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세이버다. 피자를 배달시켜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다.
피자 중앙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플라스틱 삼발이다. 무심코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름만큼은 굉장하다. 삼발이 탁자 같은생김새 때문에 ‘피자 테이블‘로 불리기도 한다. 피자 스택, 피자오토만, 피자 니플 등 별칭도 있지만, 널리 쓰이는 편은 아니다.

피스라는 단어에는 ‘골자‘, ‘핵심‘이란 뜻도 있다. 식감과 맛을 해치는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 떼 버리는 귤락에 귤의 영양소가꽤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과 귤락을 버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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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기억하는 일을 통해 이 여성은 자기 삶의 폐허 같던 장면에서 살아갈 용기와 싸울 힘을 얻은 것이다. 기억은 "일종의 갱신/심지어 어떤 시작, 그것이 여는 공간은 새로운/ 장소이므로"(「일요일 공원에서」). 시 쓰기를 통해 삶은 늘 새롭게 기억되어야 한다. 시인이란 그렇게 믿는 존재이다.

그러나 평범한 이들에게는 종교적 태도란 두가지 모두를 뜻한다. 신성해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위해사랑을 흘러넘치게 표현하는 일인 동시에 타자를 위해 물러서며 자신을 한껏 움츠리는 일이다.

뒤로 물러서 있기땅에 몸을 대고남에게그림자 드리우지 않기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빛나기ㅡ엉겅퀴 전문 ( 라이너쿤체)

인간은 실패하려고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영원에 이르는 은총이 우리에게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사회적 참사들을 겪으며 우리는 ‘지켜주지못해 미안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닌가…………. 친지들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며 자책하지만, 베유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랑을지키는 겁니다.‘ 인간의 사랑은 보잘것없다. 사랑하는 이를지키고 싶어도 세계의 난폭함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베유는 부재하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에대한 경애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해 뭐든지 하기"는 인간을 운명의 중력에서 뜯어내어 영원 속으로 들어 올리는 사랑이다. 사랑을 지키는 사람은 승리에 대한 상상 없이, 미래의보상을 구하지 않고 전투에서 목숨을 거는 병사와 같다. 또한 사랑은 무차별적이어야 한다. 『일리아스 또는힘의 시에서 베유는 죽어가는 모든 가여운 것에 대해 애정을 보였던 호메로스야말로 가장 진실한 작가라고 평가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작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추측하기는 힘들다. 트로이 병사들이 그리스인의 창과 칼에 죽어갈 때도 기뻐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햇빛처럼 모든 사람에게 관여하는, 슬픔으로 인해 (…) 『일리아스』의 음조는 슬픔에 젖어 있지 않을 때가 없다. 이 슬픔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승자와 패자를 모두 사물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하고 몰개성적인 힘이다. 그 힘의 노예가 되는것은 패자뿐이 아니다. 점령지에서 지나가는 소녀를 사격하고 나서 쓰러진 시신 옆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 병사는 승리한 ‘사물‘이다. 살려달라는 말이 물질에 전해지지 않듯이 병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눈앞에서 끝없이 목격되는 고통을 회피하려고 병사에게서 그의 정신이 이미 도망쳐버렸기에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물이 되었다.

그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할수도 있다. 방금 내 앞에 끼어든 자동차는 심하게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훨씬 급하고 위중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또 슈퍼마켓에서 모든 사람의 짜증을 돋우며 아이에게 악을 쓰던, 멍한 눈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녀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편이 누워 있는 병실에서 사흘 밤을 지새우다 아이에게 먹일 간편음식을 사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끼어든 자동차의주인은 얌체족이고 대형 슈퍼의 그 여자는 배려심 없이 제기분대로 행동하는 무례한 사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나의 욕구가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본능에 나의 사고가 굴복한 것일 수도 있다. "교통마비와 붐비는 상점통로, 계산대 앞의 기나긴 줄 (...) 나의 태생적인 디폴트세팅

예민성은 "무언가가 관심의 흐름 안으로 헤엄쳐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해 떠올린 것을 얼마나 꼼꼼하게 옮겨 적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사진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밝은 방』은 바르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진의 두 요소,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functum을 구분한다. 도로를 순찰하는 무장군인들 사이로 수녀들이 지나가는 사진을 본다고 하자. 사진작가는 폭력적인 삶과 신성하고 평화로운 삶의 대비를 의도했을 테고 우리는 그 의도에 반응하며 전쟁이 끝나기를기원한다. "도덕적·정치적 교양이라는 합리적 중계"를 거친반응이다. 이처럼 우리를 건전한 시민으로서 반응하게 만드는 요소가 스투디움이다.

