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여러 동물들을 대상으로 해부실습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분의 몸을 해부하게 된다는 것은 엄숙의 차원을 너머 어린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물론 수업이 진행되다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이미 상황에 익숙해진 표시가 나기 시작합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서 해부실습을 하던 중에 장난을 치다가 조교에게 야단맞기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는 해부실습 기간 중에 실습시험을 치던 날 순서를 기다리던 친구가 막걸리 한 대접 마시고 오자는 충동질을 받아들였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러 가자는 권유가 공연한 호승심을 건들였던 셈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조교선생님께 들키지는 않았지만, 시험문제가 모두 그게 그것 같아서 같은 답을 여러개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과는 재시험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은 타이완의 화렌에 있는 츠지대학교 의과대학의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다닌 의과대학에서도 시신을 기증하는 분들이 많아서 4인 1조로 해부학 실습을 할 수 있었는데, 이 대학 역시 좋은 시신 기증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여유있게 실습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해부학 실습에서 만나는 시신을 카데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츠지의대에서는 시신 스승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실습에 앞서 시신을 기증한 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고인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고양시키고 가족들에게도 시신스승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내 몸에 메스를 대는 그날이 바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30쪽)”라고 의과대학생들을 격려하는 글을 남긴 분도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실습이 끝나면 해부실습의 결과로 조각난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츠지의대에서는 실습이 종료되면 학생들이 해부실습과정에서 절개한 자리를 모두 꼼꼼하게 봉합하여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화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해부하는 과정도 엄청 신경을 써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신 스승에 대한 특별한 대우에 관한 이야기만 적는다면 몇쪽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해부학 실습이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서 실습과정을 소개합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근육, 신경, 혈관 등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은 전혀 없습니다. 말로만 설명하다 보니 해부학실습을 한 필자마저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거려 개념이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반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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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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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서부지역의 루아르 계곡에 있는 몇 개의 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이드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어보기를 권하였습니다. 이 책의 무대가 바로 루아르강 유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발자크가 묘사한 루아르강변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태양 아래 초록색 강변 사이로 줄줄 흐르는 긴 물줄기와, 사랑스런 골짜기를 출렁거리는 레이스로 장식하는 포플러의 행렬, 강물에 의해 다양한 모양으로 깎인 작은 언덕 위의 포도밭, 그 사이로 나오는 떡갈나무 숲,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희미한 지평선, 이 모든 것이 오직 그 대상에만 집중된 무한한 사랑을 노래했다.(34쪽)‘ 바로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그녀가 이 골짜기의 백합이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밖에도 순수한 사랑, 깨끗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 등이 있는데, 꽃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골짜기의 백합>을 연상의 유부녀와 연하의 총각 사이의 연애소설이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제 느낌으로는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냉정한 부모 밑에서 제대로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던 펠릭스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하여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결국 투르로 옮기게 되는데, 투르에서 열린 행사에서 어깨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어깨에 키스를 하는 무례를 범하게 됩니다. 어쩌면 운명의 실타래가 얽혀드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펠릭스는 결국 모르소프백작 부인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정신적인 사람이 싹트고 부인은 펠릭스를 왕정복고에 성공한 루이18세의 측근으로 발탁되도록 손을 쓰게 됩니다. 펠릭스는 백작부인에게 정절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지만, 파리의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영국에서 온 더들리 후작부인의 호승심을 자극하여 결국은 펠릭스를 굴복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십대 젊은이의 들끓는 혈기를 억누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펠릭스의 변절을 전해들은 백작부인은 크게 상심하지만, 막상 더들리 후작부인을 만나고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펠릭스의 변심은 결국 남편의 폭력과 병약한 자녀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백작부인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곡기를 거부한 결과 스스로 죽음을 맞은 셈이니 펠릭스의 책임이 크다고 해야 할까요?

