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이 모든 것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마치 화학자가 향수를 분석하면 결국 드러나는 원료들은 단순한 것들인 것처럼철학은 인간을 해체해 그 속의 본능적 재료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이 욕망과 오류, 본능과 탐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을 배우는 일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환상 속에머물게 된다.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스스로의 민낯을 보는 훈련이다.

고대인들이 말한 otium, 즉 한가함은 단순한 놀이나 나태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고귀한조건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정신은 늘 일을 한다.
otium의 순간에서야 정신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성찰하며, 미래를 내다본다. 여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성찰의 공간이다

내가 가장 쉽게 속이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지성도혼의 성장도 모두 멈춘다. 오직 멈추지 않고 꾸준히 배우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뿐이다. 모른다는 건아직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고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지성이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라. 배움의 시작일 뿐이다.

허무를 느끼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많이 보고 너무 깊이 느낀 사람이지만 모든 게 덧없다는 것을알면서도 그 덧없음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으려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통과의 시간이다. 깊은 허무를지나고 나면 사람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모든 걸 잡으려 했다면 이제는 놓을 줄 알게 된다. 모든 걸 설명하려 했던 마음이그냥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뀐다.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거짓된위로를 버리고 진정한 평온으로 가는 길이다. 모든 게 덧없다고 느껴져도 그 덧없음을 알고도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삶의근본에 대한 깊은 허무는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알리는 포문이다.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단어를 바꿔야 한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내 마음의 구조를 결정한다. 무심코쓰는 말 속에 내가 어떤 세계에 사는지가 드러난다. 한 번쯤은멈추고 생각해야 할 때다. 나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말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가? 습관적인 말이 습관적인 생각을만든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는 것은 자기 인식의 새로운 틀을 짓는 일이다.

진짜 정의는 증오가 아니라 절제 속에 있다. 악을 미워하면서도 그 미움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 미움 속에서도 인간을 잃지 않는 것. 싸워야 할 때는 싸워라. 그러나 그 싸움이 나의 본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괴물은 외부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 있다. 내가 분노할 때 눈을 뜨고 내가 확신할 때 웃는다. 악과 싸우면서도 악을 닮지 않아야 한다. 나의 싸움이 나를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이 미워하는 것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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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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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질병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죽음은 ‘치료의 실패‘로인식된다. 환자에게는 끝까지 치료에 매달려야 한다는 압력이, 가족에게는 끝까지 살려야 한다는 도덕적 부담이, 의료진에게는 최신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대가 작동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안하는 것은 쉽게 ‘포기‘로 오해받는다. 그 결과 임종에 관한 대화는 미뤄지고, 연명의료나 호스피스에 대한 결정은 지나치게 늦어진다. 환자의 고통이 충분히 조절되지 못한 채 임종에 이르는 일이 한국 의료 현장에서 되풀이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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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초월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철 편역 / 히읏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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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가장 단순한 무대다. 무엇을먹는지, 어떻게 먹는지가 곧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식탁은 과도한 장식과 허영으로 가득하다. 접시는 넘쳐나고 음식은 화려하다. 그것들은 모두 겉모습을 위한 전시품에 지나지 않는다. 배를 채우기보다는 체면을채우려는 잔치일 뿐이다.
음식의 과잉은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신을 흐리게 하고사고를 무겁게 만든다. 위장이 넘치면 두뇌는 느려진다. 과식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삶 전체를 타락으로 이끄는 것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태도는 그 사람 자신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식탁에서의 태도가 삶의 태도인 것이다. 음식을 절제하며 먹는 자는 절제된 삶을 산다. 반대로 탐식에 빠진 자는 삶전체에서도 절제를 잃는다.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며 결국탐욕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습관처럼 보이는 탐식이 누적되면 인생 전체를 병들게 한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내를 수동적인 힘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인내는 능동적인 힘이다. 삶의 압력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것은 강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버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쉽다. 버티는 것이 훨씬 어렵다.

작은 씨앗은 처음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씨앗은 버틴다. 비가 적게 내려도,
햇볕이 뜨거워도, 바람이 매서워도 뿌리를 내린다. 수년이 지나면 그 뿌리는 바위를 갈라내고 마침내 작은 싹은 나무로 자란다. 약해 보이는 씨앗이 결국 바위를 이긴다. 그것이 버팀의힘이다.
우리의 삶에도 같은 법칙이 작동한다. 학문을 익히는 일, 기술을 배우는 일, 관계를 이어가는 일, 어느 것 하나 인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이 무거운 이유는 대개 단순하다. 필요 없는 것을 스스로모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짐은 많아 보이지만 정작꼭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과 똑같다. 사람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려놓지 못하기에 삶은 무겁다.
욕망을 줄이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딱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원하면 삶이 한결 가볍다. 많은 소유는 편안함을 주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관리하는 것에서 오는 피로와 불안을 동반한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힘이다. 침묵이 주는 무게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절제의 표시이며 절제는 내면의 힘을 드러낸다. 깊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사고가단단한 사람은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사유는 더 깊어진다. 이때의 침묵은 공허한 고백이 아니라 집중과 기다림의 공간이 된다.

