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릴케는 노래했다. "오 신이여, 우리에게 저마다의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하이데거는 릴케가 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자신은 철학적 사유로 반복한다고 말했을 정도로릴케의 열혈 독자였다. 시인이 말한 ‘저마다의 고유한 죽음‘
을 철학자는 이렇게 풀어낸다. 우리가 아무리 세인의 방식을 따라 산다고 해도 죽음만큼은 타인이 대신 겪어줄 수 없는 사건이다. 물론 사고 현장의 의인, 재난 현장에서 아이를지키려는 엄마처럼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도 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비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이 구분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 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세계가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느낀다. 우리는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특정 대상을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 거라는 감정적 방어 책을 만들어 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 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각종 학살은 대부분 불안 회피용 방어책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심오한 통찰은 정작 통찰을 제공했던 철학자에게서는 망각된 것 같다. 하이데거는 유대인들을 기술 진보에 앞장서며 현대인의 자기소외를 만들어내는 범죄행위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기술문명이 주는 막연한 불안을 유대인이라는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함으로써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는 고향과 같은 대지를 만들기 위해나치즘에 동조했고 유대인 학살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하이데거의 출석부에 적힌 이름의 주인들은 자신들이 가장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의 입을 통해 세상에서 추방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이데거 이후의 현대철학은 이 젊은이들이깊은 고통과 환멸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절망적인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은 오직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본래적인 사건‘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은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유한자임을 깨닫고그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찾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나의죽음의 중요성에 몰두하느라 타자의 죽음이 나에게, 그리고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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