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허한전 지음, 리추이칭 엮음, 김성일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과과정을 마치고 본과과정에 들어가면서 제일 걱정했던 점이 바로 해부학실습을 위한 골표본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동아리 선배께서 두개골을 물려주셔서 골학공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는 골표본 역시 합성재료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인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부학 실습의 경우는 돌아가신 분의 신체를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하여 수업에 임하는 전통이 있는데, 아직 대체할 수 있는 표본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의과대학마다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부학 실습을 처음 하는 날 학생 중에 꼭 졸도하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여러 동물들을 대상으로 해부실습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분의 몸을 해부하게 된다는 것은 엄숙의 차원을 너머 어린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물론 수업이 진행되다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이미 상황에 익숙해진 표시가 나기 시작합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서 해부실습을 하던 중에 장난을 치다가 조교에게 야단맞기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는 해부실습 기간 중에 실습시험을 치던 날 순서를 기다리던 친구가 막걸리 한 대접 마시고 오자는 충동질을 받아들였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러 가자는 권유가 공연한 호승심을 건들였던 셈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조교선생님께 들키지는 않았지만, 시험문제가 모두 그게 그것 같아서 같은 답을 여러개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과는 재시험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은 타이완의 화렌에 있는 츠지대학교 의과대학의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다닌 의과대학에서도 시신을 기증하는 분들이 많아서 4인 1조로 해부학 실습을 할 수 있었는데, 이 대학 역시 좋은 시신 기증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여유있게 실습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해부학 실습에서 만나는 시신을 카데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츠지의대에서는 시신 스승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실습에 앞서 시신을 기증한 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고인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고양시키고 가족들에게도 시신스승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내 몸에 메스를 대는 그날이 바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30쪽)”라고 의과대학생들을 격려하는 글을 남긴 분도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실습이 끝나면 해부실습의 결과로 조각난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츠지의대에서는 실습이 종료되면 학생들이 해부실습과정에서 절개한 자리를 모두 꼼꼼하게 봉합하여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화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해부하는 과정도 엄청 신경을 써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신 스승에 대한 특별한 대우에 관한 이야기만 적는다면 몇쪽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해부학 실습이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서 실습과정을 소개합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근육, 신경, 혈관 등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은 전혀 없습니다. 말로만 설명하다 보니 해부학실습을 한 필자마저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거려 개념이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반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