말의 양뿐만 아니라 말의 속도 역시 사고의 깊이를 드러낸다. 빠르게 쏟아내는 말은 재치 있어 보일 수 있지만 곧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의 언변보다 숙고끝에 나온 한마디에서 더 큰 신뢰를 느낀다. 깊이 있는 사람의언어는 늘 약간의 간격을 둔다. 그 간격이 바로 생각의 흔적이고 그 흔적이 듣는 사람에게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과한 말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소모할 뿐이다.

단순함은 힘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소신대로 사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화려함에 기대 사람들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태도를 지키는 것이다. 단순한 삶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끝없는 소유와 욕망은 결국 삶을 무겁게 만들고 삶을 허망하게 만든다. 필요한 것만 붙들고나머지를 내려놓는 태도가 단순함의 본질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죽음을 의도한 행위가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위한 결정이라는 이해, 그리고 그 결정이 환자 본인 또는 대리인의 뜻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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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 《파이돈》에서 《팡세》까지,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
최대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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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제는 심지어 권력과 지배욕에대한 성찰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훨씬 더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네. 바로 죽음과불멸의 문제이지."

인생은 멈추지 않고 흐르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고 훌륭하게 사용할 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네카는 그러기에 시간이 물리적으로 얼마나 주어졌는가는본질이 아니라 말합니다. 햇수가 아니라 얼마나 인생의 목적에 부합하고 덕과 인간의 정신적 본성에 어울리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누군가 머리가 세거나 주름이 많다 하여 오래 살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오래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존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항구를 떠난 후에 곧바로 심한 폭풍에 붙잡히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방에서 계속해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이쪽저쪽으로 끌려다니다 결국은 같은 자리를 뱅뱅 돌았는데, 그가 긴 항해를 했다고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그는 오랜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떠밀려 다녔을 뿐입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시간에 대해 깨닫고 그 깨달음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이런 깨달음을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세네카의 가르침은 결국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요약됩니다.
결국 무슨 일이 닥치겠습니까? 그대는 바쁘게 살았고, 인생은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는 동안 죽음은 어느새 도착할 것이고,
당신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죽음을 위해 시간을 내주어야 할것입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세네카에 따르면 현자는 마지막 날에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이러한 지혜를 얻은 이들이 살아가는 인생은영원함과 고귀함에 열려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삶은 더 이상짧지도 허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현자가 죽음에 임하는 자세는 인간에게 희망을 줍니다. 세네카는 이 희망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합니다.

선현들이 남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나온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도록 인도됩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으며, 우리는 모든 시대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마음의 위대함을 통하여 우리가 인간의 좁은 한계를 초월하려는 소망을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거닐광대한 시간이 펼쳐집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그러기에 영원함을 지향하는 올바른 삶의 길이란 결국 매일매일자신을 살피고 정진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도덕적 서한》에서그는 이를 깊이 인식하고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을 잘 담고 있는 라틴어 경구가 그의 비극 작품의 한 구절에서유래한 "지상에서 별에 다다르는 쉬운 길은 없다Non est ad astra mollis e terris via "입니다. 우리가 세네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별을 향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과 별을 향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영적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결심과 실천의 소중함이라 하겠습니다.

. 《명상록》의 다음과같은 대목은 그가 추구한 삶의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욕구와 감각에 따른 표상이 동물이나 악한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이라면, 이제 오직 좋은 사람들의 고유한 특징으로 남는 것은 이러하다. 그는 인도자인 이성이 자신에게 의무로 보여주는모든 것들과 운명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사랑으로받아들인다. 그는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을거스르지 않으며 여러 상상으로 흔들리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품위를 가지고 밝은 마음으로 이를 지키며 마치 신을따르듯이 이를 따른다. 마찬가지로 그는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

그가 진솔하고 단정하며 선의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의심한다고 해도 이에 대해 분노하거나 자기 인생의궁극목적으로 이끌어주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모름지기 순수하고 평온하며 흔쾌한 태도로, 그리고 아무 강요없이 자유로이 운명에 헌신하며 이 목적에 도달하도록 나아가야 한다. (III.16)

인생의 마지막을 자주 생각한다는 것이 반드시비관적인 인생관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거듭 생각할 때 인간은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초연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현재의시간이 담고 있는 인생의 충만함에 대한 근본적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제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은 그 시간에 행해야 하는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흘러가는것이며, 인생은 유일회唯一回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당장 인생을 떠날 수 있는 준비된 자세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선사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진리를 체득한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마음의 밝음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요약합니다.

