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계는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는 어른들의 세계다.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환상이 깨진 자리에서 더욱 성숙한 사랑은 시작된다. 인어공주가 인간이 되기 위해 감수하는 고통,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견디는 것이 바로 상징계의 사랑이다.

실재계는 인간의 무의식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다. 안데르센 원작 <인어공주>에서 왕자가 다른 여인과 결혼해버려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잃게 된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이면 자신은 살 수 있음에도, 왕자를 살려내고 자신은 물거품이 되는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실재계의 감동이다.
물거품이 돼버린 인어공주는 더 이상 이 세상, 상징계에 속할 수 없지만,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생이 끝나도 계속되는 진정한 사랑의 상징으로서 영원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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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주관적으로는 어떻게든 반드시 그걸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느낌을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라캉의 실재계임을 알게 되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공포의 문턱을 넘어서는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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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심리학 생존배낭에는 각종 치유의 도구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만능꾸러미가 되어, 언젠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재앙이 찾아와도 끝내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생존 배낭을구성한다. 매일 그 생존 배낭 속의 아이템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 뿌듯하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더 감동적인 책을 읽을 때마다, 더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을 감상할 때마다, 내 안의 힐링 패키지는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사물은 늘어날 때마다 공간을 차지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심리학 생존배낭에는 아무리 많은 치유의 비법을 구겨 넣어도 가방이 찢어지거나 1인용 무게 제한을 넘길 일이 없다. 게다가 그 어떤교통기관의 도움 없이도 매일매일 내 마음속에 나를 치유할수 있는 모든 도구를 쉽게 휴대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힐링 패키지를 뚝딱뚝딱 제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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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반성하며 물었다. 내 안의 가장 좋은 에너지는무엇인지, 내가 용기를 내어 지켜내야 할 최고의 내적 자산은무엇인지. 그것은 바로 한없는 다정다감함이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금방 깨닫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는 밤이 아무리 많아도 끝내 타인에게 다정해지는 내 안의 따스함이었다. 만일 내가 분노에 사로잡혀 그 다정다감함을 잃는다면, 아무리 현란한 심리학적 지식들로 중무장해도, 나는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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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장애 인권 동아리 턴투에이블은 『내 장애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의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수화를 사용하고 외출할 땐 흰 지팡이를 챙겨야 하지만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한 번도 장애를 극복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극복할 생각이 없는, 허술하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애에 노련하지 않습니다. (중략) 『내 장애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한 번도 스스로의 장애에 노련해본 적 없는, 앞으로도 영영 스스로의 장애에 노련해질 일 없는, 평범하다 못해 허접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인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내 장애에 노련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나름의 당찬 각오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뻔뻔하고 대찬 ‘내장노사’ 정신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련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련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야말로 적극적 부정의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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