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신수련 묵상 길잡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지음, 김현균.김정아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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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덕행의 축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부단히 살아가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성소와 교회에 대해서, 십자가와 은총에 대해서, 그리고 죄와 충실성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의 현재화aggiornamento는 외적인 탈바꿈으로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로부터,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초연해져서 하느님의 뜻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의만으로는 이 세상이 선해지지 않는다는것을 뼈저리게 통찰하고 일상에서 수련을 실천하십니다. 악과 죄는곳곳에서 우리 영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작은 일에도 자신의 몸을 부리고 정신을 수련하십니다. 가방을 손수들고 다니고 다른 이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격식을 한사코 피하십니다. 그분에게는 겸손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최종 목적을늘 의식하며 매순간을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가장 큰 것에 압도당하지 않고 가장 작은 것 안에 담기는 자유로운 영혼, 작은 일들을 큰 지평 안에서, 곧 하느님 나라의 지평 안에서행하는 교황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니코데모3.1-21와 사마리아 여인4.1-42에 관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들도 조건을 가지고 예수님께 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대화의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곧 남편들에 대한 것은 놔두고신학적인 문제를 건드립니다. 니코데모의 경우는 다르지만 그 역시 조건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은 그가 준비되지 않은 것을 아시고 상념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왜냐하면 상념은 그에게 요구되는 충실함을 회피하기 위한도피처였기 때문입니다.

사제와 직업적 종교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둘은 질적으로다릅니다. 슬픈 일이지만 사제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적 종교인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제직은 더 이상 ‘다리‘가되지 못하고 그저 이행해야 하는 진부한 기능이 되어버립니다. 조정자가 아니라 중개인으로 전락합니다. 어느 누구도 제 스스로 사제의 길을 택하지 못합니다.

교황을 뜻하는 스페인어 ‘pontifice‘는 ‘pons‘(다리)와 ‘facere (만들다)의 합성어인 라틴어 ‘pontifex‘에서 유래했다. 결국,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거룩함이란 ‘하느님의현존 안에서 걷고 완전해지는 것이며, 부단히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이 만남을 기다리며 깨어있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예수님은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각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깨어있기 위해 노력할때 우리는 식별력을 지녀 그분을 알아 뵙고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주님이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데도 보지 못하고, 그분을 잘 알면서도알아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가던 길을 계속 가시려는 듯이 보일 때 가지 못하시도록 붙잡을 수 있습니다. 마르 6,48; 루카 24,28-29

하지만 슬픔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희망과 반대되는 죄를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베르나노스GeorgeBernanos,1888-1948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이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희망에 반하는 죄 …모든 죄를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죄, 그럼에도 가장 빠지기 쉬운 죄, 한껏 우쭐해하는 죄.
그 죄를 인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그 죄를 알리고 그 죄에 앞서 오는 슬픔은 얼마나 달콤한가! 악마의묘약, 악마의 진미 중에서도 으뜸이다."

밀과 가라지는 함께 자랍니다. 우리의 소박한 사명은, 어쩌면 가라지 수확은 천사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정신 차려 밀을 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유혹은 ‘마음의 가치보다 두뇌의 가치에 손을 들어주려는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마음만이 하나로 모으고 통합시킬 수 있습니다. 자비로움 없는 지성은 갈라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은 관념과현실,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과 영원을 하나로 결합시킵니다. 유혹은지성을 우리 주 하느님께서 애초에 놓아두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온갖 것을 심판하라고 인간의 예지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빌려주신 빛이요 반사광일 뿐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세상의 빛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 믿음을비추기 위한 섬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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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함은 피상적인 유희도 장난도 아니다. 그것은 최고의깨달음이며 사랑이고, 모든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고, 절망과 심연의 끝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자와 기사의덕이고, 부셔버릴 수 없는 것이고, 나이가 들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명랑함은 아름다움의 비밀이며 모든 예술의 진정한 본질이다. (유리알 유희)

삶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과제를 내준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부터 자기 삶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정해진 운명은 없다. 아무리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품위 있는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자리와 특별한 임무를 받아들이고, 또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타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있다.

작은 기쁨을 매일 가능한 한 많이 누려라. 대신에 크고 거창한 즐거움은 휴가 때나 특별한 때에 잘 누려라. 이것이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일상의 휴식과 균형을 가져다주는 것은 거창한 즐거움이 아니라 작은 기쁨들이다.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쁘게 걷거나기껏해야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이나 얼굴을 쳐다본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고개를 들어봐라. 한 번쯤 그렇게 바라보면, 어디서든 나무나 한 조각 하늘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굳이 푸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태양의 빛은 언제든 느낄 수 있다. 매일 아침 한순간이라도 하늘을 쳐다본다면, 갑자기 주변의 공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잠과 일 사이에 허락된 상쾌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할 때마다 한 권 한 권의 책에서 기쁨이나 위로 마음의 평화와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알고 있다 해도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생각 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자연을 산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기자신과 일상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더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단단히 붙잡기 위해 독서를 해야한다.

