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실체는 외부로 나타난다.
현명한 사람은 한결같이자기 자신의 것,
자기만의 것에 집중한다."
-『예기』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집을 옮기면서 부인을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는이야기를 들었소. 그게 가능한 일이오?"
‘그보다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악은 자기 자신을 잊는 일이지요."
공자

"현자는 부족함에 분노하지 않는다. 왜인가?
태어날 때부터 현자인 사람은 없고 만들어져갈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만이 지혜로워진다는 사실을 안다.그는 인생의 한계를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분별 있는 자는 본성에 화내지 않는다.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 관대하고,
실수에 너그럽고, 한결 편해지는 길로 나아간다.
현자는 집에서 매일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분명 꽤 많은 술주정뱅이와 본능에 충실한 사람,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좌절된 야망으로 분노를 억압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그러고는 의사가 환자를 보듯 태연하고 친절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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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이란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물레를 뜻하는 균‘ 이란 단어가 가지는 이미지이다. 균‘은 진흙 덩어리를 올려놓고 회전시켜 둥근 모양의 도자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원형의 회전 장치, 즉 물레를 말한다. 물레가 회전할 때 만약 우리가 정확하게 그 물레의 중심부에 흙덩어리를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흙덩어리는 물레의 중심을 벗어나가차 없이 땅바닥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가령 ‘조삼모사 이야기‘ 에적용한다면, 원숭이에게 내민 저공의 처음 제안이 바로 땅바닥에 나뒹굴게 된 흙덩어리로 비유될 수 있다. 반면 그의 두번째 제안은 정확히 물레의 중심부에 놓였기 때문에, 바닥에 나뒹굴게 되는 결과를피할 수가 있었던 흙덩어리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중심 잡히고균형 있는 상황을 장자는 천균‘ 이란 용어를 통해 묘사했던 것이다.

"천균에서 편안해 한다" 라는 장자의 표현에서 우리는 어떤 안일한 순응주의나 정적주의를 읽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편안해 한다‘ 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손쉽게 이런 인상에 빠지곤한다. 그러나 내가 판단중지의 상황이라고 풀이한 천균의 상태는, 단순히 고요한 상태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상태는 빠르게 회전하는 물레의 모습처럼 강렬한 역동성을 가지고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동성에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맡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타자의 타자성에 부합될때까지 부단한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주체의 끈덕진 의지를 함축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판단중지의 상태에서만 타자에부합되는 새로운 제안이나 행동을 마련할 수 있다.

판단중지의 상태란 실은 태풍의 눈과도 같은 상황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태풍의 주변부는 너무도 거칠고 위협적이지만 그 중심부는 고요해서 맑은 하늘이 보일 정도로 안정되고 평온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중심부는 마치 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태풍의중심부는 단순하게 비워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곳의 비어 있는 상태란 강렬한 태풍을 가능하게 하는 부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비어 있는 태풍의 내부가 외부로의 강렬한 운동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부가 더 비워지면 질수록, 태풍의 파괴력은 더 엄청난 법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원환의 중심을 얻는다" (得環中)는 장자의 표현을 통해, 중심에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는 물레의 강력한 회전력을 직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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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해선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습니다. 땅에서 개가 짖는다고 하늘 위에 뜬 달이 괴로워하나요? 인정받는 느낌을 남에게 의존하면 안 됩니다. 남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하는 연습을하세요. 자기 가치는 자기 안에서 찾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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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대붕 이야기‘ 의 주인공이 메추라기가 아닌 대붕인 것은 확실하다. 현실 세계로부터 속박되어 있지만 스스로는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메추라기는 분명 일상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고있다. 그러나 메추라기와 달리 대붕은 현실 세계로부터 비약하여 이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고도를 확보하고 있는 철학자, 즉 장자 본인을 상징한다.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메추라기보다대붕이 자유롭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대붕이 아니라 메추라기들이다.

그러나 대붕은 단순히 거대한 바람만을 기다리는, 다시 말해 바람에철저히 의존하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결코 아니다. 대붕은 자신의 온힘을 다해서 구만리 상공으로 비약하려고 매번 끊임없이 시도하고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순간 대붕 스스로 구만리 높이로 올라서야만 비로소 그는 자신의 밑에 바람을 둘 수 있다. 따라서 곤(銀)이라는물고기에서 붕(鵬)이라는 새로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붕이라는 새가 가지는 상승과 비약에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된실패와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날고자 하는 의지를 관철시킬 때 비로소 어느 순간 대붕은 구만리 높이로 우뚝 올라설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런 경우에만 대붕은 자신을 떠받치는 바람을타고,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장자의대붕은 모든 자잘한 것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바람을 타고 유유히푸른 하늘을 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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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되는 물레는 흙덩어리와의 소통을 상징한다. 아름다운도자기를 만들려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물레의 중심에 흙덩어리를 얹어야만 한다. 만약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흙덩어리를 얹었을 경우, 그것은 물레가 회전하자마자 바로 땅바닥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물레의 중심은 항상비워져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흙덩어리가 물레의 중심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가 마음을 물레에 비유하며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도이런 이유에서이다. 타자와 소통하여 새로운 연대를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마음도 물레처럼 비워져 있어야만 한다.

타자와 마주쳐야 비로소 판단중지가 발생하고, 판단중지가 일어나야 우리는 비로소 타자와 마주칠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것을 양행 (兩行)이란 개념으로 명료화한다. 다시 말해 타자성 그리고 판단중지와 관련된 두 가지 원리(兩는 함께 적용될 [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타자로 경험된 원숭이들의 분노를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서,
저공은 그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제안한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수용한 저공의 제안은 ‘옳다[是]라는 원숭이들의 생각에근거해서 구성된 것이다. 역으로 거절당한 저공의 다른 제안들은 원숭이들이 그르다‘ [非]고 생각했던 것에 따라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저공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제안들을 부단히 제공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 제안들을 옳은 것으로 확증하는 것은 원숭이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장자는 이것을 인시 (因是)라는 용어로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이 개념은 곧 타자가 옳다고 하는 것을 따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타자의 반응은 우리로 하여금 불가피한 판단중지의 상태에 놓이도록 만든다. 판단중지의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저공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타자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만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계속된거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원숭이들에게 제안하기 위해서, 저공은 부단한 판단중지의 상태를 견뎌낼 수 있어야만한다. 그리고 부단한 판단중지의 상태, 즉 이런 불편한 상태에서 편안해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원숭이들과의 소통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

이렇게 조삼모사 이야기‘ 후반부에서 장자가 강조한 ‘양행의실천 원리는 "옳고 그름‘ 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키고 자연스런 가지런함에 편안해 한다"는 두 가지 내용으로 간명하게 표현된다. 옳고그름에 관한 타자의 판단에 근거함으로써 우리는 타자와의 대립과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시‘ 의 의미이며 결국 타자성의 원리를 함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옳고 그름의 특정한 사태는타자의 결에 따라 언제든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필요로 한다. 장자는 이런 마음이 자신의 판단을 비워 두는 것, 즉 부단한판단중지의 사태로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리,즉 타자의 시비 판단에 따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마음을 비워 두는 것은 상호 필수불가결한 원리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장자는 두 가지 원리의 병행인 ‘양행‘을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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