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
지금까지 내게 사랑의 본질은 감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건지 모른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등의 조용한 감정들…… 그러나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정신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정신이고 그럴 때 정신은 행동한다.
현자가 말했듯 물은 다투지 않는다. 제일 낮은 곳을 제자리로 찾아 흐르기 때문이다. 물은 꿈이 크다. 가장 낮은 곳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다. 그렇게 물은 언어 없이 흐르면서 자유의 진실을 가르친다
아침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가지 끝 작은 잎들까지 조용하게 기쁘게 흔들린다. 흔들림들 사이로 빛들이 흩어져서 반짝인다.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혼자서 둘이서 걸어간다. 노란 가방을 멘 아이도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모두들 가로수 잎들처럼 흔들린다. 그들의 어깨 위에서 흩어진 빛들이 강 위의 파동처럼 반짝인다. 고요함과 기쁨으로 가득해서 엄숙한 세상을 바라본다.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아침마다 아파트 앞에 트럭을 세우는 이 남자는 방금 떼어 온 야채들처럼 늘 싱싱하다. 그의 목소리가 크지만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배 속으로 들어가서 근심을 쫓아내고 마음을 비워준다. 그건 분명 그의 목청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생의 명랑성 때문이다. 정신이 깊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그것이 나의 오랜 착각이었다).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아침 베란다에서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읽는다. 눈앞에서 지나가는 사연들이 모두 남의 일 같다. 어제는 긴 밤 동안 비가 내렸다. 흐린 아침 풍경이 멀고 낯설다. 그 안으로 문득 파란 버스가 들어와서 역으로 달려간다. 어제 신문에 실린 칼럼의 제목은 〈카프카의 희망〉이었다.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그 희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강의 중에 자주 인용했던 카프카의 희망 변증론. 그때마다 뒤의 문장만을 붙들고 희망의 부재와 부당한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만 따지고 물었었다. 지금은 앞 문장이 비밀스러운 화두처럼 여겨진다.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희망들. 풍경들 곳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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