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로도 충분하다는 자각, 혼자 서겠다는 각오, 혼자 버티고견뎌내면서 마침내 혼자 해내는 힘이 있어야만 둘이 같이 있어도 좋은, 과일 칵테일식 결혼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결혼하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가 더욱 잘 보인다. 무엇을 타협하고 무엇을포기해야 하는지도 점점 뚜렷해진다. 그래서일까, 결혼 후에는 내 장단에 맞춰 춤추는 것 역시 점점 쉬워지고 있다. 예상치못한 일이고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안톤은 앞으로 우리 행동이 점점 느려지고 상황 대처 능력이나 순발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현저히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맞는 것 같다. 음, 그럼 일단 시험 삼아 15분만 일찍 나가볼까?
그러나 내게는 15분만이 아니라 ‘무려 15분이니, 참으로 야심찬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기본적인 삶의 가치와 태도, 하느님과의 관계등 인생의 큰 그림을 공유하는가?‘이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 관계는 올바른 궤도에 올라와 있는 거다.
잘 가고 있는 거다.
사랑과 초콜릿은 나눌 때 더 달콤한 법. 이걸 나누는 사람이 비야라서 참 좋다.

국그 일로 우린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가진 돈을 뚝 잘라서 이곳처럼 당장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과 지역사회를 도와주자고, 우리 두 손 중 한 손은 자신을 위해,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해 쓰자고, 앞으로 스페인어 연습 겸 1년에 한 번은 중남미를 여행할 계획인데, 그때마다 ‘매의 눈‘으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과 상황을 살핀 후 ‘기회를 포착‘하면 즉시 돕기로 했다. 물론 도울 때도 안톤과 내가 반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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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서쪽에서 건너온 뜻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그 마음을 깨우쳐라, 그것을 위해 분리 분별하지 말고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함이다. 모든 존재는 참모습 그대로며, 진리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 유무有無와 허실虛實에 대한 의문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분법적인 분리 분별은 곧 헛된 생각에 불과하다

적절히 마음 쓸 때는 적절히 무심無心을 쓰게나.
자세한 말은 명상名相을 지치게 하고, 곧은 말은 번거로움을 없앤다네
무심을 적절히 쓰면 항상 써도 적절히 없음이 되니이제 무심을 말하는 것이 유심有心과 전혀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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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여론은 실업자들에게 멸시를 보내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으면 돈과 직장만 잃는 게 아니라 자존감과 인정도 사라진다. 자신이 사회에 해로운존재, 일하는 사람들의 돈을 뜯어먹고 사는 기생충, 아무짝에도쓸모가 없는 무용지물,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 이런 현실은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활동하지 못하고 사회적 인정을받지 못하면 실망을 넘어 심리적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또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하고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심정은 사회 결속에도 해롭다.
그런 젊은이들이 극단주의 이념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 사회나 정치를 향한 관심도 급격히 줄어든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투표를 하지 않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반면에 오스트리아 생필품 할인 매장에서 3년 6개월 동안 일한54세의 여성은 2018년 3월 도난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유는 가게문을 닫고 유통 기한이 지난 빵 자루를 버리다가 빵 두 개를 슬쩍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들만 보아도 딱딱하기로 소문이 난 형법도 부자 엘리트만 만나면 스르르 녹아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체념과 비아냥이 섞인 속담처럼 이 사회는 큰 도둑은 놓아주고 좀도둑만 잡아들인다. 법 앞에 만인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대중 매체에서 범죄를 다루는 방식은 범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진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관심의 초점은 주로 폭력범죄에 맞춰지고, 이주민과 빈곤층이 범인일 경우 더욱 조명이 집중된다. 폭력의 전시 경향도 심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영상으로누구나 유튜브에 뜬 폭력 현장을 볼 수 있다. 그런 영상은 글자로뉴스를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불안감을 조장한다.
그러나 정작 국가에 지대한 손실을 입히는 경제 사범과 탈세 범죄는 뉴스 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비신사적인 행동 정도로 잠깐 다루고 지나갈 뿐이며 심지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범인들 역시 안전하다고 자신하기에 거리에서 구질구질한 짓을저지르는 잔챙이 범죄자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내려다본다. ‘상류 사회‘의 범죄 행위가 어떤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며 왜 언론은이들을 문제시하지 않는지...

