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내게 "왜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는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기회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질병의 가치입니다. 이이런 가치가 질병과 관련된 고통에만 해당하는 것은 당연히아닙니다. 아우슈비츠라는 죽음의 수용소에 갇혔던 빅터 프랭클은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를 고통에서 구해주거나 자기를 대신해서 고통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바로 그 고통 앞에서 인간은 마지막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어떤 고통일지라도,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그 폐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보았습니다. 낯선 사람들끼리, 아니 이전이라면 그 어떤 관계 맺음도 거부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 주고서로를 보살피는 가히 혁명적 공동체‘를 건설해나가는 것이었며, 이를 두고 "재난은 지옥을 관통해 도달하는 낙원"이라지칭하기도 합니다.
한편 리베카 솔닛은 재난이란 영어 단어를 다시 곰곰이 살펴봅니다. 재난 재앙‘ 비상(상황)‘은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새로운 환경을 뜻하는 어원을 가진 말이랍니다. 재난(disaster)이라는 말은 멀리‘ 또는 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dis-‘와 별 또는행성을 뜻하는 astro‘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재앙(catastrophe)은 ‘아래‘를 뜻하는 그리스어 kata와 뒤집어지다‘를 뜻하는 streiphen에서 나온 말이며 그래서 재앙은본래 예상되는 상황이 전복되는것, 즉 반전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재난은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기회라는 겁니다. 익숙한 모든 것과 결별하고, 그래서 고달프고 버거울지라도,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희망을 세울 기회 말입니다. 리베카 솔닛이 재난의 어원을더듬어가며, 실제 재난 상황을 살펴가며 찾아낸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재난은 중생에 대한 측은지심, 집착 버리기, 자신이 독립적인존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기, 무상함의 각성, 불안에서 벗어나기,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적어도 태연자약하기 같은 불교 원칙들을 집중 훈련하는 과정이라고도 할수 있다. 역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란 피해와상실 없이 재난의 열매를 얻도록 고안된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명확성과 용감함, 이타주의, 위험과 세상의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평온한 마음 유지하기는 정신수양으로 어렵게 얻어지는 것이지만, 때로는 재난 시에 끔찍한 상실 속에서 선물처럼 갑자기주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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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송대의 인물로 팔방미인이라 불릴 만큼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서예와 그림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면 결국 꼭 소장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그것을 가지고 가더라도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없었던 겁니다. "아지랑이와 안개가 눈앞을 스쳐가듯, 온갖 새들의 노래가 귀에 들리듯" (『보회당기) 여겼지요.

군자는 사물에 뜻을 둘 수 있지만, 그 뜻을 사물에 매어 두어서는 안 된다. 사물에 뜻을 두더라도 소소한 대상을 즐거움으로 삼는 데그쳐야지, 지나치게 매혹적인 대상에 병이 되도록 매달려서는 안 된다. 뜻을 사물에 매어 두면 소소한 대상에도 병이 되도록 집착하고 매혹적인 대상조차 즐거움으로 삼을 수 없게될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대상도 소식이 이른바 ‘사물‘에 대한 태도와 같이 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뜻을 매어 두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너무 탐닉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천기‘를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는 서로 입김을 불어주고 서로 침을 내어 발라 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의와 같은 긍정적인 가치가 불필요한 것이라면, 선악의구분 또한 불필요할 것입니다. 장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임금을 찬양하고 걸 임금을 비난하느니, 차라리 둘다 잊고 도를 실행하는 것이 낫다." 성인인 요와 폭군인 걸 사이에서 경중을 따지며 시비를 가리느니, 차라리 둘 다 잊고 도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는 뜻이겠지요.
도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것을 의미합니다.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람은 도 안에서 서로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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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역사 속 대표적인 사례는 이집트 미술이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비율과 자세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진화가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집트의 조각상은 너무나 훌륭하다.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이라고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얼굴과 균형 잡힌 몸을 가지고 있다. 두다리는 쓰러지지 않게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서 있고 얼굴은 정면을바라본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람의 특징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굴은 옆모습을 그리고 몸은 정면을 그린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완전하다고 믿었기에 그들의 미술은 수천 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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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쭉정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분명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이기때문이지요. 사물의 고갱이‘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래의 이야기를 살펴봐 주십시오.
한번은 제나라의 군주인 환공이 전당 위에서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수레의 바퀴를 만들던 윤편이라는 이름의장인이 손에 들었던 도구들을 내려놓고 환공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군주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성인의 말씀이니라." "성인께서는 아직이 세상에 계십니까?" "세상을 떠나셨지." "그렇다면, 군주께서 읽고 계신 것은 모두 옛사람이 남긴 얼의 쭉정이와 찌꺼기일 뿐이군요!" 환공은 화를 냈습니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나 만드는 너같이 하찮은 장인이, 어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게냐! 그런 말을 하는 이치가 타당하다면 또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대지 못하면 죽을죄가 되느니라." 윤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면 제가 하는 일을 가지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나무를 베어 수레바퀴를 깎는데, 구멍이 너무 헐거우면 수레가 안정되지 않고, 구멍이 너무 꽉 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주 딱 들어맞아야만 하지요. 손에 익은 그와 같은 감각은 마음으로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말로 설명해 낼 방법이 도무지 없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도 치수라는 것이 있고 기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제 아들에게도 그 관건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제 아들도 저한테서 그 점을 제대로 배워 갈수가 없지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일흔이 되는 나이에도 여기서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떠났으니, 그분들이 가지고 계셨던 것도 지금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군주께서 읽고 계신 건 결국 고인들이 남긴 쭉정이와 찌꺼기일 뿐이라는 겁니다!"

윤편이 오직 수레바퀴에 어쩌고저쩌고 한 것에 불과하다면그 말은 결국 ‘사물의 쭉정이‘에 속할 뿐일 겁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것은 수레바퀴를 깎는 기술과 치수 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과 치수의 핵심적인 내용은 또한 말로는 모두 전해질 수 없는 것이지요. 도리어 손의 실천을 통해서만 서서히 깨달아지고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이야말로 ‘사물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술이 제아무리고강하고 절묘하더라도 ‘도‘는 아닙니다. 그것이 대면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물‘ 그 자체의 세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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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토록 감동하는데, 내가 어째서 짐승인가? 음악은 인간의 정신이 가장 고양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정신 상태죠. 동물이 인간의 여러 행동을 따라 하지만, 음악을 감상할 수는 없어요"

"카프카는 우리가 생각하듯 나약하고 울적하고 어둡기만 한 사람이 절대 아닐 수도 있다.’ 작품과 외모 때문에 그가 중압감을 못 이기고 구석으로 들어가 가만히 생각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카프카의 본질은 엄청난 생의 충동입니다. 한마디로 그에게 삶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동물적이죠. 결코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뚫고 나가는 힘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여기에 문학적 의지를 다 투여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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