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브컬처 안에서 바람직한 행동이란 특정한 사회적 요소에 의해 규정되는데, 그 요소는 유행이나 생활 양식, 문화적 배경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일 수도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에게는이런 집단의 행동을 관통하는 코드를 알아내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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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면, 아마 SNS 친구가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것이다. 루소도 자기 중심성이 강한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대도시 행인들을 배경으로 셀카봉을 치켜들거나, 끊임없는 ‘현재 상태‘ 업데이트로 자신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인간의 나르시시즘과 문명의 퇴보에 대해 냉소적인 코멘트를 날릴 가능성이 높다. 루소의 눈엔SNS 프로필과 태양왕의 궁전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일 것이다. 파우더와 향수, 외형적 예의범절 아래에 사람의 본모습을 숨기기는 매일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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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1750년 《과학과 예술론》에서 이미 비슷한 관찰 결과를 내놓았다. 루소는 과학과 예술은 인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까닭은 그것들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욕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질적 성장은 진정한 우정을 파괴하고 그 자리 를 질투와 공포, 불신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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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SNS 친구를 많이 모으는 사람에게는 노출즈적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관찰됐다. 그들의 계정에선 미화된 자아상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착취하려는 욕망이 도드라졌다. 우리는 나르시스 신화의 결말을떠올릴 필요가 있다.
님프들은 나르시스가 빠져 죽은 호수 가에 앉아, 님프 에코가 나르시스로부터 매몰차게 거절당했을 때 쉬었던 큰 한숨 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인터넷에 셀피를 올리는 사람들도 그 사진이 영원토록 온라인 상에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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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나이·계층 등에 따라 살아가야 할 때 공간과시간은 아주 다르다. 식당, 화장실, 대중교통 등에서의분리와 차별에 맞서, 일상의 사소한 공간을 둘러싼 권리 투쟁이 인권운동의 역사를 채워 왔다. 이 투쟁에는특정 ‘장소‘의 출입자와 그에 따른 의미를 바꾸는 것도포함된다. 포함되기 위한 투쟁이 있다면 박차고
나오기 위한 투쟁이 있다. 부엌은 어느 쪽에 해당할까?
"너는 혼자라서 좋겠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은 "너는 밥 안 해도돼서 좋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홀몸(?)인 나에게도 부엌의 역사가 있고 그 사연은 제법 길다.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은 한 장소를 무대로 만들어진다.
몸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받는 곳, 그런 몸의 경험과 맥락이 나의 정신적 관점을 낸다. 내가 경험한 부엌은 다른 이들의 부엌과는 다른 정체성을 형성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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