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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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서부지역의 루아르 계곡에 있는 몇 개의 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이드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어보기를 권하였습니다. 이 책의 무대가 바로 루아르강 유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발자크가 묘사한 루아르강변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태양 아래 초록색 강변 사이로 줄줄 흐르는 긴 물줄기와, 사랑스런 골짜기를 출렁거리는 레이스로 장식하는 포플러의 행렬, 강물에 의해 다양한 모양으로 깎인 작은 언덕 위의 포도밭, 그 사이로 나오는 떡갈나무 숲,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희미한 지평선, 이 모든 것이 오직 그 대상에만 집중된 무한한 사랑을 노래했다.(34쪽)‘ 바로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그녀가 이 골짜기의 백합이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밖에도 순수한 사랑, 깨끗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 등이 있는데, 꽃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골짜기의 백합>을 연상의 유부녀와 연하의 총각 사이의 연애소설이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제 느낌으로는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냉정한 부모 밑에서 제대로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던 펠릭스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하여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결국 투르로 옮기게 되는데, 투르에서 열린 행사에서 어깨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어깨에 키스를 하는 무례를 범하게 됩니다. 어쩌면 운명의 실타래가 얽혀드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펠릭스는 결국 모르소프백작 부인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정신적인 사람이 싹트고 부인은 펠릭스를 왕정복고에 성공한 루이18세의 측근으로 발탁되도록 손을 쓰게 됩니다. 펠릭스는 백작부인에게 정절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지만, 파리의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영국에서 온 더들리 후작부인의 호승심을 자극하여 결국은 펠릭스를 굴복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십대 젊은이의 들끓는 혈기를 억누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펠릭스의 변절을 전해들은 백작부인은 크게 상심하지만, 막상 더들리 후작부인을 만나고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펠릭스의 변심은 결국 남편의 폭력과 병약한 자녀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백작부인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곡기를 거부한 결과 스스로 죽음을 맞은 셈이니 펠릭스의 책임이 크다고 해야 할까요?

모르소프 백작부인은 누이처럼, 어머니처럼, 펠릭스의 삶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정신적으로는 사랑하는 관계를 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 딸 마들렌을 펠릭스와 짝을 지을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복잡하게 얽어놓은 발자크의 사고는 당시의 프랑스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죽음이 펠릭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들렌의 거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진전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골짜기의 백합>은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죽은 다음 펠릭스에게 다시 마음을 줄 나탈리라는 여성에게 저간의 사정을 고백하는 서간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가 나폴레옹의 재집권과 몰락이 이어지면서 어수선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격변기의 사회상을 반영하기보다는 순수해야 할 사랑이 끝까지 지켜지지 못했다는 비극적 결말로 맺어지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연애담이라서 얼마나 널리 읽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루아르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박한 민심 그리고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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