이와 달리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세부 사항이 말을걸며 나만 아는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경우가 있다. 사진의 한 부분에서 "마치 화살처럼" 날아와 나를 꿰뚫고 내마음을 물들이는 요소가 푼크툼이다. 이 하찮은 세부 사항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진을 사랑하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을 사랑할 때 또는 그 사진이 나를 어지럽힐 때 나는 그것 때문에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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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릴케는 노래했다. "오 신이여, 우리에게 저마다의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하이데거는 릴케가 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자신은 철학적 사유로 반복한다고 말했을 정도로릴케의 열혈 독자였다. 시인이 말한 ‘저마다의 고유한 죽음‘
을 철학자는 이렇게 풀어낸다. 우리가 아무리 세인의 방식을 따라 산다고 해도 죽음만큼은 타인이 대신 겪어줄 수 없는 사건이다. 물론 사고 현장의 의인, 재난 현장에서 아이를지키려는 엄마처럼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도 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비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이 구분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 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세계가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느낀다. 우리는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특정 대상을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 거라는 감정적 방어 책을 만들어 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 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각종 학살은 대부분 불안 회피용 방어책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심오한 통찰은 정작 통찰을 제공했던 철학자에게서는 망각된 것 같다. 하이데거는 유대인들을 기술 진보에 앞장서며 현대인의 자기소외를 만들어내는 범죄행위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기술문명이 주는 막연한 불안을 유대인이라는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함으로써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는 고향과 같은 대지를 만들기 위해나치즘에 동조했고 유대인 학살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하이데거의 출석부에 적힌 이름의 주인들은 자신들이 가장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의 입을 통해 세상에서 추방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이데거 이후의 현대철학은 이 젊은이들이깊은 고통과 환멸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절망적인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은 오직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본래적인 사건‘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은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유한자임을 깨닫고그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찾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나의죽음의 중요성에 몰두하느라 타자의 죽음이 나에게, 그리고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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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지속시켜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한도 제약도 없는 완벽한 자유란 없다. 자

-알라딘 eBook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중에서

철학의 쓸모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진단과 소견을 제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우리가 실제로는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중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령은 "너 자신이 되어라" 혹은 "너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알라딘 eBook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중에서

스토아철학이 제시하는 치료의 원리는 단순하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사는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비극이라 판단할 때 비극이 된다.

-알라딘 eBook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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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처한 사회적 · 개인적 상황에 따라 내 몸을 곧나/주체로 인식하는 감각보다는 외부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대상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훨씬 클 수도 있다. 아이리스 매리언영은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남성 신체보다 더 자주 대상화 되고 몸을 규제 하는 사회적 규칙도 더 많다

"필리프 티는 외줄을 탈 때가장 중요한 태도란 망설이지 않는 것이라고.
단 한 순간도 추락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첫발을 내딛기로 하고 줄 앞에 섰다면오로지 저 건너편을 향해 걸어가는 일만을 생각한다.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운 채,
거침없이 발을 내딛는다."

"프릭쇼는 이주민과 장애인에 대한인종적, 장애차별적 역사를 가진폭력과 착취의 현장이면서다른 한편 사회에서 배제된 몸들이 직업적으로 활약하고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회였다."

세계는 이렇듯 프릭을 포함해 ‘타자‘라고 불린 다양한 존재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호출했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해방과전복을 누군가는 억압과 착취를, 혹은 둘 모두를 겪었다. 무용수는 온몸으로 대중 앞에 섰기에 타자를 둘러싼 욕망과 배제의 힘 한가운데서 특히 두드러지는 존재였다.

조선 고유의 춤에 유의하여 그것을 현대화시켜보려는 열의는 극구 찬양하는 바이지만 옛 조선을 상징하는 몇 개의 조선 춤은 옛조선 사람의 희화화에 지나지 않으며, (......) 거기서는 조선인의 특성도 찾을 수 없고 조선인의 핏줄은 더욱 찾을 길이 없다. (......) 외국인의 환호는 문명인으로서조선을 이색취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미개한 것으로서 좋아할 뿐이지 예술적 가치로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반도의 무희‘로 알려졌던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역시 응시하는 자들 앞에서어떤 춤을 추어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었다.
최승희를 비추는 ‘시선‘이란1910년 조선을 식민화한 일본이 유럽의 위치에서유럽이 일본을 응시할 때 보내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병신춤은 타자를 자기와 평등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타자와 자기를 구별함으로써 자기동일성을 확보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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