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무언가에 대해 막연히 확신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마음을 버려버렸다. 이런 변화는 나의 확신을 다치게 했던 일촉즉발의 순간들에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었고, 그 상처들에서 빨리 벗어나고 회복하게 해주는 면역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막연한 확신보다는 일상의 작은것부터 꾸준히 지켜낼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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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깊은 상처가 그를 얼마나,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이름, 나이, 주소, 가족관계 등 모든 정보를 다 알고서도 그 사람의상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를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에게 빠져드는 순간은 바로 주인공이 우리와 비슷한 상처를 앓고 있다는것을 알게 될 때가 아닐까.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처음에는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방어기제 때문이다. 즉 캐릭터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려고 ‘감정 갑옷(emotional armor)‘을 입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감정갑옷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주인공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이야기의 힘이 바로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다.

나는 내 우울의치료제를 안다. 내가 읽은 모든 책, 내가 만난 모든 좋은 사람, 내가 경험한 모든 일상의소중한 순간이 치유의 비결이다. 마음공부야말로 그 어떤 중독의 위험이 없는, 내 안의 최고의 치유제‘가 아닐까.

배려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에 ‘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또다른 여유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자신만을 위한 삶에 모든 힘을 다 쏟아붓는 것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배려는 마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천막처럼 다른 사람들을 내 삶이라는 천막의 그늘에 와서쉬게 해주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회복탄력성을 증가시키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신경과학이 그 효과를 입증한 마음챙김 명상법과 공감기법을 대표적인 처방으로 제시한다. 불교의 전통 명상, 마음챙김 수행법과 서양의 대인관계 심리학의 공감기법은 모두끊임없이 뇌를 긍정적인 쪽으로 자극하여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강화한다. 예컨대 아버지를 볼 때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아들이 그때마다 다정해지자‘, 너그러워지자‘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면, 관계지능(relational intelligence)이 향상되고, 부자관계는 물론 자신의 트라우마까지 치유된다. 항상 화를 내고,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며,
조금만 화가 나도 이성을 잃어버리는 식으로 반응하던 사람도 마음챙김과 공감기법을통해 회복탄력성을 키움으로써 스트레스에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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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삶을 바라보며 나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삶은 버거워진다. 내가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이 살 순 없다. 그런데도 나는 바람직하다고 배운 그런 삶을 살겠다고 몇 번이고다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삶의 목표를...

다들 갖는 차 한 대, 집 한 채, 안정적인 직업 하나 없는 사람들은무능력하고 도태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비교를 하지 않으니 남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도, 남보다 더 잘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 눈에 비친 타인은 잘나고 못난 것이 없는,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을 보니 내가 얼마나 버거운 짐을 지고 살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늘 자유롭게 떠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 처지가 새장에 갇힌새처럼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뒷산을 나는파랑새라면 타인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다녀야 하는 하얀 새였을뿐이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삶,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무중력의 상태를 느끼는 듯했다. 다시 돌아보니 세상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치열하게 삶을 가꾸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분들은 여태 내가 생각했던 장기여행의 틀을 벗어난 형태의 여행을 하고 계셨다. 이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아주 간단하게요약하자면 ‘때가 되면 움직이는 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간을 정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그런 세계일주가 아니라 떠나야 할 때라고 느껴지면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가 머무르다, 다시 또 떠나야할 때라고 생각되면 이동하는 것이었다

"장기여행이 옳다 그르다 할 그런 기준은 없어. 그런데 오래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것만은 확실히 알더라. 사람 귀한 거 말이야."

우린 가져갔던 책들 중 읽은 부분들은 찢어서 버렸고, 여분의 신발과 옷들도 모두 버렸다. 유리로 된 양념통들은 플라스틱이나 비닐로대체했고, 미용에 필요한 마스크 팩이나 샴푸, 바디클렌저, 화장품 따위는 기본만 제외하곤 모조리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버렸다. 그렇게 다시 싼 배낭은 훨씬 가볍게 느껴졌고, 이제 여기서 더 버릴 건 없다라고 장담했지만 장시간 이동 후에 또다시 배낭에서 버릴것들을 찾았다. 계속 비워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제일중요한 목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배낭이 비워질수록 마음은 채워지는것 같았다.