또 하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범죄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현상이다. 피해자가 범행을 도발했다고 비난을 받고, 피해자가 피하면 되었을 것을 왜 사전에 미리미리 방지하지 않았냐고 비난을 듣는다

소비와 사회적 지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비를 신분 소통의 수단으로 삼아 상징성 있는 제품으로 지위를 과시하고 남들의 눈에 더 높은 계층으로 보이려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장에서는 메시지로서의 상표처럼 상품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신분 과시를 조명하도록 하겠다. 성공해서 경제적으로독립한 사람들일수록 과시의 방식이 교묘해서 전통적인 신분 상징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문제는 순수한 부의 과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엔 공정 무역 제품과 지속 가능한 소비재 역시 제품과 소비자의 신분을입증한다. 공정 무역 커피, 유기농 제품, 친환경 여행 상품의 구매자들은 사회적 책임감과 환경 의식을 은근히 과시하여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요새는 운동화를 사겠다고 한데에서 밤을 새울 필요가 없다. 북새통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래플‘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래플은 일종의 추첨 제도로, 미리 이메일로 구매 신청을 받고상품이 출시된 후 추첨을 하여 당첨된 사람들에게 운동화를 판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미리 친구나 단골 고객에게 대부분의 상품을팔고 남은 몇 켤레만 일반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알고 있다. 이로써 운동화는 신분의 또 다른 측면을 입증한다. 남부럽지 않은 인맥이 바로 그것이다. 제대로 된 인사를 알아야 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에 소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와로브스키 (Fiona Swarovski)는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절약법을 조언했다. 테라스에 자리가 남거든 거기에 채소를 심어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사람들이 테라스 딸린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백만장자 상속인의 머리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빵이 없어? 그럼 케이크를먹으면 되지! 아마 피오나는 직접 구운 빵을 먹을 것이다. 그녀가말하기를,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면 돈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자신은 오래전부터 유기농 계란과 우유를사고 제분기로 밀가루를 만들어 직접 빵을 굽는다고 자랑했으니말이다. 가난한 노동자는 그럴 시간도 돈도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조언은 비싼 법이니까.71

이제 상품의 용도는 욕망 충족, 결핍 해소, 보상이 아니라 구매자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리딩대학교 환경·개발학과 교수 마이클 굿먼(Michale Goodman)은 말했다. "로빈 후드가 카페라테를 들고 도시로 온다." 72 구매자에게 지속 가능한 소비자가 된 느낌을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판매 및 매출 전략이다. 디자인 유리 용기에 코코넛오일을 담으면 몇 배로 비싸게 팔 수 있다. 코코아 같은 영양가 많은 식품에 ‘슈퍼 푸드‘라는 딱지를 붙이면 금방 불티나게 팔린다.
신분을 의식하는 소비자의 필굿(Feelgood) 욕망이 특별 마진을 낳는셈이다.

여행업계에서도 친환경 여행이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그 지역의 공익 프로젝트에기부도 하는 책임감 있는 여행이다.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배낭에 양심을 한가득 담고서 세계 오지로 떠난다.
환경을 생각해서 비행기는 타지 않지만, 그들은 사실 스리랑카나미얀마 ‘소프트 여행’보다 발리 패키지 상품이 훨씬 생태발자국을덜 남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현지에 가면 4성급 통나무집을 갖춘친환경 숙소와 죄책감 없는 휴가가 제공된다. 휴가 내내 신으려고새로 장만한 공정 무역 조깅화는 "달려라 그리고 바다를 지켜라"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은 먼저 그럴 능력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남들보다 도덕적인 인성을 갖추자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일상을 친환경 기준에 맞추려면 지속적인 자기 교육과 굳건한 확신이 필요하다. 아시아에서 수입한 대나무 칫솔이자기 나라에서 플라스틱으로 생산한 칫솔보다 더 자원을 보호할까? 내가 콩 제품을 구입하면 원시림이 훼손될까?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친환경 소비는 유식하다는 우월감과 한패다. 원하건 원치않건 농약 뿌려 키운 싸구려 커피를 할인 매장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을 깔보게 된다. 도덕적인 주체로서 돈이 없고 시간이 없으며,소비 문제에 무지한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하게 된다.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도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무지한 인간들‘을 배제하는 독선적 경계 짓기야말로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신중한 식습관은 교육 및 수입과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어의 안전지대에서 걸어나오라고 애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을것이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을 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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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 있는 진짜 내 동네는 요즘의 여느 도시 동네처럼 기능한다. 한마디로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적으로 드나든다. 손 흔들어 인사하거나 가끔 발길을 멈추고 인사치레나 사소한정보를 나누기는 하지만, 이전 시대에 흔한 듯했던 공동체적 활동이랄까 하는 걸 함께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 이웃들 중에도 한자리에서 수십 년 살아온 사람들은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가령 나는 울타리를 넘겨다보면서 옆집 마당에 나온 옆집 여자와 오랫동안 수다를 떠는 일이 없다. 이웃들을 내 집으로초대하여 바비큐 파티를 열지도 않고, 이웃들의 집에 초대받아 가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웃들의 이름조차 대개 모른다. 뭔가 필요한 게 생기면 - 공구든 설탕이든 - 대뜸 차를 타고 가게로가서 사온다.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서로 소외되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게 되고, 뉴잉글랜드 토박이들특유의 약간 쌀쌀한 태도도 문제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나는 내 집 현관문 너머까지 소속감을 확장 해야 할 필요성을 대체로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공통의 가치에 - 개에 - 집중한다는 점은 또 특별하고 보기 드문 편안함을 빚어낸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엄청 단순하다. 우리는 개 훈련 요령이나 관리에 얽힌 일화를 주고받는다.(여느 이웃사촌으로 따지면 설탕이나 공구를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는 잠자코 앉아