아침이 되거든 저녁때까지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저녁때가 되거든 내일 아침을 볼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지 마라. 그러니 너는 죽음이 어느 때 너를 찾든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 《준주성범》, 윤을 수 옮김, 가•톨릭출판사, 2021,72-73쪽)

토마스 아 켐피스는 죽음을 대하는 기예가 곧 삶을 사는 기이며, 좋은 죽음은 좋은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 관점 역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때에 찾고자 하는 삶의 모습대로 지금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며 슬기로운가? 《준주성범》, 73쪽)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한 번은죽어야 하고 그날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심 생활 입문》,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 옮김, 가톨릭출판사, 2021,85쪽)

그는 올가미를 치지도 않고 올가미를 경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자신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지 그의 소유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님을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것이 아니며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얼마나 잘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죽을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죽음의 방식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마음으로부터 깊이 확신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가 지금껏 잘 살아왔던 인생의 이야기를 (죽음이라는) 아름다운 마지막을 통해 완성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독한 생활》)

페트라르카는 《나의 비밀》의 서문을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구절로 엽니다.
나는 어떻게 이 삶으로 들어왔을까? 그러면 어떻게 나가게 될까?
이 질문은 페트라르카의 인생과 늘 함께했습니다. 훌륭한 인생과 행복에 대한 물음에는 늘 죽음에 대한 사유가 동반자처럼,
거울처럼 함께합니다. 죽음의 명상은 삶에 그늘을 드리우는 강박
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혼란된 자아가 성장하고 여러 모색을 통해 제대로 길을 찾게 도움을 줍니다. 페트라르카는 우리의흔들리는 영혼이 인생길을 굽이굽이 걸어가는 데 있어, 평생에 걸쳐 죽음에 대해 명상하고 죽음에 대한 성숙하고 명료한 인식을 가다듬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합니다.

그들은 언제가 될지 감히 신께 묻지는 못할지라도, 신께서 편안한 죽음을 주시고 자신들을 거두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만일 이것이 신의 존엄한 뜻에 합당한 것이라면,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상에서 번영하며 더오래 사는 것보다는 신에게 가는 것을 바랍니다. 《유토피아>>

고대 시대에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에서 그러하였듯,
여기에도 신앙과 철학은 함께 양심을 지키고 마음의 평정 속에서죽음을 맞으려는 이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처형은 극적인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는평온하게 죽음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상한가장의 마음으로 가족들을 축복하였고, 그의 처형을 맡은 형리와간수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머리카락은대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목에만 도끼를 대달라고 형리에게 농담을 했다는 일화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죽음 앞에서도 평정한 모어의 마음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의 소망대로 묘비석에 새겨졌습니다.
그 마지막 말은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삶이 허용할 수 없는 것을 허락해줄 것이다.
- 토마스모어-

마지막으로라인홀트 슈나이더의 《빈에서 보낸 어느 겨울 Winter in Wien》에서 만난, 에픽테토스에게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구절을 적어두고 싶습니다.
삶은 죽음의 문이요, 죽음은 삶의 문이다 Vita ianua mortis, mors ianua vi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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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슬기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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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풀이 세상의 향과 빛깔을 다 담아내서, 오히려 아무런맛이 느껴지지 않는 거라고. 너무 많은 걸 품으면, 끝내는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거지. 비워서 빈 게 아니라, 가득 채워서 빈 거야. 그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걸 들이켜는 거야."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아, 그렇지. 별것 없어! 우주의 맛이고 나발이고, 달콤함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 내가 오래 살아보니까, 입에 쓴게 약이라거나 쓴 게 제일 맛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인 놈들은 죄다 스트레스로 일찍 갔어. 맛없는 걸 먹으니, 인생이살맛 날 턱이 있나. 미련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쯧쯧쯧.
인생이 달아야지. 혀뿌리가 아릴 정도로 달아야지. 한 번밖에 안 사는 인생인데, 매일매일 최고로 달콤해야지!"

"의미? 삶이란 건 의미가 전부인걸! 만나다방이 다시 문여는 즐거움을 이 화환에 전부 꽂아 넣지 않고는 못 견디는게 인생 아니겠냐. 자, 다신 오지 않을 오늘, 기념으로 사진한방 찍어야지! 거기 딱 서봐라."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하고 씨, 그런 생각 마세요. 죽는다니요."
"더 잘 살고 싶어졌단 얘기예요. 좋은 사람들 곁에서 지내다가 따뜻한 작별 인사를 받으면서 떠나는 인생, 그게 하고싶어졌어요. 단것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때때로 미운 사람어퍼컷도 시원하게 날리면서.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그런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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