모르소프 백작부인은 누이처럼, 어머니처럼, 펠릭스의 삶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정신적으로는 사랑하는 관계를 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 딸 마들렌을 펠릭스와 짝을 지을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복잡하게 얽어놓은 발자크의 사고는 당시의 프랑스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죽음이 펠릭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들렌의 거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진전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골짜기의 백합>은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죽은 다음 펠릭스에게 다시 마음을 줄 나탈리라는 여성에게 저간의 사정을 고백하는 서간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가 나폴레옹의 재집권과 몰락이 이어지면서 어수선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격변기의 사회상을 반영하기보다는 순수해야 할 사랑이 끝까지 지켜지지 못했다는 비극적 결말로 맺어지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연애담이라서 얼마나 널리 읽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루아르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박한 민심 그리고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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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산책 한길 히스토리아 9
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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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하여 유럽을 두루 돌아보았고,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유럽의 역사도 얼추 살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 사람들의 속내를 알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유럽사람들의 선조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까지 챙겨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중세 유럽산책>은 오늘날 유럽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서양 중세사를 전공한 아베 긴야교수가 1986년 NHK에서 <다시 살아나는 중세 유럽>이라는 제목으로 한 강좌를 바탕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이 강좌가 기획된 것은 현대의 일본(어쩌면 우리나라 역시 크게 사정이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만)에 영향을 미친 유럽의 문명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유럽 사람들의 뿌리라 할 중세 유럽이 숨어있을 것이므로 중세 유럽의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나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모두 12개의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수수께끼로 차있는 중세의 우주관으로부터 괴물, 시간, 공간, 생사관 이라는 네 가지가 수수께끼라는 점을 내놓고 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는 빈부의 차이와 중세 기사의 편력에 관한 이야기, 학문이 시작된 이야기, 중세 어린이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소리와 회화에 관한 이야기 등, 주제들이 개별적인 듯하면서도 모종의 연관을 가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가 특히 독일에서 서양 중세사를 전공한 듯 주로 인용한 자료들이 독일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저자가 제시한 우주관이나 생사관 같은 주제는 저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저자는 물리적 우주관과 정신적 우주관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서도, 거시적 우주관과ㅏ 미시적 우주관의 개념을 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달을 거느리고 있는 지구와 태양이 중심이 되는 태양계, 그리고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이를 넘어서는 광대한 우주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거시적 우주관이라고 한다면 여러 원소가 모여 이룬 생명체가 은하계가 되고, 생명체를 구성하는 조직은 태양계가 될 수 있으며,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는 개별 항성, 혹성, 위성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포내 기관은 다시 분자로, 세포내 기관을 구성하는 요소는 원자로, 원자 구분한다면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의 모습은 다시 태양계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미시적 우주관을 적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중세의 생사관은 중세를 지배한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발전해나갔을 터이니 아무래도 천국과 지옥, 영생 등의 교리에 따른 생사관이 널리 자리 잡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따라 죽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요즈음 유럽 여행을 통하여 자주 찾게 되는 성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도 중세 유럽의 유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고성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중세에 지은 성들이 현대인들이 거주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이 남겨놓은 서지, 회화, 건축 등 다양한 자료에 현재는 볼 수 없는 괴상한 모습을 가진 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실제로 보고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상상의 산물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괴물을 보았다는 내용을 보면서 그가 동방에 실제 왔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 어저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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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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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남프랑스의 니스에 다녀왔습니다. 니스의 해변을 나는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40여 년 전에 즐겨 듣던 김만준의 노래 <모모>를 떠올렸습니다.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라는 가사 때문입니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끌 무렵에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가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노래에 등장하는 모모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모인 줄 알았습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에 생>에 나오는 모모라는 설명을 듣고 바로 잡긴 했습니다만 에밀 아자르의 소설을 바로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니스를 다녀와서는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밀 아자르는 42살이 되던 해에 발표한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의 필명입니다. 로맹 가리는 60살이 되던 해 자신의 이름으로 <밤은 고요할 것이다>를, 샤탕 보가트라는 필명으로 <스테파니의 초상들>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열렬한 포옹>을 발표했고, 61살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했는데, <자기 앞의 생>이 다시 공쿠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작가에게 한번 밖에 수여하지 않는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로맹 가리는 조카로 하여금 에밀 아자르의 공쿠르상 수상을 거절한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수상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앞의 생>은 파리의 멜빌에 있는 아파트에서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로자 아줌마 손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창녀들이 자기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받기도 했지만,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아이나 이슬람 신자인 모모를 돌보는 것처럼 맡겨진 아이들에게 편견이 없는 것이 독특합니다. 심지어는 아이를 맡긴 부모가 양육비를 보내지 않아도 시설로 아이를 보내지 않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어려서는 로자 아줌마의 돌봄을 받은 모모가 어느덧 나이를 먹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로자 아줌마를 돌보는 처지로 변하게 되는데,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기 싫다는 것입니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창녀들과 연관된 직업이 아니라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도록 키워갑니다. 로자 아줌마가 죽음을 맞는 과정을 보면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둘러싸고 있는 이웃들의 사랑이 절로 느껴지는데, 요즘 이런 동네가 어디 있겠나 싶습니다.

<자기 앞의 생>은 니스와 특별한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웃에 사는 하밀 할아버지가 니스에 관하여 이야기해주는 대목이 있는데, ‘나는 그곳에 있다는 미모사 숲이며 종려나무들을 무척 좋아했고,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날개를 파닥인다는 흰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했다.(49쪽)’는 부분,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300쪽)’는 대목 등은 김만준의 노래 <모모>에서도 인용된 부분입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 것을 /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 모모는 철부지 모모 무지개 /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라는 노랫말의 핵심이 이 책에서 온 것은 잘 알겠는데, 모모가 환상가라거나 방랑자, 철부지라고 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174쪽)’라고 적은 부분을 보면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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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4-1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앞의 생』은 저도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로맹 가리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영상도 있으니, 재미삼아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vKy0n0XDJMM

처음처럼 2020-04-12 09:51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도 블로그를 가지고 계시군요. ^^*

oren 2020-04-12 21:13   좋아요 0 | URL
저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쭈욱 알라딘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처음처럼 2020-04-13 20:03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제 알리딘에 블로그를 만들었는지 찾아봐야 하겠네요... 10년쯤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