세상에는큰도로와 작은 길이 많다.
그러나 모두같은 목적지를 향해간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또, 둘이서 갈 수도 셋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그대 혼자 가야 한다.
그러니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혜이자 능력이다.

물론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나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태도가 습관이 된다는 말도 있으니까.

"나는 내 안에서, 나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삶을,
오로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를 과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과장되거나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을 때, 나의 자존감도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에 대한 앎,
즉 자기이해는 자존감과 연결된다. 나에 대해 아는 만큼 나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런 자기이해는 지식의 영역보다는 성찰의 영역에 더 가깝다. 나에 대해 묻고 답을 찾아가는과정에서 나를 더 잘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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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산 - 21세기의 영적 멘토 토머스 머튼의 고백록 다시 읽고 싶은 명작 3
토머스 머턴 지음, 정진석 옮김 / 바오로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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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계관은 또한 종교적이며 깨끗했다. 아버지의 그림에는 꾸밈이나 수다스러운 해설이 없었다. 종교적인 사람은 그 자체로 자명한 하느님의 창조의 힘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매우 훌륭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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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야. 우리의 목표는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인식하는 거야.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하는법을 배워야 해. 그렇게 서로 대립하고 보완하는 거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혼과 섞일 수 없는 자신만의 영혼을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이야기할 수도, 함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린 꽃과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 갈 수가 없다. 다른 영혼으로 가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꽃들은 서로 마주보고 싶어서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만 씨앗이 올바른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바람이 할 일이다.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곳에서 이리저리 분다. (크눌프)

나는 자기 내면의 비합리적인 힘과 충동, 그리고 약점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인간은 확정된 존재도 아니고완전히 만들어진 완성된 존재도 아니다.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도 명백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생성되어가는 존재이며,하나의 시도이자 예감, 그리고 미래이다. (전쟁과 평화)

내가 말한 ‘고집‘을 가진 사람은 돈이나 권력을 찾아다니지않는다. 그가 도덕군자인 척하는 사람이거나 체념한 이타주의자라서 이런 것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돈이나 권력,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고 죽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가는 사람, 고집 있는 사람은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높이 평가한다. 그것은 그를 살게 하고, 그의 성장을 돕는 그 자신 안에 있는신비로운 힘이다. 그 힘은 돈과 같은 것으로 유지될 수도 없고 자라날 수도 깊어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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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

지금까지 내게 사랑의 본질은 감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건지 모른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등의 조용한 감정들…… 그러나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정신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정신이고 그럴 때 정신은 행동한다.

현자가 말했듯 물은 다투지 않는다. 제일 낮은 곳을 제자리로 찾아 흐르기 때문이다. 물은 꿈이 크다. 가장 낮은 곳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다. 그렇게 물은 언어 없이 흐르면서 자유의 진실을 가르친다

아침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가지 끝 작은 잎들까지 조용하게 기쁘게 흔들린다. 흔들림들 사이로 빛들이 흩어져서 반짝인다.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혼자서 둘이서 걸어간다. 노란 가방을 멘 아이도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모두들 가로수 잎들처럼 흔들린다. 그들의 어깨 위에서 흩어진 빛들이 강 위의 파동처럼 반짝인다. 고요함과 기쁨으로 가득해서 엄숙한 세상을 바라본다.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아침마다 아파트 앞에 트럭을 세우는 이 남자는 방금 떼어 온 야채들처럼 늘 싱싱하다. 그의 목소리가 크지만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배 속으로 들어가서 근심을 쫓아내고 마음을 비워준다. 그건 분명 그의 목청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생의 명랑성 때문이다. 정신이 깊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그것이 나의 오랜 착각이었다).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아침 베란다에서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읽는다. 눈앞에서 지나가는 사연들이 모두 남의 일 같다. 어제는 긴 밤 동안 비가 내렸다. 흐린 아침 풍경이 멀고 낯설다. 그 안으로 문득 파란 버스가 들어와서 역으로 달려간다. 어제 신문에 실린 칼럼의 제목은 〈카프카의 희망〉이었다.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그 희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강의 중에 자주 인용했던 카프카의 희망 변증론. 그때마다 뒤의 문장만을 붙들고 희망의 부재와 부당한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만 따지고 물었었다. 지금은 앞 문장이 비밀스러운 화두처럼 여겨진다.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희망들. 풍경들 곳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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