어느 곳에서나 화려함 뒤에는 초라함이 숨어있다. 축제를 즐기는사람과 축제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아이들과 부모님을 기다리느라 외로운 아이들. 어쩔 수 없이 공존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초라함을 불쌍하다거나 불행하다고여기면 안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이 초라함까지도 같이 수면 위에 올려 함께 누려야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를 떠올렸다. 비 오는 날 누군가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비를 맞으며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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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왜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흘리며, 왜 누군가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아쉬움을 느끼겠는가? 이 책에는 실리지 못한 ‘달콤 쌉쌀한 단어가 많이 있다. 마냥 유쾌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런 단어는 행복과 그렇지 못한 감정이 한데 엮이는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낸다. 갈망과 동경을 나타내는 단어와 표현이 전 세계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보면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이상적인 고향, 어쩌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간절하게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 히라이스hiraeth가 그런 단어이다.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원하는 포르투갈어 사우다지saudade도 있다.

예코타.
느긋한 시간 한 조각을 끼워 넣다
GOKOTTA [j3:ku:tə] 명사 스웨덴어
새벽에 자연으로 나가 첫 새소리를 듣는 것

매일 아침 예코타를 위해 시간을 떼어두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동틀 녘 침대에서 빠져나와 깨어나는 자연을 맞이하며 걸으면 커다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일찍 일어나기, 마음 챙기기, 몸 움직이기(걷기를 포함하는 예코타라면),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 등 기분 좋은 것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예코타로 아침을 시작하면 남은 하루 동안 자기도 모르게 춤추듯걸을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얻는 행복을 묘사하는 스웨덴어 가운데 특별히 아름다운 단어는 스물트론스텔레smultronstalle 이다. ‘야생 딸기가있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중한 장소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미트 스물트론스텔레는 나의은신처‘ 또는 ‘나의 특별한 장소‘라는 뜻이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며 평화롭고 집에 있을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말한다. 주변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스웨덴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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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나약함을 보지 않으시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아름다움을 보십니다. 비록 우리가 나약할지라도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주님과 함께 우리는 다시 알게 됩니다. 우리가 깨지기 쉽지만 동시에 귀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탈과 같다는 점을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크리스탈처럼 주님앞에서 투명할 수 있다면 주님의 빛, 자비의 빛은 우리안에서 빛날 것입니다. 우리를 통과해서 온 세계에 빛날것입니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서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베드 1,6) 라고 이야기했던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축일(부활 첫 주일),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는, 늦게 도착했던 사도 토마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토마스를 기다렸습니다. 자비란 뒤에 남겨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질병의 대유행에서 우리가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뒤에 남겨진 이들을 잊어버리는 위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보다도 더 나쁜, 이기적인 무관심이 공격해오는위험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나에게 좋으면 좋은 삶이라는 생각, 나에게 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생각 때문에 퍼집니다. 이렇게 시작해서는 사람을 차별하고, 가난한 이들을 버리고, 뒤에 남겨진 이들을 발전이라는 제단에 희생물로 바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님, 저들은 가끔 저의 선함을 마구잡이로 이용하기만합니다." (『일기 Diary』 1937.12.24.)
그러자 예수님이 답하셨습니다.
"마음 쓰지 마라. 그것들이 너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여라.
언제나 모두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일기 Diary』1937.12.24.)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대단한 영웅이 되는 것, 말하자면예수님과 같은 영웅의 삶을 똑같이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알아듣는 것이지, 모두가 예수님처럼 도인이나 성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이 내 삶에서 누구이시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묻는 데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미 살아가게 된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생명은서로 다름의 만남이다. 만남은 제 삶을 포기한 채 특정인의 삶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노예 생활이고, 을의 서글픈굴욕일 뿐이다. 모두가 같은 삶의 자리에서 살아야만 하는 세상은 파시스트들의 세상이다. 삶의 자리가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세상이 민주적인 세상이고, 그 세상은 신앙적인 세상과 다르지 않다. 요한은 자신의 자리와 예수님의 자리를 혼동하지 않았다. 요한을 통해 배울 수 있는건, 우리가 경쟁하는 대상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것이다. 신랑의 친구인 자신의 처지를 버려두고 왜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의 자리를 탐하려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자리가 명확하고 분명해야 육화하신 예수님이 한결 선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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