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여론은 실업자들에게 멸시를 보내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으면 돈과 직장만 잃는 게 아니라 자존감과 인정도 사라진다. 자신이 사회에 해로운존재, 일하는 사람들의 돈을 뜯어먹고 사는 기생충, 아무짝에도쓸모가 없는 무용지물,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 이런 현실은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활동하지 못하고 사회적 인정을받지 못하면 실망을 넘어 심리적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또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하고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심정은 사회 결속에도 해롭다.
그런 젊은이들이 극단주의 이념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 사회나 정치를 향한 관심도 급격히 줄어든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투표를 하지 않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반면에 오스트리아 생필품 할인 매장에서 3년 6개월 동안 일한54세의 여성은 2018년 3월 도난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유는 가게문을 닫고 유통 기한이 지난 빵 자루를 버리다가 빵 두 개를 슬쩍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들만 보아도 딱딱하기로 소문이 난 형법도 부자 엘리트만 만나면 스르르 녹아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체념과 비아냥이 섞인 속담처럼 이 사회는 큰 도둑은 놓아주고 좀도둑만 잡아들인다. 법 앞에 만인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대중 매체에서 범죄를 다루는 방식은 범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진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관심의 초점은 주로 폭력범죄에 맞춰지고, 이주민과 빈곤층이 범인일 경우 더욱 조명이 집중된다. 폭력의 전시 경향도 심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영상으로누구나 유튜브에 뜬 폭력 현장을 볼 수 있다. 그런 영상은 글자로뉴스를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불안감을 조장한다.
그러나 정작 국가에 지대한 손실을 입히는 경제 사범과 탈세 범죄는 뉴스 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비신사적인 행동 정도로 잠깐 다루고 지나갈 뿐이며 심지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범인들 역시 안전하다고 자신하기에 거리에서 구질구질한 짓을저지르는 잔챙이 범죄자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내려다본다. ‘상류 사회‘의 범죄 행위가 어떤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며 왜 언론은이들을 문제시하지 않는지...

또 하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범죄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현상이다. 피해자가 범행을 도발했다고 비난을 받고, 피해자가 피하면 되었을 것을 왜 사전에 미리미리 방지하지 않았냐고 비난을 듣는다

소비와 사회적 지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비를 신분 소통의 수단으로 삼아 상징성 있는 제품으로 지위를 과시하고 남들의 눈에 더 높은 계층으로 보이려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장에서는 메시지로서의 상표처럼 상품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신분 과시를 조명하도록 하겠다. 성공해서 경제적으로독립한 사람들일수록 과시의 방식이 교묘해서 전통적인 신분 상징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문제는 순수한 부의 과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엔 공정 무역 제품과 지속 가능한 소비재 역시 제품과 소비자의 신분을입증한다. 공정 무역 커피, 유기농 제품, 친환경 여행 상품의 구매자들은 사회적 책임감과 환경 의식을 은근히 과시하여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요새는 운동화를 사겠다고 한데에서 밤을 새울 필요가 없다. 북새통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래플‘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래플은 일종의 추첨 제도로, 미리 이메일로 구매 신청을 받고상품이 출시된 후 추첨을 하여 당첨된 사람들에게 운동화를 판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미리 친구나 단골 고객에게 대부분의 상품을팔고 남은 몇 켤레만 일반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알고 있다. 이로써 운동화는 신분의 또 다른 측면을 입증한다. 남부럽지 않은 인맥이 바로 그것이다. 제대로 된 인사를 알아야 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에 소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와로브스키 (Fiona Swarovski)는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절약법을 조언했다. 테라스에 자리가 남거든 거기에 채소를 심어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사람들이 테라스 딸린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백만장자 상속인의 머리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빵이 없어? 그럼 케이크를먹으면 되지! 아마 피오나는 직접 구운 빵을 먹을 것이다. 그녀가말하기를,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면 돈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자신은 오래전부터 유기농 계란과 우유를사고 제분기로 밀가루를 만들어 직접 빵을 굽는다고 자랑했으니말이다. 가난한 노동자는 그럴 시간도 돈도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조언은 비싼 법이니까.71

이제 상품의 용도는 욕망 충족, 결핍 해소, 보상이 아니라 구매자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리딩대학교 환경·개발학과 교수 마이클 굿먼(Michale Goodman)은 말했다. "로빈 후드가 카페라테를 들고 도시로 온다." 72 구매자에게 지속 가능한 소비자가 된 느낌을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판매 및 매출 전략이다. 디자인 유리 용기에 코코넛오일을 담으면 몇 배로 비싸게 팔 수 있다. 코코아 같은 영양가 많은 식품에 ‘슈퍼 푸드‘라는 딱지를 붙이면 금방 불티나게 팔린다.
신분을 의식하는 소비자의 필굿(Feelgood) 욕망이 특별 마진을 낳는셈이다.

여행업계에서도 친환경 여행이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그 지역의 공익 프로젝트에기부도 하는 책임감 있는 여행이다.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배낭에 양심을 한가득 담고서 세계 오지로 떠난다.
환경을 생각해서 비행기는 타지 않지만, 그들은 사실 스리랑카나미얀마 ‘소프트 여행’보다 발리 패키지 상품이 훨씬 생태발자국을덜 남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현지에 가면 4성급 통나무집을 갖춘친환경 숙소와 죄책감 없는 휴가가 제공된다. 휴가 내내 신으려고새로 장만한 공정 무역 조깅화는 "달려라 그리고 바다를 지켜라"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은 먼저 그럴 능력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남들보다 도덕적인 인성을 갖추자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일상을 친환경 기준에 맞추려면 지속적인 자기 교육과 굳건한 확신이 필요하다. 아시아에서 수입한 대나무 칫솔이자기 나라에서 플라스틱으로 생산한 칫솔보다 더 자원을 보호할까? 내가 콩 제품을 구입하면 원시림이 훼손될까?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친환경 소비는 유식하다는 우월감과 한패다. 원하건 원치않건 농약 뿌려 키운 싸구려 커피를 할인 매장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을 깔보게 된다. 도덕적인 주체로서 돈이 없고 시간이 없으며,소비 문제에 무지한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하게 된다.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도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무지한 인간들‘을 배제하는 독선적 경계 짓기야말로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신중한 식습관은 교육 및 수입과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어의 안전지대에서 걸어나오라고 애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을것이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을 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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