개 주인들은 그 자체로 특수한 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자기 개에게 홀딱 빠져 있고, 이렇게 집착을 공유한다는 점이 우리결속감의 핵심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생아의 엄마들이나의대생들처럼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나이나 출신이나 직업 같은다른 공통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깊이 있는 경험으로서로 이어진다고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사실은 그들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뿐이고,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사실도 그게 거의 전부다. 저 여자는 멋진 개를 키워, 자기 개를 잘 돌보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우리는 깊은 가치에관하여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다. 다른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저 여자는 정원이 멋져" 하고 말하는 게 이것과 같은 말 아닐까.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돌아보면, 내가 성가시다고 느꼈던 거의 모든 사소한 일들이어머니와 나의 그런 특이한 관계를, 숨은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가령 어머니의 부엌이 그랬다. 나는 그 부엌 때문에 미칠 것같았다. 그곳에 들어서서 너저분한 꼴을 보면 조리대에는 오래된 병들과 먹다 만 감자칩 봉지들이 있었고, 사방에 그릇들이 있었다 거의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나는 이를 악물었고, 온몸에힘이 들어갔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난장판 속에서 살지? 하지만 내 신경을 거스른 것은 사실 어머니가 청소를 싫어한다는 점 자체가 아니었다. 그 광경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혼란과 무질서에대한 한결같은 두려움이 문제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품었던 이 감정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어머니의 작용, 그에 대한 나의 반작용이었다.

타인에 대한 화가 자기 자신에 대한 화를, 자신에 대한 불편함을 반영할 때가 많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가 10대 때 어머니의 숫기 없는 성격에 짜증 나곤 했던 것은 나도그런 성격이기 때문이라는(그리고 그 점이 괴로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너무 잘 알겠다. 나는 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미치지못한다고 느끼면 불쑥 경멸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미치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종종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 나는 그 선을 그해 여름 넘었던 것 같다. 내가 굶어서 없애려고했던 것들이 - 외로움, 불확실성, 분노 점차 덜 중요해지고 굶기그 자체가 중요해졌다. 그 문제가 내가 내리는 결정들과 내가 시간을 쓰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의 저녁 초대를 거절하기 시작했는데, 그러지 않으면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칼로리를 계산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실제로 먹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점점 더 적게 먹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두는 게 좋지‘ 하는 괴상한 심리였다.

... 그렇게 먹는 시간을 기대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그 시간을 더중요하게 만들기 위해서 정교한 의식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시점엔가 나는 선을 넘었고, 그다음에는 되돌릴 수 없었다. 정상적인 식사는 죄책감과 실패를 뜻하게 되었다.
그것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나는 엄하게 단속했다. 아예 먹지 않거나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삶에 사람들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따르는 위험을 두지 않게 되었다. 음식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사람들, 감정들, 취약함 같은 것들과 거리를 두려는 것의 은유였다.

조앤은 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애쓴다는 말도 했다. 남편에게 당당히 맞서려 한다는 말도 했다. 한계를 정해두는법, 책임을 위임하는 법,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게 대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들도 했다. 나는 이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어떤영역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뒤로 미끄러지는것, 이 문제에서는 개선되고 저 문제에서는 제자리걸음인 것. 회복은 몸무게로만 측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주 동안 토요일마다 나는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각자의 개를 데리고 오랫동안 숲길을 걸었다. 우리는 멜로즈시와 윈체스터시 사이의 미들섹스 펠스 자연보호 지구를 거닐었고, 링컨시의 숲도 거닐었는데, 그 산책들은 육체의 움직임과 사교의 즐거움을 둘 다 균형 있게 갖춘 활동이었다. 우리는 걷고, 말하고, 이따금앉아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야외에 나오게 되어 지칠 줄 모르고 신난 개들을 지켜본다. 그렇게 걷고 돌아오면, 육체적으로 활기를 되찾은 느낌뿐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도 재충전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과 이어져 있는 기분, 만족스러운 기분, 내 개와 좋은 대화와 숲의 고요함 등등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과 더 가까이 있는기분, 사실 나는 걷기를 운동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파야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처음 떠올리는 생각인 듯한데, 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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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 우정은 개들의 놀이터 너머로는 확장되지 않았다. 호프와 나는 같이 식사한 적도, 같이 쇼핑한 적도, 같이 영화관에 가거나 개들 없이 저녁 시간을 보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내가우리 유대감의 미래와 우정 일반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우리 만남이 이처럼 특정 시간과 장소에 - 오후 5시, 개 놀이터에 고정되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프가 5,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뒤에도 계속 연락할까? 일상의 급박한 동기가 우리의 경우에는 개 운동시키기가 사라진 뒤, 이런 유대감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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