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 《파이돈》에서 《팡세》까지,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
최대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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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제는 심지어 권력과 지배욕에대한 성찰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훨씬 더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네. 바로 죽음과불멸의 문제이지."

인생은 멈추지 않고 흐르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고 훌륭하게 사용할 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네카는 그러기에 시간이 물리적으로 얼마나 주어졌는가는본질이 아니라 말합니다. 햇수가 아니라 얼마나 인생의 목적에 부합하고 덕과 인간의 정신적 본성에 어울리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누군가 머리가 세거나 주름이 많다 하여 오래 살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오래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존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항구를 떠난 후에 곧바로 심한 폭풍에 붙잡히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방에서 계속해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이쪽저쪽으로 끌려다니다 결국은 같은 자리를 뱅뱅 돌았는데, 그가 긴 항해를 했다고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그는 오랜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떠밀려 다녔을 뿐입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시간에 대해 깨닫고 그 깨달음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이런 깨달음을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세네카의 가르침은 결국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요약됩니다.
결국 무슨 일이 닥치겠습니까? 그대는 바쁘게 살았고, 인생은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는 동안 죽음은 어느새 도착할 것이고,
당신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죽음을 위해 시간을 내주어야 할것입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세네카에 따르면 현자는 마지막 날에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이러한 지혜를 얻은 이들이 살아가는 인생은영원함과 고귀함에 열려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삶은 더 이상짧지도 허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현자가 죽음에 임하는 자세는 인간에게 희망을 줍니다. 세네카는 이 희망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합니다.

선현들이 남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나온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도록 인도됩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으며, 우리는 모든 시대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마음의 위대함을 통하여 우리가 인간의 좁은 한계를 초월하려는 소망을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거닐광대한 시간이 펼쳐집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그러기에 영원함을 지향하는 올바른 삶의 길이란 결국 매일매일자신을 살피고 정진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도덕적 서한》에서그는 이를 깊이 인식하고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을 잘 담고 있는 라틴어 경구가 그의 비극 작품의 한 구절에서유래한 "지상에서 별에 다다르는 쉬운 길은 없다Non est ad astra mollis e terris via "입니다. 우리가 세네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별을 향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과 별을 향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영적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결심과 실천의 소중함이라 하겠습니다.

. 《명상록》의 다음과같은 대목은 그가 추구한 삶의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욕구와 감각에 따른 표상이 동물이나 악한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이라면, 이제 오직 좋은 사람들의 고유한 특징으로 남는 것은 이러하다. 그는 인도자인 이성이 자신에게 의무로 보여주는모든 것들과 운명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사랑으로받아들인다. 그는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을거스르지 않으며 여러 상상으로 흔들리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품위를 가지고 밝은 마음으로 이를 지키며 마치 신을따르듯이 이를 따른다. 마찬가지로 그는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

그가 진솔하고 단정하며 선의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의심한다고 해도 이에 대해 분노하거나 자기 인생의궁극목적으로 이끌어주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모름지기 순수하고 평온하며 흔쾌한 태도로, 그리고 아무 강요없이 자유로이 운명에 헌신하며 이 목적에 도달하도록 나아가야 한다. (III.16)

인생의 마지막을 자주 생각한다는 것이 반드시비관적인 인생관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거듭 생각할 때 인간은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초연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현재의시간이 담고 있는 인생의 충만함에 대한 근본적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제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은 그 시간에 행해야 하는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합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흘러가는것이며, 인생은 유일회唯一回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당장 인생을 떠날 수 있는 준비된 자세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선사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진리를 체득한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마음의 밝음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요약합니다.

아침이 되거든 저녁때까지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저녁때가 되거든 내일 아침을 볼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지 마라. 그러니 너는 죽음이 어느 때 너를 찾든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 《준주성범》, 윤을 수 옮김, 가•톨릭출판사, 2021,72-73쪽)

토마스 아 켐피스는 죽음을 대하는 기예가 곧 삶을 사는 기이며, 좋은 죽음은 좋은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 관점 역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때에 찾고자 하는 삶의 모습대로 지금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며 슬기로운가? 《준주성범》, 73쪽)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한 번은죽어야 하고 그날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심 생활 입문》,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 옮김, 가톨릭출판사, 2021,85쪽)

그는 올가미를 치지도 않고 올가미를 경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자신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지 그의 소유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님을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것이 아니며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얼마나 잘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죽을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죽음의 방식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마음으로부터 깊이 확신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가 지금껏 잘 살아왔던 인생의 이야기를 (죽음이라는) 아름다운 마지막을 통해 완성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독한 생활》)

페트라르카는 《나의 비밀》의 서문을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구절로 엽니다.
나는 어떻게 이 삶으로 들어왔을까? 그러면 어떻게 나가게 될까?
이 질문은 페트라르카의 인생과 늘 함께했습니다. 훌륭한 인생과 행복에 대한 물음에는 늘 죽음에 대한 사유가 동반자처럼,
거울처럼 함께합니다. 죽음의 명상은 삶에 그늘을 드리우는 강박
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혼란된 자아가 성장하고 여러 모색을 통해 제대로 길을 찾게 도움을 줍니다. 페트라르카는 우리의흔들리는 영혼이 인생길을 굽이굽이 걸어가는 데 있어, 평생에 걸쳐 죽음에 대해 명상하고 죽음에 대한 성숙하고 명료한 인식을 가다듬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합니다.

그들은 언제가 될지 감히 신께 묻지는 못할지라도, 신께서 편안한 죽음을 주시고 자신들을 거두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만일 이것이 신의 존엄한 뜻에 합당한 것이라면,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상에서 번영하며 더오래 사는 것보다는 신에게 가는 것을 바랍니다. 《유토피아>>

고대 시대에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에서 그러하였듯,
여기에도 신앙과 철학은 함께 양심을 지키고 마음의 평정 속에서죽음을 맞으려는 이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처형은 극적인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는평온하게 죽음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상한가장의 마음으로 가족들을 축복하였고, 그의 처형을 맡은 형리와간수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머리카락은대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목에만 도끼를 대달라고 형리에게 농담을 했다는 일화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죽음 앞에서도 평정한 모어의 마음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의 소망대로 묘비석에 새겨졌습니다.
그 마지막 말은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삶이 허용할 수 없는 것을 허락해줄 것이다.
- 토마스모어-

마지막으로라인홀트 슈나이더의 《빈에서 보낸 어느 겨울 Winter in Wien》에서 만난, 에픽테토스에게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구절을 적어두고 싶습니다.
삶은 죽음의 문이요, 죽음은 삶의 문이다 Vita ianua mortis, mors ianua vi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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